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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정치 일반

용혜인이 떠난 곳에 남겨진 질문들

by Domoleft 2026. 9. 17.

[정치] 용혜인이 떠난 곳에 남겨진 질문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9월 13일 성평등가족부장관 후보직을 사퇴했다. 논란과 비판으로 점철된 2주가 지나 용혜인은 떠났지만, '용혜인 사태'가 한국 정치에 남긴 수많은 질문들은 그대로다. 무엇이 문제고, 무엇은 문제가 아니며, 또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감사와 송구함"이 향한 곳

"여당도 우려를 표하는 상황에서 그 직을 수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지금 여기서 멈추는 것이 더불어민주당과 기본소득당, 그리고 민주진보진영 내의 연대의 정신을 이어나가는 데에도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저 용혜인은 이재명 정부의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서 (중략) 장관 후보직을 오늘로서 내려놓고자 합니다. 대통령께서 저를 믿고 큰 일을 맡겨주셨던 믿음에 감사드리고, 또 그 소임을 미처 다해내지 못해 송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지난 9월 13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성평등가족부장관 후보직 사퇴 기자회견을 가졌다. 국민 4명 중 무려 3명의 비토를 불러오고[각주:1] 비례대표제 그 자체에 대한 국민적 여론마저 나락에 빠뜨린 용혜인 장관 후보자의 2주. 그 끝인사의 첫머리를 장식한 것은 시민들에 대한 사과도, 자신이 대변하겠다고 나섰던 여성과 소수자들에 대한 사과도 아니었다. 대통령에 대한 "감사와 송구함", 국민들에게 보내는 형식적 사과는 그보다도 뒷전으로 밀려났다.

 

기자회견에서 밝힌 사퇴의 이유 역시 '언더조직'도, 위성정당도, 국민 여론도 아니다. "여당의 우려에 직무수행이 어렵고" "더불어민주당과 기본소득당의 연대를 이어나가기 위함"이다. 유권자로부터의 심판에 대한 걱정보다 대통령과 집권여당으로부터 버림받을 걱정이 앞머리에 서는 2026년 오늘날 한국 정치의 이상하고도 놀라운 광경이다.

용혜인 의원의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 사퇴 기자회견. 출처: 연합뉴스


선택도, 심판도 오직 민주당만이

그러나 행간을 들여다보면 이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 국민에 대한 사과보다 '대통령께 드리는 사죄'가 앞서는 게 당연한 것은, 기본소득당이 단 한번도 유권자들의 선택에 의해 원내에 진입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2020년 그 누구도 들어 본 적 없는 창당 3개월차의 신생 정당임에도 위성정당의 힘으로 원내정당이 된 기본소득당은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사회민주당 등 원외 군소정당들과 선제적으로 '새진보연합'이라는 이름의 선거연합을 만든다. 도합 당권자 수가 5,000명 언저리[각주:2]에 불과한 이들은 '이중 선거연합'이라는 속 빈 몸집불리기로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하여 당권자 수가 10배 가까이 많은 진보당과 동일한 3석의 비례의석을 배정받았다.

 

더불어민주연합은 '민주진보진영의 연대 강화와 확장을 위한 선거연합'을 표방하며 출범했지만, 당의 비례대표 공천 과정은 연대라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종속으로 점철되었다. 시민사회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던 양심적 병역거부자임에도 불구, '병역 기피'라는 황당한 명목으로 민주당에 의해 컷오프되었다. 명목상의 이유와 별개로 임 소장의 컷오프에는 그가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라는 점이 실질적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추측이 무성했다.

 

위성정당 참여 정당 중 민주당을 제외하면 가장 큰 지분을 갖는 진보당을 살펴보자. 당시 진보당 공동대표였던 장진숙 후보는 진보당 명부의 1순위로 선출되었으나 '국가보안법 위반·반미 활동'을 명분으로 역시 민주당에 의해 컷오프당했다. 자당 당대표급의 인사를 '연대 정당'이 제멋대로 컷오프하는데도 진보당은 어떤 반발조차 없이 조용히 후보를 교체했다. 민주당이 허락하지 않으면 어떤 의석도 가져갈 수 없는 상황에서, 목줄을 쥔 민주당이 '군소정당 길들이기'를 시도했을 때 효과는 명확했다.

더불어민주연합 시민사회 추천 후보자들의 면면과, '국보법 전력'을 이유로 비례후보 교체를 요구한 더불어민주당. 출처: 더불어민주연합 / KBS 뉴스

 

이런 위성정당에서 비례 의원을 2차례나 역임한 용혜인이 장관 후보직을 내려놓으며 먼저 사죄해야만 할 대상은 당연하게도 국민이나 유권자가 아닌 민주당과 대통령이 된다. 이들의 '위성정치'에서는 자신에게 심판을 내리는 주체가 유권자가 아니라는 것이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선택도, 심판도 오직 민주당만이 가하는 구조다. "여론과 별개로 역할을 하겠다"[각주:3]던 용혜인의 놀라운 당당함은 결국 이 구조에서 비롯된다.

 

용혜인과 기본소득당은 '다당제 연합정치라는 대의'를 위해 위성정당에 참여했음을 역설하고 있다. '연합정치'라는 이들의 단어 사용이 교묘한 속임수인 이유는, 문제가 아닌 것을 내세워 정말 문제인 것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연합정당'과 '위성정당'은 전혀 다른 개념이면서 동시에 한국의 선거제도 하에서 병립 가능한 개념이기도 하다. '위성정당이지만 연합은 아닌' 국민의미래, '연합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연합정당이지만 위성은 아닌' 녹색정의당이 모두 등장했던 2024년 총선은 가장 대표적인 예시였다.

 

지향과 이념이 유사한 정당들끼리 정당연합을 만들어 함께 선거에 임하거나, 홀로였다면 원내진입이 불가능했을 소수정당들이 선거연합을 꾸려 원내에 함께 입성하는 것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보편적인 일이다. 비판받아야 할 지점은 연합정치가 아니다. 소수정당의 비례성 보장을 위해 정당득표율에 각 당의 최종 의석수를 최대한 연동시킨다는 제도의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위성정당이라는 제도 해킹이다. 이 해킹의 첫째 효과는 물론 의석의 독식이고, 둘째 효과는 그 의석을 받아간 '진보정당'들에 대한 종속화이자 식민화다.

제21대 총선과 제22대 총선에서 비례위성정당의 유무에 따른 비레대표 의석수 차이 비교. 출처: 국민일보 / 한국일보

 

종속화와 식민화는 국민과 정당의 정치적 관계지형 자체를 빠르게 황폐화한다. 국민으로부터 표를 받는 정치집단은 당연히 국민의 여론을 최우선으로 의식할 수밖에 없지만, 위성정당의 의석, 그리고 해당 당들의 존립기반 자체가 민주당에 있기 때문에 여론에는 면역이 된다. 진보정치가 여론과 다수 국민의 판단을 '돌파'할 수 있으려면 첫째로 다수주의를 넘어설 만큼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운동적·정치적 목표가 존재해야 하고, 둘째로 겸허하게 설득하는 태도와 자세가 필요하다. 국민의 여론 자체를 신경쓰지 않는 위성정당의 태도에 이런 목표와 자세는 없다.

 

기본소득당뿐 아니라 위성정당에 참여한 다른 정당들과 이를 지지하는 시민사회 관계자들의 태도는 이를 명쾌히 입증한다. 용혜인을 엄호한 진보당 손솔 의원, 아예 어떤 입장도 내지 않은 사회민주당, 심지어 일각에서는 "우파의 압력에 굴복했다"[각주:4] "족벌언론과 보수세력이 주도하는 악의적 공세에 진보세력 일각이 넘어갔다"[각주:5]는 식으로 용혜인을 엄호한다. 용혜인을 비판한 국민들이 '선동당했고' '굴복했다'는 입장은, 과연 민주당과 위성 세력이 "국민은 개돼지"와 얼마나 다른 인식을 갖고 있는지 의심케 한다.

 

용혜인 본인과 소위 '민주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단지 의원이라는 자리와 장관직을 겸직해도 되는지의 문제로만 축소한다. '소수정당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면서도 그럼에도 국민 감정을 더욱 고려했어야 했다, 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쟁점을 축소시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은폐한다. 애초에 진짜 문제는 '그가 의원이라는 자리에 있어도 되는지'였기 때문이다. 어떤 유권자에게도 표를 받아본 적 없는 그가, 국민 여론은 돌파하겠다면서도 민주당과 청와대의 권고는 무엇보다 두려웠던 그가, 제도를 해킹해 국회의원회관에 사무실을 얻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장관 후보자로 지명될 일도, 의석과 각료직 중 택일을 해야 할 '소수정당의 비극'도 없었을 테니까.

용혜인을 엄호하는 손솔 진보당 의원과 시민언론 민들레의 기사. 출처: 손솔 페이스북 /.시민언론 민들레


'겸직 금지'가 내포한 함정

2주간 대한민국을 뒤덮은 '용혜인 사태'는 용혜인의 자진 사퇴로 막을 내렸지만, 오늘날 한국 정치가 마주한 뿌리깊은 모순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용혜인이 떠난 곳에 남겨진 질문들은 무엇인가. 수많은 질문들에 우리 정치는, 그리고 진보정치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하나씩 살펴보자.

 

용혜인의 후보 사퇴 다음날인 14일, 기본소득당 지도부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에게 "연합정치를 향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라"며 두 가지 정치개혁안을 들고 나왔다. 8월 치러진 당직선거에서 신임 당대표로 취임한 오준호 대표는 이날 발언을 통해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구분 없이 모든 국회의원의 국무위원(내각 구성원) 겸직을 금지시키는 안, 그리고 위성정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편 및 선거연합 허용을 더불어민주당에 공개적으로 요구했다.[각주:6] 겸직 금지를 용혜인의 낙마 사유로 규정하는 동시에 이를 정면으로 겨냥하는 정치적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기본소득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는 오준호 대표. 출처: 뉴시스

 

잘 알려져 있듯, 국회의원이 내각의 각료를 겸임하는 것은 대통령중심제인 한국 정치제도의 독특한 '내각제적 요소'로 꼽힌다. 단명한 의원내각제 제2공화국 이래 한국은 쭉 대통령제를 유지해 왔지만, 1969년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 당시 처음으로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이 허용되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이를 대통령의 막강한 인사권으로 입법부를 통제하기 위한 '초대통령제적 기제'로 평가한다.[각주:7]

 

군부독재 시절을 지나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한 현재도 장관직은 대통령의 보은성 인사이자 영전의 수단으로 사용되며, 특히 당내정치에 밀접한 원내인사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렇게 작동하게 된다. 장관 중 현역 의원의 비율은 노무현 정부 이래 문재인 정부까지 지속적으로 높아졌다가 원내인사가 아니었던 윤석열 정부에서 13.5%로 줄어들었고, 이후 이재명 정부 초기 내각에서는 전체 18명 중 8명, 44.4%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각주:8] 이런 문제들은 실제로 마치 겸직 금지가 지금 당장 필요한 핵심적 정치개혁인 것처럼 생각되게끔 한다.

 

그러나 일견 타당해 보이는 이러한 주장들은 실상 핵심을 빗겨가고 있을 뿐더러 더욱 위험한 함정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먼저 겸직 금지 주장이 빗겨가고 있는 핵심이란, 용혜인에 대한 광범위한 대중적 반대 여론이 겸직 그 자체 때문만이 결코 아니었다는 점이다. 많은 언론이 지적한 대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장관 겸직 금지는 성문화된 규정이 아니라 2000년 김한길 당시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임명과 함께 의원직을 사퇴하며 생긴 관행이며, 2000년 이전에는 비례 의원이 사퇴 없이 입각한 사례가 존재했다. 용혜인과 기본소득당은 이 점을 지적하며 2주 내내 법적인 문제가 없음을 강조했다.

2000년 김한길 당시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우측)을 문체부 장관에 임명하며 악수를 나누는 김대중 대통령. 출처: 연합뉴스

 

용혜인에 대한 대중적 분노의 대부분은 의원직과 장관직의 겸직이라는 관행을 깼다는 것 자체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관행을 깨겠다면서 보인 용혜인과 기본소득당의 태도에 대한 분노였다. "소수정당의 현실적 어려움을 이해해 달라"는 호소는 "겸직 금지가 법에 없기에 괜찮다"는 과도한 당당함에 밀려 설 자리를 잃었다. 관행은 고정된 것이 아니므로 바뀔 수 있다. 어쩌면 용혜인은 비례대표도 의원직을 유지한 채 입각할 수 있다는 새로운 관행을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법적 문제가 없으니 돌파하겠다"가 아니라 성평등정치의 관점에서 왜 자신이 의원직을 유지하면서 장관직을 수행하는 것이 더 나은 정치가 되는지 의제적·내용적으로 설명했다면, 혹은 단순히 대중의 분노 앞에서 조금만 더 낮은 자세를 취했더라면 말이다.

 

더 나아가 태도와 도덕률의 문제를 넘어서, 겸직 금지가 내포하고 있는 위험한 함정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밝혔듯 겸직 금지란 현행 헌법에 몇 남지 않은 내각제적 요소에 해당한다. 대통령중심제와 대비되는 의원내각제의 특징은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대중정치인들이 각료를 역임함으로써 정책 결정에 있어 책임정치 요소를 강화함과 동시에 소위 '전문가', 테크노크라트들이 주도하는 기술관료제(Technocracy) 정치의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다.

 

현실에서 의원의 장관 겸직이 대통령의 당내 주도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양당 정치 엘리트들의 '나눠먹기' 관행을 배격해야 하는 것과는 별개로, 행정부 권력이 이미 비대하여 '제왕적 대통령제'로 꼽히는 한국 정치에서 의원-장관 겸직이 원천 금지된다면 그 자리를 채울 것이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으면서도 대통령과 행정권력만을 위해 움직이는 탈정치적 테크노크라트일 것임은 명확하다. 최소한의 민주적 통제가 가능한 정치 엘리트의 영전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더욱 강화하는 것은 기술관료제의 확대다.

취임 일성으로 늘 "당정일체"를 언급하는 양당의 대표자들. 출처: 채널A / 민주당 유튜브 '델리민주'(현 민주당TV)

 

의원의 겸직 금지를 지지하는 측은 장관 정무를 수행하며 생기는 필연적 의정활동의 공백을 핵심 이유로 든다. '의정활동'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의원의 의정활동은 큰 틀에서 정부 감시와 입법 활동으로 나뉘어진다. 내각 각료로 참여한다면 정부 감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대 한국 정치의 '당정일체' 흐름은 이미 의원의 각료 겸직 여부와 무관하게 극대화되었고, 여당 내부에 늘상 존재하는 권력투쟁과 별개로 대통령실에 대한 여당의 견제 역할은 형해화된 지 오래다. 여기에 또 하나의 내각제적 요소로서 정부와 내각 부처에 법안발의권을 부여하고 있는 한국의 제도는 사실상 장관이 된 의원에게 입법 활동의 가능성을 오히려 더욱 넓게 열어놓고 있다.

 

기본소득당이 정치적 돌파구로 택한 겸직 금지는 실질적 제도 개선 효과가 없으면서도 한국 정치의 관료화를 심화시킬 위험성은 훨씬 커지는 거대한 함정이다. 더불어 '문제가 아닌 것'과 '문제인 것'을 교묘하게 섞어 진짜 문제를 호도하는 또 하나의 정치적 꼼수이기도 하다. 용혜인 사태가 드러낸 진짜 문제는 연합정치가 아닌 위성정당이었고, 또한 겸직 금지라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심판이 없기에 유권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위성정치의 문제였다. 이 점을 명료하게 짚지 않고서는 어떤 문제의 해결도 요원할 뿐이다.


선거제도 역진(逆進), 선택지인가?

한편 용혜인의 장관 후보 지명에 대해 가장 강경한 비판을 가했던 것은 위성정당에 참여하지 않은 독자적 진보정당들이었다. 8월 말 정의당 신임 대표로 취임한 양경규 대표의 취임 첫 일성은 위성정당 정치에 면죄부를 주는 용혜인의 지명 철회 요구였다.[각주:9] 이후 정의당과 노동당, 녹색당은 공동성명 '성평등도 민주주의도 없는 위성정당 편법 정치를 끝내라'를 발표하여[각주:10] 위성정치와도, 보수 진영의 색깔론적 비난과도 구별되는 독자적 진보정치의 입장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좌측부터: 정의당의 용혜인 지명 철회 요구 성명 / 노동당·녹색당·정의당의 공동성명. 출처: 정의당

 

독자적 진보정당, 특히 정의당의 위성정당 비판에 대해 일각에서 늘 제기되는 반론은 이번 정국에서도 역시 등장했다. '위성정당 출현을 막을 수 없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를 설계하고 관철시킨 것은 정의당'이라는 비판은, 2020년 위성정당의 첫 등장 당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제기되어 온 비판이다.

 

득표율과 의석률의 차이를 최대한 줄이고자 했으나 현실에서는 위성정당의 출현으로 과거 병립형 비례제 선거 당시보다도 소수정당의 의회 대표성이 줄어든 결과를 맞이했다는 점에서, 정의당이 현재의 결과론적 비판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전술에 매몰되어 독자적인 지지기반 구축 전략을 등한시한 실책이 진보정치 전반을 후퇴시켰다는 점, 기존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연동형 선거제도의 취지와 내용을 대중들에게 명료하게 설명·설득하지 못했다는 한계도 짚어야 한다.

 

용혜인 사태로 비례대표제의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마저 더욱 커진 와중, 다시금 힘을 얻고 있는 것은 '기존 병립형으로의 회귀' 주장이다. 최근 대권주자 1위를 기록 중인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정계입문 초창기부터 2019년 이전의 병립형 비례제로 선거제도를 회귀할 것을 명시적으로 주장해왔으며[각주:11], 최근 용혜인 사태를 기점으로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병립형 비례제로의 회귀를 진보정당의 입장으로 세워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하고 있다. 진보정당이 시작했지만 실패한 정치개혁을 원점으로 돌리고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다.

병립형 비례제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한동훈 무소속 의원(당시 국민의힘 대표). 출처: KBS 뉴스

 

현행 선거제도가 위성정당의 창당을 구조적으로 막기 힘들고, 준연동형보다 병립형이 훨씬 직관적인 선거제도라는 점에서 이 주장이 갖는 대중적 설득력은 무시하기 어렵다. 그러나 단순한 편익의 문제를 넘어 이 주장이 정합적이면서도 유효한 주장이 되기 위해서는 병립형 비례제로의 회귀가 현재의 준연동형보다 비례성과 민주성을 강화하는 실질적 '정치개혁'임이 입증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례대표 의석수 및 비율의 확대가 전제되어야 한다. 문제는 오늘날 더욱 심화되고 있는 양당 독점 구도 속에서 위성정당 없는 준연동형 선거보다도 비례대표의 확대가 훨씬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비례성과 민주성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선거제도는 전 의석을 정당투표로 선출하는 전면 비례대표제이다. 지역의 이해와 권리 대변은 지방의회의 역할과 위상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국회의원 선출은 비례성을 극대화하는 전면 비례대표제로 가자는 지향점을 가지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역구에서 오는 이득을 포기할 수 없는 양당은 2004년 이래 지속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 비례 의석을 야합을 통해 더욱 축소해 왔다. 오늘날 비례대표 의석 수는 전체 300석 중 46석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전면 비례제는커녕, 진보정치가 병립형 회귀와 비례대표 확대를 동시에 주장한다 하더라도 양당이 후자에 동의해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병립형 비례제로의 회귀는 위성정당의 출현 필요성이 없어진다는 점에서 위성정당을 막는 근본적 방법은 될 수 있지만, 그러나 오늘날 병립형 비례제로의 회귀를 요구하는 주요 정당과 정치인들이 비단 비례대표뿐 아니라 국회 의석 자체의 축소까지 함께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각주:12] 병립형 비례제로의 회귀가 이들의 주도로 현실화되고 진보정치가 위성정당 철폐만을 위해 여기에 동참한다면 비례성의 총체적 악화에 더해 그간 진보진영이 주도해 온 정치개혁이라는 담론 자체의 운동적 힘이 통째로 사라질 위험성을 간과할 수 없다. 제도적 역진(逆進)이 한 사회에 주는 시그널은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회의원 1인당 인구수는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다. 출처: SBS


위성정당과 위성정치, 이제는 정말 끝장낼 때

널리 알려져 있듯,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세계적 시초는 독일이다. 1953년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의 건국과 함께 연방의회 선거제도로 채택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유권자의 정치적 지향과 분화된 이념을 반영하여 다당제와 연합정치를 일상화시키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해 왔다. 이후 독일을 본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국가들에서는 대부분 위성정당이 등장했지만, 정작 연동형의 원류로 꼽히는 독일에서는 위성정당이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 왜일까.

 

독일에 위성정당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로는 비례대표 의석수가 한국과 비할 바 없이 많고 중복 입후보가 허용되어 있어 위성정당의 제도적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제도적 이유가 우선 제시된다. 그러나 그것뿐일까. 강신구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독일에서는 정당 투표에 의한 의석 배분이 주(主)이고, 지역구 투표는 비례대표를 통해 제공되지 못하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이라 주장한다.[각주:13] 이러한 인식 자체가 유권자 다수에게 못박혀 있는 상황에서, 거대 정당들이 득표율보다 훨씬 많은 의석 독식을 위해 위성정당과 같은 꼼수를 사용한다면 그 정당의 정치적 생명 자체가 위협받을 상황이 올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다. 위성정당이 유권자의 분노를 자아낸다는 것을 이들은 기본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측면에서 꼭 짚어야 할 지점이 있다. 일각에서는 '위성정당을 처음 만든 것은 국민의힘이므로 이에 어쩔 수 없이 대응한 민주당만을 초점에 놓고 비판하는 것은 본말전도'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민주당이 비판받는 이유는 그 시초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 자체에 동의하지 않았던 국민의힘과 달리 비례성 강화라는 취지에 (최소한 명목상으로나마) 동의하였으면서도 의석이 줄어들 상황이 오자 바로 입장을 선회하여 위성정당을 창당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민주진보연합'이라는 기만적 종속구조를 더해 유권자의 선택권과 정당주의 자체를 무력화한 민주당의 책임은, 최소한 이 지점에서만큼은 국민의힘보다 훨씬 크다.

2024년 더불어민주연합 창당대회. 출처: 연합뉴스

 

완벽한 제도는 존재할 수 없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위성정당을 통해 제도의 취지를 무력화했다면,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간다면 비례 의석을 더욱 줄이는 방식으로, 혹은 의원정수 자체를 감축하는 방식으로 양당은 다시금 제도를 무력화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오늘날 진보정치가 집중해야 할 것은 '더 좋은 선거제도의 설계' 그 자체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누구도 위성정당을 만들 수 없는 정세를 구축하는 대중적 운동이다. 진짜 문제가 연합정치도, 겸직도, 그 무엇도 아니라 한국 정치 자체를 식민화하며 종속화하고 있는 위성정당과 위성정치임을 더욱 크게 폭로하는 일이고, 동시에 역진도 퇴행도 없이 정도(正道)를 걷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날 독일과 한국이 처해 있는 정치적·제도적 상황은 크게 다르지만, 용혜인 사태가 불러온 결과는 '위성정당에 대한 분노'를 한국에서도 더욱 널리 확산시켰다. 2020년부터 2026년까지 '존재하되 묵인되었던' 위성정당, 한국 정치의 한 시대를 블랙코미디로 장식했던 위성정당이라는 괴물의 힘은 용혜인과 기본소득당,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이 스스로 폭로한 모순을 통해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약해졌다. 이 위성정당과 위성정치라는 괴물을 이제는 정말 끝장낼 때다. 국민의힘의 방식도, 민주당의 방식도 아닌 진보정치의 방식으로 그 괴물에게 유효한 일격을 날릴 수 있을 때, 그것은 곧 독자적 진보정당의 대중적 기반을 회복하는 일과도 다르지 않게 된다.


이도영

전환 기관지 편집위원장이자 《도모》 편집장.

아마추어 디자이너 일도 가끔 한다.

여전히 사회운동과 진보정치가 만들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믿고자 한다.


각주

  1. 연합뉴스, 용혜인 임명 '반대' 73.4%·김승원 임명 '반대' 55.7% https://www.yna.co.kr/view/AKR20260910056100001 [본문으로]
  2.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024년 정당의 활동개황 및 회계보고 https://www.nec.go.kr/site/nec/ex/bbs/View.do?cbIdx=1129&bcIdx=298261 [본문으로]
  3. 채널A, 용혜인 ‘임명 반대’ 73.4%…“여론과 별개로 역할” https://ichannela.com/news/detail/000000549794.do [본문으로]
  4. 노동자연대, 민주당이 우파의 압력에 기회주의적으로 용혜인을 사퇴시키다 https://ws.or.kr/article/39738 [본문으로]
  5. 시민언론 민들레, 무차별 돌팔매질…용혜인, 왜 표적이 되는가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295 [본문으로]
  6. YTN, 기본소득당 "지역구·비례 구분 없이 겸직 금지" 민주당에 제안 https://www.ytn.co.kr/_ln/0101_202609141052242146 [본문으로]
  7. 내일신문, ‘의원·장관 겸직’ 논란…“대통령, 여당 통제 수단” https://www.naeil.com/news/read/600993 [본문으로]
  8. 시사저널, 李정부 총리·장관 ‘44%’는 의원 겸직…‘국정 안정’은 기대, ‘정부 견제’는 물음표?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338102 [본문으로]
  9. 정의당, 전환 없는 대전환 인사, 주워 담으라 [양경규 대표] https://www.justice21.org/newhome/board/board_view.html?num=166809&page=2 [본문으로]
  10. [공동성명] 성평등도 민주주의도 없는 위성정당 편법 정치를 끝내라 https://www.justice21.org/newhome/board/board_view.html?num=166821&page=2 [본문으로]
  11. YTN, 한동훈 "비례제 '병립형' 해야...민주당 입장 뭔가" https://www.ytn.co.kr/_ln/0101_202401160004396934 [본문으로]
  12. 경향신문, 한동훈 “의원 50명 감축”…야당 “정치혐오 기댄 허경영의 길” https://www.khan.co.kr/article/202401162047005 [본문으로]
  13. 한국일보, '100% 연동형 비례제' 독일서 위성정당 없는 이유는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3011815310003839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