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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모서재

위기의 시대, 독서는 어떻게 혁명이 되고 연대가 되는가

by Domoleft 2026. 8. 3.

[도모서재] 위기의 시대, 독서는 어떻게 혁명이 되고 연대가 되는가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다라야의 지하 비밀도서관》, 혁명을 꿈꾼 독서가들》을 읽고

위기와 불확실성의 시대 속, 책은 때로 야만과 슬픔에 맞서는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한다. 책을 통해 인간성을 지키고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사람들을 다루는 '책에 대한 책' 세 편을 나경채 정의당 기획실장이 소개한다. 


 

위기와 혼란의 시대를 통과할 때, 인간은 어디에서 길을 찾고 스스로를 구원할까? '책에 대해 말하는 책들'은 나를 깊은 울림으로 이끌곤 했다.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소설 상, 하》(열린책들)은 꼭 그런 책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소개를 하고 싶다. 다만 이번에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책은, '책에 대한 책' 세 권이다. 메리 앤 샤퍼의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마이크 톰슨의 다라야의 지하 비밀도서관, 김성동의 혁명을 꿈꾼 독서가들이 내가 선정한 7월의 책이다. 이 세 권의 책은 엄혹한 야만의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인간이 독서라는 행위를 어떻게 벼리고 갈아왔는지 보여주는 웅숭깊은 기록이다.

 

첫 번째 책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이름부터 해학적이다. 영국령 건지 섬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군에 점령당했던 지옥 같은 시기가 배경이다. 야간통행금지와 물자 부족이 삶을 옥죄었다. 모임의 이름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우연히 탄생했다. 몰래 키우던 새끼돼지를 잡아 나눠먹은 온기 어린 저녁이었다. 귀갓길을 막아선 독일군의 추궁 앞에서 살아남으려 던진 거짓말, "독서모임에 다녀오는 길입니다."가 시작이었다. 사적 회합은 엄격한 신고 대상이었다. 그들은 모임의 이름과 회원 명부를 즉석에서 지어내야 했다. 그렇게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 출범했다.

 

등 떠밀리듯 시작된 독서모임이었다. 그러나 이 모임은 곧 그들의 삶을 집어삼킨 절망에 균열을 낸다. 포화와 감시 속에서도 그들은 한 줄의 문장을 나누었다.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뜻밖의 연대감과 위로를 경험했다. 전쟁이 끝난 후 이 기적 같은 소문을 접한 작가가 건지섬으로 향한다. 서간체 소설의 형태다. 잔혹한 비극의 시대와 그 안에서 피어난 서정이 교차한다. 마음 한구석을 먹먹하게 감싸안는다. 넷플릭스 영화로도 옮겨졌지만 책 쪽이 한층 더 그윽하고 깊다. 전쟁의 엄혹함과 대비되는 책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인간 존엄의 증거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출처: 넷플릭스

 

두 번째 책 '다라야의 지하 비밀도서관'은 독서라는 행위의 가장 숭고한 경지를 보여준다. 이 책의 배경인 다라야는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 외곽의 도시다.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의 정부군에 대항하는 반군이 점령했던 지역이다. 뿌연 하늘에 벼락 같이 등장해 마을을 초토화하는 정부군의 미사일은 모든 것을 파괴했다. 25세의 청년 아흐마드는 토목공학을 공부하던 학생이었지만,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다. 어느 날, 폐허가 된 마을을 수색하던 아흐마드는 잔해 속에 묻힌 책 더미를 발견한다. 그는 흩어진 책들을 모아 어느 안전한 지하 건물에 배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라야의 지하 비밀도서관이 만들어졌다.

 

인간성을 지키고 존엄을 유지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특히 전쟁 같은 일상은 이상적인 인격에서 멀어지는 선택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진짜 '전쟁' 속에서는 비인격이 너무나 쉽게 일상이 되어 버린다. 그렇기에 누구나 존엄하게 존재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라야의 청년들은 그 존엄을 지키기 위해 지하에 도서관을 세우고 책을 읽었다.

 

지상의 전투가 피와 비명이 낭자한 비인간의 현장이라면, 어두운 지하에서의 독서는 그들이 사수할 수 있었던 가장 인간적인 행위였다. 그들은 쏟아지는 포탄 소리 아래에서 악착같이 책장을 넘겼다. 책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느끼는 감각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전쟁 이후를 상상한다는 것이었고, 전쟁 이후를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전쟁 이후’가 현실이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시리아 내전 당시 파괴된 다라야의 모습. 출처: 국제앰네스티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자기만족,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을 글쓰기의 이유로 꼽았다. 그는 전체주의를 반대하고 민주사회주의를 지향하려는 정치적 목적과 미학적 열정을 하나로 융합하고자 했다. 반면 '다라야의 지하 비밀도서관'은 우리에게 '왜 쓰는가' 이전의 보다 보편적이고, 어쩌면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읽는가”, "인간은 왜 읽는가". 폭격이 끊이지 않는 비극의 한복판에서 책장을 넘기던 청년들은 독서가 인간 내면에 어떤 불멸의 집을 짓는지 증명해 보인다.

 

시리아라는 곳은 당연히 가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갈 일이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다라야와 더불어 '알레포'라는 도시를 똑똑히 기억한다. 다라야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면, 알레포는 영화 《사마에게》를 통해 알게 된 공간이다. 영화는 엄마 '와드'가 어린 딸 '사마'에게 부모와 이웃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싸웠는지 알려주기 위해 기록한 아픈 고백이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라며 흐르는 영화의 서사는 다라야의 지하 도서관과 그대로 겹쳐진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2022년 경이었는데, 후에 다라야가 정부군의 포위망에서 벗어나 해방되고, 폭정을 일삼던 알 아사드 독재 정권이 무너졌다는 소식(2024년 12월이었다)을 접했을 때 밀려온 감동은 묵직했다. 알레포와 다라야, 폐허 속에서도 끝내 인간의 얼굴을 잃지 않았던 그곳 사람들의 해방에 아낌없는 축하를 보내게 되는 이유다.

 

세 번째 책 '혁명을 꿈꾼 독서가들'은 우리 역사의 뿌리와 직접 맞닿아 있다. 이 책은 식민지 조선이라는 거대한 감옥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꿈꾼 지식인들과 사회운동가들의 독서 궤적을 다룬다. 엄혹한 일제의 탄압 속에서 혁명가들은 과연 어떤 책을 읽으며 사상을 벼렸을까. 특히 4장에 등장하는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이자 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의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김산의 삶을 세상에 알린 이는 《중국의 붉은 별》을 쓴 에드거 스노우의 아내, 헬렌 포스터 스노우(필명 님 웨일즈)였다. 그들이 처음 만난 계기부터 묘하다. 옌안에 머물던 님 웨일즈는 루쉰 도서관의 대출자 명단에서 흥미로운 기록을 발견한다. 한 동양인이 수십 권의 영문 서적과 잡지를 빌려 간 것이다. 영어 회화가 가능한 인물이 필요했던 님 웨일즈는 그를 수소문했고, 그렇게 조선인 혁명가 김산을 만나게 된다. 님 웨일즈가 1937년 여름 김산과 스무 번 이상 대담을 나누며 써 내려간 책이 바로 그 유명한 《아리랑(Song of Arirang)》이다.

출처: 매일노동뉴스 / 알라딘

 

김산의 독서 여정은 고스란히 그의 사상적 성장을 반영한다. 단테의 <신곡>을 탐독하던 그는 점차 톨스토이즘과 아나키즘을 거쳐 마르크스주의로 나아갔다. 김산은 1921년부터 1927년까지 톨스토이의 책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거의 매일 읽었다. 그가 가장 사랑한 책은 《인생독본》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톨스토이는 사상을 넘어선 영감의 원천이었다. 의열단장 김원봉 역시 톨스토이의 책을 모조리 읽었다고 전해진다.

 

김산이 중국 국민당 경찰에 체포되었을 때 그의 압수품 목록에는 '마르크스주의의 기초', '무산계급정치 교정', '볼셰비크' 같은 서적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문학적 취향은 더 넓었다. 김산은 작가 중 잭 런던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 글이 간결하고 힘이 넘쳐 타국어로 번역되기 쉽다는 이유였다. 그가 잭 런던의 대표작 《강철군화》를 읽으며 혁명의 열기를 품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반면 20세기 초 미국 리얼리즘의 거장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에 대해서는 혹평을 내리기도 했다.

 

이처럼 한 혁명가의 깊은 독서가 담긴 '아리랑'은 훗날 한국 현대사에도 커다란 불꽃을 지폈다. 국내에 정식 번역되기 전인 1970년대, 일본어판으로 들어온 '아리랑'은 유신정권에 맞서던 청년 지식인들의 필독서였다. 리영희 선생은 이 책을 읽고 중국 혁명사에 매료되어 현대 중국 연구에 들어섰다. 훗날 시대를 흔든 《전환시대의 논리》, 8억 인과의 대화》의 밑바탕에도 김산의 호흡이 녹아 있었던 셈이다. 역사학자 강만길 역시 '아리랑'을 읽은 날을 자신의 학문적 기점으로 꼽았다. 중일전쟁 이후 분열되었던 조선인 혁명가들이 일제에 맞서 연대하는 모습에서 분단 극복의 역사적 단초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좌측부터: 리영희(1929~2010) / 강만길(1933~2023)

 

김산이 주머니에 톨스토이의 책을 꽂고 다녔다는 문장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허름한 노동자 작업복을 입은 김산이 커다란 뒷주머니에 문고판 '인생독본'을 찔러넣는 모습이 보인다. 루쉰 도서관 문을 열고 나와 휘파람을 불며 걸어가는 청년 혁명가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조선 최고의 다독가 벽초 홍명희가 《임꺽정》을 쓰며 품었던 여성해방적 시선, '일목십행'의 천재 단재 신채호가 아나키즘으로 나아간 궤적, 나혜석이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읽으며 벼려낸 통찰,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배후였던 비밀 독서모임 '성진회'까지. 이들의 독서는 단순한 교양이 아니었다. 세상을 뒤흔든 사상의 폭약이었다.

 

오늘날 주변을 둘러봐도 독서가 지닌 연대의 힘은 여전히 살아 숨쉰다. 내가 아는 광주의 정의당 청년 당원들은 한때 일요일 오후마다 모여 성실하게 책을 읽었다. 그 진지함에 끌려 진보정당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도 생겨났었다. 지금도 계속되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종종 그리우면서도 무척 아쉬운 지점이다.

 

한참 전 시민단체 상근 활동가들의 독서회에 '사람책' 프로그램으로 다녀온 일이 있었다. 오랜 시간 매몰되어 일하다 보니 나른함이 몸에 배어드는 것, 이것을 경계하기 위해 각기 다른 단체의 상근 활동가들이 한 달에 한 번 같은 날 오후 월차를 내고 모여서 책 모임을 하게 된 것이었다. 모임 이름은 영화에서 따온 '설북열차'였다. 멈추지 않는 열차처럼 한 달에 한 번 절대 쉬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들은 2년 동안 한 번도 바퀴를 멈추지 않았다고 했었다. 한 달 내내 이 날만을 기다린다는 그들의 눈빛은 생기로 가득했다. 50대 중~후반의 선배 활동가들이 온라인에서 이어가는 독서 모임도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해외 학술 논문을 직접 번역하고 토론했다. 진보정치의 나아갈 길을 스스로 벼리고 있었다. 멈추지 않는 열정 앞에서 후배로서 스스로의 게으름을 되돌아보게 되기도 했다.

곧 임기가 마무리되는 정의당 8기 지도부. 출처: 뉴스1

 

지금 정의당은 지방선거를 치러내고 8기 지도부의 임기 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정의당뿐 아니라 독자적 진보정치를 표방하는 모든 세력이 직면한 위기와 불확실성의 안개는 여전히 짙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열쇠는 '길을 찾는 행위' 자체에 있다. 길을 찾기 위해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만큼 좋은 무기는 없다. 이정표가 사라진 시대일수록 우리는 다시 책 앞으로 돌아와야 한다. 8기 지도부를 지나 새로운 변화를 준비해야 하는 지금의 정의당에게도 마찬가지다. 거친 현장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깊은 사유와 공부다.

 

소박한 제안을 해 본다. 새로이 당을 이끌 정의당 지도부와 당직자들이 매달 한 번씩 책을 읽는 독서모임을 가졌으면 좋겠다. 좋은 정치를 위해 읽어야 할 시대의 텍스트는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당을 책임질 리더와 활동가들에게 나직이 묻고 싶다. "당신이 최근에 읽은 책은 무엇입니까? 그 책에서 어떤 고민을 건져올렸으며, 그것을 정의당의 진보정치에 어떻게 접목시킬 생각입니까?"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셰퍼, 애니 배로스 저

신선해 옮김, 이덴슬리벨, 2010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델핀 미누이 저

임영신 옮김, 더숲, 2018


 

혁명을 꿈꾼 독서가들

 

강성호 저

오월의봄, 2021

 

'도모서재'는 다양한 독자들이 추천하는 수많은 책 속에서 때로는 세상을 꿰뚫는 날카로움을, 때로는 마음을 울리는 연대의 따스함을 찾고자 하는 웹진 도모의 도서 리뷰 코너입니다.

'도모서재'에 서평을 기고하고자 하시는 분께서는 이도영 편집장(ldy0510@naver.com)에게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나경

현재 정의당 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 '소설 100페이지 읽기'를 루틴으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바쁜 일상에 밀려 이 다짐을 완벽하게 지키지는 못할지라도,

책장을 넘기는 시간만큼은 생활을 지탱하는 단단한 버팀목이 됩니다.

북클럽을 만드는 것이 오랜 희망사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