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핵 없는 세계를 위해 ① - 2026 원수폭금지 세계대회에 가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81주년인 2026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는 세계 각국의 반전·반핵 평화활동가들이 참석한 '2026 원수폭금지 세계대회'가 열렸다. 전쟁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오늘날, 그럼에도 여전히 핵 없는 세계를 외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8월 2일부터 10일까지, 웹진 《도모》의 발행주체인 전환의 집행위원장 정재환과 국제연대팀장 김원은 사회진보연대, 평등의길 등 다양한 한국 사회운동단위 활동가들과 함께 '2026 원수폭금지 세계대회' 한국 참가단의 일원으로 대회에 참석했다. 본 대회 참석이 한국 진보정치와 사회운동 전반의 국제연대와 평화운동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원하며, 전환 참가단의 일원으로 함께한 2인의 대회 후기와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생각들을 총 5부작으로 나누어 싣는다. (편집부)
8/2(일)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30분, 일요일 오후 도착한 히로시마는 평화로웠다. 무더웠지만 하늘은 맑은 게 날씨가 좋았다. 사람이 붐비지 않고 조용했고, 시내 곳곳을 오가는 트램 경적 정도가 가장 큰 소리였다. 이토록 평화로운 곳에서 81년 전 그토록 끔찍한 일이 있었다니 상상하기 힘들었다. 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이하 원수협) 사무실에서 등록 절차를 마치고 참가자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80주년이었던 작년만큼은 아니었지만 미국, 스페인, 필리핀 등 세계 각국에서 여러 활동가들이 참석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8박 9일간, 반전반핵의 기치 아래 함께할 국제연대의 범주가 도착하기 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넒을 것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8/3(월)
숙소에서 나와 국제회의가 열리는 히로시마 JR 빌딩으로 향했다. 주최측에서 배정해 준 일본인 활동가의 집에 홈스테이로 머무르는 형태였는데, 나오다 보니 전날 들어설 때는 어두워 알아보지 못했던 집 담벼락 앞 일본공산당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원수협은 공산당 계열의 정치운동과 여전히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 조직적 영향력을 단편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던 순간이었다.
아침부터 북적북적했던 회의장에서는 전날 오리엔테이션에서보다 훨씬 더 다양한 국적과 분야의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또럼 베트남 국가주석과 통룬 씨쑬릿 라오스 국가주석이 보낸 축사가 먼저 눈에 띄었다. 베트남과 라오스를 포함한 아세안(ASEAN) 국가들은 비핵지대를 선언하고 핵무기금지조약을 비준하는 등 반핵 노선에 진심이다. 각국 내부의 불평등이나 권위주의 문제와는 별개로, 일관된 반핵·비핵 지향의 외교노선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일본은 물론 프랑스, 스페인 등 세계 각국의 참가자들이 발언을 이어나가는 가운데, 미국 참가단의 두 활동가인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 국제위원회 소속 딜런 그렌칭어와 평화행동(Peace Action) 뉴욕 지부 바타야 옐로우즈가 눈에 띄였다. 팔레스타인 연대 학생운동이나 조란 맘다니의 뉴욕시장 당선으로 대표되는, 최근 미국 진보정치와 사회운동 내 청년층 활동을 대표하는 인물들이기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발언 후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전환의 노선과 지향을 담은 영어 팜플렛을 선물하고 기념촬영 후 연락처를 교환했다. 둘 모두 한국에서 전환과 같은 민주적 사회주의 정치·사회운동 조직이 활발히 활동한다는 사실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회의 내내 한국 참가단은 각별한 주목을 받았다. 해외 참가자 중 무려 40%에 가까운 인원이 한국 참여자였는데, 사회자가 이를 직접 언급해 참가자들의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한국 참가자 중에서는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위원장이 핵 없는 세계를 위한 민주노총의 역할에 대해, 이준규 포럼평화공감 연구자(이번 대회에서 통역을 맡아 주시기도 했다)가 미중러 등 강대국들의 대립과 블록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군비경쟁과 핵확산의 위협에 대해 발언했다. 해외 참가자들 다수가 한국의 사회운동, 특히 12.3 내란 이후 '응원봉 시위'로 대표되는 한국 청년층의 활동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8/4(화)
다음날 회의에서는 선언문 채택이 있었다. 핵위협은 물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한반도 핵위기 등 현재 국제정세를 종합적으로 짚고, 핵무기금지조약 가입을 위시한 핵무기의 완전 폐지를 요구했다. 기후위기 등 전통적인 안보위협과 구분되는 새로운 문제들에 대한 언급도 있었는데, 특히 역대 선언문 중 처음으로 AI의 위협을 명시한 게 인상적인 부분이다.
이후에는 히로시마평화공원 바로 옆에 있는 히로시마 현립 스포츠 센터 그린 아레나로 이동해 원수폭금지 세계대회 개회총회로 이동했다. 행사장 앞에서는 다양한 사회운동 단위들이 후원금 마련을 위한 굿즈를 판매중이었는데, 특히 지방에서 온 단위들은 자기 지방의 특산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총회 첫머리에는 일본공산당 위원장 다무라 도모코와의 대담이 있었다. 공산당 청년조직인 일본민주청년동맹 부위원장 나카야마 아유미가 진행을 맡고, 히로시마에서 정치·사회과학서적을 다루는 북카페 '소셜 북카페 하치도리샤'1를 운영하는 아비코 에리카 씨가 대담에 함께 참여했다.


다무라 위원장은 히로시마를 포함한 일본 곳곳의 사회운동이 대중의 반전반핵 여론을 움직였기에 공산당과 같이 전쟁국가로의 개헌에 반대하는 호헌파 정치세력이 힘을 받아 우경화에 맞설 수 있었음을 강조했다. 진보정치가 사회운동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 '거대한 소수'로 작용하고 여론을 움직일 수 있을지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한국 참가자 중에서는 함재규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연대사업국장이 발언해 역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 외에도 가자로 가는 국제 민간 구호함대에 일본인으로는 최초로 함께한 다케모토 마사히로 등 여러 활동가들의 흥미로운 발언들이 이어졌다.
저녁에는 히로시마 현지 활동가들과의 한일교류회에 참석했다. 일본 활동가들은 한국 진보정치의 현황부터 민주노조운동 내 청년 활동가들의 역할까지 한국 정치·사회 전반에 대해 질문하며 많은 관심을 보였다. 참여자 중 다카마쓰 후미코라는 일본공산당 소속 정치인은 다음 히로시마현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했다. 한·일을 가리지 않고 진보정치인이 지역에서 기반을 다지기 위해 바쁘게 뛰는 건 어디나 비슷해 보였다. 식당 에어컨이 고장나 몹시 무더웠음에도 불구하고, 양국 활동가들 간의 활발한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모른 저녁이었다.


8/5(수)
다음날 오전에는 공동 행사 대신 주제별로 총 9개의 개별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전환 참가단은 이 중 '비핵평화의 일본과 아시아' 세션에 함께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의 우경화, 북한의 핵개발, 중국의 군비증강, 한국과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 등 다양한 문제들에 관한 논의가 오갔다. 발제를 맡은 김진영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은 이처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수록 동아시아 시민사회 간 공동대응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 일본 청년 참가자로부터 12.3 내란 이후 한국 청년 중심의 '말벌' '응원봉 시위'의 현황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여전히 청년층 내 탈정치화와 우경화 경향성이 존재하고 특히 남성들의 극우화가 우려되는 것 역시 사실이지만, 응원봉을 들고 광장으로 나섰던 청년들이 다시 각자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 일상에서 조직과 학습, 투쟁을 이어나가는 데 희망을 걸어 본다고 답했다. 저녁에는 히로시마 여성포럼에 참석했다. 일본 각지에서 온 여성활동가들이 발언을 이어나갔는데, 갓난아기를 업고 온 젊은 워킹맘이나 여고생 등의 참여자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이후에는 '반핵평화 펜라이트(응원봉) 행동'에 참여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는 한국의 응원봉 시위에서 짙은 영향을 받은 행사이다. 음악과 몸짓패, 구호로 명성(?)이 자자한 한국의 시위문화에 비하면, 행사는 응원봉을 들고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도는 식으로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하게 이루어졌다. 행사 현장에서는 일본 사회민주당 소속 청년정치인 오모리를 만났다. 과거 정의당과 사회민주당 간 교류행사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놀랐다. 충분히 지속적으로 진행되지 못했을 뿐, 양국 진보정치 간 인연이 생각보다 깊다는 것을 느꼈다.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헤어지며, 다음에는 한국에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눴다.


8/6(목)
8월 6일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지 81년이 되는 날이다. 히로시마 세계대회 일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원폭 투하 당일인 만큼 4,000여 명의 각국 참가자들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집회는 오키나와현지사 다마키 데니의 축사로 시작했다. 반미군기지·호헌파의 대표주자로 오키나와 현지 사회운동과 관계가 깊은 다마키 지사는 오는 9월 선거에서 3선에 도전하는데, 올 초의 중의원 선거 전패와 오키나와 내외 우익 세력의 공세로 만만치 않은 선거를 치르고 있다. 특히 우익들은 올해 초에 있던 오키나와 해상 전복 사건을 오키나와 평화운동 전체에 대한 공격 근거로 삼고 있다.2
일본 평화운동과 사회운동의 핵심 보루 중 하나인 오키나와에서 진보·혁신 정치세력이 힘을 잃는다면 동아시아 평화운동은 작지 않은 타격을 받게 된다. 참석자들은 한마음으로 다마카 지사와 혁신세력의 승리를 기대했다. 이후 집회는 피폭자와 청소년 평화활동가, 생협노조 조합원 등 현지 활동가들의 발언 후 참가자 모두 강당에 올라와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를 부르며 마무리되었다.
다음 일정인 비핵평화 등불 띄우기 행사까지 조금 시간이 남아, 히로시마 평화기념관과 평화공원을 둘러보았다. 원폭 당시 살이 녹아내리고 산 채로 불에 타는 피해자들의 모습은 책이나 영화로 아무리 보아도 끔찍하다. 당시 터진 리틀보이와 팻맨보다 수백 배 이상 강한 핵무기가 이 세상에 수천여 기 존재한다는 것은 새삼 비현실적이다. 함께 있는 한국인 원폭피해자 위령비에는 당시 피해자 수의 1/5 가까이가 조선인이었다는 사실 역시 명시되어 있었는데, 피해 규모에 비해 한국사회에서 충분히 논의되고 있지 않은 것은 아쉬운 지점이다. 위령비 앞에서 묵념의 시간을 가진 후, 종이로 만든 등불에 평화의 마음을 담아 '혐오 착취 분열 없는 평등해방 세상으로'라 써 모토야스강에 흘러보냈다.


8/7(금)
5일간 정이 들었는지 시원섭섭한 마음을 뒤로 한 채, 히로시마 일정을 마치고 함께 나가사키로 이동했다. 초저녁 무렵 도착한 나가사키는 히로시마와 비교해도 더 조용하고 고즈넉했다. 참석자들은 바로 나가사키 한일 피폭자 간담회로 이동했다. 한국 측에서는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과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이 발언했다. 오늘날 대를 잇는 방사능 피폭으로 고통받는 피폭 2·3세 생존자들은 한국에만 1,000여 명이 넘는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약속이라도 한 듯 이들을 피해자로 인정하길 거부하고 있다.
양국 정부가 모두 피폭자 2·3세에 대한 제대로 된 인정을 거부하고 있다는 지점에서, 과거 필자가 통역을 맡았던 인도 LG화학 가스 누출사고 피해자 기자회견이 떠올랐다.3 당시 피해자들은 LG화학과 인도 정부가 당일 사망자와 부상자를 제외한 피해자에 대한 인정과 보상을 거부했다고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들을 외면한다는 점에서, 국가와 자본의 권력자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피해자와 연대자 간 국경을 넘어선 국제연대가 중요한 이유임을 다시 느꼈다.
간담회가 끝난 이후 홈스테이 숙소로 이동했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공산당 계열 활동가인 미조우라 마사루·리츠코 씨 댁이었는데, 무려 당원 경력이 60년이나 된다고 한다. 피폭 당사자로서 전쟁의 원인이었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정당이 공산당이라 생각해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한국인 참가단은 물론 필리핀 활동가인 알베르토 로사다 씨도 함께 묵었는데, 동네 아저씨 같은 서글서글한 인상과는 다르게 직접 배를 몰아 정유선을 저지하고 주필리핀 미군기지에서 나온 폐기물을 미국 대사관 앞에 던져놓는 등 대단히 전투적인 활동 경력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한국, 일본, 필리핀 3국의 활동가들이 모여 각자의 경험을 나누며 나가사키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8/8(토)
오전에는 나가사키 평화공원과 평화기념관을 다녀왔다. 산지가 많은 나가사키의 지리적 특성상, 나가사키는 원폭 피해의 범위가 제한되어 피해자 수가 히로시마보다 제한적인 대신 사망자 비율은 훨씬 컸다고 한다. 공원에는 중국과 과거 불가리아 인민공화국에서 선물한 추모 동상이 있었다. 비록 민간에서의 자발적인 운동이 아닌 관변운동의 성격이 강했고 소련 등 사회주의 핵심국의 핵보유에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반핵노선을 걸었던 사회주의 국가들의 외교안보노선을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기념관 안에는 서구 정치인들 중 반전반핵 노선을 가장 분명히 한 정치인인 올로프 팔메 스웨덴 전 총리에 대한 설명이 있기도 했다. 서로 다른 맥락에 놓여 있던 20세기 좌파의 반전반핵 노선을 살펴보며, 우리 시대는 이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오후에는 나가사키대학 의과대학 강당에서 일본 시민사회와 해외 대표단의 만남이 있었다. 도입부에서는 각국 활동가들이 돌아가며 자신과 자신이 속한 단위를 소개했다. 전환에서는 정재환 집행위원장이 전환의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을 소개하고, 미국이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 전술핵 활용 확대를 고려하고 있다는4 뉴스를 소개하며 동아시아 반전평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불과 11일 전 나가사키 근처 구마모토현에서 강진이 발생했고 여전히 여진이 이어지고 있어, 규슈 지역 교통이 원활하지 않은 관계로 주최측에서는 참여자 부족을 걱정했지만 기우였던 듯 150여 명 가까이 되는 참가자들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8/9(일)
나가사키 원폭 투하 당일이다. 오전부터 조선인 원폭 희생자 추모제에 참석했다. 조총련이 주도해 세운 조선인 원폭 희생자 추도비 앞에서 진행되기는 했지만, 재일교포와 남북 원폭 피해자 모두를 아울러 추모하는 행사였다. 7시 30분이라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재일 조선인들은 물론 여러 일본 시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일본 사회민주당의 후쿠시마 미즈호 대표와 라살 이시이 간사장이 참석해 연대발언을 했다. 조선인 원폭 희생자 추도비와 멀지 않은 곳에는 민단과 한국 정부 주도로 세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있었다. 둘 모두 의의가 있는 기념물이지만, 분단이 한반도를 넘어 일본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듯한 모습에 안타까웠다.
이후 매년 8월 9일 열리는 '나가사키 데이' 집회에 참석했다.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이 피폭2세로서 자신의 경험에 대해 발언했는데, 이는 한국인 원폭2세로서는 처음이라고 한다. 이정아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DMZ 여성평화걷기, 동북아 여성평화회의 등을 예시로 들며 한일 양국 여성운동의 평화 지향성을 강조하고 국제연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 외에도 특기할 만한 참가자로는 주일쿠바대사 히셀라 가르시아의 발언이 있었다. 쿠바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비동맹운동 차원에서 반핵운동에 대단히 적극적인데, 2000년에는 피델 카스트로가 일본 방문 당시 히로시마 방문을 자청하기도 했다.
집회가 끝나고 나가사키 거리에서 일본의 핵무기금지조약(TPNW) 가입을 요구하는 길거리 선전전을 진행했다. 생각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는데, 반전반핵에 대한 나가사키 시민들의 공감대가 적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선전전 이후 나가사키 인권평화자료관을 방문했다. 개인 활동가가 작게 운영하는 곳으로,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와 중국 전쟁범죄를 포함한 어두운 과거사를 비판적으로 기억하기 위해 만든 곳이었다. 대부분 한국인이라면 교과서에서 봐서 충분히 익숙할 만한 내용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역사를 기억하려는 이들이 일본에도 있다는 점에서 울림은 적지 않았다.


전체 일정의 마지막으로는 해외 참가단 작별 파티가 있었다. 함께 음식과 술을 나누며, 바빴던 대회 중간에는 서로 나눠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하며 서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대회 내내 핵심 실무를 맡아 주었던 시마다 유희가 필자와 동갑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파티는 대회 내내 '아침이슬'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민중가요를 부르며 흥을 돋우던 오오쿠마 아키라가 반주를 맡고, 금속노조 소속 참가자들이 인터내셔널가를 한국어로 선창하며 마무리되었다. 길었던 8일 간의 여정은 이렇게 뜨겁고 감동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마치며
2026 원수폭 세계대회를 마치고 든 생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한국과 일본의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은 더 많이 만나야 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던 8박 9일 내내 느꼈던 것은, 일본의 활동가들이 한국의 현실에 대단히 관심이 많고, 이를 자국 내 현실에 비추어 보고 적용하려는 노력에 있어서도 매우 적극적이라는 사실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 시민사회 내 일본 현실과 운동에 대한 관심은 비교적 제한적인 것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만나야 할 이유도, 배워야 할 것들도 많다. 글로벌 권위주의와 전쟁위기가 교차되는 현 정세에서 양국 사회운동은 고민과 실천 모두에서 맞닿는 지점이 적지 않다. 수십 년간 전통과 계보를 갖추고 이어져 온 일본 사회운동의 지속성과, 서로 다른 의제와 노선이 교차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한국 사회운동의 역동성이 조화되면 대단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일회성 만남이 아니라, 공통의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보다 지속적·장기적인 만남을 이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한국 시민사회의 반전·반핵운동에 대한 고민이 보다 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분단모순이 야기한 핵 문제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맞서 왔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의식은 '한반도 비핵화'와 같이, 보다 국제적인 시각을 갖추기보다는 한반도 내에서만 멈추는 경우가 많았다. 비핵지대나 핵무기금지조약과 같이 보다 포괄적인 방식의 반핵 접근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핵무기금지조약 등에 대한 고려를 바탕으로 일본과 아세안, 더 나아가 전 세계의 반핵운동과 보다 깊게 만날 수 있어야 한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와 그 휴유증을 다룬 나카자와 케이지의 명작 만화 《맨발의 겐》에서, 주인공 나카오카 겐은 반전평화 성향을 가졌던 아버지 나카오카 다이키치의 "추운 겨울에 파란 싹을 틔우고, 밟혀도 밟혀도 강하게 똑바로 자라서 열매를 맺는 보리가 되어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으며 살아간다. 돌이켜 보면 꾸준히 평화의 목소리를 내고 사회 속에 뿌리내려 온 일본의 반핵운동, 더 나아가 이들과 공감하고 연대하는 한국과 세계의 모든 운동은 나카오카 다이키치가 말한 '보리'와 닮아 있었다. 군비경쟁과 국수주의가 치닿는 엄혹한 시대 속, 반전과 평화를 말하는 모든 운동이 꿋꿋히 연대하고 발전해 보리와 같은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김원
동국대학교 맑스철학연구회 전 회장, 전환 국제연대팀장.
동국대학교와 고양시, 대학원생노조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넓고 멀리 보는 이론과 구체적인 공간에서의 실천을 겸비한 운동을 지향한다.
각주
- 한국일보, "일본서 정치·사회 이야기는 금기? 이곳에선 맘껏 말하세요"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3052914180001862 [본문으로]
- 플랫폼씨, 오키나와 해상 참사가 일본 사회운동에 던진 질문과 성찰 https://platformc.kr/2026/06/reflection-from-okinawa-yacht-accident [본문으로]
- 연합뉴스, 한국 찾은 인도 LG화학 가스누출 피해자들…배상·지원 촉구 https://www.yna.co.kr/view/AKR20250922121400004 [본문으로]
- 연합뉴스, 美국방차관 "지역전서 전술핵 동원 확전 우려…합리적 핵옵션 필요" https://www.yna.co.kr/view/AKR2026080800850007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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