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운동] 제국에 맞서는 우리의 항해: TMTG 한국지부, 가자로 가는 배를 띄우다
지난 2025년 첫 항해를 마친 국제구호선단 '가자로 가는 천 개의 매들린호(TMTG)'는 올해 봄 다시 가자지구로 출항한다. 이번에는 한국지부의 배도 함께다. 이들은 왜 가자로 가려고 하고, 가더라도 하필 바다를 통해 가려고 하는가? 해당 프로젝트의 한국지부 설립에 참여하고 있는 권나민 활동가의 글을 싣는다.
※ 본 글은 2026년 1월 30일(금) 열린 '팔레스타인 물 문화와 저항기억, 다음 물결' 포럼에서의 필자의 발제문 '항해운동과 국제연대: 세계화의 경첩이 빠그라졌고, 국경으로 자본이 아니라 다른 세계를 믿는 사람들이 흐르게 하라'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왜 가는가"
2026년 2월, 여전히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이동을 가로막고 있다. 작년 10월의 휴전협정 이후로도 가자지구의 봉쇄는 공고하다. 12월에는 하루 평균 140대의 구호 트럭만이 가자에 들어갔다.1 약속했던 600대에 한참 못 미치는 수다. 의도적인 구호물자의 차단은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기아 직전의 상태로 몰아넣고 광범위한 영양실조를 야기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대량 기아 범죄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그들의 땅에 살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가자의 완전한 황폐화를 기획한다. 이스라엘은 라파의 이집트 국경을 열었다고 하지만, 이는 협정에 명시된 바와 달리 가자로 돌아오려는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가자를 떠나는 사람들에게만 개방되었다.
가자 영토의 58%를 장악한 이스라엘은 '옐로 라인(Yellow line, 2025년 10월 휴전 합의에 의해 형성된 가자지구 내의 경계선: 편집자 주)'을 남쪽으로 밀어 점령지를 확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삶은 표시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옐로 라인의 비가시적 확장 속에서 가로막히고 고립된다. 상시적이고 의도적인 폭격과 통제 속에서 삶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인 이동이 훼손되고 통제될 때, 죽음은 현실의 거죽을 쓰고 스스로를 현실이라 지목한다. 이 때 우리는 '왜 가는가' 라는 질문과 다시 씨름하게 된다.

"왜 가는가"라는 질문에는 '가지 않음'의 상태가 정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는 두 가지 인식에 근거한다. 첫째는 경제적 이익을 둘러싼 국가 간의 패권이 당연하다는 인식이다. 힘의 논리에 의해 더 강한 국가가 약한 국가를 통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전쟁은 국과 국가 사이에서 일어나는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이는 전제한다. 두 번째는 '자국도 아닌 타국에서, 내가 아닌 남이, 여기와 무관한 그곳에서 일어난 전쟁에 왜 상관해야 하는가'라는 인식이다. 이상의 두 인식은 모두 동일하게 전쟁을 근거하는 동시에 상충된다. 자국과 타국이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 전자의 인식이라면, 후자는 자국과 타국이 무관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반된 세계인식이 공존하고 있는 여기에서, 위기에 봉착한 '세계화'의 현재가 드러난다.
세계화. 지난 30여년 간 모두가 방 안에 앉아서도 의심 없이 수긍할 수 있었던 이 감각은 그러나 이제 더는 '전지구적 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점점 더 깊어져 가는 세계의 벌어진 틈들을 봉합할 수 없다. 미국은 세계화가 국가들 간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가 아니라 오직 미국의 성장을 위해 다른 국가들의 빈곤화를 요구하는 개념이었음을 이미 인정하고 있다. 2026년 1월부터 이어진 베네수엘라 불법 침공, 그린란드에 대한 식민지배 욕망, 이란에 대한 폭격 협박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이 모든 행보가 자신의 패권을 강화하고 제국주의 식민지배를 정상적인 세계의 질서로 삼으려는 의지의 일환임을 피력했다.
미국이 소위 '가자 재건을 위한 평화위원회'를 소집하여 제국(諸國)들을 불러모을 때, 이것이 이윤 창출의 방법으로서 점령을 상례화하고 세계를 착취의 구조로 빚어내기 위한 신식민적 야망임은 명백히 드러난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가자 계획 2단계가 '휴전에서 비군사화, 기술관료적 통치, 그리고 재건으로의 전환'을 말할 때, 이 때의 재건이란 착취를 가능케 하는 체제의 강화와 다름없다. 15명의 팔레스타인인으로 구성된 NCAG(가자 행정 국가위원회)는 '재건'이 어떻게 체제 유지에 복무하는 유용한 장치로서 다뤄지는지를 정확하게 보여 준다. 위원회의 임무는 '가자 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이는 가자의 봉쇄와 집단학살의 구조를 새로운 행정적 장치 속으로 옮기겠다는 말이며, 지금의 체제를 조금도 멈추거나 돌이키지 않겠다는 자본과 제국의 언어다.

하지만 이러한 선언은 궁색하고, 동시에 과거와 같은 힘을 갖지 못한다. 오늘날의 세계가 제 1세계의 안위를 위한 모든 종류의 착취가 정당화되는 세계라는 사실이 이미 탄로났기 때문이다. 하나의 평면 위에 국가들이 나란히 자리하는 세계지도의 감각도, 하나의 강력한 국가가 세계의 진보를 이끈다는 제국의 감각도 더는 은폐를 유지할 힘이 없다. 미국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지배란 언제나 피지배자들에 대한 기생이자 의존에 불과함을 이제 세계는 안다.
민중의 삶은 억압을 규범으로 삼길 거부한다. 남반구의 자원과 노동, 생명과 삶이 북반구를 떠받치고 있는 상황에서, 자국과 타국이 무관하다는 믿음은 유해하다. 착취에 기반하여 유지되는 세계의 형상이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자국과 타국의 불평등한 상관성을 당연시하는 믿음 역시 허약하다. 세계 질서라는 것이 안팎으로 분리되고 있는 오늘날의 시간에서 "왜 가냐"고 묻는 질문을 지탱하는 자국과 타국의 관계는 완전히 다르게 형성되어야 한다. 새로운 관계 형성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위기에 놓인 첫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까지와 완전히 다른 세계가 어떻게 가능한지 상상하고 부딪쳐 온 사람들과 운동들이 이미 존재한다. 우리의 임무란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고, "왜 가냐"는 물음을 등에 업고 다른 세계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왜 바다인가"
2008년 8월 23일, 17개국 출신의 시민 44명이 작은 어선 두 척, 자유 가자(Free Gaza) 호와 리버티(Liberty) 호를 타고 키프로스에서 가자지구로 향했다. 두 배는 30시간이 넘는 항해 끝에 이스라엘 해군 함정의 추적을 뚫고 마침내 가자지구에 무사히 도착했다. 1967년의 제3차 중동전쟁 이후 41년 만에 처음으로 가자 항구에 국제 선박이 입항한 순간이었다.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해안가에 나와 배에 탄 사람들을 맞이했다. 이들은 가자 지구에 6일 동안 머물면서 병원과 학교를 방문하고, 세계의 연대자들로부터 기증받은 보청기와 의약품을 전달했다.
체류 기간 동안 자유 가자 호는 팔레스타인 어부들의 조업에 함께했다. 이 동행으로 인해 어부들은 수 년만에 처음으로 이스라엘 군대의 공격 없이 자신들의 영해에서 조업할 수 있었다. 8월 29일, 배들은 7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태우고 키프로스로 돌아갔다. 수 년간 만나지 못했던 가족이 재회했고, 이스라엘 군대의 공격으로 입은 중상을 치료받을 수 있었다. 두 배의 탑승자들 중 10명의 승객은 가자에 남았고, 그 중 6명은 인권활동을 펼치며 2003년 이후 국제연대운동(ISM)의 첫 국제적 거점을 마련했다.

항해는 이후로도 이어졌다. 같은 해 10월 28일, 두 번째 항해에서는 존엄(Dignity) 호가 12개국 출신 24명의 사람들을 태우고 출항했다. 11월 10일, 존엄 호는 가자지구를 떠나며 가자 노동조합연맹 사무총장을 포함한 팔레스타인인 8명과 함께했다. 해외 대학에 합격했으나 팔레스타인을 떠날 수 없었던 학생들이 가로막힌 학문의 자유를 위해 배에 탑승했고, 다른 나라의 노동조합에게 봉쇄 해제를 위한 투쟁에 함께할 것을 요청하고자 팔레스타인 노동운동가들이 배에 탑승했다. 자유 가자 운동(Free Gaza Movement)은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봉쇄가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세계 만방에 보여주었다. 세계 그 어떤 정부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비무장 직접행동이 봉쇄의 불가능성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국제법을 어겨 가며 공해상에서 배들을 불법 나포하고, 탑승한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억류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악착같은 그 모든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신하는 승리는 틀렸다. 세계는 대규모 수탈과 집단학살로 연명할 수 없다. 숱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봉쇄된 팔레스타인에 직접 닿고자 하는 비폭력 직접행동은 2008년 이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더 많은 국가, 더 여러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은 사그라들지 않고 커지고 있다. 죽음에 공모하지도, 절멸로 치닫지도 않겠다는 의지, 생명의 형상으로 현실을 돌리려는 강한 의지가 "왜 바다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한다.
바다, 그것은 삶이 이동하고 연결하며 관계 속에서 형성됨을 지시하는 한편, 그 연결이 형성되어 온 방식과 구조의 자명성을 질문한다. 우리가 딛고 있는 것이 바다를 공유하는 복수의 육지임을 기억할 때, 육지와 바다의 연결을 이해하는 일은 땅 위의 삶이 바다를 오가는 국제적인 유통, 이주, 이동과 관련되어 있음을 인지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삶이 단절이 아니라 연결을 기반으로 한다는 생태적이고 관계적인 감각과 함께한다. 따라서 바다를 지각하는 일은 세계가 어떻게 착취적 구조의 집합으로 형성되어 있는지 직면하는 것으로, 자본의 순환만이 삶의 경로가 아님을 나타내는 다른 연결들과 함께한다. 이는 우리 자신의 위치감을 지정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놓아 둠으로써 불가능한 만남들을 이어내는 탈식민적인 실천, 제3세계 투쟁의 궤적, 국경을 다시 쓰는 국제연대의 과정에 합류한다. 이를 넓혀가기 위해, 지구 행성의 70%를 구성하는 바다에 대한 다른 이야기는 중요하다.

2024년 9월, 브라질의 리냐리스(Linhares) 시는 바다를 '존재하고 재생하며 복원될 본질적인 권리를 가진 살아 있는 존재'로 인정했다.2 이 권리는 리냐리스 근해에 연결되는 돌체 강 어귀의 파도가 속해 있는 상호적인 관계망으로 확장되며, 수역과 더불어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들에게도 적용된다. 이 사례는 바다가 결코 특정 국가의 영토에 국한될 수 없으며, 특정 주체가 소유할 수 있는 재산이 아님을 보여 준다. 존재로서 바다를 불러내는 이러한 실천은 영토로서의 바다가 아니라 생명으로서의 바다를 숙고함으로써 국경에 대한 다른 상상, 즉 반제국주의적 실천의 경로를 그려낸다.
앞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설정한 '옐로 라인'의 비가시성과 모호성이 팔레스타인 민중의 삶을 취약하게 만드는 방식을 살펴본 바 있다. 세계화는 '동질적인 전 지구'라는 허위의식 속에 '국경이 무의미한 하나의 세계'를 해답으로 제시한다. 강요된 동질성 속에서 대규모 착취의 구조는 은폐되며, 자유를 찾는 것은 노동자나 민중이 아니라 그들을 관리하는 자본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바다를 단지 초국적 장소 정도로 정의하여 신식민주의를 세계의 질서로 삼으려는 자본의 이동을 정상화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우리는 바다가 생명을 가진 존재라고 말해야 한다. 이 때 바다는 국가적 소속과 일치하지 않는 정치적 권리를 가진 존재이자, 국경에 기반한 권리에 한정될 수 없는 생명들의 집합이다. 그 자체로 이동하며 순환하는 바다는, 국경을 장악하려는 힘의 명증성에 사로잡히지 않는 존재들이며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는 존재들이다.
바다. 바다는, 봉쇄된 땅에서 투쟁하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옆에, 그리고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에 함께하는 사람들의 동지로서 함께한다. 바다는 트럼프의 평화위원회가 의존하는 식민주의 구조 - 국경을 공고히 만드는 동시에 국경을 은폐하는 - 에 침범하여 경계를 통제하는 자들이 주장하는 정상화와 질서의 감각을 세차게 허물어트린다. 바다는 생명으로서의 물 그 자체다. 바다의 질문을 그대로 옮긴다면 이러할 것이다.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여기에 대해 대답해 보라고. 여기가 바다를 공유하는 복수의 땅의 일부일 때, 이 세계가 자본이 아니라 바다로 이루어져 있을 때, 세계는 무엇이 될 것이냐고.
군사화된 폭력에 장악된 이동이 잠식할 수 없는 다른 관계들이 바다를 따라 형성된다. 봉쇄된 국경이 바다를 따라 불가능한 만남들을 연결한다. 바다의 질문을 넘겨 받으며, 우리는 이미 다른 연결의 경로를 만들어 온 사람들을 대답으로 부른다. 대규모 수탈을 위한 유통망을 아래에서부터 다시 구축하려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과 함께한다는 것은 좋은 예시다. 국경을 넘어선 노동자들이 거리에 모여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치며 행진한다. 지배의 체계를 쪼개내는 관계들, 각자의 지역에서 모여 관계성을 다시 정의하는 사회운동과 연대들, 터져 나오고 흘러넘치는 만남들이 곧 여기의 현재를 뒤바꾼다.
자본이 아니라 다른 세계를 믿는 사람들이 흐르게 하라

2025년 6월 긴급구호물자를 싣고 가자로 가던 매들린 호의 나포 이후 결성된 가자로 가는 천 개의 매들린(TMTG, Thousand Madleens To Gaza)는 봉쇄가 결코 막아낼 수 없는 연결의 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배 한 척을 막을 수는 있을지언정, 대규모의 국제적 선단을 막을 수는 없다'는 신념을 갖고, TMTG는 2026년 봄에 시작될 두 번째 물결을 준비하고 있다. 가자지구 봉쇄를 뚫기 위해 지난 1차 물결보다 훨씬 더 많은 100척의 배를 모아 출항하는 것이 계획이다. 이 각각의 배들은 100개 이상의 국가 및 그 내부의 여러 지역들에서 온 작은 배들이다. TMTG 운동의 핵심 가치인 풀뿌리 민주주의는 대표성을 가진 소수가 결정권을 갖고 다수를 통제하는 제국주의적인 체제를 뒤흔들며 수직적 억압에 맞선다. 이는 민중으로부터, 아래로부터 터져나오는 힘과 함께 자본이 유통하는 세계 질서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선언이다.
한편 이 물결은 결코 지중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중해와 연결되어 있는 태평양 역시 집단학살 체제를 유지하는 군사화된 정치·경제 구조에 노출되어 있다. 오키나와와 제주를 비롯한 아시아의 섬들에 미군 기지를 건설하여 생활공간과 사회기반시설의 군사화를 초래하고 바다를 군사화된 권력으로 점령하려는 시도들이 대표적이다. 빈번한 해상 군사훈련과 해양 국경 감시 기술에 쏟아붓는 수천 억의 예산은 바다를 무덤으로 만들고자 하지만, 힘차게 부서지는 이 모든 파도들은 결코 자본의 뜻에 따라 관리되지 않는다. 식민주의와 전쟁이라는 공동의 기억에 기반하여 탈식민주의적 연대를 모색하는 실천들, 국경을 장악한 폭력에 저항하는 노동하는 몸들, 미국의 군사기지에 맞서는 투쟁들이 바로 바다를 매개로 동아시아의 사회운동이 맺어 온 관계들이다.

이번 2차 물결에 함께하는 TMTG 한국지부의 출범은 우리 모두가 공동의 바다에 속해 있음을 이해하는 동아시아 국제연대 운동의 시간에 기반한다. 지난 9월, 대만 지룽에서 열린 '평화의 바다를 위한 섬들의 연대'에 함께 모인 오키나와, 대만, 한국, 홍콩, 미국 등 각국의 사람들은 전쟁과 군사화에 맞서는 공동성명문을 작성했다. 군사화가 섬의 정치적, 경제적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억압하지 않도록, 그리고 바다는 전쟁터가 아니라 생명 공동체를 연결하는 것임을 밝히면서. 동아시아의 시민사회로서 우리는 전쟁과 권위주의, 착취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며 내년 이맘때에도 다시 모여 평화의 바다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을 약속했다. 선언문을 함께 읽은 후, 모두가 모여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한 구호를 외치던 것을 기억한다. 서로의 눈을 보며 이 연결들이 우리의 힘이라는 것을 생생히 느꼈다. 사람들의 몸 위로 떨어지던 지룽 항구의 빛처럼 분명했다.
그럼에도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소용'이 무엇을 뜻하는지부터 다시 말해 보자. TMTG 항해운동을 지지하기 위한 방법을 누군가 물었을 때, 배에 타는 것만이 항해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는 답을 한 바 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몸과 몸이 규범화된 방식이 아니라 불가능해 보였던 방식으로 만나기 시작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모르던 우정이 솟구치는 일이다. 사람들이 관계하고 연루되는 방식이 곧 이 세계를 바꿔내는 것이고, 곧 우리의 소용이다. 그러니 더 많이 만나고, 함께 길을 걷자. 그것은 어느새 행진이 되고, 큰 목소리로 우리가 해방을 외치며 걸을 때 거기서부터 일어난 바람은 배를 미는 바람이 된다. 그렇게 배가 봉쇄를 뚫을 것이고, 우리는 빈곤화도 죽음도 아닌 삶을 현실로 삼을 테다.

우리는 국가가 아닌 민중의 이름 아래 항해한다
우리의 배에 달 깃발을 보내주세요!
※ 신청 방법
1. TMTG 한국지부에 10만원 이상 후원한다
2. 원하는 깃발 이미지를 보낸다 (보내는 곳: thousand.madleens.korea@proton.me)
3. 한국지부는 깃발과 함께 항해한다
※ 후원계좌: 하나 320-910239-17107 ㄱㅇㅎ
※ 마감: 3월 20일

나민
아시아 영화 운동사에 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자본에 구획되지 않는 삶을 믿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TMTG 한국지부에서 가자로 가는 배를 띄우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각주
- The Guardian, More than 9,000 children in Gaza treated for acute malnutrition in October, UN says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5/dec/09/children-gaza-hospitalised-acute-malnutrition-un-says [본문으로]
- Yale Environment 360, In a First, Brazilian City Grants Legal Rights to Waves https://e360.yale.edu/digest/brazil-coast-dolce-river-legal-personhood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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