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비상경영'과 구조조정에 맞선 이랜드노동조합의 175일 투쟁과 남은 과제들
지난 5월부터 계속되어 온 이랜드노동조합의 투쟁이 얼마 전 175일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비상경영'을 핑계로 한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경영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킨 이랜드에 맞선 투쟁의 후기와 남은 과제들을, 투쟁에 함께해 온 연대자이자 조합원이 직접 이야기한다.
이랜드노동조합과 나


이랜드노동조합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문예창작과 입시 실기를 하면서 영화나 소설을 바쁘게 감상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카트>라는 영화의 포스터를 보았다. 처음에는 포스터의 '오늘 나는 해고되었다'라는 문구를 보고 흥미를 가졌지만, 이 영화는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르게 나에게 홈에버와 이랜드일반노동조합의 존재를 알려 주었다. 이후로는 <카트>라는 영화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아니라 홈에버 510 파업과 이랜드노조가 궁금해졌다. 510일 투쟁에 대한 르포트타주를 읽어 보거나 종종 뉴스기사를 찾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현실의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내가 당사자도, 활동가도, 관련 업계 종사자도 아닌데 집회에 참석해도 되는 것일까 싶어 먼 발치에서 그저 소소한 관심을 가지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 작년 12월 3일, 난데없는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졌다. 광장에 합류한 나는 한남동에서 철야 투쟁을 하며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의 집회들에까지 연이 닿게 되었다. 여러 인연을 쌓고 투쟁에 함께했지만 여전히 수많은 투쟁들 가운데서도 홈에버 투쟁이 마음에 남았던 이유는, 나 역시 졸업을 하고 나면 서비스나 예술 업종의 비정규직 혹은 특수고용노동자가 될 확률이 크기 때문이었다. 궁극적으로는 업계의 고용불안정을 나의 현재 혹은 미래의 노동조건에 대한 것으로 구체화하게 되면서 마음속에 크게 자리를 잡게 된 듯 하다. 이랜드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도 아주 우연한 계기 때문이었다. 당시 세종호텔 고공농성장 아래에서 이랜드노동조합 간부 동지와 우연히 만나게 되고 안면을 트면서부터 노조와 본격적으로 연을 쌓게 되었다.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겪은 정말 신기한 우연들이 겹쳐 이 노동조합과 만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비상계엄'이 떠오르는 '비상경영'
탄핵이 이뤄지고 모두가 새 정권을 향한 기대에 부풀어 있던 지난 4월 말의 어느 날. 이랜드리테일은 마치 '비상경영'과 구조조정을 예고하며 2024년 단체협약 성공에 기뻐하던 노동자들을 향해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측은 이 예상치 못한 비상경영과 관련하여 '이랜드리테일에 현금성 자산이 부족하여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치'라고 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이랜드리테일이 타 계열사에 대한 투자금을 반환받지 못한 것이 비상경영과 자금부족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되는 이 상황에서, 사측은 스스로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시키는 쉬운 방식을 택한 것이다. 4월 말쯤, 5월에는 본격적으로 투쟁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그 때부터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를 늘상 외쳐 온 나로서는 노동자들에게 해고의 칼날을 겨누는 '비상경영'을 보며 국민에게 총칼을 겨눈 '비상계엄'이 오버랩되었다.

본격적인 비상경영체제가 시작되고 나서 이랜드는 비정규직을 대량으로 해고하고, 남아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원거리에 발령보내며 해 본 적도 없던 일들을 하게 만들었다. 마치 과거의 홈에버 투쟁이, 그리고 현재의 홈플러스 투쟁이 떠오르는 서막이었다. 이랜드리테일은 비상경영을 시행하며 주차, 보안, 물류 등 부문에서 용역 도급사를 구조조정 및 계약해지했고 5월 1일부터는 주차, 보안 업무를 현 정규직에 전가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은 교육 부족 및 안전상의 문제에 대해 이의제기를 했지만 매뉴얼조차 완성되지 않았다. 사측은 그럼에도 비정규직 구조조정, 도급사 계약 해지를 단행하기 시작했다. 지속하여 현 정규직들의 지원업무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비상경영'은 이랜드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에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조치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던 5월 15일 천안 물류 발령 면담대상자가 공지되었다. 사측은 대상자를 KTX·SRT 역과 주거지역이 가까운 직원들로 선별했다고 말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69년생~75년생까지의 직원들을 위주로 선발하여 희망퇴직과 희망휴직을 유도하였고, 이에 응하지 않을 시 그대로 발령 조치를 내렸다. 지점장 면담 가이드에서는 '물류 배치 대상자들의 선택지는 희망퇴직 또는 희망휴직도 있음'이라는 문구가 발견되기도 했다. 편도로만 2시간 이상이 되는 거리에 부당발령을 한 사측은 'KTX 정기권이 월 22만원이니 교통비로 30만원을 지원하겠다'는 소리를 했다. 부당발령 대상자들은 조합원 4명을 포함한 18명으로, 대상자들 중에서는 부모 부양, 보육 등 고충이 있는 직원들이 다수였다. 그럼에도 사측은 발령을 강행했다. 면담 대상자 선정 기준도 없었고, 면담 대상자 중 발령이 취소된 인원에 대해서도 역시 기준은 모호했다.
이랜드는 자회사의 법인 합치기, 쪼개기 등을 이어 오며 이른바 사모펀드와 비슷한 구조로 자회사들을 운영해 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랜드리테일과 킴스클럽의 법인 통합 소식이 들려왔다. 구조조정을 위한 초석이었다. 경영구조가 바뀌었으니 내부 직원들도 정리를 하겠다는 속 보이는 전략이었다. 회사는 이러한 조치를 이어 오며 노조와의 대화를 한 달여 간 피하다가 노조가 기자회견 날을 잡자 바로 그 날 협의회를 열겠다고 나왔다. 기자회견을 무산시키려는 수였다.

5월 28일 기자회견으로 투쟁 일수 카운트가 시작되고, 이후 한 달 가량 노조는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고용노동청은 이랜드리테일에 특별근로감독 즉각 실시하라'는 구호를 앞세운 선전전을 진행했다. 이 무렵이었다. 본격적으로 투쟁이 시작되자 여태 드러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업 운영 과정에서의 불공정거래행위는 물론, 직원들에 대한 부당한 인력 관리 의혹까지 불거졌다.
협력업체에 대한 불공정거래행위는 가매출 강요 및 일방적 계약 해지로 나눌 수 있다. 이랜드리테일은 협력업체들에게 실제 판매되지 않은 상품에 대한 가매출을 강요했다. 이는 이랜드리테일이 자신의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협력업체에게 재고 부담과 허위매출에 따른 재정 압박이라는 막대한 손해를 전가하는 행위로, 시장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불공정거래에 해당한다. 가매출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구입과 이익 제공 및 판매목표를 강제하며 협력업체의 부담을 과중시키는 식이다. 또한 계약 기간이 만료되지 않은 도급사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거나, 거래상 지위를 남용하며 거래에 불이익을 제공하여 거래조건을 설정하거나 변경하고, 그 과정에서 거래 상대에게 피해를 주었다. 비정규직 직원에 대한 해고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광범위하게 단행되었다. 직원들을 좀 잘라 보겠다고 칼춤을 추며 해고되지 않은 직원들에게는 업무전가를, 해고된 직원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아픔을 남겼다.
이 무렵 새 정부의 수장인 이재명 대통령이 착용한 'OST' 브랜드의 시계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시계를 만든 이월드는 이랜드리테일과는 다른 법인이지만, 이월드의 모회사인 이랜드는 또 호재를 맞았다. 이랜드노동조합은 회사가 호재이거나 매출이 성장할 때도 직원들에게 보상은 없고, 어려울 때의 고통 분담은 노동자들과 협력업체들에게 전가하는 회사가 바로 이랜드라는 사실을 시민들에게 알려야만 했다.

고용노동청의 무관심 속 지난한 투쟁
함께 농성장을 쓰던 금속노조 주얼리분회의 농성이 주얼리 업계 특별근로감독의 실시로 마무리되자, 이랜드노조의 투쟁은 상주농성에서 노숙농성으로 형태를 전환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둘 있는 노동청의 상황실장은 주얼리가 빠져나가는 상황에도 이랜드가 빠져나가지 않자 조합원과 간부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날이면 날마다 한 명은 "농성을 언제 접냐"고 물어봤고, 다른 하나는 "농성을 접을 수는 없냐" 말했다. 부당발령 효력정지 가처분의 결과는 3달째 나오지 않았다. 노동청은 특별근로감독의 결과를 보고 처분을 정하겠다 했고, 회사는 부당발령이 아니라고 지속적으로 우겨 댔다. 더운 한여름의 날씨 속 노동조합 내에서도, 서비스연맹 본조에서도 농성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안 그래도 어려운 이 상황 속 사무국장이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지독한 여름이었다.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사람들은 길바닥에서 하루하루 더위에, 그리고 세상의 무심함에 말라갔다.
지지부진한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가을의 초입이 되었다. 추석을 앞둔 어느 날 또 한 번의 대량해고 사태가 발생했다. 이랜드리테일은 인력 감축과 비용 절감을 이유로 영업관리 대행사인 링크앤플랫폼을 설립해 정규직이었던 노동자들을 위장도급사로 내몰았고, 2025년 9월 계약을 해지하며 22명의 노동자들을 한 번에 해고했다. 10년간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다고 약속하며 도급사로 보내더니 1년의 도급계약이 끝나자 집단해고를 자행한 것이다. 노조는 국민청원을 조직하였으나 추석연휴와 겹쳐 2000명 가량이 청원에 동참하는 선에서 그쳤다. 그러나 사안의 심각성에 따라 노조는 추석이 끝난 이후 2차 기자회견을 조직했다. 노숙농성이 119일째 진행되던 날이었다.

이 당시에는 심지어 '꼼수 비상경영'으로 강도 높은 노동과 연장근무에 시달리던 노동자가 비타민 D 결핍이라는 희귀질환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는 일까지 발생했다. 회사는 산재를 은폐하려 했고, 비공식적인 병문안을 가면서도 산재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았다. 이 일과 관련해 해당 노동자를 진찰한 의사가 한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 분은 어디 동굴에서 일하셨어요?"라는 말이었다. 부당발령된 노동자들에 대해 지방노동위원회가 연달아 부당 전보를 인정하고 있음에도, 국회 국정감사에서 위장도급 문제를 지적받았음에도, 새벽 시간에도 업무지시를 내리며 혹사시켰던 노동자가 사경을 헤매고 있음에도 이랜드리테일은 책임있는 입장은커녕 노동조합의 활동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특히 부당발령 건으로 지방노동위에서 승리한 노동자의 사례가 3건이나 되었지만 회사는 중앙노동위로 사안을 끌고 가며 해결을 거부했다.
고용노동청의 무심함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특별근로감독은 여전히 실시되지 않았고, 부당발령 효력정지 가처분은 5달째 나오지 않고 있었다. 자본의 이익 앞에서 짓밟힌 노동자의 생명과 인권은 단순한 '노사분규'로 취급당했다. 우리는 17년 전 비정규직이 대량해고당했을 때처럼 고용불안에 시달리지 않는 일터를 위해 싸워야만 했다. 당시 농성장에서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의 아르바이트생 과로사 사건에 대한 뉴스였다. 노동자가 주 80시간을 일하다 쓰러져서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며 자본 앞에서 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짓밟히는지, 정의는 얼마나 손쉽게 임종을 맞이하게 되는지 느꼈다. 나에게 이랜드노조의 투쟁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노동 현실을 재인식하는 계기였다.
농성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동안 가장 화가 났던 것은 마치 우리를 내려다보는 듯한 고용노동청이었다. 불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이랜드리테일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고용노동부가 할 일이지만, 고용노동부는 사실상 기업을 비호하고 있었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첫 고용노동부 장관이 자리에 앉은 후로도 그는 본인에게 주어진 충분한 권한을 사용하지 않았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단순 '노사분규'로 규정하고 '열심히 하고 있다'는 말만을 되풀이하며 희망을 품었던 노동자들을 다시 한 번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을 한 것은 '촛불 정권'을 내세우며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이었다. 고용노동청이 이랜드리테일에 대한 관리감독을 제대로 했다면 과연 부당도급업체를 만들었다가 그 쓸모가 끝나자 한 번에 22명을 해고하는 이 대담한 범죄를 단행할 수 있었을까? 이 '비상경영'이 진작에 잘못된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면 직원이 과로로 쓰러졌을까?
175일, 승리 뒤에 여전히 남은 과제들

지난 11월 24일, 175일의 투쟁 끝에 이랜드노동조합은 회사와의 교섭을 끝내고 농성을 정리하게 되었다. 잠정합의의 내용에는 후퇴된 근로조건의 원상회복, 비정규직 도급사 노동자들의 복귀, 임금 인상과 그간 미지급된 복지 포인트의 지급 등이 포함되어 있다. 수많은 이들의 연대가 모여 어렵게 만들어낸 한 발자국이었다. 11월 24일 저녁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노조의 투쟁승리 보고대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했고 깃발들은 힘차게 휘날렸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된 문제보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더 많다. 비정규직 해고를 멈추겠다고 했지만 정작 부당발령 가처분은 반 년째 나오지 않고 있으며, 노동자들이 승소했지만 회사가 중앙노동위로 끌고 간 건들도 아직 남아 있다. 링크앤플랫폼의 노동자들도 아직 복직하지 못하고 근로감독과 법정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이랜드가 바뀔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17년 전부터 심심치 않게 보였던 수많은 사태들을 보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자본의 속성은 바뀌지 않고, 이랜드노조의 투쟁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용노동청은 바뀌어야만 한다.
우리는 어째서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지 50년이 넘어가는 2025년에도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쳐야 하는 것일까. 법을 어겨 죽은 노동자는 있어도 법을 어겨 망해 버린 기업은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까? 언제까지 제대로 일하지 않는 노동부를 용인해야 할까?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잘리고, 노동환경이 퇴보하고, 얼마나 많은 선의의 피해자가 생겨야 할까.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구호가, 약속을 지키라는 구호가, 해고는 살인이라는 구호가, 현장으로 돌아가자는 구호가 여전히 외쳐지는 것은 단지 회사만의 책임이 아니다. 기업과 자본의 본질적 속성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들의 폭주에 명확한 제동을 거는 것은 정치와 사회의 역할이다.
지난 175일 간의 이랜드노조 농성투쟁은 내게 승리의 기쁨만이 아니라 남은 과제들에 대한 고민과 의지를 안겨 주었다. 자본의 전횡에 맞서는 수많은 노동조합들의 투쟁은 계속되어야만 하고, 그뿐 아니라 '노동부'의 본래 역할대로 회사와 노동자 사이에서 노동자를 위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고용노동부와 고용노동청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가격경쟁을 위한 비용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이고, 존중받아 마땅한 회사의 구성원이고, 노동의 주체이다. 반 년 동안 나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고 더 이상 그 누구도 잃고 싶지 않다. 이랜드뿐 아니라 모든 곳의 노동자가 과로로 쓰러지거나, 산재를 당하거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이랜드노동조합이 앞으로도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최전선에서 투쟁할 것임을 믿는다.
채윤(플룻)
비정규직 노동자이자 이랜드노조 조합원.
문예창작과에 다니며 창작 소일거리를 종종 하기도 하고, 지금은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다.
시간의 선의를 믿는다. 조금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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