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역사/도모서재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조선공산당 평전> 서평

by Domoleft 2025. 4. 16.

<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 특집>

[도모서재]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조선공산당 평전> 서평

 

한반도의 첫 사회주의 정당 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5년.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시작된 노동자·민중 정치세력화 운동의 시작점으로부터, 오늘의 우리는 무엇을 되돌아볼 수 있는가? 2025년 오늘 대학생 진보정당 활동가 박겸도의 <조선공산당 평전> 서평을 '도모서재'에 게재한다.


나는 역사를 배우는 사학도다. 역사를 알아가는 것이 즐거워 사학과에 진학했고, 마찬가지로 진보정치의 역사, 한반도 민중의 역사를 알게 되고서 고등학생이었던 몇 년 전 처음 진보정당의 당원이 되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물론이요, 주변의 소위 역사를 배우는 사람들과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를 논해 본다면 가장 먼저로는 흔히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이 나온다. 김구, 안중근, 유관순.. 그러나 그 뒤로 따라나오는 모든 이름을 들어 봐도 절대로 나오지 않는 이름들이 있다. 바로 조선의 사회주의자들, 독립운동의 가장 왼편에 섰던 사람들이다.

 

조선의 독립과 민중의 해방을 위해 그 누구보다 헌신했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 그러나 이들은 여러 이유로 남과 북 모두에게서 잊혀졌고 역사의 페이지에 다시 등장하지 못할 뻔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최백순의 <조선공산당 평전>은 잊혀진 그들을 조명하고 사회주의 독립운동이라는 숨겨진 역사를 수면 위로 다시 끌어올려 놓은 책이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정의당까지 진보정당이 맞아 온 풍파를 거치며 스스로도 진보정당운동에 헌신해 온 저자 최백순은 진보정당운동의 기원이 된 사람들의 발자국을 쫓으며 커튼 뒤에 가려진 수많은 인물들의 삶을 따라간다.


흔히 '평전(評傳)'은 특정 인물의 일대기에 대한 이야기를 의미한다. 역사서의 기준으로 본다면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은 이 책은 '열전(列傳)' 혹은 '기(記)'라는 제목이 훨씬 어울린다. 그러나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왜 수많은 사람을 다룬 이 책이 그럼에도 평전인지에 대해 말한다. "평전이란 한 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 '조선공산당 평전'이라는 조합은 분명 사전적 의미에서 벗어난다. 그럼에도 이 제목을 고집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조선공산당에 기록된 처절한 역사들은 알려지지 않은 별처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26p)

또한 저자는 이 책을 단지 '조선공산당만의 책'으로 남겨 두지 않았다. "동토에서 씨앗을 뿌리고 씨줄과 날줄 안에서 수많은 인물들과 조우했던 그의 삶에서 평전을 시작하고자 한다. 이 부족하고 빈약한 서사를 한 작은 거인의 이야기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31p) 이 책이 단지 조선공산당이 어떻게 창당되었는지, 조선공산당의 내부 정파가 어땠는지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조선공산당으로 표상되는 사회주의 독립운동의 전체적 흐름을 짚고 그것의 몰락과 재건까지를 폭넓게 다루고 있는 이유다.

1925년 조선공산당 창당대회의 주요 참가자와 소속 분파를 정리한 사진. 출처: 동아일보


이 책은 러시아 지역 한인 이주민들의 역사와 그 속에서 태동한 사회주의적 자각으로부터 서술을 시작한다. 격동의 근대에 삶의 터전을 옮긴 이들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을 겪으며 사회주의를 접했고, 이후 3.1 운동과 함께 자생적 사회주의자들이 태동했으며 서울파, 화요회, 북풍회 등등의 여러 파벌들이 생겨났다. 특히 화요회와 북풍회는 전국적으로 노동 조직에 뿌리를 내렸고, 충청 이남의 노동 조직을 주도하였으며 1925년 4월 17일 이들의 주도로 조선공산당이 탄생하게 된다. 이들은 민족주의자들과 결합하기도 하고, 6.10을 주도하기도 하는 등 독립운동사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이어지는 여러 탄압들과 함께 서울파의 춘경원당 분열등으로 당은 물리적, 화학적 통합을 이뤄내지 못했고, 1928년 12월 테제로 당은 해산된다.


이들은 단순히 '소련의 이념'을 들여온 이들이 아니었다. 한반도 현실 속에서 식민지 체제의 본질이 단순한 외세 지배가 아니라 자본과 토지의 독점 구조와 결합된 구조적 문제임을 인식했던 이들이었다. 때문에 그들의 독립운동은 '민족해방'만이 아니라 '사회 해방', '민중 해방'과 분리될 수 없었다. 이중의 억압 구조 속에서 싸운 이들의 정체성은 민족주의 진영에서조차 배척당했지만, 그만큼 이들은 지금의 시각에서도 가장 급진적이고 전면적인 한반도 민중의 해방을 추구했다.

 

당은 여러 족적을 남겼다. "조선인들은 충격과 동시에 마음으로 그들의 안위를 응원하고 있었다." (362p) 이후 역사에 등장하는 평양의 적색노조, 이재유 그룹, 경성콤그룹 모두 조선공산당에서 활동했거나 그들에게 영향을 받은 이들이 만든 단체들이다. 그들은 이후 일제강점기 후기의 가장 척박한 정세에서 독립운동을 이끌었고 여러 탄압 속에서도 자리를 지켰다. 비록 조선공산당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씨앗이 땅 속에서 자라고 있던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그조차 모든 역사가 동일하게 반복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다. 100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조선공산당 평전>의 주인공들이 살아가던 1925년과 지금 우리의 2025년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국가와 법에 의한 합법적 탄압, 다양한 목소리의 공존을 거부하는 사회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민중을 탄압하는 권력자들의 모습은 너무나 닮아 있지만, 그에 맞서는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는 서글프지만 오히려 100년 전보다 미약해진 측면도 있다.

 

그러나 100년의 시간 동안, 사라진 이들의 그 모든 사상과 실천은 이후 한국 진보운동의 뿌리로 남았다. 민주노동당이 제기했던 '무상급식', '토지공개념'이 어느덧 보수정당의 정책으로 흡수되었듯, 역사적 진보의 언어는 수많은 실패 속에서도 사회의 구조를 바꿔내는 힘이 된다. 그 씨앗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 그렇기에 <조선공산당 평전>은 단지 과거를 회고하는 책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좌표를 재확인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던 역사 속 인물들을 다시 소환하는 일은 단지 '추모'의 차원이 아니라 '계승'의 선언이다. 우리가 진보를 말한다면, 이들을 모른 채 말할 수 없다. 우리가 해방을 말한다면, 그들의 삶이 남긴 질문에 응답해야만 한다.

2000년 민주화 이후 첫 독자적 진보정당, 민주노동당 창당대회. 출처: 위키피디아

 

'도모서재' 서평을 부탁받고 이 글을 쓰면서 사실 여러 가지 고민이 들었다. 오로지 이 책이 담고 있는 역사의 흐름만을 중심으로 하여 글을 쓰기에는, 읽는 이들이 조선공산당과 그 구성원들의 여정이 갖는 의미를 받아들이기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조선공산당 창당으로부터 100년 뒤인 2025년 지금 진보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점을 함께 담아 보고자 이 글을 써내려갔다.


진보정치의 길은 외롭고, 때로는 무력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이다. 백 년 전 한반도에서 노동자·민중의 첫 번째 정당을 시작했던 사회주의자들은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지금 너는 어디에 서 있는가?" 이 질문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스스로를 규정하는 시작점이다. 이 책은 그 시작점을 되짚고 있다. 조선공산당 그 자체 혹은 사회주의 독립운동의 역사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사람이든, 진보정당 운동에 관심이 있거나 함께해 보고자 하는 사람이든 그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한번쯤 꼭 읽어 보길 권하고 싶다.


 

조선공산당 평전

최백순 저

서해문집, 2017

 

 

'도모서재'는 다양한 독자들이 추천하는 수많은 책 속에서 때로는 세상을 꿰뚫는 날카로움을, 때로는 마음을 울리는 연대의 따스함을 찾고자 하는 웹진 <도모>의 도서 리뷰 코너입니다.

'도모서재'에 서평을 기고하고자 하시는 분께서는 이도영 편집장(ldy0510@naver.com)에게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박겸도

전환 회원.

사학을 전공하며 평범한 사람의 힘으로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