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정치 일반

유권자의 알권리를 가로막는 '기울어진 선거판'

by Domoleft 2026. 6. 2.

[정치] 유권자의 알권리를 가로막는 '기울어진 선거판'

무투표 당선인만 504명에 달하는 6.3 지방선거, 토론회를 회피하고 각자에게 유리한 정파적 유튜브 채널에만 등장하는 후보자들의 모습은 어느덧 일상적 풍경이 되었다. 공론장은 사라지고, 유권자의 '알권리'는 무시되는 기울어진 선거판의 실상을 낱낱이 들여다본다.


나는 '알권리'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면서, 공공기관이 시민에게 마땅히 알려야 할 것을 감출 때 싸우는 것이 내 일이다. 선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공직선거가 있을 때마다 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유권자들에게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각 정당의 정책공약 자료집은 언제 업로드됐는지, 선거 관련 정보접근권이 모두에게 동등하게 보장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직업적으로 몸에 밴 습관이다.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도 역시 버릇처럼 "이건 알권리 침해가 아닌가" 싶은 순간들이 적지 않았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후보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끝난 선거

이번 선거에서 나는 우리 지역구 구의원에 출마한 후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투표장으로 향했다. 선거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양당이 한 명씩 후보를 내 무투표로 당선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투표를 하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당선인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공약을 내세웠는지를 알 방법도 없었다. 마땅한 대의의 절차도 없이 내 대표자가 생긴 셈이다. 이런 상황을 겪은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이번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이 결정된 후보자는 전체 당선인 4,227명 중 504명, 비율로는 11.92%다. 기초단체장 3명, 지역구 광역의원 108명, 지역구 기초의원 305명, 비례대표 기초의원 88명이 투표 없이 당선됐다.

역대 지방선거의 무투표 당선인 수. 출처: 파이낸셜뉴스

 

'무투표 당선'의 피해자는 해당 선거구의 유권자다. 후보가 한 명밖에 없으니 비교할 대상이 없고, 선택지가 없으니 선택 자체가 불가능하다. 후보들이 경쟁하면서 공약이 제시되고 검증되고, 유권자가 그걸 보고 판단하는 것. 그게 선거다. 무투표 당선은 그 과정 전체를 지워버린다. 대표는 생겼는데, 그 대표가 무엇을 약속했는지 유권자는 알 방법이 없다. 4년 뒤 그 대표에게 무엇을 물을 수 있겠는가. 선거가 끝난 게 아니라, 선거가 시작도 못 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지방선거는 소선거구제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선거구마다 한 명만 뽑는 구조에서, 거대 정당이 지역별로 후보를 나눠 가지면 경쟁 자체가 사라진다. 영남에서는 국민의힘이, 호남에서는 민주당이 공천장을 받는 순간 당선이 확정되는 구조다. 무투표 당선자 504명 중 503명이 민주당(306명)과 국민의힘(197명) 소속이고, 지역적으로 영호남에 쏠린 것은 그 결과다. 소수정당 후보는 당선 가능성이 없으니 아예 출마를 포기한다. 양당이 한 명씩 내면 그대로 무투표가 성립한다. 선거구 획정, 공천 방식, 선거비용 보전 기준 등 선거제도를 설계하고 유지해온 주체가 바로 이 구조의 수혜자인 양대 정당이다. 구조를 바꿀 동기가 가장 낮은 쪽이 구조를 바꿀 권한을 쥐고 있는 셈이다.

 

더 황당한 건 따로 있다. 공직선거법 제275조는 무투표 당선자의 선거운동 일체를 금지한다. 거리유세도, 벽보 게시도, 선거공보물 배포도 할 수 없다. 어차피 당선이 확정됐으니 선거운동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떤가. 해당 선거구 유권자들은 당선인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공약을 내세우는지 공식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 투표권만 박탈된 게 아니라 정보를 받을 권리, 알권리 자체가 침해된 것이다.

무투표 당선자의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제275조.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외상으로 뛰는 후보와 탈탈 털어 나선 후보

현행 선거제도는 득표율 15%를 넘기면 선거비용 전액을, 10%를 넘기면 반액을 국가가 사후에 돌려 준다. 겉보기엔 공평한 선거공영제 같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양당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당선이나 15% 이상 득표가 확실시되는 거대 정당 후보들은 사실상 나중에 돌려받을 돈으로 선거를 치른다. 인쇄소, 현수막 업체, 장비 대여 업체들도 이 구조를 알기에 거대 정당 후보에게는 비용을 나중에 정산하자고 '외상' 처리해 주기도 한다. 반면 10% 득표를 장담할 수 없는 소수정당 후보에게 선거는 냉혹하다. 보전을 장담할 수 없으니, 이들은 모든 비용을 현금으로 먼저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확률이 높은 기탁금까지 더하면, 선거운동을 시작조차 하기 전에 거대한 현금 장벽에 부딪힌다.

 

인천시의회 비례대표에 출마한 노동당 최효 후보는 전체 가구의 절반에만, 딱 한 페이지짜리 공보물을 배포했는데도 1,700만 원이 들었다고 한다. 인천 검단구에서 시의원 후보로 출마한 같은 당의 정성용 후보는 지역구 주민들에게 공보물 3만 부를 발송하는 데에 150만 원이 들었다. 합쳐서 1,850만 원. 정성용 후보는 이를 '1,850만 원짜리 QR코드'라고 불렀다. 소수정당 후보에게 이 돈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는다. 그는 이렇게 썼다. "빚보다는 당락과 득표율을 걱정할 수 있는 선거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각주:1]

 

선거철마다 논란이 되는 거리 현수막과 어떻게 내 번호를 알고 보내는지 모를 문자메시지도 마찬가지다. 한 번 설치하는 데 수백만 원이 깨지는 외벽 대형 현수막은 임대료가 비싼 대로변 건물을 얻을 수 있는 양당 후보들의 전유물이다. 정작 우리 동네 후보들은 안 보내는데, 전국 각지에서 보내오는 문자메시지 역시 적지 않은 비용이 지출된다. 소수정당 후보들은 저층 건물에 사무실을 얻고, 창문을 가리지 않을 현수막을 건다. 문자메시지 대량 발송의 시스템 이용료를 아끼기 위해 20명씩 끊어서 수동으로 문자를 보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서울 관악구의원 선거에 출마한 정의당 왕복근 후보의 외벽 현수막. 소수정당 후보에게 선거사무소와 외벽현수막 비용은 큰 부담이다. 출처: 씨리얼

 

이는 단순히 소수정당이 겪는 어려움의 문제를 넘어서, 유권자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후보가 어떤 공약을 내놨는지 알고 선택하는 것이 유권자의 권리라면, 돈의 많고 적음이 정보 전달의 양을 결정하는 구조는 그 선택지를 처음부터 제한하는 것이다. 소수정당 후보가 공보물을 절반밖에 못 보내는 것은 그 후보만의 손해가 아니다. 절반의 유권자가 그 후보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잃는 것이다.


토론은 피하고, 유리한 채널만 골라 다니는 후보들

한편 이번 지방선거에서 사라진 것은 토론회다. 이번 선거기간 중 법정 토론회가 두 차례 이상 열린 지역은 단 한 곳도 없었다. '1회 이상' 토론회를 개최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규정을 최소로 해석해, 후보들이 의무 방어전을 치르듯 단 한 차례 일정만 잡은 탓이다. 이 조항은 2000년 이후 26년째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서울시장 선거는 그 중 가장 상징적이다. 2010년 4회, 2014년 5회, 2022년 3회였던 서울시장 토론회가 이번엔 단 한 차례에 그쳤다. 그것도 사전투표 바로 전날인 5월 28일 밤 11시에 시작해 29일 새벽 1시에 끝났다. 처음이자 마지막 토론이었다. 정원오 민주당 후보는 토론회가 네거티브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핑계로 줄곧 공식 토론을 기피해 왔다. 오죽했으면 개혁신당 김정철 후보가 '정원오 토론 도망 달력'을 꺼내들 정도였다.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역시 양자 토론을 주장하며 다른 후보들을 배제하려 들었다. 사전투표가 시작된 후에야 오세훈 후보는 뒤늦게 "토론을 한 번 더 하자"고 했다.

서울시장선거 토론회에 개혁신당 김정철 후보가 들고 나온 '정원오의 토론 도망 달력'. 출처: MBC

 

이번 선거에서 토론 회피는 서울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추미애 후보와 국민의힘 양향자 후보는 언론인 단체 주관 토론회를 거부했다. 개혁신당 조응천 후보는 "기를 쓰고 토론을 거부하면서, 법정 토론회마저 밤 11시에 실시하는 것은 도민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세종시장 선거에서는 국민의힘 최민호 후보와 민주당 조상호 후보가 여성단체가 주최한 토론회에 불참해 개혁신당 하헌휘 후보 홀로 토론회를 진행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유권자 50여 명은 두 후보의 빈 의자를 향해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것으로 항의를 대신했다.

 

경북 포항시장 선거에서는 국민의힘 박용선 후보가 법정 토론회가 열리기 1시간 전 불참을 통보했고, 경북 청도군수 선거에서는 국민의힘 김하수 후보가 법정 토론 당일 "목소리가 안 나온다"며 불참했다. 지역 시민단체들은 유권자의 알권리를 외면한 행위라고 규탄했지만, 이런 '결석' 후보자를 제대로 규제할 방법은 없었다.

 

토론을 거부한 후보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대개 비슷하다. 토론회가 정책 경쟁보다 네거티브 공방의 장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후보들 중 대다수는 토론회 대신 '우리 편' 유튜브에는 열심히 출연한다. 네거티브를 피하는 게 아니라, 자기 진영 유권자들만 모인 채널에서 안전하게 상대 후보를 비판하는 것이다. 검증받을 기회는 차단하고, 공격할 기회는 최대화하는 전략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에게 돌아간다. 반론도, 해명도, 비교도 없이 한쪽 이야기만 듣고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토론회가 네거티브의 장이 되는 것을 막는 방법은 토론을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팍팍 늘리는 것이다. 모든 후보들이 만날 때마다 똑같은 의혹 제기만을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토론이 거듭된다면 그 과정에서 소모적인 공방은 소진되고, 정책의 차이를 드러내는 경쟁으로 자연스럽게 나아갈 것이다.

국민의힘 후보의 불참으로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무소속 후보만이 참여한 채 진행 중인 포항시장선거 후보자 토론회. 출처: 포항MBC


공론장을 장악한 플랫폼, 관리하는 건 외국 기업?

지지율에서 앞서는 후보가 토론을 피하고 우호적인 채널을 골라 다니는 것은 당적을 가리지 않고 모든 지역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 이 패턴이 지금처럼 노골화된 것은, 후보들에게 TV토론 대신 자기에게 유리한 채널을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생겼기 때문이다.

 

선거 기간 동안 내 SNS나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권영국 후보와 정원오 후보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올라왔다(오세훈 후보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 역시도 많았다). 그런데 유독 개혁신당 김정철 후보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우연히 법정 토론회 영상을 보고 나서야 처음으로 그가 '아, 이런 이야기를 하는 후보구나'를 알았다. 내가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그 후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는가. 나는 서울 시민이고, 그는 서울시장 후보니까.

 

이건 비단 나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조사[각주:2]에서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본다고 응답한 한국 이용자 비율은 52%에 달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서는 이 비율이 75.5%까지 올라간다. 10명 중 7~8명이 유튜브로 뉴스를 보는 것이다. 선거 공론장의 무게 중심이 완전히 이동했다. 그런데 이 공간은 공적 규율의 사각지대다.

 

미디어오늘이 4월 13일부터 5월 8일까지 4주 간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출연자들을 확인한 결과 총 36번의 지방선거·재보궐 선거 후보자 인터뷰가 이뤄졌는데, 더불어민주당 후보 인터뷰가 32건, 조국혁신당이 3건, 진보당이 1건이었으며 국민의힘 후보는 0명이었다고 한다.[각주:3] '겸공'은 심지어 청와대 출입기자단에도 등록된 정식 언론사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정당 후보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치우쳐 있는 것이다.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의 5월 22일 방송 게스트 명단. 더불어민주당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 출처: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한편 미디어오늘의 다른 조사에서 구독자가 많은 시사 유튜브 채널 203개를 전수조사한 결과, 이 중 언론사로 등록되지 않은 채널이 절반 이상인 106개였다.[각주:4] 현재 신문사, 방송사, 인터넷언론에 등록된 매체에 대해서는 선거보도심의가 가능하다. 언론사로 등록되지 않은 유튜브 채널은 이 심의 대상이 아니다. 아무리 편향된 정보를 쏟아내도, 아무리 허위사실을 유포해도 공적인 제재를 받지 않는 셈이다.

 

이러한 시사 유튜브 채널의 편향 문제와 맞닿아, 내가 보고 싶은 후보만 보여주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려주는 알고리즘 역시 기울어진 운동장을 확대재생산하는 주범이다. 이미 주목받는 후보를 더 주목받게 만들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들의 콘텐츠만 더 많이 추천하고 소비하도록 만든다. 소수정당 후보의 콘텐츠는 애초에 알고리즘의 선순환 바깥에서 시작한다. 앞서 소수정당 후보가 1,850만 원을 들여도 절반의 가구에밖에 공보물을 보내지 못한다고 썼지만, 알고리즘은 그 불평등을 온라인에서도 재생산하는 셈이다.

 

그 공간을 관리하는 주체가 구글이라는 외국 민간기업이라는 점 역시 문제적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부산시교육감 김석준 후보와 정승윤 후보의 공식 유튜브 채널이 선거운동 기간 중 반복적으로 정지를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정책과 공약 영상을 올리던 채널이 사전투표를 코앞에 두고 사라진 것이다. 조직적인 허위 신고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되지만 유튜브는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지 않았고, 정승윤 후보의 경우 결국 복구 불가 통보를 받기도 했다. 현행 선거법에는 포스터 훼손을 처벌하는 조항은 있다. 그런데 글로벌 플랫폼이 공식 선거운동 채널을 삭제했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튜브가 이미 선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플랫폼으로 떠오른 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된 공적 통제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삭제되어 보이지 않는 김석준 후보의 공식 유튜브 채널. 출처: 김석준 부산교육감 후보 캠프


유권자의 알권리, 공적으로 보장하자 

지금의 선거제도는 유권자가 후보를 충분히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현행 공직선거법의 골격은 1994년에 만들어졌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의 일이다. 물론 100차례가 넘는 개정을 통해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발 맞추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전면 개정은 없었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등장할 때마다 법은 현실을 한참 뒤쫓아왔고, 뒤쫓아온 법은 언제나 땜빵 수준에 불과했다. 이제는 유권자의 정보접근권을 직접 보장하는 선거제도를 항한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무투표 당선 제도부터 손봐야 한다. 후보자의 당선이 확정되더라도 선관위가 공보물 배포와 공약 공개를 의무화해야 한다. 유권자는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자신의 지역구 대표가 누구인지, 무엇을 약속했는지 알 권리가 있다. 그래야 유권자로서 정책을 요구할 근거가 생기지 않는가. 찬반 투표 절차도 도입해야 한다. 대의의 절차 없이는 대표가 될 수 없다는 원칙은 대통령 선거에만 적용할 원칙이 아니다.

 

비용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불공정성을 해소하기 위한 디지털 전환도 필요하다. 현재의 선거공영제는 후보가 각자 알아서 비용을 마련해 정보를 전달하면 나중에 현금으로 정산해 주는 방식이다. 이 사후 정산 방식을 축소하고, 선관위가 상당 부분 직접 인프라를 운영하고 제공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돈이 정보 전달의 양을 결정하지 않을 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공보물은 신청자에 한해 디지털로 전환한다. 매 선거마다 투표소에서 유권자에게 디지털 공보물 수신 여부를 확인해 수신 동의를 받는다. 모든 후보에게 동일한 분량의 디지털 공보 지면을 부여하여 쉽게 비교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선관위 플랫폼에 공개하고, 이메일과 메신저로 알림을 보낸다. 디지털 접근이 어려운 유권자를 위한 종이 공보물은 유지하되, 디지털 공보물을 확대하여 점점 후보자의 비용 부담을 줄여나간다.

은평구 대조동의 한 거리에 후보자들의 선거현수막이 설치되고 있다. 출처: 뉴스1

 

현수막 역시 지정된 공공 디스플레이에서 송출하는 방식으로 바꾼다. 이미 버스 정류장, 지하철역, 공공건물 외벽을 중심으로 디지털 디스플레이 인프라가 도입되고 있다. 이 공간을 활용해 선거 기간 동안 모든 후보의 영상과 이미지가 선관위의 관리 아래 동일한 횟수로 순환 송출되도록 한다. 지금처럼 아무 데나 일단 이름을 알리고 보자는 식으로 현수막을 다는 방식이 아니라, 정해진 공간에서 공평하게 노출되는 방식이다.

 

문자는 선관위 통합 발송만 허용한다. 지금은 전화번호 DB 거래 등 불법적 수단을 동원한 선거 문자가 넘쳐나 유권자의 피로도가 극에 달해 있다. 디지털 공보물과 같은 방식으로 선관위를 통한 후보자 통합정보 발송만 가능하도록 제한하여 불법 연락을 차단하는 동시에, 후보별 발송 분량을 동일하게 관리할 수 있다.

 

이미 프랑스는 선거 포스터를 공식 벽보판에만 붙이도록 제한하고 모든 후보의 공약서를 국가가 일괄 발송한다. 영국은 역시 모든 후보에게 선거구 내 유권자 전원에게 홍보물을 1회 무료 발송할 권리를 법으로 보장한다. 일본은 선관위가 선거공보를 발행해 모든 후보에게 동일한 지면을 무상으로 배분한다. 자본의 불평등이 유권자 알권리의 불평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선거 정보가 유통되는 공간과 망을 국가가 직접 제공하자는 것이다.

공식 벽보판에 나란히 붙어 있는 2026년 프랑스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선거 포스터. 출처: RFI


알고리즘 바깥의 TV토론

TV토론을 회피하는 후보, 진영 논리로 가득찬 시사 유튜브 채널은 서로 다른 문제처럼 보이지만, 선거가 갈수록 공론의 장으로서 성격을 잃어가고 있으며 정파적으로 파편화된 후과라는 점에서 그 뿌리는 동일하다. TV토론이 낡은 제도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건 사실이다. 흘러간 매스미디어 시대의 산물이고, 시청률도 예전만 못하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이 시대에 TV토론의 가치가 오히려 더 커졌다고 생각한다. TV토론은 후보들이 동등한 조건에서 나란히 서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TV토론에는 공정한 룰이 있고, 중립적인 진행자가 있고, 유권자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와 지지하지 않는 후보의 이야기를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다. 알고리즘 바깥에서, 성향과 무관하게, 모든 후보의 이야기가 나란히 놓이는 공간이다. 알고리즘은 내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여주고, 상대 후보 이야기는 반대 진영이 편집한 네거티브 장면으로만 접하게 만든다. TV토론은 그 불평등을 잠시나마 평등하게 만드는 장치다. 그러나 이제는 그 장치마저 기피의 대상이 됐다.

 

현재 시·도지사 선거의 법정 토론 의무를 '1회 이상'으로만 정한 조항은 후보들이 전략적으로 기피할 수 있도록 법이 허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통령 선거처럼 토론 의무를 최소 3회 이상으로 올리고, 심야 시간대를 배제하는 등 최소한의 시청 접근성 조건을 명시해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연동해야 한다. 법정 토론회에 정당한 사유 없이 불참한 후보는 선거비용 보전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은 토론을 기피해도 최대 1천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뿐, 득표율만 충족되면 선거비용을 고스란히 돌려받는다. 토론 참여를 선거비용 보전의 조건으로 연동하면, 토론 회피는 더 이상 합리적인 전략이 되지 않는다.


공론장의 규칙을 다시 설계하자

또 한편으로는 룰 없이 폭주하는 시사 유튜브 채널에 대한 공적 규율을 강화해야 한다. 공직선거법에는 이미 유사언론기능을 수행하는 채널을 인터넷언론사로 지정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실제로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선거 기간 중 일정 구독자 이상, 일정 횟수 이상 정치 콘텐츠를 올리는 채널에는 언론사 등록과 공정성 의무를 실질적으로 부과해야 한다.

 

플랫폼 알고리즘의 투명성을 위한 조치도 필요하다. 현재 EU는 디지털서비스법(DSA)을 통해 대형 플랫폼이 선거 기간 중 정치 콘텐츠를 어떤 알고리즘으로 추천하는지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를 어길 시 전 세계 매출액의 최대 6%까지 과징금이 부과된다. 알고리즘이 특정 후보의 콘텐츠를 더 많이 노출시키는 구조라면, 그 사실 자체가 공개돼야 한다. 내가 왜 어떤 후보의 영상을 더 많이 보게 되는지, 유권자가 알고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DSA) 입법 과정. 출처: Civilsdaily www.civilsdaily.com

 

2026년 1월, 국회 과방위에서 유튜브와 OTT를 법 테두리 안으로 포괄하는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초안이 공개됐다. 넷플릭스·유튜브 등 자체 전송망 없는 대형 플랫폼에 신고제를 적용하고, 알고리즘 투명성 확보와 불법·유해 콘텐츠 유통 방지 책무를 부여하는 내용이다. 유튜버 등 이용자 제작 콘텐츠에도 신고의무와 '뒷광고' 금지 등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방향은 맞다. 그러나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정치 유튜브', '시사 유튜브'가 공론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의 문제다. 플랫폼이 선거 공론장에 미치는 영향, 알고리즘이 유권자의 정보 접근을 어떻게 왜곡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를 기존 언론에 준하는 수준에서 재정의하고 규율해야 한다. 미디어법 논의와 선거법 논의가 만나야 한다.


지금이 바로 선거를 바꾸자고 요구할 때

선거가 존재하는 이유는 유권자가 자신의 대표를 선택하기 위함이다. 모든 유권자가 후보자의 정보를 골고루 전달 받을 수 있게, 유권자가 고르게 공보물과 현수막을 볼 수 있게, 유권자가 직접 토론을 보고 후보자들을 비교할 수 있게, 유권자가 차별 없이 공론장에 접근할 수 있게. 이 기준으로 선거제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지방선거가 끝난 바로 지금이 선거를 바꾸자고 요구할 적기다. 2027년에는 전국 단위 공직선거가 없다. 선거가 눈앞에 닥치면 여야 모두 제도 개혁보다 당장의 유불리를 따지게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그 압력이 상대적으로 덜한 시기다. 물론 지금의 구조를 통해 수혜를 얻는 정치인들, 정당들이 이러한 요구에 적극적으로 움직일 리 없다. 이 구조가 바뀐 적이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밖에서 온 압력 때문이었다. 지방선거가 끝난 지금, 우리가 그 압력을 만들어야 할 때다.


김예찬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활동가.

매일 정보공개 생각만 하고 있다.

남는 시간에는 자전거를 타고 추리소설을 읽고 애니메이션을 본다.


각주

  1. 정성용 후보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jeongseong.yong.351870/posts/pfbid02u8GvVHMjZEGUxYk113CwHy4Ajf43o4WxFcdRw9s4D4EEpfEHy1XuLXHkKnFDdemDl [본문으로]
  2. 연합뉴스, "한국서 유튜브 뉴스는 중장년·보수성향 이용자가 많이 본다" https://www.yna.co.kr/view/AKR20250617062800005 [본문으로]
  3. 미디어오늘, “필수 캠페인 코스” 6·3 선거판 삼키는 유튜브 채널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4366 [본문으로]
  4. 미디어오늘, 전한길·고성국도 언론? ‘무책임 공론장’의 현실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4407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