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모서재] 사람이 죽었다, 그럼에도: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2026년 새해, 인천 아동학대 사건으로 촉발된 2016년 장기결석아동 전수조사로부터 10년이 지났다. 그 이후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바뀌었는가? 2020년 '정인이 사건'과 그 이후로도 계속되는 지옥 속에서,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은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아동학대의 실상과 그 진짜 대안을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 이 책은, 그리고 이 글은 위로가 아닌 고발을 목적으로 합니다. 아동학대의 실상과 우리 사회의 방관을 다루고 있어, 견디기 힘든 고통을 상기시킬 수 있습니다. 고통이 기억 속에 계신 분들은 이 글을 덮으셔도 좋습니다. 다만, 남겨진 우리는 이를 끝까지 응시해야 합니다.

10년 전, 사람이 탈출했다
나는 지금 내 아들의 발바닥을 만지고 있다. 얼마나 의미 있나. 이 12kg의 소중한 존재가 내 옆에서 안전하게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 내가 아들과 함께 있는 지금으로부터 10년 하고도 1개월쯤 전인 2015년 12월, 인천에서는 11살의 누군가가 탈출하고 있었다. 그는 폭행과 굶주림에 시달리다 집 밖을 뛰쳐나왔다. 영하의 온도 속에 맨발로 아스팔트를 밟고 나온 11살 아이의 몸은 16kg였다. 잘 건조된 장작 몇 개에 가까운 무게.
인천 아동학대 사건, 장작 몇 개와 비슷한 무게의 남은 몸을 끌고 창문을 빠져나온 아이의 사건은 2016년 정부가 진행한 장기결석 아동 전수조사(이하 전수조사)의 단초가 되었고, 우리 모두가 모른 척했던 아동학대를 폭로하는 불씨가 되었다. 만약 그 때 그 작은 사람이 그런 모습으로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하며 다음 아동살해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 펼쳐 보는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그리고 2016년 겨울 대한민국이 마주했던 전수조사 결과. 이 둘은 작은 사람 수백 명의 얼어붙은 발바닥에 대한 르포다.

"땅아, 내 피를 가리지 마라." 성경에 나오는 욥의 절규다. 그는 땅에게 명령한다. 자신의 억울한 고통을 은폐하지 말라고. 욥은 다시 외친다. "나의 부르짖음이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 고통의 소리가 안식처를 찾아 잠들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그 비명이 공중을 떠돌며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기를 원한 것이다. 평범한 사람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욥의 저주다. 아동학대의 흔적이 무관심 아래 덮이지 않도록 말이다. 작은 사람의 핏자국이 '가정사'라는 흙 속에 매립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귀가 평안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비극은 안식처를 얻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 비극을 완전히 해결하기 전까지 우리 곁에 영원히 소음으로 머물러야 한다.1 작은 사람의 '비명'을 층간소음보다 덜 중요한 문제로 치부했던 우리에겐 이 소음을 피할 권리가 없다.
생존과 상실의 경계
정부가 인천 사건을 통해 마지못해 시작한 전수조사의 결과, 그리고 한겨레신문이 이 책을 통해 진행한 조사의 결과는 정직했다. 평범한 이웃이 작은 사람을 어떻게 부수는지, 그 흔적을 베란다나 세탁실에 어떻게 적재했는지가 통계로 증명되었다. 심지어 작은 사람을 부수는 방법은 112가지로 분류되었다.2 인천의 생존 사례는 기적에 가까웠다. 전수조사와 이 책을 통해 드러난 아동학대에서 작은 사람들은 이미 대부분 물리적으로 파괴된 상태였다. 스스로 담을 넘지 못한 작은 사람에게 허락된 유일한 출구는 보통 죽음뿐이다.
이 생존과 상실의 경계가 뜻하는 바는 명확하다. 한국의 아동 보호 시스템은 '예방'이 아닌 '사후 수습', 즉 시체를 수거하는 데에만 최적화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국가의 개입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의 비명소리보다는 죽은 뒤의 악취를 맡고 나서야 시작되었다. 인천의 11살이 맨발로 아스팔트를 밟는 우연이 없었다면, 공적 시스템은 더 늦게 작동했을 것이다. 전수조사는 이미 발생한 파괴를 뒤늦게 확인하는 업무에 불과했다. 우리 사회는 작은 사람의 삶을 지키는 데 실패했고, 단지 그들이 어떻게 부서져 갔는지를 서류상으로 정리했을 뿐이다.
이런 서류상의 정리마저 태어나자마자 방치되어 죽은 신생아3의 사례나, 홀로 방이나 자동차에 놔두는 방임4, 많은 이들이 그저 안타깝다고만 여기는 살해 후 자살(사회는 여전히 이를 '동반자살'이라는 잘못된 단어로 칭하고 있다) 5 등의 사례는 다루지 못했다. 잡아내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한계, 혹은 이 자체를 아동학대로 여기지 않는 인식상의 한계 때문이다.

심지어 전수조사 이전엔 아동 보호 시스템 자체가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신고할 수 없다. 보통 가해자가 그들의 세계 전부다. 이 벽을 넘지 못한 비명은 시스템에 기록되지 않는다.6 "내 울부짖은들 천사의 열에 누가 들어주랴." 릴케의 시에 나오는 문구다. 장기 결석이라는 신호는 그냥 '가정 내 사정'으로 분류되어 폐기되었다. 릴케의 시에서 말하는 천사는 구원자가 아니다. 인간의 고통에 무관심한 '무서운 존재'일 뿐이다. 아이의 고통과 무관하게 질서정연히 굴러가는 행정 시스템과 평범한 이웃들의 일상이다. 작은 사람이 죽었음에도 그 전까지 이웃이나 행정의 아동학대 신고가 없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가정 내 사정으로 치부하지 않아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2020년의 이른바 '정인이 사건'7을 기억하는가? 정인이 사건에서는 어린이집 선생님, 가해자의 지인, 의사까지 주위 사람들이 모두 개인의 양심과 직업적 윤리에 맞게 행동했다. 그들은 릴케의 시구처럼 천사의 열을 향해 끊임없이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 비명은 공권력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앞에서 흩어졌다.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피해 사실이 없으니 개입할 수 없다'는 법리를 읊으며 고고한 '열'을 유지했다. 그러나 만약 그 대열에서 이탈해 적극적으로 작은 사람을 구하려 한 공무원이 있다면 그는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적극적으로 나섰다가 징계를 받고 타 지방청 교육 사례로 회자되는 어느 경찰의 사례를 이미 보았다. 8 공권력이라는 천사는 '비명을 듣는 자'가 아니라 '대열을 이탈하지 않는 자'를 보호한다.
이 책에서도 이웃의 신고와 기관의 시도가 무시된 사례가 나온다. 방치 끝에 생후 1개월만에 사망한 피해자가 한 달의 짧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이웃들은 피해자의 울음소리를 밤낮으로 들었다. 한 이웃은 "한번 울기 시작하면 세 시간 운 적도 있다"며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하기도 했다. 기관은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 나섰지만 방임은 아동학대의 확정적 증거가 되지 않아, 부모가 도움을 구하지 않는 상황에서 기관이 강제적 권한을 발동하기는 쉽지 않았다.9
전문가들은 아동 보호의 '다층적 구조'를 말한다. 가정, 학교, 지역사회, 국가 모두가 겹겹이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층위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다층적 방벽'으로 작동했다. 학교는 가정사라며 물러섰고, 지역사회는 예산이 없다며 눈을 감았으며, 국가는 법적 근거를 찾으며 시계를 보았다. 이 겹겹의 층위 사이에서 16kg의 작은 사람은 아무도 찾지 않는 빈틈으로 추락했다.
돌봄의 외주화와 권리의 퇴행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사울의 아들⟩을 본 경험이 있는가. 아우슈비츠에 갇힌 사울은 '존더코만도(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강제로 학살을 수행한 유대인 수감자들: 편집자 주)'로서 시신 수거 업무를 맡는다. 사울은 가스실에서 막 꺼내어진 한 사람을 장례지내기 위해 처절하게 매달린다. 자신의 목숨조차 파리 목숨인데도.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사람은 치워야 할 '토막'에 불과했다. 그 와중에도 사울은 그 시신이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묻히기를 바랐다. 대한민국의 아동 시스템은 지금도 존더코만도를 양산하고 있다. 전수조사가 끝난 뒤, 죽은 아이 곁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형제자매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학대의 현장을 목격하고 형제의 죽음을 지켜본 잠재적 피해자이자,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생존자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들에 대한 추적조사는커녕 최소한의 사후관리조차 수행하지 않았다.
학대로 사망한 아이의 형제자매를 찾아내는 데 우리는 아무런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다.10 시신을 수거하는 데 급급한 행정 시스템 속에 살아남은 아이들은 다시 방치된다. 시신을 치우는 우리의 손길은 바쁘지만, '살아남은 아이'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대해서 그동안 우리는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았다.11 2008년 이후 기록이 남아 있는 아동학대 사망자 104명 중 '살아남은 형제자매가 있는 경우'는 45퍼센트에 달한다. 하지만 국가는 90%가 넘는 생존 피해자를 다시 과거로 정중히 반납했다. 살해자의 '갱생'과 '양육권'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서였다. 살아남은 아이를 살해자로부터 분리한 경우는 7건에 불과했다.12 분리는커녕 살아남은 자신의 존재가 형제자매의 살해자에게 면죄부가 되는 일도 부지기수다. '양육해야 할 다른 아이가 있는 부모의 상황 등을 감안'한다는 핑계다.13 우리는 피해자를 살해자에게 돌려보냄으로써, 국가가 해야 할 돌봄의 의무를 살해자에게 무상으로 외주화했다.
전수조사가 끝나자 아동살해에 대한 기억은 빠르게 휘발되었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비극이 이토록 쉽게 잊히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다. 수많은 사회적 참사의 현장이 개발 논리에 따라 주차장과 아파트로 변한 것처럼,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불쾌한 일을 머릿속에서 도려내길 원했다. 자극적인 가십으로 소비된 사실들은 기록되지 못한 채 흩어졌다. 겨우겨우 얻어진 진실을 널리 알리지도, 알려지게 할 의지도 없었다. 그러나 지옥이 지옥인 이유는 이미 겪은 고통 때문이 아니라, 그 고통이 경감없이 새 것처럼 도래하리란 공포 때문이다.14 비극이 잊히고 약 5년 뒤, 우리는 정인이 사건이라는 고통을 다시 한 번 목격했다. 이 책과 전수조사가 밝혀낸 실패가 얼마나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애는 좀 맞아도 된다"거나 "내가 내 새끼 키우는데 나라가 간섭하느냐" 따위의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평범한 이웃'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동학대를 덮어 두고 방치해 왔다는 것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전수조사와 비슷한 시기인 2016년 가을, 어느 고위 공무원은 "민중은 걸핏하면 잊는 개나 돼지와 똑같다"는 말을 했다가 질타를 받았다. 물론 그는 틀렸다. 개나 돼지는 적어도 새끼가 계속 죽으면 막으려고 한다. 그것을 우린 '고전적 조건화'라 부른다. 반면 우리는 매번 죽은 아이의 이름 앞에 포스트잇만을 붙이며 우리가 괴물이 아님을 확인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수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식당 앞 '노키즈존' 팻말을 보며 안도한다. 죽은 아이만 사랑하고, 살아 있는 아이는 혐오한다. 정인이가 살아남아 우리 옆집에서 밤마다 울었다면 우리는 추모의 포스트잇 대신 층간소음 포스트잇을 현관에 붙였을 것이다. 개나 돼지는 적어도 '고전적 조건화'가 가능한데, 우리는 그런가?
가해자들은 자신의 폭력이 아이의 문제를 교정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학계의 진단은 냉혹하다. 정익중 교수는 "체벌이 교육적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는 없다. 오히려 체벌이 우울증, 청소년 비행, 낮은 자존감 등 아동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학계 역시 체벌의 교육적 효과에 회의적이다. 오히려 체벌 뒤 아동에게 남는 트라우마가 어떤 방식으로든 전이되고 증폭되어 부정적 결과를 낳을 공산이 크다. 15 통칭 '정인이 사건' 이후 민법상 부모의 체벌권이 박탈되었지만, 현실도 정말 그런지는 '금쪽같은 내 새끼'의 유튜브 영상에 달리는 댓글을 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권리장전과 돌봄의 사회화
우리가 이 지옥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아이를 '가정의 부속'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선언하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는 더디지만 조금씩 그 길을 걸어 왔다. 그러나 불과 1달쯤 전 서울시의회의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그 방어선을 걷어내고 역사적 퇴행을 가져왔다. 조례가 사라진 자리에는 다시 '교권'과 '훈육'이라는 이름의 서늘한 칼날이 섰다. 아이를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말을 안 들으면 스마트폰도 뺏고 회초리도 들어야 한다"는 이 퇴행은 결국 "내 집 안에서 내 새끼 어떻게 키우든 상관 말라"는 친권의 폭주와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 일견 다른 문제로 비칠 수 있는 학교에서의 인권과 가정에서의 인권이 결코 다르지 않은 이유다. 그 어디에서도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아동·청소년을 위한 또 하나의 권리장전이 필요하다.

교사의 의심, 의사의 진단, 이웃의 신고가 각각의 파편으로 흩어지지 않게 묶는 '통합돌봄'의 강화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흔히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의 기록이 증명하는 진실은 한 아이를 죽이기 위해서도 온 마을의 방관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층간소음을 견디지 못한 이웃의 항의는 즉각적이었으나, 벽 너머의 비명에 대한 신고는 느렸다. 필요한 것은 시혜적인 이웃사촌의 다정함이 아니다. 파편화된 비명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엮는 '통합돌봄'의 냉철한 감시망이다. 이것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최소한의 입장료다. 의사의 진단서가 경찰의 수사기록이 되고, 교사의 상담일지가 지자체의 긴급지원 예산으로 즉각 치환되는 ‘통합적 흐름’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다층구조는 그저 책임을 쪼개어 증발시키기 위한 행정적 분업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제출한 첫 예산안에서 통합돌봄은 어떤가. 이재명 정부의 78번 과제였던 통합돌봄의 총 예산은 증가했으나, 기초지자체별 사업비는 시범사업 대비 대폭 감액되어 시작도 전에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각 지자체는 겨우 연평균 2.7억원의 예산으로 각종 돌봄을 꾸려나가야 한다. 아동양육에 있어 보편적 돌봄자 모델을 어떻게 정착시킬지에 대한 방향이 없는 것은 덤이다. 16 이대로라면 각 교육청에 학생돌봄의 책임을 떠넘겼던 박근혜 정부의 '누리과정 사태'의 재림이 불가피해 보인다. 기초지자체에 통합돌봄을 떠넘기는 것이나, 지방 교육청에 누리과정을 떠넘기는 것이나, 본질적으로 다른 건 없다. 이재명 정부 들어 늘어난 복지 예산은 고령화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이지, 행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전략으로 보기는 힘들다. 물론 윤석열 정권에 비해서야 복지 멸시 기조에선 나아졌지만, 애초에 '윤석열에 비해서 잘하라'고 뽑은 정권이 이재명 정권이었나. 우리가 이 비용을 아낀 대가는 훗날 더 큰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 것이다.


아동학대를 멈추기 위한 대안은 이미 나와 있다.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국가의 시민으로 대우하는 사회권 국가로의 이행, 그리고 파편화된 비명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엮는 통합돌봄의 구축이다. 그러나 이 대안들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기술 혁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회가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데 필요한 세금을 감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내 아이의 발바닥만 따뜻하면 그만이라는 비겁한 평온 속에 머물고 싶어한다. 누군가는 국가의 개입이 가정의 자율성을 파괴한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다층구조의 핵심은 공권력이 대문을 부수기 전에, 이미 마을과 학교라는 앞선 층위들이 아이의 마른 발바닥을 먼저 발견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있다.
우리는 가장 바깥쪽 층위인 세금을 아끼기 위해, 가장 안쪽 층위인 아이의 생명을 도박판에 올리고 있다. 전수조사가 끝난 지 10년이 흘렀다. 내 아들의 발바닥은 여전히 따뜻하지만, 나는 이 온기가 언제든 서늘하게 식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가 대안이라는 이름의 불편함을 기꺼이 껴안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든 다시 '정인이'를 죽이고 '미안하다'는 포스트잇만 붙이는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가 대안을 외면할 때마다 작은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담벼락 너머에서 무심하고 평범한 '천사들'의 대열을 향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류이근 외 공저
시대의창, 2019
'도모서재'는 다양한 독자들이 추천하는 수많은 책 속에서 때로는 세상을 꿰뚫는 날카로움을, 때로는 마음을 울리는 연대의 따스함을 찾고자 하는 웹진 <도모>의 도서 리뷰 코너입니다.
'도모서재'에 서평을 기고하고자 하시는 분께서는 이도영 편집장(ldy0510@naver.com)에게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최이환
30대 남성이자 '축복이'의 아빠. 얼마 전 축복이를 만나고 육아 전쟁의 최전선에 뛰어들었다.
개인의 삶을 뒤흔든 '임출육' 경험을 통해 이 사회가 약자들을 어떻게 외면하고 있는지 목격했다.
* 저자 소개 이미지는 저자의 의향으로 챗GPT를 활용하여 본래 사진을 재구성해 만들어진 이미지입니다.
각주
- 욥기 16장 18절 [본문으로]
-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87p [본문으로]
-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102p [본문으로]
-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93p [본문으로]
-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114p [본문으로]
-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8p [본문으로]
- 이데일리, “9kg 영양실조 아기 발로 짓밟아 살해” 정인이 사건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092246639119504&mediaCodeNo=257 [본문으로]
- 동아일보, 현직 경찰, “정인아 미안, 더 이상 용기가 안난다”…고충 토로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10104/104764169/2 [본문으로]
-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147p [본문으로]
-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28p [본문으로]
-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51p [본문으로]
-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81p [본문으로]
-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22p [본문으로]
-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5p [본문으로]
-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141p [본문으로]
- 제14회 노회찬재단 함께맞는비 포럼 자료집 6p, 노회찬재단 계간웹진 ‘평등과 공정’ 3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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