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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정치 일반

어느 새부터 교육감 선거는 안 멋져 - 교육감 직선제를 바라보는 소고

by Domoleft 2026. 8. 4.

[정치] 어느 새부터 교육감 선거는 안 멋져 - 교육감 직선제를 바라보는 소고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함께, 직선제 도입 이후 5번째의 교육감 선거가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어느새 교육감 직선제는 본래 의미와 다르게 정치적 관심도도, 의의도 흐릿해졌다. 민주시민교육의 수장을 뽑는 선거이지만 정작 교육에 대한 방향성과 의제는 실종된 교육감 직선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재미도 만족도 없는 교육감 선거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마무리됨과 함께 또 한 번의 직선제 교육감 선거가 끝났다. 교육감 직선제는 2006127 지방교육자치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되었으니 벌써 도입으로부터 20년이 지났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부터 현재까지 5번의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직선제 교육감이 뽑혀 왔다. 그러나 매 선거를 치를 때마다 교육감 선거에 대한 회의감은 점차 커지는 듯 하다.

 

그 누구도 현재의 교육감 선거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감 직선제 시행 이후 제대로 이겨 본 기억이 별로 없는 보수는 물론이고, 이른바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교육감 선거는 '속 시끄러운' 일이 되었다. 더 큰 문제는 이 선거가 재미가 끔찍하게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후보가 나왔는지조차 잘 모르는 채로 단지 진보라니까, 혹은 보수라니까 찍을 뿐이다. 정치 저관여층은 투표를 하면서도 이 사람을 왜 찍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 정치 고관여층 중 다수는 괴로움 속에 투표를 마친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한 서울시교육감 후보들의 선거벽보가 타 선출단위 선거벽보와 함께 붙어 있다. 출처: 뉴스1

 

혹자는 단일화 기구를 중심점 삼아 보수·진보 진영을 구분하는 현재의 선거 구도가 정당공천을 금지한 현행 교육감 선거의 취지를 몰각하여 현재와 같은 파행적 교육감 선거를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현재 교육감 선거 문제의 원인이 아닌 결과에 가깝다. 단일화 기구가 없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단일화 없이 수십 명의 사람들이 출마하여 딱히 구별되지 않는 공약으로 경쟁을 할 것이고, 이는 오히려 더 큰 파행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지방정치의 부패를 문제 삼으며 기초의회 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하지 말자는 의견은 심심할 때마다 나오는 주제다. 이미 무소속으로 치러지는 현행 교육감 선거는 오히려 그것이 어떠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훌륭한 선례로 작용한다. 정파성이 있는 사람들이 정파성이 있는 주제로 선거를 하는데 정파성을 드러내지 말라고 주장한다면, 결국 남는 것은 왜곡된 정파성뿐이다.

 

또 일각에서는 대다수의 교육감 후보자들이 교원 출신이 아닌 게 문제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물론 교원들이 교육감 선거에서 배제되고 있는 현실은 짚어야 하지만, 이 문제는 대표자가 교원 출신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전문가 당사자주의'에 따르면 중·고등학교 교사, 대학 교수, 교육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을 두루 거친 안민석 경기도교육감은 교육과 관련되어 필요한 모든 전문성을 갖춘 역사상 최고의 교육감이 되어 있을 테다. 그러나 최근 안민석의 행보를 본다면 그러한 규정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듯 하다.

 

민주시민교육을 이끄는 수장을 민주적으로 뽑는 교육감 직선제는 왜, 어느 새부터 더 이상 멋지지 않아졌을까?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허명 아래, 교육감 선거는 정치적 논의의 장에서 여전히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정치적인 문제가 정치적으로 다뤄질 수 있도록 진보정치와 시민사회운동의 관점에서 교육감 선거가 왜 '안 멋진지'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확대되는 진보교육감, 희미해지는 진보교육

서울시교육감 후보자로 출마한 조전혁 후보의 '퀴어 동성애 교육 추방' 현수막 아래에서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들이 항의 피켓팅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한겨레

 

역시 재미없었던 이전의 선거들에 비해서도 이번 교육감 선거가 유독 재미가 없던 이유는, 먼저 선거에 제대로 된 쟁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수교육감 후보들이 퇴행을 거듭하는 가운데, 유력한 진보교육감 후보들조차 '멀쩡하게 일할 사람 뽑아 달라'는 수준의 내용을 반복할 뿐이었다. 서울시교육감 후보로 출마한 조전혁의 현수막에서 보여지듯 많은 보수 후보들은 성소수자 혐오를 주된 공세점으로 내세웠으나, 이번 선거에서는 심지어 성소수자 인권조차 쟁점으로 부각되지 못했다. 이는 진보 후보들이 해당 주제를 회피했기 때문이다. 과연 진보교육감 후보들의 공보물과 공약에서 '인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었나.

 

분명히 교육감 선거에서는 전국적으로 진보교육감 우세 구도가 고착화되었다. 국민의힘이 절대 우위를 차지했던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교육감 선거에서는 진보교육감 당선자가 더 많았고, 이번 선거 역시 진보교육감으로 분류되는 교육감이 전국 16명 중 10명이나 된다. 이처럼 지난 20년 동안 진보교육감은 더 많아지고, 더 깊이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그동안 '진보교육'이 의미하는 바는 희미해졌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진보교육감들을 묶어 줄 만한 공약이 있었나?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현재의 진보교육감을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공약에 흔적기관처럼 남은 민주시민교육? 그저 진보적인 시민단체들이 지지하는 후보? 그도 아니면 그저 파란색을 메인 컬러로 지정한 후보?

 

근래 여러 혼란을 겪고 있는 인권위원회조차 2026년 3월 3일 '인권친화적학교 조성을 위한 권고안'을 낸 바 있지만, 진보교육감 후보들은 이에 대해 사실상 무시로 대응했다. 불과 2년 전 국민의힘이 장악한 서울시의회는 일방적으로 학생인권조례의 폐지를 의결하였으나, 올해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3명이나 되는 진보교육감 후보 중 학생인권조례 부활을 공보물에 명시적으로 언급한 후보는 없다. 그나마 홍제남 후보가 학생인권과 관련되었다고 볼 수 있는 자치기구 강화 공약을 제시한 정도였으나, 그 역시 과거 진보교육감 후보들의 학생인권조례 관련 공약에 비해서도 상당히 구체성이 떨어졌다.

2024년 서울시의회 앞에서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기자회견을 갖는 시민사회단체. 출처: 한겨레

 

꼭 인권 문제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진보교육에 있어 '평등교육'의 이상은 언제나 주요 의제였으나, 이번 선거에서는 평등교육의 이상이 담긴 공약 역시 찾아보기 어려웠다. 고교평준화 확대나 특목고 폐지 문제는 어느새 잊혀졌고, 고전적인 입시교육의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많은 진보교육감 단일화 기구에 전교조의 참여가 이루어졌으나, 교사의 노동권과 정치적 권리에 대한 언급 역시 드물다. 교사의 노동권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고민은 '교권'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어 뒤로 사라졌을 뿐이다.

 

지난 20년 동안 교육감 직선제 선거의 의제를 주도하는 것은 항상 진보교육감 후보들이었다. 과거 무상급식, 일제고사 폐지와 학생인권조례는 진보교육감 후보들의 공약에 항상 담기는 핵심 의제였다. 하지만 어느새 진보교육감들 역시 뚜렷한 담론과 의제를 갖지 못하게 되었고, 그나마 이 선거에 남아 있는 담론인 '교권 담론'에 대한 각 후보들의 입장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있지 않았다. 각 교육감 후보를 구분할 만한 주요 쟁점조차 파악되지 않은 채 그저 하던 것을 하던 대로 이어가겠다는 사람들이 후보로 나선 선거가 재미있을, 혹은 의미있을 리 없다.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가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문제의 원인이 진보교육감 개인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교육운동 자체에서 새로운 담론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교육운동을 대표하는 학생인권조례, 무상급식, 일제고사 반대 등의 담론들은 모두 늦어도 2000년대 말에는 시작되었던 담론들이다. 교육운동은 교육감 직선제라는 정치적 기회를 타고 이러한 담론들을 일정 부분 현실화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그 이후 담론의 업데이트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일부는 퇴행하고 있다.

 

핵심 원인은 교육운동 자체의 기반이 황폐해진 것이다. 그간의 진보적 교육정책은 대부분 전교조를 중심으로 하는 민주적·진보적 교원단체들과 학부모단체를 비롯한 지역 시민단체들, 진보적인 학계, 그리고 규모는 비교적 작아도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학생인권조례의 의제화와 제정을 이끌어 온 청소년운동단체들의 공조 속에 생산되어 왔다. 그러나 시민사회운동의 전반적 위기 속 오늘날 교육운동의 존재감은 더욱 희미해졌다. 청소년운동은 크게 쇠퇴했고, 전교조는 혼돈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근 드라마 《참교육》에서 볼 수 있듯 '참교육'은 더 이상 어떤 가치를 표상하는 단어가 아니라 그저 '밈'이 되었고, 참교육이라는 단어가 표상하던 진보교육의 가치 자체도 역시 희미해졌다. 특히 전교조 스스로조차 과거 자신들이 외쳐 왔던 참교육의 의미를 더 이상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점은 더욱 우려스럽다.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 중. '참교육'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본 뜻을 잃고 '밈'으로 전락했다. 출처: 넷플릭스

 

지난 4월 30일, 전교조 기관지 《교육희망》에는 '역사적 소명을 다한 교육3주체론'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각주:1] 해당 글은 "교사, 학생, 학부모의 목소리를 학교 운영에 담아달라는 것과 교육의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역사적 소명을 다한 교육3주체론을 넘어 각 주체의 역할을 본질적 교육 원리에 맞게 재정립해야 한다"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최근 소위 '교권 담론'의 대두라는 정세 속, 교육현장에서 교사의 주체성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며 교육운동의 명백한 두 축인 학생인권과 교사 노동권의 문제를 부당대립시킨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참교육'을 외쳤던 주체들이 교사뿐 아니라 전인적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수많은 고등학생운동가들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전교조 스스로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들이 꼭 교육감 직선제라는 정치제도와 그로부터 파생된 진보교육감 운동으로부터만 비롯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각각의 운동들은 각각의 문제와 고민들을 안고 있다. 그러나 진보교육감 운동이 교육운동의 황폐화와 연관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4년에 한 번씩 교육운동의 모든 동력은 진보교육감 선거로 빨려들어가고, 당선 이후 교육운동의 주요 활동가들은 교육청에 직접 들어가거나 교육청과 이런저런 연을 맺게 된다. 이는 많은 역량이 관으로 포섭됨을 의미하고, 즉 관료화의 함정을 피해가기 어렵다. 사실상 교육에 있어 정당의 역할을 시민사회운동이 대신하고 있는 것인데, 그러한 역할을 위한 항구적인 조직을 갖추고 있는 정당의 역할을 풀뿌리 시민사회운동이 대신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는 결국 상호간의 역량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작용한다.


교육의 정치화? 교육의 정치적 미성숙!

지금 교육감 직선제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면, 이제는 단순히 교육감 직선제를 수호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교육행정, 교육정치의 틀에 대한 발본적 고민이다. 물론 교육감 직선제의 의의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지난 20년 간 교육 분야의 크고 작은 개혁들이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시민사회운동의 움직임이 직접 교육행정에 반영될 수 있는 교육감 직선제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교육감 직선제 회의론 역시 전혀 일리없는 것은 아니다. 매번 교육감 선거에서 쏟아지는 무효표가 증명하는 것과 같이 많은 사람들은 교육감 선거에 관심이 없고, 선거에 관해 숙고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수록 민주주의는 왜곡된다. 그러나 간선제 선출이라는 주장은 우리가 이미 1990년대~2000년대 초반 간선제 시절 겪었던 실패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퇴행에 해당한다. 한편에서는 광역지자체장과의 통합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는 일리가 있으나, 현재 교육행정의 규모와 광역지자체장이 광역지자체에서 가지는 권력의 크기를 고려하였을 때 지방행정의 비대화라는 문제도 고민되어야 한다. 진보적 교육운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교육에 관한 문제의식이 다른 지방행정 속에 묻힐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2025년 11월 진행된 교육감 직선제 폐지 찬반 여론조사. 찬성이 반대를 한참 웃돈다. 출처: 스트레이트뉴스

 

그렇다면 문제의 답은 오히려 '더 활발한 정치'에 있을지도 모른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선언 앞에 교육의 탈정치화는 너무나 자명한 진리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 구호는 다분히 허구에 가깝다.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고전적인 정의를 따르든, 계급투쟁의 장이라는 관점을 따르든 민주사회에서 정치와 무관한 영역은 존재하지 않으며, 전세계 어디에서도 교육이 정치의 문제가 아니었던 적은 없다. 근대 이후의 모든 사회에서 교육은 재생산을 위한 핵심적인 장치였고, 프랑스 대혁명 이후 시작된 사학의 자율성을 둘러싼 정치적 투쟁은 250년째 전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교육의 내용에 종교를 넣을 것인지, 의무교육을 실시할 것인지, 예산은 어떻게 편성할 것인지 등등은 언제나 정치적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대통령의 정치적 지향에 따라 지속적으로 교육과정과 평가 방식이 바뀌는 것을 봤으면서도 교육이 정치적 중립을 띨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그저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교육의 탈정치화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그저 기존의 우파 교육을 유지하자는 정치적인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거나, 사회의 다른 분야와 교육 간의 담을 쌓고 그 속에서의 지대 추구를 꿈꾸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현행 헌법 내에서 생각한다 할지라도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말은 교육이 특정 정치세력에 편파적으로 작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하며, 이는 오히려 교육 내에서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가 경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교육의 정치화'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행정의 정치적 중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할지라도, 그것이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정치적이라는 것과 상충되지는 않는 것이다. 오히려 행정부의 수장이 '정치적이지 않을 때' 즉 기술관료일 때 드러나는 문제점들은 훨씬 명료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히려 현재 교육의 문제는 '교육의 정치적 미성숙'에 있다. 비정치화의 강요 속에 '교육정치'에 관한 고민의 영역은 축소되고, 결국 교육영역은 유독 정치적으로 미성숙하게 남아있게 된다. 교육의 주체 중 다수는 정치 과정에서 배제되어 있고, 교육에 관한 자신들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정리하고 협의하며 해소하는 경험이 부족하다. 다수 학생들과 교사들의 정치적 기본권은 보장되지 않으며, 특히 교사들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압박 하에 교육의 문제를 정치와 연결시키는 것을 극도로 조심스러워한다.

2023년 9월 서이초 교사 추모 집회를 갖는 교사노조연맹. 출처: 파이낸셜뉴스

 

최근 교사집단의 정치적 보수화를 특징짓는 요소 역시 정치적 미성숙함과 정치적 회피에 있다. 교사노조연맹의 요구 사항이 겉보기에는 과격해 보일지 몰라도, 그들이 주최하는 모든 집회는 '정치와 무관함'을 항상 강조하고 있으며 특히 집단행동에 있어서는 꽤나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그 겉보기의 과격함은 분쟁 해결을 위한 정치적 노력을 회피한 채, 자기 영역에 벽을 세우고 그 속에 안주하게 해 달라는 내적 침잠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정치의 가장 기본 단위인 정당들이 사고하는 교육의 위치 역시 왜곡될 수밖에 없다. 정당 역시 예민한 교육 문제에 관하여 논쟁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고, 그에 따라 각자의 정치적 지향에 맞게 교육에 관한 큰 그림을 짜고, 쟁점을 부각하고, 다른 영역과 조율하는 과정은 후순위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교육정책의 유의미한 진전은 있기 어렵고, 특히나 정당에 교육3주체 중 교사와 학생의 자리는 없으니 더욱 왜곡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교육정치'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치'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교육감 정당공천 금지,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교육감 선거에서의 정당공천 금지 규정을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앞서 여러 번 지적한 것처럼, 선거를 치르면서 정치와 정책생산의 핵심적 단위인 정당이 빠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불러온다. 진보와 보수라는 극히 큰 범주로 갈려 각자의 조직력만을 다투는 단일화 과정이 그렇고, 선거 비용 문제도 그렇다. 선거를 치르는 데에는 당연히 많은 돈이 드는데, 정당정치가 개입하지 않으니 그 비용은 모두 출마자 개인의 몫이 된다. 결국 선거비용은 (특히 교원들의) 교육감 선거 출마를 제한하는 큰 걸림돌이자 교육감 스스로가 비리에 취약해지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2022년 지방선거의 교육감 후보자별 선거비용 지출액. 출처: 중앙일보

 

이 점에서 정치의 기초단위이자 핵심인 정당이 선거에 직접 개입하게 된다면 기존 교육감 선거의 여러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물론 정당이 교육감 선거에 참여하는 것에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이는 현재 정당에서 교육 관련 정책이 논의되는 방식을 보았을 때 교육 주체들의 목소리가 더 배제될 것이라는 의구심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 이는 현재 교육주체들이 정당에서 배제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며, 교육감의 정당공천제는 당연히 교사와 학생들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과 함께 논의될 수밖에 없다. 정히 기성 정당의 참여가 우려된다면, 정당 설립 자격 완화를 함께 쟁취한 뒤 '교육 정당'을 창당하여 교육감 선거에서 기성 정당과 경쟁하는 그림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교육주체 외의 시민들이 교육에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문제 역시도, 관심 없는 시민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육 3주체의 역할을 더욱 강화하여 이들 스스로가 교육에 관하여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예컨대 시·도별 교육위원회를 광역위원과 함께 교육 3주체의 대표로 구성하도록 하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다. 이는 과거 존재하였으나 그 의의의 애매함으로 폐지되었던 교육의원을 교육 3주체의 교육정치 참여 통로로 재건하는 것이다.

 

교육 현장도, 정치 현장도 결국 모두 민주사회의 대원칙을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정치적 중립'이라는 허명을 명백히 벗어던지고 '민주사회의 문제는 정치로 풀어야 한다'는 원칙으로 돌아올 때야말로, 교육감 직선제 선거는 비로소 다시 유의미한 경쟁의 재미와 민주주의라는 의미를 모두 갖춘 선거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김현근(목성돼지)

전환 기관지 《도모》 편집위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정치개혁TF에서 비례대표 지방의회선거 봉쇄조항 폐지 등을 위해 활동 중입니다.
주의: 말이 많음.


각주

  1. 교육희망, [희망칼럼] 역사적 소명을 다한 교육3주체론 https://news.eduhope.net/28094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