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브라힘 트라오레, 아프리카 주권주의와 반인권의 딜레마
군부 쿠데타로 집권하여 혁명가 토마 상카라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공식 석상에서 양복이 아닌 군복을 착용하는 아프리카의 젊은 지도자. 올해 37세인 동아프리카 국가 부르키나파소의 임시 대통령 이브라힘 트라오레에 대한 소개다. 서구 제국주의의 착취에 맞서는 반제국주의의 영웅이면서 동시에 소수자에 대한 인권 탄압을 일삼는 권위주의 지도자라는 양면적 평가를 받는 트라오레와 아프리카 주권주의의 현주소,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요동치는 아프리카 대륙, 경제성장과 이면의 그림자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윤석열은 안동대학교 대학생들을 만난 자리에서 "손발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인종주의적이고 차별적인 윤석열의 망언에는 비단 육체노동에 대한 혐오만이 아니라 아프리카라는 거대한 지역에 대한 깊은 무지와 무관심이 깔려 있었다. 꼭 윤석열을 예시로 들지 않더라도 1'진보'를 자처하든, 보수 성향을 숨기지 않든, 아프리카의 변화와 현주소에 대해 한국의 모든 정치세력은 여전히 큰 관심이 없다. 그러나 오늘날 아프리카는 엄청난 경제성장과 정치·사회적 격변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경제성장률이 모든 것을 드러낼 수는 없지만, 아프리카가 가진 잠재력과 역동성만은 아래 표의 성장률 예측치를 통해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역 | 2025년 성장률 전망(%) |
동아프리카 | 5.9 |
서아프리카 | 4.3 |
북아프리카 | 3.6 |
중앙아프리카 | 3.2 |
남아프리카 | 2.2 |
2025년 아프리카의 지역별 성장률 예측치. 출처: 아프리카 개발 은행(AfDB)
남아공의 장기침체로 성장세가 둔화된 남아프리카를 제외하면 아프리카 전역이 전반적으로 세계 평균치(2025년 예상 3.2%)를 웃도는 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 지역의 성장률이 가파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르완다, 에티오피아는 지속적 고도성장을 이어 오고 있으며 최근 세네갈, 니제르 등은 7~9%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광물 등 자원수출뿐 아니라 인프라 구성, 제조업 투자, 에너지 공급망 등 여러 분야에서 성장하고 있는 것이 주목할 만한 점이다. 2
한편 2011년 남유럽 재정 위기 당시 앙골라는 구 식민지배국이었던 포르투갈 정부에게 100억 달러 규모의 대출을 제공한 바 있는데, 이는 아프리카의 고도성장과 유럽의 저성장 구도 속에서 구 식민지배국과 피식민국의 관계 역전이 가능하다는 사례를 남겼다. 아프리카 개발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기준으로 21개국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5%를 초과하는 성장률을 달성할 것으로 예측된다. 에티오피아, 니제르, 르완다, 세네갈의 4개국은 신흥국 기준 빈곤 감소와 포용적 성장에 필요한 임계값에 해당하는 7% 성장률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
당연하게도 모든 자본주의적 고도성장의 이면에는 그림자가 있다. 빠른 속도로 빈부격차가 늘어나고 외자유치 과정에서 민중의 목소리가 배제되며 정치·경제적 불만과 갈등이 형성된다. 사하라 이남 국가들의 빈곤율은 2022년 기준으로 45.5%이며, 상위 10%의 소득이 총 소득의 56%를 차지하고 있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상위 계층에 쏠리고 있다는 증거다. 이러한 불평등은 아프리카의 자원과 노동력을 노리고 들어오는 외국 자본과 내부 지배층의 결탁에 기인한다. 이는 부패, 조세회피, 자원 착취와 같은 형태로 나타나며, 고도성장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의 경제적 종속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2017년 알 자지라의 기사 <Africa is not poor, we are stealing its wealth(아프리카는 빈곤하지 않다, 우리가 그 부를 훔치고 있다)>는 이러한 수탈의 구조를 파헤친다. 3
"일련의 새로운 수치를 기반으로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가 410억 달러 이상의 순 채권자임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대출, 송금(아프리카 밖에서 일하다가 본국으로 돈을 보내는 사람들), 원조의 형태로 연간 약 1,610억 달러의 돈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2,030억 달러가 대륙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 중 일부는 주로 회피된 세금으로 680억 달러와 같이 직접적입니다. 본질적으로 다국적 기업은 조세 피난처에서 실제로 부를 창출하는 척함으로써 합법적으로 이 중 많은 부분을 "훔칩니다". 이러한 소위 "불법 자금 흐름"은 아프리카 대륙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약 6.1%에 달하며, 이는 아프리카가 원조로 받는 금액의 3배에 달합니다.
사실, 이 평가조차도 아프리카로 유입되는 모든 부가 그 대륙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관대합니다. 그러나 정부와 민간 부문에 대한 대출(500억 달러 이상)은 갚을 수 없고 불쾌한 부채로 바뀔 수 있습니다. 가나는 정부 수입의 30%를 부채 상환으로 잃고 있으며, 높은 원자재 가격을 기반으로 투기적으로 이루어진 대출을 상환하고 엄청난 이자율을 받고 있습니다. 모잠비크에 있는 특히 불쾌한 알루미늄 제련소 중 하나는 대출과 원조금으로 건설되었으며, 현재 모잠비크 정부가 받은 1파운드당 21파운드의 비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립학교와 보건소를 설립하는 데 사용되는 영국의 원조는 양질의 공공 서비스 창출을 훼손할 수 있으며, 이것이 우간다와 케냐에서 그러한 사립학교가 폐쇄되는 이유입니다. 물론 일부 아프리카인들은 이 경제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현재 약 165,000명의 매우 부유한 아프리카인이 있으며 총 보유액은 8,600억 달러에 달합니다."
인구 2,400만의 동아프리카 국가 부르키나파소의 경제는 이러한 상황을 특히 압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2021년부터 평균 5% 이상의 꾸준한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빈곤률 역시 개선되고 있지만, 아래의 표에서 드러나듯 여전히 20% 이상의 높은 빈곤률을 보인다. 부르키나파소의 경제는 토마 상카라(Thomas Sankara)의 죽음 이후 줄곧 외국 자본의 영향 하에 작동해 왔다. 구 프랑스 식민지로서 프랑스군이 역내에 주둔해 왔으며, 통화 역시 프랑스가 주도하는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ECOWAS)의 CFA 프랑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다. 부르키나파소의 최대 수출품인 금 광산 개발 역시 대부분 외국 자본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연도 | GDP 성장률 |
2020 | 2% |
2021 | 6.9% |
2022 | 1.8% |
2023 | 3.0% |
2024 | 4.9% |
2025(예상) | 5.3% |
부르키나파소의 연도별 GDP 성장률. 출처: Statista, World Bank
2019 | 2023 | 2024 |
30.7 | 27.7 | 23.2 |
부르키나파소의 연도별 빈곤율 변동 추이. 출처: ISS African Futures, World Bank
당연하게도 이런 상황 속 반서방, 반외세 감정은 국가를 막론하고 아프리카 전역에서 폭넓게 나타난다. 최근 중국 자본의 진출까지 겹치면서 해외 자본의 수탈과 착취에 대한 반발은 더욱 커지고 있으며, 여기에 해외원조기구인 국제개발처(USAID)를 사실상 폐지하는 등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고 무역관계로 전환하고자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은 이러한 반서방 분위기에 기름을 붓고 있다. 4현재 부르키나파소의 임시 대통령을 맡고 있는 이브라힘 트라오레(Ibrahim Traore)는 이러한 아프리카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일지도 모른다.
'제2의 토마 상카라'를 자처하는 이브라힘 트라오레
한국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브라힘 트라오레는 최근 대두되는 '신냉전' 조류와 깊게 맞물리면서 동아프리카 정세의 태풍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물이다. 부르키나파소의 전 대통령이자 아프리카의 위대한 혁명가로 평가받는 토마 상카라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면서 '제2의 상카라'를 자처하는 그는 대통령에 취임한 지금도 여전히 부르키나파소군 대위 계급을 유지하고 있으며 공식 석상에서도 양복이 아닌 군복을 입는다.
트라오레는 누구인가? 부르키나파소의 수도인 와가두구 대학교에서 지질학을 전공한 그는 학교에서 무슬림 학생협회와 마르크스주의 성향 학생단체 '부르키나파소 국가 학생 협회(ANEB)'에서 활동하며 동료들을 변호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2009년 부르키나파소군에 입대하여 여러 해외파병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2022년에는 포병연대 사령관이 되었다. 2022년 1월 폴 앙리 산다오고 다미바가 주도하는 쿠데타를 지지한 그는 동년 9월 본인 주도의 재쿠데타를 통해 전임 다미바를 몰아내고 권력을 잡았다. 2022년 10월 6일 이브라힘 트라오레 '대위'는 임시 대통령에 취임했다. 당시 나이 34세, 세계 최연소 국가원수라는 타이틀과 함께였다.
"부르키나파소 국경 근처에 사는 가나인 리처드 알란두는 "아프리카 국내외 청년들 사이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발전 부족에 대해 뭔가 해야 한다는 의식이 커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트라오레가 바로 그러한 의식의 대표 인물이 된 것 같습니다." " 5
"아프리카 주둔 미군 사령관인 마이클 랭글리 장군은 미국 상원 위원회 청문회에서 트라오레가 부르키나파소의 금 보유고를 이용해 국민을 희생시키면서 군부의 이익을 도모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수요일, 와가두구의 혁명 광장에 수많은 시위대가 모여 "트라오레 대위 만세!"를 외쳤습니다. 일부는 머리에 빨간 마커로 "노예"라는 글자가 쓰인 랭글리 장군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을 들고 있었습니다. 다른 시위대는 부르키나파소와 서아프리카 국가의 긴밀한 동맹국인 러시아 국기를 흔들었습니다." 6
앞서 인용된 두 기사는 아프리카 청년층 사이 트라오레에 대한 폭넓은 지지를 단편적으로나마 확인해 준다. 트라오레의 정책은 과거 부르키나파소의 혁명가 토마 상카라를 연상케 하는 '자원민족주의' 내지 '좌익 민족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금광들을 단계적으로 국유화하여 2개 광산을 국가 소유로 돌렸으며 자체적인 금 제련소를 설립하여 자체 생산을 시도하고 있다. 국유화된 금 산업에서 나오는 재원을 인프라 및 산업자원에 투자하였고, 여러 가지 구조적 한계로 아직은 선언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나 토지개혁을 추진함과 함께 무상교육, 무상주택, 임금 인상 등 친민중적·좌익적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트라오레는 관료와 정치인들의 급여를 삭감하고 의사, 교사 등 하위 공무원들에 대한 급여를 인상함으로써 사회 인프라 구축 인력에 대한 보상을 늘렸다. 서구 자본주의의 실행기구로 평가되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조차 부르키나파소의 교육, 건강, 사회보호에 대한 지출 증가를 "뛰어난 진전"으로 평가한 바 있다. 그는 또한 서방의 제국주의 정책에 반대한다고 천명하며, 국제금융기구의 지원을 거부하고 자립적 경제 구조를 만들겠다 선언했다. 이러한 정책 기조의 일환으로 부르키나파소 정부는 2025년 1윌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ECOWAS)를 탈퇴했으며, CFA 프랑존에서도 근시일 내 탈퇴를 시사하며 말리, 니제르와 '사헬 국가 연합'을 발족해 새로운 공동경제권 형성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 트라오레의 외교적 지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대표되는 '신냉전' 혹은 '다극화'와 맞물려 명확한 친러-반서방 기조로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와의 유착 강화는 트라오레의 핵심적 외교전략이다. 2023년 2월 부르키나파소 국내에 주둔한 프랑스군에게 전원 철수를 통보했으며, 이 자리를 "러시아군이 채울 수 있다" 발언하는 등 러시아와의 군사동맹 역시 강화되고 있다. 트라오레는 집권 이후 매해 러시아의 전승절 행사에 푸틴 대통령과 함께 참석하고 있으며, 러시아로부터 원전 건설 및 군사적 지원 등 다양한 지원을 약속받은 바 있다. 7 8
아프리카 '주권주의 좌파'들의 인권 퇴행적 한계
한편 아프리카 민중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는 경제적 자주화 추진과 반불평등 정책에도 불구하고, 트라오레 정부가 보여 주고 있는 문제점들은 해외 좌파 진영 내에서 부르키나파소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장 큰 논란거리는 집권 이후 완화되기는커녕 더욱 노골화되고 있는 성소수자 탄압이다. 그는 집권 이후 LGBT 전반, 특히 동성애를 '서구의 문화 침략'으로 규정하며 2024년에는 동성애를 법적으로 금지시켰다. 부르키나파소는 60%의 무슬림과 26%의 기독교 신자로 구성된 국가로서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문화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에 대해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한 반인권적 포퓰리즘 정치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게다가 트라오레는 본래 2024년으로 예정되어 있던 총선을 "테러 조직과의 교전으로 인해 정상적인 선거를 치룰 수 없다"며 5년 뒤로 다시 미뤘으며, 올해 7월에는 외세의 개입 차단과 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하여 독립된 선관위를 해체하고 내무부가 직접 선거관리를 하도록 변경했다. 이는 야당들의 반발을 불렀으며 그의 '혁명'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그 외에도 부실한 여성정책, 내부 소수민족에 대한 유혈사태 방치, 장애인과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지원 부족 등 트라오레가 주장하는 '혁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의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는 '제2의 토마 상카라'로 자신을 정체화하고 있지만, 여성해방과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 증진을 혁명의 핵심 과제로 삼았던 토마 상카라 정권과 트라오레 정권의 차이점은 명확하다.
경제적 자주화를 추진하면서도 인권 의제에서 퇴행적 행보를 보이는 트라오레와 같은 사례는 비단 부르키나파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트라오레 정권과 같이 범아프리카주의와 반제국주의, 좌익 민족주의 성향을 띠는 세네갈의 바시루 디오마예 파예(Bassirou Diomaye Faye) 정권도 이와 비슷한 모순을 겪고 있다. 파예가 속한 PASTEF(아프리카 세네갈 애국자당)은 좌익 민족주의 정당으로서 경제 주권 확립을 위해 CFA 프랑존에서의 탈퇴를 선언하고 자원 수출 수익의 직접 통제와 자원개발계약 재검토를 추진 중이며 복지 확대, 교육 투자, 노동권 향상 등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PASTEF는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 대통령 파예의 정치적 동지인 오스만 송코(Ousmane Sonko)는 과거 프랑스 좌파 정치인 장-뤽 멜랑숑과의 만남에서 "세네갈에서 동성애는 용인되지 않지만 관용된다"는 입장을 보인 바 있으며, 스스로에게 제기된 '동성애 혐의'에 대해서도 LGBT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대응한 바 있다. 이러한 미온적 태도는 정책 방향성으로 연결되어, 현 정부는 세네갈 형법에 존재하는 동성 간 성관계 처벌 조항에 대한 완화 계획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무슬림과 기독교도 간 다양성을 인정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양 종교에서 모두 배척받는 성소수자들의 권리 증진에 대해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이다. 9
한편 이러한 인권 퇴행, 특히 LGBT 문제에 있어 아프리카 국가들의 주된 지원국으로 꼽히는 러시아의 영향이 미치고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주요한 지점이다. 최근 러시아는 서방 세력에 대한 '지정학적 도구'로서 국제적 반 LGBT 운동을 지원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데, 2023년 우간다 의회에서 통과된 '반동성애법'의 배경에 러시아의 조직적 지원 및 압박이 있었다는 의혹은 이미 널리 공유되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반 LGBT 단체들 역시 러시아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러시아 정부의 정책이 강경하게 친러를 표방하는 부르키나파소 등의 국가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을 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다. 10
아프리카를 직시하기: 편향과 역편향의 모순을 넘어
2023년 이래 동아프리카 사헬(Sahel) 지대에 속하는 수많은 국가들에서는 쿠데타가 발생해 왔다. 서방 언론은 이들 국가를 다소 불명예스러운 '쿠데타 벨트'라는 별칭으로 부르지만, 이 쿠데타들 중 대다수가 단순히 쿠데타 주동 세력의 권력욕만이 아니라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 자신의 제국주의적 착취 및 수탈의 누적으로 인해 벌어졌음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다. 해당 쿠데타를 당사국 민중의 다수가 지지하고 있다는 것, 이브라힘 트라오레뿐 아니라 말리의 아시미 고이타, 니제르의 오마르 치아니 등 쿠데타로 집권한 사헬 지역의 주요 지도자들이 일관되게 반서방-친러적 외교 경향성을 띠는 것 역시 여기에 기인하고 있다.
부르키나파소와 그 주변 아프리카 국가들의 반서방 정권에 대한 평가는 좌파 진영 내부에서조차 극명하게 엇갈린다. '혁명 세력'이라 불리우면서도, 동시에 기회를 포착한 군벌들의 권력 찬탈일 뿐이라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자원 국유화 정책을 반제국주의와 착취에 맞선 용단으로 표현하지만, 한편 또 다른 누군가는 심화되는 소수자들에 대한 탄압을 보며 또 하나의 권위주의 세력이라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상황뿐 아니라 모든 국제정세를 바라볼 때, 편향과 역편향의 모순을 넘어 현상을 직시하고자 하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아프리카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 보편적인 한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아프리카의 반서방 주권주의자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정치·경제적 상황이 서방의 식민주의적 착취에서 기인했음은 명확하다. 그렇기에 아프리카 민중의 자주권을 존중하는 것과 소수자들에 대한 탄압을 비판하는 것, 서구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서는 이들의 방향성을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러시아라는 반인권·패권주의 국가가 근본적인 대안이 되지 못함을 직시한다는 것은 일견 모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진보의 시각에서 아프리카를 바라볼 때 반드시 병행되어야 하는 두 개의 입장이다. 특정 사안에 대한 지엽적 이해와 그에 기인한 오류와 모순을 넘어 국제정세를 대하는 올바른 방향성을 정립한다는 것,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의 상황과 맥락에 대한 이해가 지금 한국의 좌파들에게 더욱 필요한 이유다.
동백림
혁명과 개량 사이에서 고민하는 국제정세 오타쿠.
현재 시민사회단체 상근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도모의 국제면에 정기적으로 글을 연재하는 중이다.
각주
- 윤석열, 대학생들에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 육체노동 비하 https://www.khan.co.kr/article/202109151740001 [본문으로]
- 아프리카 개발은행(AfDB), <2025년 아프리카 경제 전망 - 글로벌 경제 및 정치적 역풍에도 불구하고 회복력 있는 아프리카의 단기 전망> https://www.afdb.org/en/news-and-events/press-releases/african-economic-outlook-2025-africas-short-term-outlook-resilient-despite-global-economic-and-political-headwinds-84038 [본문으로]
- 알 자지라, Africa is not poor, we are stealing its wealth https://www.aljazeera.com/opinions/2017/5/24/africa-is-not-poor-we-are-stealing-its-wealth [본문으로]
- 연합뉴스, [특파원 시선] 美 아프리카지원법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나 https://www.yna.co.kr/view/AKR20250724182100099 [본문으로]
- AP, Africa’s youngest leader, a friend of Russia, is celebrated by some and criticized by others https://apnews.com/article/burkina-faso-ibrahim-traore-97748f2a2a9b5397a3f23450c71b0b39?utm_source=chatgpt.com [본문으로]
- AP, Thousands rally in Burkina Faso in support of military junta following alleged coup attempt https://apnews.com/article/burkina-faso-protest-ibrahim-traore-coup-attempt-langley-9c2b167d2516c1fcbe5a3acd558bcc9f [본문으로]
- 연합뉴스, 프랑스군 철수한 부르키나파소 '러시아군 합류' 언급 https://www.yna.co.kr/view/AKR20240201174700099 [본문으로]
- EMERiCs, [월간정세변화]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와 각국의 대응 https://www.kiep.go.kr/aif/issueDetail.es?brdctsNo=382311&mid=a10200000000&search_option=&search_keyword=&search_year=&search_month=&search_tagkeyword=&systemcode=05&search_region=&search_area=¤tPage=1&pageCnt=10 [본문으로]
- VOA Africa, Two arrested in Senegal for criticizing prime minister's stance on LGBTQ rights https://www.voaafrica.com/a/two-arrested-in-senegal-for-supporting-lgbtq-rights/7622211.html [본문으로]
- Democracy in Africa, Did Russia play a role in Uganda’s anti-homosexuality legislation? https://democracyinafrica.org/did-russia-play-a-role-in-ugandas-anti-homosexuality-legislation/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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