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긴급조정의 추억' - 소년공 대통령과 철도노조 장관, 그 칼끝은 어디를 향하는가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삼성전자 성과급 투쟁, 대통령실과 여권 일각에서는 '긴급조정권 발동'을 논하고 있다. 21년 만에 다시 정치권에 소환된 긴급조정권, 그러나 그 잔혹한 추억은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될 한국 사회의 상흔이다. 2005년 당시 현 공공운수노조의 전신인 공공연맹 위원장으로서 노무현 정부의 긴급조정에 정면으로 맞섰던 양경규 전 정의당 국회의원의 글을 게재한다.
'긴급조정의 추억'

'긴급조정의 추억'. 어디 추억이라는 다정한 말이 가당키나 하겠냐마는, '긴급조정'이라는 단어가 들려올 때 내게는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 제목이 절로 떠오른다. 그렇다. 긴급조정은 노동자를 죽이고,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며, 헌법이 보장한 노동권을 송두리째 박살내는 일종의 '국가적 살인'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단 네 번뿐이었던 그 가혹한 칼날 아래서, 나는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파업 당시 공공연맹 위원장으로서 두 번이나 그 피비린내 나는 폭력의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해야 했다. 그러니 이를 '살인의 추억'이라 부르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노무현 정부의 살인의 추억, 캐비닛에서 꺼내 든 긴급조정권의 비극
벌써 21년이 지난 일이다. 2005년 7월 17일,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는 안전운항과 조종사들의 인간다운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결항률이 70%를 넘어서는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단결력으로 싸워 나가던 이 정당한 투쟁은, 파업 25일째 되던 날 전격적으로 강제 종료되었다. '개혁'의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했던 노무현 정부와 그가 선임한 김대환 노동부 장관이 '긴급조정권'이라는 칼을 빼 들었기 때문이다. 1993년 현대자동차 사태 이후 12년 동안 고릿적 캐비닛 속에 처박아 두었던 '살인의 무기'를, 노무현 정권이 다시 꺼내 든 것이다.
아시아나 노동자들이 완강하게 파업을 이어가던 충북 보은의 신정 유스타운으로 공권력이 집결하고, 잔인한 강제진압의 전운이 감돌던 그 현장을 기억한다. 연맹 위원장으로서 파업 연장과 옥쇄 투쟁을 놓고 노조 간부들과 밤을 새우며 눈물로 나눴던 길고 긴 토론의 시간들. 결국 파업을 접고 서울 종묘공원에 모여 마지막 집회를 끝으로 현장 복귀를 선언하던 그때, 분노와 아쉬움에 뜨거운 눈물을 뿌리던 김영근 위원장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노동자를 짓밟으며 '재미'를 본 노무현 정부는, 같은 해 12월 또다시 긴급조정권을 빼 들었다. 12월 8일, 11차례의 교섭 동안 단 한 번의 수정안도 내지 않은 채 '임금 동결'과 '안전운항 조건 무시'로 일관하던 사측에 맞서 대한항공조종사노조가 파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당시 사측이 부린 오만과 파행은 이미 아시아나 파업을 통해 국가 공권력이 자본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준다는 사실을 확인한 자들의 추악한 행태였다.
나는 그 소식을 홍콩에서 들어야 했다. 그해 12월, WTO 각료회의 반대 투쟁의 민주노총 투쟁단장을 맡아 12월 10일 홍콩으로 출국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튿날인 12월 11일, 첫 투쟁의 포문을 열자마자 대한항공조종사노조에 긴급조정권이 발동되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동지들이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 서울을 떠나야 했던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거대한 분노로 치밀었지만, 머나먼 타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마음의 큰 짐이 된 대한항공 동지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전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해 나는 홍콩 당국에 의해 WTO 반대 투쟁의 '수괴'로 지목되어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의 파업과 두 번의 긴급조정권 앞에서 연맹 위원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회한은 지금도 가슴 깊이 남아 있다. 노동권을 압살했으면서도 시간이 흘러 꽤나 '괜찮은 정권'으로 분칠된 노무현 정부와 그 세력이 외치던 '허구의 개혁'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한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영훈 장관에게 묻는다, 과거의 비극을 소극으로 재현하려는가
단언컨대, 긴급조정권의 비극은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삼성전자노조의 성과급 투쟁을 두고 안팎에서 들리는 이런저런 이야기에 나 역시 왜 보탤 말이 없겠는가? 노동운동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적어도 노동운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고민한다. 그런데 최근 삼성전자노조의 투쟁에 대해 비판이 아닌 '비난'을 가하면서 긴급조정권을 운운하는 이들은 주로 주로 노동운동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제도적 요구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그 의미를 공유하려는 노력조차 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다.
권력의 양지에 앉아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고 온 그동안의 자본의 모순적인 행태나 정부의 노동입법 책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하면서, 노동권을 한갓 윤리와 도덕의 잣대로 치환하며 함부로 훈수를 두는 무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가증스럽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다. 제발 그 입 다물라.
한편으로 정부는 '국민경제와 일상생활의 심각한 피해'라는 낡은 법조문을 더는 들먹이지 마라. 그 비겁한 논리가 그동안 얼마나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인권을 탄압하는 독재의 무기로 쓰였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시아나 파업을 짓밟은 노무현 정부가 불과 4개월 만에 또다시 그 칼을 휘둘렀던 역사를 보라. 그 이후 공권력의 칼부림에 희희낙락하며 교섭을 파행으로 몰고 간 자본의 행패를 기억하라.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 사회'에는 그 어떤 민주주의도, 인권도 설 자리가 없다. 불과 1년 6개월 전 12.3의 밤에, 작은 불편조차 참지 못했던 독선과 오만이 오늘날 우리 민주주의를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뜨렸는지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소극(笑劇)으로 반복된다고 했다. '개혁'을 표방했던 2005년 노무현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한 거대한 '비극'이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내란 척결과 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이재명 대통령과, 역사상 최초의 현장 노동자 출신이라는 김영훈 노동부 장관이 그 자리에 앉아 있다. 21년 전의 데자뷰다. 설마 지금 우리 눈앞에서 그 부끄러운 '소극'이 시작되려는 것인가.


삼성의 이재용은 대국민 사과로 분위기를 잡고, 김정관 산업부 장관, 김민석 총리, 급기야는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서 공개적으로 경영권 보호와 긴급조정권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언론은 온갖 수치를 들이대며 '경제위기론'의 불을 지피며 호응하고 나서기 시작한다. 21년 전 그해 여름에서 겨울까지, 권력과 자본은 딱 그렇게 군불을 지폈다. 너무나 익숙하고 소름 끼치는 장면의 재현이다.
'소년공'의 역사를 훈장처럼 달고 살며 내란 척결과 민주주의, 노동권을 강조해 온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입으로 뱉은 말을 스스로 뒤집는 배신의 정치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한편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던 2005년 당시, 공공연맹 산하 철도노조의 위원장이었던 김영훈 장관 또한 분명하게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공공부문인 철도노조 위원장으로서 직권중재라는 악법에 묶여 온전한 파업권이 없음에 분통을 터트리며 노동3권 수호를 처절하게 역설하던 그 시절 자신의 모습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랬기에 긴급조정이 발동되던 그때, 산하 노조 위원장 그 어느 누구보다 분노했던 것이 바로 김영훈 장관 자신이 아니던가?
그 시절 함께 투쟁했던 '노동자 김영훈'의 모습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기를 바란다. 역대 노동부장관이 늘 그랬듯이 권력의 뒤편에 몸을 숨기지 마라. 모두가 거론하고 있는 긴급조정권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미온적인 언설로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노동3권을 수호하겠다는 주무 장관으로서의 단호하고 분명한 목소리를 내기 바란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영훈 장관, 그리고 민주당 정권에 엄중히 촉구한다. 과거의 비극을 오늘날 처참한 소극으로 재현하는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만약 또 다시 칼을 빼 든다면, 그 칼날은 결국 정권 자신을 향하게 될 것이다. 역사에서 배우기를 바란다.

양경규
전 공공연맹 위원장·전환 공동대표, 제21대 국회의원(정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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