[사회운동] 핵 없는 세계를 위해 ③ - '한반도 비핵화'를 넘어선 비핵지대 운동으로
분단국가이자 핵 위협의 최전선에 노출된 한국의 반전·반핵운동은 그간 '한반도 비핵화'라는 일국적 시야 속, 북한 체제에 대한 입장에 따라 첨예한 내부적 대립을 이어왔다. 북한에 대한 정파적 입장의 하위 의제로서가 아니라 인류의 과제로서 반핵운동의 중요성을 다시 상기해 본다.
※ 8월 2일부터 10일까지, 웹진 《도모》의 발행주체인 전환의 집행위원장 정재환과 국제연대팀장 김원은 사회진보연대, 평등의길 등 다양한 한국 사회운동단위 활동가들과 함께 '2026 원수폭금지 세계대회' 한국 참가단의 일원으로 대회에 참석했다. 본 대회 참석이 한국 진보정치와 사회운동 전반의 국제연대와 평화운동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원하며, 전환 참가단의 일원으로 함께한 2인의 대회 후기와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생각들을 총 5부작으로 나누어 싣는다. (편집부)
※ '핵 없는 세계를 위해' 시리즈
- 핵 없는 세계를 위해 ① - 2026 원수폭금지 세계대회에 가다
핵 없는 세계를 위해 ① - 2026 원수폭금지 세계대회에 가다
[국제] 핵 없는 세계를 위해 ① - 2026 원수폭금지 세계대회에 가다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81주년인 2026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는 세계 각국의 반전·반핵 평화활동가들이 참석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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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 없는 세계를 위해 ② - 일본에서 떠올린 평화운동과 정치운동의 역할
핵 없는 세계를 위해 ② - 일본에서 떠올린 평화운동과 정치운동의 역할
[국제] 핵 없는 세계를 위해 ② - 일본에서 떠올린 평화운동과 정치운동의 역할전쟁범죄와 제국주의 가해자이자 최초의 원폭피해국인 일본, 식민지 당사자이자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의 주체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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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폭금지대회에 참석한 지난 8박 9일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도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이 하나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어떨까?'라는 고민이었다. 원수폭대회에 참가한 일본과 전 세계 평화활동가들의 모습을 보며, 현재 한국의 반전·반핵운동은 어떠해야 할지 고민해 보았다.
잘 알려져 있듯, 한반도는 미-중 대립, 북한(조선)의 핵개발, 남한의 지속적 군비 확충 등이 맞물려 세계적으로 전쟁 위험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손꼽힌다. 동시에 실제 전쟁이 발발하면 핵무기가 사용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오랫동안 반전반핵을 공통의 의제로 삼고 임해 왔지만, 김정은 정권의 '적대적 두 국가론'으로 대표되는 통일노선 폐기와 반핵의제에 대한 대중적 공감도의 한계가 맞물려 상당한 부침을 겪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지난 시기 한국 반전·반핵운동의 역사를 돌아보며 앞으로의 길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한반도와 핵무기는 그동안 어떤 관계를 맺어 왔고, 이에 한국의 진보적 사회운동은 어떻게 맞서 왔으며, 앞으로는 변화하는 한반도 및 국제정세에 맞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분단과 반공주의에 가로막힌 반핵의 기치

한반도와 핵무기의 첫 인연(?)은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에서부터 시작된다. 1950년 11월 30일 해리 S.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한국전쟁에서 원폭을 포함해 "우리가 가진 모든 무기를 고려"한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1 이후로도 유엔군사령부와 합동참모본부, 원자력위원회에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거듭 거론되는 등, 한국전쟁 3년 내내 한반도 위를 뒤덮은 핵의 먹구름은 떠나지 않았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는데, 특히 원폭 투하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을 뿐더러 미군의 점령 치하에서 전쟁 후방기지 역할을 했던 일본에서 더욱 그러했다. 1952년 8월 6일 열린 히로시마 평화시민대회에서는 '한국전쟁의 즉각 중지'가 네 개의 공식 슬로건 가운데 하나로 채택됐으며, 핵무기의 제조와 사용 금지를 요구하는 선언이 채택되기도 했다.2 당시 일본의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와 그 후유증을 다룬 나카자와 케이지의 명작 만화 《맨발의 겐》에서도 자세히 묘사된다.

냉전이 심화되자, 미국은 소련과 중국, 북한을 종합적으로 견제하는 동아시아 반공포위정책의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1958년 1월 주일미군기지에 배치되어 있던 핵탄두를 한국으로 극비리에 이전한 것을 시작으로, 냉전기 한국에는 수백에서 수천여 개의 미군 핵무기가 배치된다.3
1985년 기준으로 미국 공군 제8전투비행단이 배치된 군산공군기지에는 핵공격 능력을 가진 F-4와 F-16 폭격기에 탑재 가능한 전술핵 60기가 저장되어 있었으며. 용산기지에는 폭파용 핵지뢰담당 공병부대가 배치되었다. 이 외에도 미국은 남한에 핵항공모함, 핵잠수함 등 근해 핵무기,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랜스미사일, 핵 포를 배치했는데, 이는 일본에 투하한 원폭의 1,750배 수준이었다.4
남북한 정부는 변화하는 냉전기 지정학적 현실에 맞춰 핵개발을 통한 체제 보장과 정권 연장을 시도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핵 위협과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보며 안보 보장 수단으로서 핵무기의 역할을 확신하게 된 북한은, 60년대와 70년대를 거쳐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등거리를 유지하며 제3세계 비동맹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자주' 노선을 본격화하며 이를 지탱하기 위한 군사적 토대로서 핵개발에 몰두하게 된다.
동 시기 남한의 박정희 정권 역시 1970년대 데탕트의 일환으로 주한미군 감축을 추진한 닉슨 정부, 인권외교를 앞세워 주한미군 철수를 압박하던 카터 정부와의 갈등 속에서 '자주국방'의 일환으로 핵개발을 추진하게 된다. 그러나 핵무기가 이렇듯 냉전기 한반도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당시 남한 시민사회운동에서 독립적인 의제로 자리잡기는 어려웠다. 관련 내용의 대부분이 국가기밀로 분류되었을 뿐더러, 박정희 정권의 엄격한 반공 독재가 '국가안보'와 관련된 모든 문제제기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미국 전술핵의 남한 배치의 경우 1970년대에 이미 관련 언론보도가 나오는 등5 서구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한국에는 강력한 언론통제로 해당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물론 설사 관련 정보가 제대로 전해졌더라도 준독재였던 제3공화국과 민주적 질서를 완전히 파괴했던 유신 치하에서 이에 대해 공론화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물며 정부의 뒤에 있는 미국의 '안보사항'과 관련된 문제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반미자주'와 '한반도 비핵화'의 모순
반핵이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주요 의제 중 하나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광주민중항쟁의 책임소재 문제로 반미 정서가 폭증하고 민족자주 노선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기 시작한 1980년대 들어서였다. 미국과의 안보동맹을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여기지 않고 의문시하기 시작하면서, 반공주의 아래 억눌려 있던 반전·반핵 논의가 본격적으로 표면화될 정치적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당시 리영희로 대표되는 진보적 지식인들은 해외 반핵운동 소식을 국내에 전하고, 한국의 미국 핵우산 의존 비판과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한반도 비핵지대를 제시하며 여론에 불을 지폈다.6
당시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운동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민족해방(소위 'NL') 노선의 운동 역시 핵문제를 반미자주 노선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강조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당시 전민련과 전대협 등 NL 노선이 지배적이던 사회운동단위에서 추진한 범민족대회에서는 핵심 요구사항으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남북불가침 선언'과 함께 '한반도 비핵지대화', '핵무기와 주한미군 철수'를 내걸었다.7


한국의 반전반핵운동은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1991년 12월 31일 합의한 뒤 1992년 2월 19일에 발효된 해당 선언은,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치·사용을 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8고 천명하며 반핵운동은 물론 통일 및 한반도 평화운동 전체의 큰 변곡점이 되었다. 재야 사회운동 내부의 의견으로만 남아 있던 비핵노선이 남북 당국이 합의한 공식적인 제도적 규범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한계 역시 뚜렷했다. 우선 해당 선언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해당 선언은 남북이 공유하는 공동의 안보관을 형성한 것이라기보다는, 탈냉전과 미소 핵군축, 북한의 외교적 고립 심화, 미국의 해외 전술핵 철수, 그리고 북한 핵문제에 대한 남북과 미국의 협상이 한꺼번에 맞물린 일종의 지정학적 타협의 결과였다. 여기에 핵무기의 부재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 북한의 핵연료주기 능력을 어디까지 제한할 것인지, 그리고 미국의 핵우산과 한미동맹을 비핵화와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주한미군의 전술핵이 한반도에서 철수한 뒤 '한반도 비핵화' 담론의 실질적 초점이 점차 북한의 핵 문제로 이동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와 '북한 비핵화' 사이의 긴장은 오히려 더욱 선명해졌다. 한국 시민사회의 비핵화 논의 역시 북한의 대외안보정책, 더 나아가 북한 체제에 대한 평가 문제와 강하게 결부되기 시작했다.
한쪽에서 북한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원칙적 입장에서의 북핵 폐기를 요구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대북 적대 정책과 확장억제, 핵우산을 유지하는 위선을 지적하며 북핵을 용인하거나 더 나아가 정당화하는 지난한 대립이 반복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정파 간 대립문제에 민감한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당운동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쟁이 더욱 격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반핵은 진보·좌파가 유지해야 할 보편적 가치라기보다는, 북한 체제에 대한 정파적 입장에 따라오는 하위 의제처럼 취급되기 시작했다.

한반도주의를 넘어설 때 반전반핵의 미래가 열린다
앞서 살펴본 역사적 궤적에 있어, 한국 사회운동 내 반전반핵운동이 갖는 핵심적인 특징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 당대 한반도가 처한 역사적 현실에 크게 좌우받는다. 냉전기 미국 전술핵 비판 담론과 탈냉전 시기의 한반도 비핵화 담론은 모두 당대 변화하던 한반도의 지정학적 맥락에 대한 나름의 고민과 이해에 기반하고 있다.
둘째, 북한이라는 변수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1980년대 당시 NL 진영의 한반도 비핵지대론은 북한이 같은 기간 주장했던 조선반도 비핵화·평화지대화와 때어놓고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며, 탈냉전 시대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한국 시민사회운동 내 여러 논쟁들은 당대 북한의 핵개발 현황과 밀접히 연루되어 진행되었다.
셋째, 각 논쟁 당사자들의 정파적 위치에 따라 그 접근과 평가가 크게 달라진다. 북핵에 대한 평가는 김정일의 사망, 3대 세습과 함께 북한 정권의 속성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NL-PD 간 진영 갈등의 핵심 축으로 작용했으며, 특히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 시기에는 분당의 핵심 기저 중 하나로 작용하기까지 했다.
위 중 첫 번째는 한반도가 놓인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담론과 전략에 적극 반영한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기도 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역시 그 논쟁과 갈등과는 별개로, 냉전이 낳은 분단국가의 사회운동에게는 불가피한 측면이 존재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신냉전 구도가 가속화되고,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으로 이른바 '자주통일' 노선을 폐기한 오늘날에도 이러한 요소들에 소구력이 있는지는 재검토가 필요하다.

북핵이 한국 반전반핵운동의 주요 관심사가 되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나 이전과 같이 단지 북한의 행위만을 담론의 중심에 놓고 반전반핵운동의 노선과 전략을 설정하는 '한반도주의' 혹은 '일국반핵주의'가 과연 급변하는 현 국제정세 속에서 적합한지, 오히려 한국 반전반핵운동의 시아를 한반도에만 묶어 놓아 보다 폭넓은 관점을 가지는 것 자체를 가로막는 건 아닌지 진지한 반문과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제적 시야 안에서 반핵운동을 재구성하자
한반도주의를 넘어설 한국 반전반핵운동의 대안으로서, '한반도 비핵지대화'에 대한 논의는 그 초석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유엔이 정의하는 '비핵지대(NWFZ)'는 핵무기의 개발, 제조, 통제, 보유, 시험 또는 배치를 금지하는 지역적 지대를 일컫는다.
정의가 불분명하고 남북과 미국 간 해석의 차이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는 '한반도 비핵화'와는 다르게, 비핵지대 개념은 1999년에 유엔 군축위원회가 제정하고 유엔총회가 승인한 가이드라인에 기초하고 5대 공식 핵보유국들이 국제법적 효력을 갖는 의정서를 체결하는 등 보다 체계적으로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다. 중남미, 아프리카, 남태평양,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에서 이미 비핵지대 조약이 체결되어 참고할 만한 선례가 풍부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달리 말하자면, 한반도 비핵지대 운동은 핵 없는 한반도라는 과제에 대해 단순히 한반도 내 문제를 넘어 기존 핵보유국과 이미 비핵지대 조약을 체결한 국가들까지 운동의 주체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보다 국제주의적인 접근을 가능케 한다. 2000년대부터 한반도 비핵지대 노선을 주장해 온 진보적 안보연구가인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비핵화는 30년 넘게 가봤지만 실패한 길이고, 비핵지대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9 그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사실 앞서 1980년대 범민족대회 요구사항에 '한반도 비핵지대화'가 있었던 데에서 볼 수 있듯, 비핵지대는 국내 반핵운동의 '오래된 미래'로서 그 시작점에서부터 가장 먼저 주목받고 연구되던 대안이었다. 이후에도 평화운동10과 진보정당11 등을 중심으로 해당 주장은 꾸준히 제기되었지만, 북한 체제의 변화와 핵무장이라는 상황에 매몰된 한반도 비핵화 담론의 지배적인 영향력으로 인해 운동적·대중적 관심사로 자리잡지는 못했다.
이에 더해 오늘날 전 세계 반전반핵운동의 핵심 요구사항 중 하나인 핵무기금지조약(TPNW)에 대한 관심 역시도 환기할 필요가 있다. 특정 지역을 넘어 전 세계 단위에서 핵무기의 개발, 실험, 생산, 비축, 주둔, 이전, 사용 및 사용 위협과 그러한 활동에 대한 지원을 전면 금지하는 TPNW는 기존 핵확산금지조약(NPT)이 핵보유국의 패권적 질서를 사실상 인정하고 있으며 실질적 핵확산 방지 효과가 없다는 비판에서 출발한 새로운 국제 조약이다.

오늘날 핵무기금지조약은 국제 평화운동과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핵보유국과 한국·일본 등 핵우산을 제공받는 국가들의 외면으로 인해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회운동 내에서는 TPNW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일본 사회운동과의 연대 경험이 있는 단위들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주목받아 왔지만12, 여전히 대중적 관심도는 미비한 상황이다. 국내적 반핵 여론의 환기와 국제 평화운동과의 연대 촉진이라는 두 측면에서, 한국의 TPNW 가입을 사회운동의 의제로 전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의 최고 핵심 동맹국임에도 불구하고 남태평양비핵지대 창설에 적극 나섰던 호주와 뉴질랜드, 서방 내에서 중립노선을 추구하며 국제 반핵운동을 주도한 스웨덴과 오스트리아, 비핵지대와 TPNW 모두에 적극 협조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어떤 정치적 과정을 거쳤는지 살펴보는 것은 운동의 재구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해당 국가들의 성공사례는 각국 사회운동과 진보정치의 긴밀한 연대·협력을 토대로 이뤄진 만큼, 현재 한국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정치적 논의를 열어갈 수 있을지는 사회운동과 진보정당운동에 주어진 과제이기도 하다.
냉전이 한창이던 1955년 7월 9일, 영국의 버트런드 러셀과 미국의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반전주의 성향이 강하던 지식인들을 모아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이라는 이름의 반핵 선언을 발표한다. 해당 선언은 "당신이 인류의 일원이라는 걸 제외한 나머지는 다 잊어버려라"라는 문장으로 유명해젔다. 어쩌면 지금 한국의 반전반핵운동은 71년 전 러셀과 아인슈타인이 제시했던 화두를 다시 돌아보는 데에서부터 스스로의 위치를 다시 확인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국은 반전반핵이라는 인류 모두의 과제를 위해, 오늘날 스스로가 놓인 위치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김원
동국대학교 맑스철학연구회 전 회장, 전환 국제연대팀장.
동국대학교와 고양시, 대학원생노조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넓고 멀리 보는 이론과 구체적인 공간에서의 실천을 겸비한 운동을 지향한다.
각주
- Office of the Historian, US Department of State,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50, Korea, Volume VII 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50v07/d909?utm_ [본문으로]
- 国際平和拠点ひろしま構想推進連携事業実行委員会, 「ひろしま復興・平和構築研究事業 報告書: 広島の復興経験を生かすために―廃墟からの再生―」, 2014, p 127-128 [본문으로]
- 김일영·조성렬, 『주한미군: 역사, 쟁점, 전망』, 한울, 2003, p 109 [본문으로]
- 정영섭, 「한반도의 핵 현실과 반전반핵운동」, 『사회운동』 57호, 2005 [본문으로]
- National Security Archive, State Department telegram 208589 to U.S. Embassy South Korea, "Press Reporting of Sensitive Information," 20 September 1974, Secret, Mandatory Declassification Review Release https://nsarchive.gwu.edu/document/19744-national-security-archive-doc-24-state?utm_ [본문으로]
- 이행선, 「1980년대 리영희의 핵 인식과 반핵-한반도의 비핵지대화, 핵 불감증 비판, 군사 주권의 회복」, 『동북아역사논총』 82호, 2023 [본문으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범민족대회 추진일지,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857208?utm_ [본문으로]
- 국사편찬위원회,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남북한 공동 선언」, https://contents.history.go.kr/front/hm/view.do?levelId=hm_153_0080 [본문으로]
- 한겨레, 비핵화도 핵무장도 불가능하다면, 비핵무기지대는 어떨까? [정욱식 칼럼] https://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1195806.html [본문으로]
-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동북아 비핵지대화 지지 성명 https://peoplepower21.org/peace/580131 [본문으로]
- 국회의원 정책자료,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비핵지대를 위한 국제회의 https://ampos.nanet.go.kr/materialSeminarDetail.do?control_no=PAMP1000030187 [본문으로]
- 김진영, 「2020년, NPT를 넘어 핵무기금지조약으로」, 『사회진보연대』, 170호, 202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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