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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운동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 -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개정운동에 다시 나서며

by Domoleft 2026. 2. 3.

[사회]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 -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개정운동에 다시 나서며

1987년 제정된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이즈예방법)의 '전파매개행위죄'. 이는 여전히 HIV와 에이즈에 대한 구시대적 인식에 기반하여 전파 위험성이 없는 감염인을 범죄화하며 차별을 정당화한다. 에이즈예방법 개정안의 발의를 앞두고 법안 작성에 참여해 온 사단법인 함께서봄 이소중 활동가의 기고를 게재한다.


전파하지 않는 감염인을 범죄화하는 에이즈 '예방법'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을 범죄화하는 주요 일간지의 기사 제목. 출처: 문화일보

 

"HIV 속이고 피임도구 없이 성관계 20대男…징역 8개월"[각주:1] 지난해 12월 올라온 한 일간지의 기사 제목이다. 한국 언론에서 이런 보도는 전혀 드물지 않다. 이따금씩 등장하여 여론과 법의 이름으로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을 심문한다. 감염인의 성관계는 오늘날에도 대중의 불안과 분노를 유발하고, 이는 국가의 엄격한 법 집행과 철저한 감염병 관리를 요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언론은 감염인에 대한 막연한 통념에 기반하여 선정적인 기사 제목으로 감염인을 범죄화한다.

 

이런 보도들은 다음의 몇 가지 특징을 공유한다. 먼저 실제로 HIV는 전파되지 않았다. 둘째, 감염의 결과가 없는 상태에서 상대가 입은 피해는 정신적인 것이다. 사후에 '내가 감염될 수도 있었다'는 충격과 혼란을 감염인이 미리 방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감염 사실을 알려주었더라면 성관계를 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셋째, 감염인이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면서 그의 주장과 설명은 신빙성을 잃는다. 넷째, 다른 감염병에는 두지 않는 제한을 HIV에만 예외적으로 적용한다.

 

위 기사에 적용되는 조항은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이즈예방법) 제19조(전파매개행위의 금지)이다. 1987년에 제정된 법이니 이 조항도 이미 4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법은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정하고, 제25조 제3호에서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전파매개행위'란 콘돔 없는 성관계를 말한다. 해당 조항은 실제 HIV를 전파할 가능성이 있었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판례는 전파매개행위죄는 전파를 야기할 수 있다는 추상적 위험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실제로는 HIV 감염인이 HIV를 전파할 수 없는 상태였더라도, 콘돔 없는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의 제19조 전파매개행위의 금지 / 제25조 벌칙.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이러한 관점은 예방조치로서 HIV 치료(treatment as prevention)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학적으로도 큰 문제가 있다. HIV 감염인에게 있어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는 가장 확실한 예방조치이다. 하루 한 알의 약을 먹고 감염내과에서 정기적인 혈액검사로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것으로 치료가 이루어진다. 치료를 통해 바이러스는 미검출 수준으로 억제되고 HIV 전파는 불가능해진다. 대규모 연구를 통해 치료받는 감염인을 통해서는 전파 가능성이 제로라는 사실이 입증되었고, 이는 U=U (Undetectable=Untransmittable, 바이러스 미검출=전파불가)라는 전 세계 의학계의 공통 합의사항이 되었다.

 

결국 미검출 상태 HIV 감염인과의 성적인 접촉이 위험할 이유도, 상호 합의하에 이루어진 콘돔 없는 성관계가 형사처벌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도 전혀 없다. 전파 가능성이 없는 숨은 질병이 자신에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성관계 상대방에게 굳이 고지해야 할 이유 역시 없다. 해당 조항이 없더라도 형법에는 상해죄가 존재하기에, 괴담 속에서나 등장하는 '악의적으로 HIV를 감염시키는 감염인'에 관한 처벌 공백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 국내의 절대다수 HIV 감염인들은 안정적으로 치료를 지속하고 있고, 자신을 통해 전파가 발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단지 사람들의 인식과 이를 반영한 법제도가 제자리걸음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HIV와 에이즈를 구분하지 못했던 시대, 에이즈가 알 수 없는 죽음의 질병이었던 시대가 남긴 시대착오적인 법령만이 여전히 남아 오늘날 HIV 감염인들을 고립시키고 있다.


공포의 제도화[각주:2]

"불안과 불신" "우려" "두려움" "정신적 충격과 고통" "적지 않은 두려움과 공포"

 

2023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전파매개행위죄가 합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이런 표현을 명기했다. 합헌 의견은 성관계 상대방이 겪을 수 있는 정신적 피해를 이유로 감염인에 대한 기본권 제한이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실제 입법 목적인 예방에 기여하는지가 아니라, 다수 비감염인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감염인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을 합리적인 제한이라고 보았다. 전체 9명의 재판관 중 5명이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위헌정족수인 6명에 미달하여 합헌으로 남게 되었다.[각주:3]

2022년 헌법재판소의 전파매개행위죄 위헌판결을 촉구하는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기자회견. 출처: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이러한 결론은 'HIV 감염인과의 접촉은 위험하다'라는 고정관념을 법적으로 승인하는 것이고, 비감염인들이 가진 공포를 감염인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공포는 감염인의 존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HIV 감염은 누군가의 잘못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감염인들은 변함없이 자기의 삶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는 이러한 현실을 말하지 않고 여전히 감염인에게 감시의 눈초리를 돌린다. 언제 법정에 소환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딛고, 감염인들은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삶의 어느 것도 포기할 필요가 없다고 서로에게 말한다. 삶의 계획도, 꿈도, 인간관계도 변함없이 이어가도록 서로를 격려한다.


감염인을 보호하지 못하는 법의 불균형

사실 전파매개행위죄는 사문화된 조항이었다. 법 제정 초기에 포함된 엄격한 통제조치들 중 하나였지만 오랫동안 적용되지 않았다. 제정 당시 있었던 격리조치는 현실화되지 않고 1999년 폐지되었고, 여전히 법에 남아 있는 강제 치료 및 보호조치는 한 번도 발동된 적이 없다.[각주:4] HIV에 대한 상상과 실제 현실은 괴리가 있음에도, 정작 그 격차는 오랫동안 시정되지 못했다.

 

법의 지체 현상은 에이즈예방법의 다른 많은 영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법은 일상생활에서의 전파가 불가능한데도 감염인들이 특정 직업에 종사하는 것을 차단하고 있으며, 의료차별이 만연한데도 여기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감염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은 벌칙 없이 선언적 문구에 그쳐 실효성이 없다. HIV의 만성화와 감염인의 고령화로 인해 돌봄과 요양 공백이 커지고 있지만, 의학적 치료 외에 감염인의 사회 적응과 일상생활 돌봄에 대한 고민은 부재하다. 에이즈예방법은 2008년 정부 주도의 개정을 한 차례 거쳤지만 여전히 검사와 신고, 감염인에 대한 치료와 제한만에 집중하고 있다.

 

의료차별 문제는 HIV 감염인이 일상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어려움이다. HIV 치료는 원활하지만 외과수술이나 치과치료는 접근성이 떨어진다. 제20대부터 제22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의료차별 금지 규정을 추가한 개정안이 발의되어 왔지만 상임위원회 논의도 충분히 거치지 못했고 처벌 조항도 없었다. 물론 의료법 제15조에 진료거부 금지 조항이 있지만 이 조항이 HIV 감염인을 보호해 준 적은 한 번도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숱한 진정이 제기되고 결정이 축적되어 왔으나 이 역시 강제력이 없어 의료현장의 관행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20년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가 제작한 소책자. 필자가 초안을 작성했다. 출처: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20년 만에, 공론장이 열린다

지난 20년 동안 제대로 된 법 개정 논의는 이루어지지 못했고 에이즈예방법의 문제는 쌓여만 갔다. 이에 2024년 5월 사단법인 함께서봄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수자위원회 소속 변호사들은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개정 TF'를 결성하고 제22대 국회에서의 발의 및 통과를 목표로 1년 반의 논의를 거쳐 전면개정안을 마련했다. 이는 지난 2006년 민주노동당 주도로 발의한 전면개정안을 골자로 하여 현재 상황에 적합한 내용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어 2025년에는 HIV 감염인 당사자, HIV·AIDS 인권운동, 인권·시민사회 간담회를 연달아 열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수정을 거듭하여 완성도를 높였다.

 

이번 개정안은 우선 법안의 명칭부터 바뀌었다.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 지원 및 예방에 관한 법률', 약칭 'HIV감염인지원법'이 이 법의 새로운 이름이다. 질병의 정확한 상태로서 HIV 감염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감염인이 치료를 통해 건강을 유지하기에 에이즈 상태로 진행하지 않음에도 '후천성면역결핍증 감염'과 같은 부정확한 표현이 감염인의 현재를 오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법의 목적을 바꾸었다. 'HIV 감염인 인권증진과 지원'을 주된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통해 HIV 전파 방지도 달성할 수 있음을 보이고자 했다. 감염인을 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감염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면서 모두의 건강을 증진할 수 있다는 관점의 전환을 담은 것이다.

 

한편 개정안은 아직까지 남아 있는 독소조항을 폐지했다. 특정 직업군에 대한 검진과 취업제한을 폐지하고, 감염인의 성관계에 대한 처벌, 치료 강제 조항을 삭제했다. 이와 함께 실질적인 권리 보장을 위해 실효성 있는 처벌 조항을 마련했다. 고용 차별과 진료 거부, 당사자의 명시적 동의없는 강제검사에 대한 벌칙을 두어 피해 구제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마지막으로는 감염인의 다양한 필요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명시했다. HIV 치료와 감염인의 권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학교와 일터에서 교육하고, 이주민과 장애인 등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에게도 HIV 검사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동의 절차를 거치도록 의무화했다. 진단 이후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적절히 제공받고, 정신건강과 일상돌봄, 동료 간 상담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근거조항을 두었다. 이는 'HIV 감염인은 치료만 잘 받으면 된다'고 말하는 정부에게 감염인들의 삶의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라는 요구이다.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HIV 감염인들이 '이 법이 나를 위한 법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길 바랐다.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제도적 안전망과 커뮤니티의 지지를 통해 당사자들의 삶을 응원할 수 있을 것이라 믿기에.

2025년 10월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개정을 위한 인권/시민사회 간담회. 출처: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앞으로 이어질 싸움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정부는 다시 한 번 과거로의 회귀를 준비 중이다. 질병관리청은 2025년 한국정책학회에 개정안 연구용역을 발주하였고, 지난 11월 자문회의에서는 대략의 내용이 공개되었다. 이 정부 개정안 초안에는 2006년 제시된 정부안에서 실현되지 못한 조항을 대거 포함시키면서 참석자들로 하여금 '개악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최종적인 정부 개정안은 올해 공개되어 국회에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더 나은 싸움을 하기 위해서는 보다 전향적인 정부안이 나올 수 있도록 압박하고 여론을 조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싸움은 감염인과 비감염인의 건강과 안전을 서로 충돌하는 것으로 사고하는 낡은 시선에서 벗어나 더 나은 예방을 현실화하는 싸움이다. 시민들 사이의 의심과 적대가 아니라, 서로의 기여에 대한 주목과 존중을 요청하는 작업이다. 논리와 근거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서로의 감각과 언어를 연결해 공통의 의지로 빚어내는 일이다.

 

2006년, 에이즈예방법의 정부안과 시민사회안이 각각 발의되었다. 그 중 시민사회의 개정안을 받아안아 발의한 정당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민주화 이후 최초의 진보정당이었던 민주노동당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우리는 당사자들과 전문가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전면개정안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다시 국회로 간다. 2006년에 그러했듯, 2026년에도 그곳에 진보정치의 역할이 여전히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좌측부터: 2006년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실의 에이즈예방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 / 2024년 제1회 에이즈포럼. 출처: 뷰스앤뉴스 /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이소중

사단법인 함께서봄 운영위원.

몸, 감염, 섹슈얼리티, 정치의 교차에 관심이 있다.


각주

  1. 문화일보, HIV 속이고 피임도구 없이 성관계 20징역 8개월 https://www.munhwa.com/article/11555304?ref=naver [본문으로]
  2. 김찬,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상 전파매개행위 처벌의 문제」, 공익과 인권, 19:163-200, 2019 [본문으로]
  3. 헌법재판소, 2023년 10월 26일 선고 2029헌가30 전원재판부 결정 [본문으로]
  4. 정경윤, 후천성면역결핍증 일부개정법률안 검토보고 - 김태선의원 대표발의(의안번호 제12514호)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