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모서재] <길드 사회주의>: 자본주의의 유지와 사회민주주의의 재소환을 넘어서
공고화된 신자유주의의 지배 속 대안사회에 대한 상상력은 점점 더 메말라 간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걸어갈 수 있는 길은 정말 자본주의의 유지 및 존속, 혹은 철 지난 사회민주주의의 재소환 중 하나뿐일까? 진부한 두 가지 해결책을 넘어 대안적 사회상을 제시하는 '오래된 미래', G.D.H. 콜의 <길드 사회주의> 서평을 '도모서재'에 게재한다.
"자본주의 아닌 사회는 가능할까?" "자본주의 아닌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까?"
대안 없음을 이유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존속 및 개량을 주장하는 이들과,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지난 세기의 사회민주주의를 다시 소환하는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고뇌하던 필자에게 다시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킨 책을 얼마 전 접했다. 바로 조지 더글라스 하워드(G.D.H) 콜의 <길드 사회주의>이다.
자본주의의 병폐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자본주의 초창기부터 자본주의의 비인간성과 비민주성은 많은 지탄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앞다퉈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 체제를 제시했다. 그리고 많은 대안사상들은 자본주의-자유주의의 인간 분절화 경향에 맞설 대안으로 '사회'와 '공동체'를 강조했고, 이러한 사상적 조류가 바로 '사회주의', '공산주의'이다.
20세기의 갖가지 사회주의-공산주의 조류 중 가장 큰 현실 세력을 구축한 건 마르크스-레닌주의였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여타 대안사상을 '비과학적'이라 지적하며, 사적유물론에 근거해 기존 국가권력을 노동자 계급이 장악·관리하는 이행기를 거쳐 공산사회로 진행하는 '과학적 방법론'을 제시했다. 소비에트 연방을 건설한 이들은 20세기 미국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체제로까지 성장했지만 이와 함께 현실사회주의의 다양한 문제점을 마주했고, 결국 1990년 냉전의 종전과 함께 붕괴했다.
같은 시기 소련과 그 우방국들의 등을 맞대고 있던 서유럽에는 사회민주주의가 있었다.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폭력적 방법론을 폐기, 합법정당을 통한 집권으로 자본주의의 병폐를 교정하고자 했다. 총노동과 총자본-국가권력 간 대타협의 산물로 만들어진 20세기 중반 서유럽 사회민주주의는 각국 노동당, 사회민주당, 사회당 등의 집권 과정에서 재정 분배와 국가주도형 산업정책에 기반한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내며 세계대전 이후 한 세대 동안 황금기를 구가했지만, 점차 떨어지는 경제성장률 속 1970년대부터 사회의 주도권을 신자유주의에 넘기며 오랜 침체기로 빠져든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굉장히 다른 양태로 존재했지만, 둘 모두 '전능한 국가', 기존 '부르주아' 정치체제, 자본주의 경제구조를 존재론적으로 부정하지 않았다. 전자는 그 체제와 구조를 노동자 계급이 통제하며 공산사회를 이룩하고자 했다. 후자는 폭력혁명노선을 폐기하며 사실상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용인했고, (사회민주당이 집권한) 국가권력의 자본 견제와 재정정책을 통한 부의 분배로 자본주의의 병폐를 사후 교정하는 방법론을 택했다. 그 결과 어느 순간부터 소련에서는 전체 산업의 생산 과정과 생산물을 연방 중앙이 통제했고, 서유럽은 민영화·영리화를 주장하는 측과 국유화·공유화를 주장하는 측이 지난한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G.D.H. 콜의 <길드 사회주의>(원제 Guild Socialism Re-stated)는 1920년 나온 책이다. 경제학자이자 사회주의 사상가·운동가였던 저자는 영국 '길드 사회주의 운동'의 주역 중 하나로, 노동당원이기도 했다. 책은 1920년에 나왔지만, 저자는 이미 20세기 중반과 후반 나타날 (서구 사회민주주의와 동구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괄하는) 국가사회주의의 한계와 몰락을 예견한 듯 보이기도 한다. 책은 내내 국가 중심 사회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며 진정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길드 사회주의'를 제안한다.
필자가 이해한 길드 사회주의의 방법론적 핵심은 자치와 분권, 조정과 협상이다. 자치와 분권의 단위는 생산자 측면, 소비자 측면, 공공재적 측면 등에 따라 다르게 짜여지지만, 결국 내용에 있어서는 모두 그 과정에 참여하는 당사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생산자 측면의 자치와 분권은 산업이 이뤄지는 최소 단위인 개별사업장을 기본 구획으로 해, 전체 산업을 최대 단위로 구성된다. 각 단위는 각자의 단위를 대표할 대표자를 선출한다. 저자는 '소환'이 제대로 이뤄지는 한, 최소 단위 대표자 선출을 제외한 대표자 선출은 간선제가 낫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현실의 직선제가 일종의 '동의 의식'에 치우쳐 실질적인 민주주의 실현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회는 각 단위(생산단위 - 길드, 소비단위 - 협동조합, 공익단위 - 공익 길드 등등) 간 협상을 통해 운영된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코뮌'이 조정하며 사회를 유지한다. 이러한 길드 사회주의는 기능론적 상상력에 입각해 있다. 기존 자본주의와 '전능한 국가'를 존재론적으로 인정하는 사회민주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모두 갈등론적 사회상을 기본 바탕으로 한다. 필자는 이 점을 길드 사회주의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중세 공인(工人)들의 연맹이었던 길드를 소환한 것부터 그러하다. 콜의 '길드 사회주의'는 중세 길드의 공동체적 동기를 다시 현대 사회에 불러일으키고, 기능론적 가치에 바탕해 사회를 유지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다만 이러한 ‘길드적 공동체’의 기능론적 작용이 한층 거대해지고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여러 분야와 단계를 구분짓는 길드 사회주의의 단위 체계는 의사 결정 및 이를 집행하는 과정을 복잡하게 만들어, 아무리 보완책을 둔다 하더라도 또 다른 관료 집단을 양성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위험성 또한 내재되어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저자의 상상력에 공감한다면, 어쩌면 책에서 '동의 의식'이라고 비판받는 직선제의 '의식적 요소'가 이러한 우려의 현실화를 방지하는 중요한 힘이 될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우리는 집단의 힘으로 계엄과 내란이라는 거대한 반동의 흐름을 막아냈다. 그러나 그 집단의 힘은 동시에 87년 체제라는 보수적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힘으로도 작용한다. 윤석열 파면 이후 치러진 제21대 대선은 이를 증명했다. '보수정당' 민주당의 이재명 대통령은 분명 '응원봉을 든 광장 시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한편, 거꾸로 '태극기를 든 광장 시민'은 '내란정당' 국민의힘의 김문수를 압도적으로 지지했을 것이다. 광장의 '사회대개혁' 의제를 그대로 말했던 권영국 후보의 1% 미만 득표와 초유의 비상계엄 직후에 치러진 대선임에도 보수 유권자층의 흡수에 성공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41% 득표는 이를 입증한다.
시장의 조정 기능에 과하게 의존하는 현재의 경제체제는 그 자체로 수많은 갈등을 양산함과 동시에 체제 유지를 위해 그 갈등을 은폐하거나 억압하는 정치 체제를 구축한다. 문제는 그 갈등이 생존을 위한 인간들의 몸부림이란 사실이고, 각 집회의 내용, 위상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광장에 나온 응원봉과 태극기의 물결은 어쩌면 모두 그 나름대로의 생존 투쟁이었다. 이러한 '광장 정치'는 어쩌면 지금의 우리 사회가 구성원 모두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자기조정기능을 점점 잃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일 수도 있다.
조금은 다른 사회를 상상해 보자.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기능에 따라 자치와 조정에 참여하는 사회는 불필요한 생산과 소비를 최소화할 것이며, 갈등 역시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하는 쪽으로 유도될 확률이 높다. 이 사회는 사회 안팎의 특정인, 특정 집단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며 그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꿈꾸는 이들이라면, 민중을 광장으로 동원하는 기득권 정치 체제의 '동의 의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를 바꿀 방법을 가져야 한다. '길드 사회주의'라는 아이디어는 이를 위한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라 믿는다. 각자의 일터와 삶터를 '사회적'으로 조직하고, 개인들과 각각의 공동체를 이 사회를 지탱하는 '기능적' 측면에서 사고하는 실천이야말로, 각자의 대중들에 대한 동원의식만이 남은 반쪽짜리 대통령 직선제 민주공화국의 기능 회복에 기여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 감히 기대해 본다.
도시철도를 타게 해달라는 장애인 '시민'에게 통근자들의 '시민권'을 이유로 탑승을 불허하는 폭력의 시대 속,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유지가 아니면 지난 세기 사회민주주의의 재구성 그 양쪽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대안 담론. 역자인 장석준 선생의 표현을 빌려 답답한 시기 '뒤늦게 도착한' 고전에 다시 희망과 책임감을 가진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꼭 <길드 사회주의>를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
길드 사회주의
G.D.H. 콜 저
장석준 옮김, 책세상, 2022
'도모서재'는 다양한 독자들이 추천하는 수많은 책 속에서 때로는 세상을 꿰뚫는 날카로움을, 때로는 마음을 울리는 연대의 따스함을 찾고자 하는 웹진 <도모>의 도서 리뷰 코너입니다.
'도모서재'에 서평을 기고하고자 하시는 분께서는 이도영 편집장(ldy0510@naver.com)에게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김경일
서울 동대문구 주민이자 민주노조 조합원. 책임지는 정치와 운동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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