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약속된 권리를 지키는 싸움 - GM부품물류 집단해고 사태가 던지는 질문
유난히 추운 겨울, 일터와 일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거리에 선 노동자들이 있다. 부당한 집단해고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한국GM 세종 부품물류센터의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투쟁은 단순히 한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약속된 권리를 지키는 싸움이자 지역사회에서 함께 일하며 살아간다는 화두를 던지는 투쟁이다. GM부품물류공대위 언론홍보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진영 노동당 충북도당 위원장의 기고를 게재한다.
한겨울 아스팔트 위에 선 GM부품물류지회 노동자들

입김이 펄펄 나는 겨울이다. 다른 해보다 유난히 더 춥게 느껴지는 겨울, 그럼에도 거리 위에 선 노동자들이 있다. 2025년 12월 31일자로 해고통지서를 받은 한국GM 세종 부품물류센터의 노동자들 이야기다. 해고를 앞둔 어느 날 "우리는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김용태 지회장의 말에서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그대로 보여졌다. 그들은 자신의 일터와 삶에서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이 투쟁에 나섰다. 나의 일터에서 차별받지 않고 일할 권리.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고용의 연속성을 보장받을 권리, 비정규직노동자도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권리였다. 이 투쟁의 출발점에는 '더는 빼앗기지 않겠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한국GM(구 대우자동차, GM대우)이 인천, 창원, 제주에 물류센터를 운영하다가 '물류 통합정책'을 핑계 삼아 모든 물류센터를 폐쇄하고 세종으로 통합하면서, 세종은 한국GM의 유일한 중앙물류센터가 되었다. 타 지역의 물류센터 폐쇄와 통합 과정에서도 노조와의 합의안을 묵살하고 강제해고를 자행해 온 것은 물론이다. 2019년 인천(부평) 물류센터의 폐쇄 과정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13명 중 12명이 해고되었고1, 2021년 창원 물류센터가 폐쇄되면서는 25명이 또 다시 일자리를 잃었다.2
이런 과정을 거쳐 강제로 유일한 물류센터가 된 세종의 상황 역시도 결코 좋지 않았다. 모든 물류가 통합된 것에 비해 인력충원은 고작 17명(정규직 8명, 비정규직 9명)밖에 되지 않았다. 통합 과정에서 늘어난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강제적인 잔업과 특근을 해야만 했고, 연·월차 휴가 역시 제한되었다. 몇 년을 일하건 근속은 인정되지 않았고, 기본급은 158만 원에 불과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한 환경이었다.

세종 부품물류센터 노동자들은 말도 안 되는 물량 속에 더 이상의 차별과 핍박을 참을 수 없었기에 2025년 7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이들은 '기본이 지켜지는 일터'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노조 결성 이후 돌아온 것은 원청 한국GM의 폭압적 대응이었다. 하청업체 폐업과 그를 명목으로 한 집단해고를 가한 것이다. 노동자들이 지키려 했던 권리는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한 순간에 무너졌다. 노조 설립 이후 조합원들은 하청업체인 우진물류와 기본협약 체결을 위해 십여 차례의 교섭을 가졌는데, 우진물류 측은 임금과 조합활동에 대해 "한국GM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만을 되풀이하며 교섭 진행을 불가능하게 했다.
노조가 쟁의권을 확보해 권리를 행사하려 하자 한국GM은 부품물류센터 노동자들을 찾아와 "매년 수의계약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올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기만적 회유를 일삼았고, 파업을 앞둔 노동자들에게는 "진짜 사장 나오라고 해서 한국GM이 나왔다"며 "파업하면 초 치는 것"이라는 말로 파업을 저지하려 했다. '발탁채용으로 정규직 전환을 시켜준다'는 회유책에 노동자들이 흔들리지 않자, 한국GM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진물류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우진물류는 11월 28일 도급계약 종료를 사유로 업체 폐업을 선언했고, 120명 전원에게는 해고통지서가 전달됐다.

노조법 2조 개정, 시행도 전에 박탈당한 '약속의 권리'
한국GM 세종 부품물류센터는 23년 전인 2003년부터 1차 도급사인 우진물류가 20년 넘게 한국GM(당시 GM대우)으로부터 물류 업무를 도급받아 운영해 온 곳이다. 우진물류 소속의 노동자들은 업체변경이 되더라도 고용승계를 당연한 것으로 지켜 왔다. 이는 약속된 권리이자 노동자들의 삶을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였다. 한국GM은 단지 노동자들이 과도한 중노동으로 훼손되는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고자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이 살아갈 조건 자체를 박탈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해 개정된 노조법 제2조(3조와 함께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린다)는 올해 3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노동조합을 할 권리가 있음을 선언했다. 법은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약속했지만, 현실에서 그 권리는 시행도 되기 전에 정부와 자본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노동부가 발표한 시행령과 행정해석은 원청의 책임을 흐렸고, 자본은 그 틈을 이용해 "직접 해고하지 않았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했다. 한국GM의 하청업체 계약해지 역시 이렇게 법망을 피하며 시행한 노조 탄압이었다.
GM부품물류지회 노동자들이 집단해고를 막기 위해 고용노동부 대전노동청장을 찾아갔을 때, 청장은 "계약해지는 사적 계약이기 때문에 개입하기 어렵다"며 원청이 하청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사안에 대해 실질적 조치를 유보했다. 한국GM의 하청노동자 집단해고는 개정된 노조법 시행을 앞두고 노조할 권리를 정부와 자본이 무참히 짓밟은 첫 사례가 되었다.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권리를 말할 수조차 없게 만든 것이다. 부품물류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 투쟁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지난 20년간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끝없는 투쟁으로 받아낸 '약속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부품물류 노동자들의 질문, 사회의 질문이 되어야 한다
11월 28일 우진물류 폐업으로 시작된 집단해고 사태가 해가 바뀌고 벌써 두 달을 넘겼지만, 100여 명의 해고노동자들은 단 한 명의 이탈도 없이 여전히 한국GM 세종 부품물류센터에서 점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자들은 물류센터를 사수하며 원청 한국GM과 2026년 1월 졸속으로 도급계약을 맺은 새 하청업체 정수유통의 불법적인 물량 반출을 막아내고 있다. 자신들의 일터를 지키기 위한 당연한 싸움이다.
'지역적 경계'와 '노조법 개정과 시행의 경계' 사이에 놓여 있는 이 투쟁이 단지 한 사업장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일이고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지난 12월 초 노동·시민사회단체들과 진보정당들이 함께 참여하는 GM부품물류 투쟁승리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고립될까 무섭다"라는 노동자들의 말을 받아안아 그들의 투쟁이 고립되지 않도록 투쟁을 엄호하고 함께하며, 노동자들이 던진 '함께 지역에서 살아갈 권리'라는 화두를 더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구성된 대책위였다.
노조법은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약속했지만, 그 권리는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이 현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권리는 법 조항에 머무를 수 없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실현되지 않는 권리는 언제든 다시 짓밟힐 수 있다. 공동대책위원회에 함께하고 있는 진보정당들의 과제는 분명하다. 약속된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드러내고, 그 곁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는 것. 현장에서 정치적 언어를 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신들이 살아온 일터에서, 자신들이 해온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권리.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지키기 위한 이 투쟁은 일터에서의 권리이자 삶의 권리의 문제다. GM부품물류노동자들이 던지는 이 질문을 사회의 질문으로 만들 때 비로소 투쟁은 이어질 수 있고, 일터의 민주주의 역시 현실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유진영
노동당 충북도당 위원장.
GM부품물류 투쟁승리공대위 언론홍보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각주
- 노컷뉴스, "약속 뒤집은 한국GM"…창원물류센터 폐쇄에 해고 우려 https://www.nocutnews.co.kr/news/5525932 [본문으로]
- MBC 경남, [약자의 눈물] 돌아갈 곳 없어도? "끝까지 갑니다" https://mbcgn.kr/article/gm-dANvFA7I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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