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광주의 진실을 왜곡하는 것은 극우만이 아니다 - 2026년 5.18 전야제를 바라보며
얼마 전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사건은 5.18 광주항쟁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지만, 광주를 왜곡하고자 하는 세력은 극우에만 있지 않다. 제46주년 5.18 전야제에 등장한 '매불쇼', '한두자니', '뉴스공장'은 5.18의 진실을 지우고 광주를 특정 정파만의 것으로 전유하고 있다. 광주정신의 진짜 계승과는 정반대편에 있는 일각의 전유에 대해, 광주에서 나고 자란 활동가 김동규의 비판을 게재한다.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14년 5월, 나는 광주 망월동의 국립5.18민주묘지에 방문했다. 그때 묘지 입구에 걸려 있던 현수막은 내게 참 외롭게 느껴졌다. "오월의 진실을 왜곡하는 자들이여, 이곳에 잠들어 계시는 오월의 영령들이 두렵지 아니한가." 〈오월의 노래〉 속 가사 일부처럼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이 서려 있을 것만 같았다.
2014년 5월 당시의 한국 사회에는 소위 '일베'를 중심으로 한 5.18에 대한 왜곡과 희화화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다. 5.18 당시 사망한 자녀의 관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던 어머니를 담은 사진에는 "아이고, 우리 아들 택배왔다"라는 파렴치한 워딩이 붙었다.1 얼마 전 큰 사회적 논란이 되었던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사건은 결코 이번에 처음 등장한 종류의 일이 아니다. 12년 전 그날, 망월동에는 이미 광주의 진실을 왜곡하고자 하는 극우 세력의 저열한 조롱이 판을 치고 있었다.
광주에서 태어나 자란 한 명의 활동가로서, 광주의 아픔과 소외감을 마음 깊이 내면화하고 있었던 나는 2014년 5월 페이스북에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라는 이름의 페이지를 만들었다.2 지금으로 치면 유튜브 채널을 만든 것이나 다름없는데, 당시는 페이스북의 월간 활성 이용자가 1,500만 명에 가깝던 한국 페이스북의 전성기였다. 페이지는 순식간에 많은 구독자를 확보했고, 내가 올린 5.18에 대한 게시물들은 수만 명의 좋아요를 받고 수백만 명에게 도달했다.

그렇다면 '광주 정신'이란 대체 무엇일까. 5.18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니기 시작하자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생각나는 것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1980년 5월 당시 항쟁에 참여한 시민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들 중 대부분은 민주주의보다도 인간으로서 가진 기본적인 마음 때문에 항쟁에 참여했다. 전남대에서 처음 시작된 소규모 시위가 봉쇄되자 금남로를 향한 행진이 시작되었고, 금남로에 온 학생들은 군인들에게 가혹한 진압을 당했다. 평화롭던 광주의 평범한 시민들은 이 모습을 보고 분노했고, 항쟁의 불길이 번졌다. 항쟁 기간 중 광주의 거리에는 2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이기도 했다. 당시 그 도시의 인구는 80만 명이었다.
항쟁의 마지막 날, 5월 27일의 전남도청에 끝까지 남은 시민은 200명도 되지 않았다. 3공수여단이 후문으로 진입했고 수십 명의 사망자를 남긴 채 10일간의 항쟁은 종결됐다. 그렇지만 그날 도청에 남은 이들이 보여준 정신이 무엇인지는 확고했다. 그들은 도청을 끝까지 지켜냄으로써 지난 열흘 간의 싸움이 결코 헛된 일이 되지 않도록 했다. 그들은 분명 내일의 누군가가 내일의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었다.
매불쇼·한두자니·뉴스공장, 5.18 전야제를 점령하다
도청을 마지막까지 사수했던 이들이 죽음으로 바랐던 그 '내일'이 도래한 바로 지금, 5.18을 기리기 위해 전국의 시민들이 모여든 2026년의 5.18 전야제는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이재명 대통령 1년 만에 나라가 살아났다." "(시민들 함께) 이준석이로 드는 액은 매불쇼가 막아내고" "장동혁이로 드는 액은 한두자니가 막아내고" "조중동으로 드는 액은 뉴스공장이 막아내고" 과거 여러 차례 지역에서 논란을 빚어 왔던 백금렬 씨가 이번엔 '촛불 밴드'라며 등장해 주술적 구호를 쏟아냈다. 놀랍게도 그런 구호를 외치는 그의 모습은 마치 그 자리에 있는 시민 모두의 생각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보여졌다.

이번 전야제에서 촛불 밴드를 자처하며 등장한 백금렬 씨는 지난 2022년 5.18 전야제 당시 전야제 사회자를 맡은 바 있다. 그 자리도 이번 전야제와 비슷했다. 당시 백 씨는 수천 명이 모여 있는 전야제에서 "서울 도심에서 활보하는 멧돼지가 있다고요?"라고 발언하고, 계속해서 "멧돼지 없는 세상"을 외쳤다.3 윤석열 전 대통령을 멧돼지에 비유한 것이다. 물론 독선·불통의 정치를 일삼아 왔던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 당시에도 이미 수많은 비판이 존재했다. 그러나 당시 백 씨의 구호는 건설적이고 효과적인 비판이 아니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쥐'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닭'으로 비유하며 희화화하는 저열한 종류의 '비난'에 가까웠다.
더 큰 문제는 백 씨가 그것을 전야제 참가자 모두의 의견으로 덮어씌우고자 했다는 점이다. 당시 행사에 참여했던 한 시민은 "정치인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허용되어야 하지만, 외모에 대한 평가와 종을 바탕으로 한 차별적이고 저열한 언어 표현이 사석도 아니고, 시민 수천 명이 모인 자리에서 버젓이 발화되었다"며 너무 불편했다고 했다. 해당 시민은 국민의힘 지지 성향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분이었는데, 그럼에도 사회자가 자기 생각을 거기 모인 모두의 것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게 불쾌했다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이 있기 한참 전의 일이었다.
한편 당시 전야제에서는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전남광주특별시장 후보이자, 당시 광산구 을 지역구 의원이었던 민형배 국회의원이 국회 안건조정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민주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행사장에 등장했다. 그러자 당시 사회를 맡았던 백 씨는 "(민형배 의원은) 진짜 광주정신으로 살고 계신 국회의원"이라며 박수를 유도했다. 그때 그 자리는 마치 민주당 당원들의 집회인 것만 같았다. 시종일관 "정치검찰 없는 세상"이라는 구호와 '검찰개혁' 이야기가 나왔다. 마치 망월동의 영령들이 만들고자 했던 세상이 그런 세상이었다는 것처럼.
이번 행사가 끝나고서도 참석했던 분들 중 개인적으로 내게 연락해 온 분들이 몇 분 계셨다. 그들은 그 자리가 너무 불편하고 불쾌했다고 말했다. 5.18의 영향으로 오늘날의 한국은 각자가 가진 정치적 생각을 마음껏 발화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 그런 견해를 나눌 수 있는 자유발언 시간조차 아니었음에도, 사회자는 마치 '매불쇼·한두자니·뉴스공장'을 운운하는 주술적 구호가 참석자 모두의 생각인 것처럼 말했다. 몇 년 뒤 윤석열을 만장일치로 파면한 헌재는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에 대해 그가 국회법과 헌법을 모두 어겼다고 봤다.

광주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
2026년 전야제에서 백금렬씨가 언급한 유튜브 채널('매불쇼', '한두자니', '뉴스공장)은 모두 오늘날 민주당의 세계관을 앞장서 설파하는 친민주당계 채널이다. 이들은 민주당을 주도하는 지금의 50대의 세계관을 가장 응축된 형태로 보여주면서도, 그에 해당하지 않는 한국인의 전반적인 생각과는 분명한 거리를 갖고 있다. 어느 정당을 지지하든, 어느 정치인을 비토하든 그것은 모두에게 보장된 정치적 자유다. 하지만 그것을 전야제에 모인 시민 모두의 의견으로 전제하는 데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싸웠던 시민들은 46년 뒤 민주당만을 지지하고 다른 정당은 비토할 일부의 민주당 지지층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 그러나 전야제의 그것은 일종의 전유였다. 그들은 5.18을 매불쇼, 한두자니, 뉴스공장을 애청하는 민주당 일부 지지층만의 것으로 복속시키고자 했다. 5.18 전야제가 민주당 당원만을 대상으로 한 행사가 아니라면, 이것은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1980년 5월 27일, 최후까지 전남도청을 지킨 시민들은 내일의 누군가가 내일의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 세상은 결코 '이준석을 매불쇼로 막고, 장동혁을 한두자니로 막는' 세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5.18의 진실을 왜곡하는 이들은 지난 46년이라는 세월 속에 그 사건이 회자되는 만큼 자주 등장해 왔다.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사건을 비롯해 광주의 오월을 조롱하고 비하하며 왜곡하는 행위는 결코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5.18을 왜곡하는 자들이 꼭 극우 진영에만 진을 치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극우뿐 아니라 민주당도, 아니 그 누구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망월동 묘역에 잠들어 있는 오월의 영령들을 올곧게 기억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 길과는 정반대편에 있는 길이다.


김동규
광주의 활동가. 지역에서 진보정당, 노동조합, 시민단체 활동을 해 왔다.
5.18 왜곡의 목소리를 용납하기 어려워서 페이스북 페이지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를 만들어 10년간 운영했다.
현재는 주로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고 있다.
각주
- 경향신문, 5·18희생자 관에 “택배 배달” 일베 회원 기소 https://www.khan.co.kr/article/201310311605321 [본문으로]
- 페이스북 페이지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 https://www.facebook.com/may18gwangju [본문으로]
- 오마이뉴스, "멧돼지" 운운에 수어통역 실종...5.18 전야제, 이건 실망입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3632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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