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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모서재

'상카라: 검은 대륙 혁명의 목소리' - 2026년 국제주의 좌파가 갈 길을 묻다

by Domoleft 2026. 7. 2.

[도모서재] '상카라: 검은 대륙 혁명의 목소리' - 2026년 국제주의 좌파가 갈 길을 묻다

부르키나파소의 비운의 혁명가 토마 상카라, 그에 대해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첫 번째 한국어 서적 상카라: 검은 대륙 혁명의 목소리》가 지난 2025년 연말 발간되었다. 상카라의 주요 발언과 연설, 인터뷰를 엮어 놓은 책은 40년 전의 혁명가 토마 상카라의 입을 빌려 2026년 다른 세상을 꿈꾸는 모든 이들이 가야 할 방향성을 역설한다.


 

저는 잘못된 사람들의 오만이 멈추도록 하기 위해서,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아이들의 슬픈 모습이 자취를 감추도록 하기 위해서,

무지가 사라지도록 하기 위해서, 민중의 정당한 봉기가 승리하도록 하기 위해서,

무기 소리가 잠잠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마침내 인류의 생존을 위해 싸우면서

하나의 뜻으로 뭉쳐 위대한 시인 노발리스와 더불어 노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분 각자가 함께 노력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 토마 상카라(Thomas Sankara), 1984년 유엔 총회 연설에서


"유럽 천지가 복잡하고 기괴하다" 1939년 최대 숙적이던 나치 독일과 스탈린주의 소련이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는 걸 보고 당시 일본 총리 히라누마 기이치로가 남긴 말이다. 꼭 유럽에 한정짓지 않더라도,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백척간두의 상황에 놓여 있던 당대 국제사회의 현실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명언이라 할 만하다.

 

당시만큼은 아니겠지만, '복잡하고 기괴'하기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2026년의 국제질서도 못지않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명분 없는 침공으로 시작한 이란 전쟁은 종전을 시사하면서도 여전히 크고 작은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1월에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납치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있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집단학살 역시 규모가 줄었을지언정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여기에 중국-러시아-북한 등이 주도하는 자칭 '다극화 진영'이 동맹관계를 강화하며, 국제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로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수준의 혼란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다.

 

이쯤 되면 대단한 평화주의자나 반제국주의자가 아니라고 해도 탄식과 함께 물을 수밖에 없다. 정말 이것이 최선인가? 전쟁과 학살,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패권과 이윤의 논리가 아닌 다른 논리에 기반한 국제질서는 불가능한가? 과거 20세기 '구냉전' 시절에도 이와 같은 물음을 던진 이들이 있었다. 미국의 베트남 침공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같은 초강대국의 제국주의 전쟁을 비판한 양 진영 내 반전운동가들이, 또는 '비동맹', '제3세계'라는 이름으로 뭉친 신흥 비서구 독립국의 해방적 민족주의 세력들이 그러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서구의 압제에 수백 년 간 신음하다가 처음으로 국제질서의 주체로 우뚝 섰다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오늘 소개할 책 《상카라: 검은 대륙 혁명의 목소리》의 주인공, 부르니카파소의 혁명가 토마 상카라가 바로 그 대표적 사례다.


'제국의 놀이터' 아프리카에서 혁명을 꿈꾸다

3세계 운동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토마 상카라라는 낯선 이름에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 중에서도, 스위스의 진보적 사회학자이자 외교관인 장 지글러가 쓴 책인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어 보거나 들어 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고등학생 필독서로 널리 읽힐 정도로 잘 알려진 이 책에서, 지글러는 이윤과 국익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며 평범한 일반 민중, 특히 제3세계 민중들 삶의 개선에는 무관심한 현재의 국제질서를 매섭게 비판한다. 지글러는 책에서 상카라를 당대 제3세계 대부분이 경험하고 있던 신식민주의에 맞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친구들과 더불어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고자 노력했던 남자"[각주:1]로 설명하며, 당시 자신이 상카라 혁명정부의 정책자문을 맡았던 일화를 소개한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와 장 지글러. 출처: 교보문고 / 위키피디아

 

상카라가 혁명으로 정권을 잡았던 1983년 당시의 부르키나파소는, 독립 이후에도 여전히 식민모국인 프랑스와의 착취적 관계에 놓여(이름도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행정구역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오트볼타'였다) 만성적 빈곤과 부패에 시달리던 전형적인 아프리카 최빈국이었다. 상카라 혁명정부는 이를 바로잡기 위한 대대적인 계획에 착수했다. 국가 이름을 '정직한 사람들의 나라'를 뜻하는 '부르키나파소(Burkina Faso)'로 바꾼 건 그 시작이었다. 토지개혁과 지방자치제, 노동자 자주관리제를 실시하고, 교사 등 필수 공무원 인력과 학교, 보건소, 철도, 저수지, 상하수도와 같은 기초 사회인프라를 대폭 확충했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200만 명의 어린이들을 예방접종시키고 에이즈 대책을 마련하는 등 실효성 있는 보건의료정책 마련에 몰두했으며, 매춘과 강제결혼, 일부다처제, 여성할레를 금지하고 여성의 교육과 일자리에 투자하는 등 진보적 성평등 정책에도 힘썼다. 사막화를 막기 위한 나무 심기 녹화사업도 적극 추진했다.

 

위와 같은 상카라 혁명정부의 노력은 실제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경제성장률, 국내총생산, 고용률 등 거의 모든 경제지표에서 뚜렷한 성장세가 돋보였다. 빈곤률과 영유아 사망률이 낮아지고 식량생산률과 1인당 평균 열량 섭취량이 증가하는 등 사회지표 차원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무엇보다도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식민 모국의 원조를 거부한 상황에서 얻어낸 성취라는 사실이 돋보였다. 부르키나파소가 신식민주의의 굴레를 끊어 내고 자주적 발전을 이룩한 성공적인 사례로 남을 것인지, 세계가 부르키나파소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지글러는 위와 같은 개혁조치들이 "어떤 나라가 자급자족을 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어도 사회정의가 이룩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각주:2]는 것을 깨달은 상카라 혁명정부의 결과물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같은 이유 때문에, 상카라의 혁명 모델을 경계하는 시선 역시 곳곳에서 생겨났다. 특히 부르키나파소를 포함해 아프리카 곳곳에 영향력을 여전히 행사하던 프랑스와 제1세계의 후견자인 미국이 그러했다. 프랑스는 상카라가 옛 아프리카 식민지들에 대한 프랑스의 영향력 유지를 전면 거부하는 것을 불편히 여겼고, 미국 역시 서구 제국주의를 비판하며 쿠바와 베트남 등 비동맹 사회주의 세력과 관계를 강화하고, 남아공과 팔레스타인의 해방 투쟁을 지지하는 상카라를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게 된다.

 

그가 아프리카를 포함한 제3세계의 단결을 주장하며, 자신의 혁명을 국경 밖으로 확장시키려는 모습을 보이자, 이들은 더는 참지 않았다. 그렇게 제국주의 세력의 강한 견제를 받던 상카라 혁명정부는, 1987년 상카라의 옛 동료 블레즈 콩파오레가 이끄는, 프랑스와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강하게 의심되는 쿠데타 세력에 의해 실각하고 상카라 본인도 붙잡혀 처형된다. 그렇게 상카라의 찬란했던 4년간의 부르키나파소 혁명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부르니카파소는 빈곤과 실업, 부패에 시달리는 전형적인 실패국가로 빠르게 후퇴하고야 만다.


혁명가의 육성으로 듣는 해방과 국제주의의 비전

작년 말 출간된 '상카라: 검은 대륙 혁명의 목소리'는 토마 상카라의 대통령 임기 기간인 1983년부터 1987년까지 상카라 본인의 연설과 기고문, 인터뷰의 주요 발언들을 묶은 선집이다. 이를 통해 독자는 단순히 역사책에 박제된 빛바랜 사진 속 혁명가로서가 아니라, 당대의 시대적 모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 온 입체적인 정치적 개인으로서 상카라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 수 있다.

출처: 예스24

 

책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회변혁에 대한 강한 의지, 그리고 변혁적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혁명가'로서 자신과 혁명정부 인사들에 대해 가지는 강한 자의식과 책임감이다. 1983년 혁명 이후 정치방침 연설에서의 "우리가 볼 때 혁명가는 겸손할 줄 아는 동시에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가장 단호하게 수행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랑하지 않으며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임무를 완수합니다" "국가혁명평의회가 모든 사람의 의식에 각인시키고자 하는 혁명가의 이미지는 대중과 하나가 되고, 대중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대중을 존중하는 활동가의 이미지입니다. ...(중략) 그는 자신을 대중이 순종하고 복종해야 할 스승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중으로부터 배우고, 그들의 말에 기울이며, 그들의 의견을 주의 깊게 경청합니다"[각주:3]와 같은 문장들은 상카라가 혁명가에게 기대한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앞서 살펴보았던 대로 혁명에서 사회 정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 역시 눈에 띈다. 예컨대 1987년 세계여성의날 대회에서의 "여성의 상황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실제로 겪고 있는 현실은 단지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보완하면서 함께 싸워야 하는 사회 집단과 계급 간의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남녀 간의 전쟁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전우 여러분, 여성 해방 투쟁은 무엇보다도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혁명을 심화하기 위한 투쟁이며, 이 혁명은 이제부터 여러분에게 정의와 평등이 공존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데 발언권과 행동권을 부여하는 혁명이라는 것입니다"라는 말은 여성해방의 중요성을 당대의 어느 진보적 정치인들보다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

 

특히 "솔직히 말해서 이러한 혼란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남성들의 태도입니다" "싸워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여성은 억압받는 계층과 계급, 즉 노동자, 농민, 기타 계층과 스스로를 동일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억압을 받더라도 남성은 억압할 다른 인간이 있습니다: 바로 그의 아내입니다"[각주:4]와 같이 해당 문제에 있어 남성들의 전향적인 태도를 요구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이는 상카라의 후예를 자처하는 현 부르키나파소의 대통령 이브라힘 트라오레가 사회문화적 이슈에서 반동적인 면모를 보이는 모습[각주:5]과 비교할 때 더욱 돋보인다.

토마 상카라. 출처: AFP

 

1986년 파리에서 열린 제 1차 나무와 숲 보호를 위한 국제 실바 회의에서의 연설도 인상 깊다. 해당 연설에서 상카라는 부르키나파소의 녹화사업에 대해 소개하며 "우리는 진보를 반대하지 않지만, 무정부적이고 범죄적으로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는 진보는 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막의 침범에 맞서 싸우는 것은 인간과 자연, 사회 사이의 균형을 확립하기 위한 싸움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각주:6]라고 말한다. 오늘날에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가리지 않고 '진보'의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각종 환경파괴성 토건사업의 논리에 비추어 보자면 이는 '그린뉴딜'이나 '탈성장'에 빗댈 만한 대단히 급진적인 태도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강력한 반제국주의적 신념이다. 취임 직후 연설에서 그가 남긴 유명한 문장인 "제국주의는 잘못된 것입니다. 제국주의는 정말 멍청한 학생입니다. 제국주의는 패배하여 교실 밖으로도 쫓겨나고도 다시 교실로 돌아옵니다"[각주:7]는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카메룬의 저명한 탈식민주의 작가 몽고 베티와의 인터뷰에서 남긴 "저는 프랑스 통화 시스템에 묶여 있는 CFA 프랑이 프랑스 지배의 무기라고 말합니다. 프랑스 경제와 결과적으로 프랑스 상업 자본가들은 이 연결고리, 이 통화 독점을 기반으로 우리 국민의 등 위에 재산을 축적합니다"[각주:8]라는 말은 프랑스 신식민주의 체제에 대한 그의 강한 경계심을 드러낸다.

 

또한 그는 부채 거부·탕감운동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제25차 아프리카단결기구(OAU) 회의에서 남긴 "현재의 부채 형태는 우리의 성장과 발전이 우리에게 전혀 낯선 단계와 규범에 따라 규제되는 아프리카의 재정복이라는 교묘한 계획입니다"라는 말은, 그가 해당 운동을 반제국주의·반식민주의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수단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OAU 회의에서 연설 중인 토마 상카라

 

상카라는 옛 사회의 토대를 제공한 서구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지 않고서는 자신의 사회변혁을 완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이에 아프리카와 제3세계 민중이 함께 신식민주의 부채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념적 토대로 범아프리카주의와 국제주의를 적극 호소했다. 이처럼 상카라에게 혁명은 부르니카파소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자본주의-제국주의 체제에서 모든 억압받는 이들의 경험은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모두가 해방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해방되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미국의 흑인들과 같이 제국의 중심부에서 억압받는 이들의 경험이 자신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 역시 잘 이해했는데, 1984년 뉴욕시 할렘의 아프리카 미술 전시회 개막식 연설에서 남긴 "왜 우리가 할렘에서 전시를 시작하기로 했는지 여러분은 궁금하실 겁니다. 우리가 아프리카, 주로 부르키나파소에서 벌이고 있는 싸움과 여러분이 할렘에서 벌이고 있는 싸움이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프리카에 있는 우리 형제가 할렘에 있는 형제에게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여 그들의 싸움도 알려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각주:9]라는 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상카라의 1984년 유엔 총회 연설은 가히 국제주의적 신념의 집약이라 할 만하다. 해당 연설에서 그는 자신의 연설 목표가 "제3세계라는 이름을 갖게 된 '세상에서 상속권을 박탈당한 위대한 사람들'을 대신하여 말하는 것" "우리가 봉기를 일으킨 이유를 이야기하는 것"[각주:10]이라 말하며, 구 피식민 국가들의 주민을 포함한 전세계의 모든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할 것을 약속한다. 이외에도 그는 당대 한참 진행중이던 이란-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히고, 당시 한참 반식민 해방투쟁이 진행 중이던 아일랜드, 그레나다, 동티모르, 서사하라 민중들과의 연대 역시 잊지 않는다.

1984년 유엔 총회에서 연설 중인 토마 상카라

 

특히 남아공의 반아파르트헤이트 투쟁과 이스라엘에 맞선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의 경우, "우리 대표단이 이스라엘의 회원권 정지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완전한 제명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모든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 된 것입니다"라며 특별히 시간을 할애해 강조한다. 그 중에서도 팔레스타인에 경우 "우리는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 이 연단에서 팔레스타인의 위대한 사람들, 여성과 남성 전투원들에 대한 우리의 투쟁적이고 적극적인 연대를 밝히는 바입니다"[각주:11]라며 애정어린 연대의 인사를 보내는 모습은 여전히 국제 무대에서 무시받거나 시혜적 '인정'의 대상으로만 받아들여지는 오늘날 팔레스타인 문제의 현실에 비추어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 연설에 "우리는 모든 외국의 개입을 규탄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외국의 군사개입에 침묵할 수 없습니다"[각주:12]라는 말로 비록 짧지만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비판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부르키나파소를 포함한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 공식적인 '비동맹' 노선과는 별개로 현실적으로 소련 등 공산권 국가들에 대한 의존도가 컸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현실정치적 이해관계에도 불구하고 우방국의 패권주의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는 점은 그의 국제주의적 신념의 진정성을 입증한다.


제2, 제3의 토마 상카라를!

토마 상카라는 혁명이 국경 안에서 멈춰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가부장제에 억압받는 모든 이들을 형제자매로 보았으며, 지정학적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동맹세력 내에서 진행된 침공과 학살에 눈을 돌리지도 않았다. 진영논리와 점증하는 군국주의의 시대 속, 명확한 잣대와 국제주의적 원칙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세계를 상대로 투쟁을 이어갔던 혁명가 상카라의 정치철학이 우리에게 더욱 현재적으로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물론 상카라라고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임기에는 '반혁명 세력'을 포함한 정적과 반대파에 대한 초법적 구금과 처형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등 일정한 권위주의적 한계가 존재했고, 이 때문에 국제엠네스티를 비롯한 인권단체들의 비판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내린 모든 결정을 정답으로 이해하고 이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게 아니라, 이를 동시대적 모순에 대한 올바른 질문들로 이해하고 이를 우리 시대에 맞게 적용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상카라: 검은 대륙 혁명의 목소리'는 단지 생소한 아프리카의 역사적 인물에 대해 알려 주는 교양의 역할뿐 아니라, 1984년 토마 상카라의 입을 빌어 2026년 오늘날의 세계에 대해 우리에게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를 주는 책이다.


 

상카라: 검은 대륙 혁명의 목소리

 

토마 상카라 저

김하범 옮김, 진지, 2025

 

 

'도모서재'는 다양한 독자들이 추천하는 수많은 책 속에서 때로는 세상을 꿰뚫는 날카로움을, 때로는 마음을 울리는 연대의 따스함을 찾고자 하는 웹진 도모의 도서 리뷰 코너입니다.

'도모서재'에 서평을 기고하고자 하시는 분께서는 이도영 편집장(ldy0510@naver.com)에게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김원

동국대학교 맑스철학연구회 전 회장, 전환 국제연대팀장.

동국대학교와 고양시, 대학원생노조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넓고 멀리 보는 이론과 구체적인 공간에서의 실천을 겸비한 운동을 지향한다.


각주

  1. 장 지글러, 유영미 옮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2013, 136p [본문으로]
  2. 장 지글러, 위의 책, 144p [본문으로]
  3. 토마 상카라, 김하범 옮김, 상카라: 검은 대륙 혁명의 목소리, 진지, 2025, 102~103p [본문으로]
  4. 토마 상카라, 위의 책, 400~413p [본문으로]
  5. 도모, 이브라힘 트라오레, 아프리카 주권주의와 반인권의 딜레마 https://www.domoleft.net/entry/%EC%9D%B4%EB%B8%8C%EB%9D%BC%ED%9E%98-%ED%8A%B8%EB%9D%BC%EC%98%A4%EB%A0%88-%EC%95%84%ED%94%84%EB%A6%AC%EC%B9%B4-%EC%A3%BC%EA%B6%8C%EC%A3%BC%EC%9D%98%EC%99%80-%EB%B0%98%EC%9D%B8%EA%B6%8C%EC%9D%98-%EB%94%9C%EB%A0%88%EB%A7%88 [본문으로]
  6. 토마 상카라, 위의 책, 295p [본문으로]
  7. 토마 상카라, 위의 책, 256p [본문으로]
  8. 토마 상카라, 위의 책, 281p [본문으로]
  9. 토마 상카라, 위의 책, 151~152p [본문으로]
  10. 토마 상카라, 위의 책, 165p [본문으로]
  11. 토마 상카라, 위의 책, 180~185p [본문으로]
  12. 토마 상카라, 위의 책, 182p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