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라지지 않는 사회적 참사, 기둥을 깎아 만든 '해피엔딩'
공사비 절감과 영업이익을 위해 '기둥을 깎아' 붕괴한 삼풍백화점 사고 이후 31년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폭발 사고, 삼성역 GTX-A 철근 누락 사건 등 이윤 앞에 깎여지는 수많은 기둥들은 뉴스를 뒤덮는다. 반복되는 참사의 구조를 끝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깎여진 기둥 위로 치솟는 코스피
그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어릴 때였다. 삼촌 뻘 되는 친척이 삼풍백화점의 임원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가 건물이 무너지던 날 일찍 자리를 비워 살아남았다는 것. 어른들이 술자리에서 낮게 나누던 이야기가 귀에 걸렸다. 직위도, 구체적 경위도, 여기서 밝히지는 않는 편이 낫겠다. 다만 그 자리에서 흘러나온 말 한 마디는 기억에 오래 남았다. 붕괴 몇 주 전부터 이미 천장 슬래브 사이로 흙먼지가 내려앉고, 기둥 옆 벽면에 실금이 번졌다고. 내부에서는 이상하다는 말이 돌았지만, 위로 올라간 그 말은 "영업 중단은 안 된다"는 말로 되돌아왔다고. 예전에는 직접 들어야 알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이젠 나무위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물리적 원인은 단순하다. '기둥을 깎아 만든 건물'이기 때문이다. 4층 건물을 5층으로 올리면서 그 하중을 버티도록 설계되지 않은 기둥들이 무게를 떠받쳐야 했다. 시공사는 냉방탑을 밀어 옮기는 과정에서 기둥 두께를 깎고 슬래브를 얇게 시공했다. 공사비를 아끼고 영업 면적을 늘렸으며, 영업이익이 증가했다. 그렇게 깎인 기둥은 채 5년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무너졌다.

오늘로부터 31년 전 이맘때, 즉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 502명이 사망하고 937명이 다쳤다. 그 '우연'에 대해 필자의 친척은 평생 말을 아꼈다. 31년이 지난 지금, 경제성장률은 근 몇 년간 최고치를 기록했고 코스피는 9천 선을 기록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K-방산'은 세계 무기 시장을 누빈다. 그러니까, 해피엔딩이다. 아무튼 해피엔딩이다.
영업이익, 가불된 사회적 비용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벌써 4년이 지났다. 현장의 상황은 어떠할까?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통계를 먼저 살펴보자.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법 시행 이후에도 연간 800명대를 맴돈다. 그런데 삼풍백화점 한 개가 무너지면 502명이 죽는다. 그러니까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매년 일터에서 800명 넘게 죽는다는 것은, 해마다 삼풍백화점이 한 번 하고도 절반씩 더 무너지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어김없이 같은 곳에서 기둥이 깎인다. 전체 산재 사망의 약 80%가 50인 미만 사업장 혹은 하청·용역·파견노동자에게서 발생한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한 달 전인 6월 1일, 대전 유성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에서 대규모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5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사망자 중 2명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대 계약직 노동자였다.1 주목할 점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사고가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사업장에서는 지난 8년간 세 차례 대형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2018년, 2019년, 그리고 이번 사고까지 포함하면 같은 장소에서 모두 13명이 숨졌다. 그럼에도 사고는 반복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은 소방당국의 과거 점검에서 이미 위험물 취급일지 미작성, 안전관리자 감독 태만 등 무더기 위반사항이 적발되어 입건과 조치명령을 받은 바 있다.2 다행히 관행은 바뀌지 않았다. 사측 역시 스스로 "기존 작업 방식을 고수하고 관행을 따른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시인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K-방산'은 전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고, 그 중심에 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주가는 100만 원 선을 넘어 올라간다. 역시 또 해피엔딩이라는 것이다.
삼풍백화점 사고의 원인이 깎여진 기둥이라는 단순한 이유였던 것처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고의 원인 역시 단순하다. 2025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영업이익은 3조 345억 원이었다. 같은 해 안전보건 예산은 68억 원, 영업이익 대비 0.22%에 불과했다. 세계적 '방산 특수'를 타고 영업이익이 크게 늘어나는 중에도 안전 투자 확대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으며, 2024년에는 애초 계획한 안전 예산의 절반 가량만 집행하기도 했다. 이익이 불어나는 동안 안전에 쓰는 돈은 제자리였다. 기둥을 깎아 안전과 생명을 담보로 영업이익을 높이던 삼풍백화점의 현실은 31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기업이 사회에게 전가하는 것은 비용이 아니라 위험 자체다. 안전 투자를 줄일 때 발생하는 미래의 사고 비용, 즉 사망사고 이후 수반되는 소송·행정 제재·생산 중단·사회적 손실은 대부분 사회 전체가 부담한다. 기업의 재무제표에는 그 비용이 잡히지 않는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외부 효과의 내부화에 실패한 구조다. 사망 사고 한 건의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될까? 정확한 액수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못 해도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에 달한다고 추산된다. 그러나 이는 원청 기업의 영업이익 계산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2025년 영업이익 3조 원 안에는 사람이 죽어가는 동안 절감된 안전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위험을 외부화하여 얻은 이윤은, 실상 미래의 거대한 사회적 비용을 가불해 쓴 것이나 다름없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번 사고로 그 비용을 일부나마 청구받게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무모한 가불을 일삼는다. 얼마 전 시사IN의 보도에 의해 GTX-A 삼성역 공사현장에서 철근 178톤의 누락이 밝혀진 이후로도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공사를 계속해 왔다.3 철근 178톤 대신 가불한 영업이익에 대한 청구서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우리 앞에 도착할까?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무력화된 중대재해처벌법
중대재해처벌법은 이 구조를 깨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법은 두 방향에서 동시에 무력화되었다. 하나는 사법부다. 올해 2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1호 사고'로 기록된 삼표그룹 양주 채석장 붕괴 사고에서, 법원은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에게 1심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삼표그룹 회장이 법에서 규정한 '경영책임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실질적 지배자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했다.4 한화에어로스페이스처럼 같은 사업장에서 몇 년 동안 세 차례 폭발 사고가 반복되는 동안, 이전 두 차례 사고의 관계자들에게는 집행유예가 선고됐을 뿐이었다. 법은 존재하되, 실질적 지배자에게는 닿지 않았다.

또 하나는 입법 과정 그 자체다.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인 2021년, 정의당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업주가 위험방지 의무를 위반해 사망 사고가 일어나면 3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당시 법안의 핵심은 처벌 수위만이 아니었다. 원안은 건설공사 발주처에도 안전 의무를 지우고, 위험의 외부화를 막기 위해 원청의 책임 범위를 넓게 설정했다. 하청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원청이 실질적으로 책임지도록 하는 구조였다.5
그러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았다. 원안 이후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정부안은 발주처의 안전 의무 조항을 삭제하고, 인과관계 추정 조항도 없앴으며,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수년간의 적용 유예를 담는 등 원안에서 크게 후퇴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책임'을 강조한 법안의 제목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 '기업'은 슬그머니 빠져 현재의 중대재해처벌법이 되었다. 태안화력 사고로 사망한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서로 하겠다고는 하지만 말만 하고 있다. 서로 ‘너희가 해야지’ 핑퐁 게임만 하고 있다. 사람 죽고 사는 문제인데 그걸 안 다루고 무엇들을 하는 건지 한심하다"고 직격했다.6
당시 이미 180석을 가져 대부분의 법안을 강행처리할 수 있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자신들에게 정파적으로 유리한 사항에 대해서는 진보정당은 물론이요, 국민의힘과 아무런 합의 없이도 속도를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노동자의 생사가 걸린 법안에 있어서만 유독 '야당 국민의힘과 합의 불비'를 들먹였다. 법안소위 논의 과정에서도 위험의 외부화 등을 막을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물론 이 비판은 묵살되었다. 진보정당이 막으려 했던 바로 그 구조는 법의 테두리 밖에 그대로 남았다.

만약 진보정당의 원안대로 위험의 외부화를 금지했다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에서 8년 동안 세 번 반복된 폭발은 적어도 이와 같은 구조로는 덜 반복되었을 것이다. 삼표 회장 무죄 판결처럼, 법이 실질적 지배자를 비껴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매년 삼풍백화점 1.5채가 무너지는 대신 처벌의 사슬이 실질적 지배자까지 닿았을 것이고, 반복을 용인한 구조에 더 강한 유인이 작동했을 것이다. 31년 전 삼풍백화점 참사와 오늘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참사에서 바뀐 것이 단 하나 있다면, 시공사만이 기둥을 깎았던 당시와 달리 지금은 방산주의 상승과 코스피의 급등이라는 '해피엔딩'에 축하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둥을 깎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정말 이 상황을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대안과 해결책으로 돌아온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이 '기둥을 깎는' 반복을 줄이거나 없애려면 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런 안전재해는 이른바 전형적인 '외부효과' 문제다. 기업이 안전에 투자하지 않아 발생하는 사고 비용은 기업의 재무제표에 잡히지 않는다. 비용을 치르지 않으니 행동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경제학적 처방은 이미 명확하다. 외부효과의 내부화, 즉 지금 사회가 대신 떠안고 있는 사회적 비용을 원인 제공자인 기업의 비용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 번째로 '위험의 가격'을 올려야 한다. 지금의 구조에서 기업이 위험을 사회에 전가하는 비용은 사실상 0에 가깝다. 위험을 외부화해서 얻는 이익이 그 위험이 현실화되었을 때 치르는 비용보다 압도적으로 크다면, 자본은 언제나 위험을 팔 수밖에 없다. 이는 삼표 회장은 무죄고, 한화 관계자는 집행유예로 사실상 그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고 있는 현실이 증명한다.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실행 2년 9개월 간 실제 실형을 받은 경영책임자의 사례는 한국제강, 엠텍, 삼강에스앤씨, 기성건설 등 4건에 불과하다.7 너무도 적은 처벌 횟수 자체를 정상화하고, 처벌의 대상을 실질 지배자까지 연장하며, 징벌적 손해배상의 배수를 현실화해야 한다.

단가 구조를 법제화하는 것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기업, 그 중에서도 특히 하청이 안전 투자를 줄이는 것은 게으름이나 무지 때문이 아니다. 안전 비용을 반영할 마진이 없기 때문이다. 납품 단가에 안전보건 비용 항목을 명시적으로 분리 계상하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반영하지 않은 단가 계약을 하도급법상 불공정 거래로 규율해야 한다. 대기업이 단가를 후려칠 때 깎이는 것은 결국 노동자의 안전이라는 것을 법이 명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의 구멍을 메워야 한다. 삼표 판결이 드러낸 것은 법의 의지 부재뿐만 아니라 법 자체의 설계 결함이기도 하다. '경영책임자'의 정의가 대표이사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기업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이 대표이사에게 없을 때 책임을 묻지 못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경영책임자를 재정의해야 한다. 5년 전 만들어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원안에 이미 담겨 있던 내용들이다. 해결책은 새롭지 않다. 이미 누군가 설계했고, 누군가 발의했고, 누군가 묵살했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의지'다.
기둥을 깎아 만든 '해피엔딩'을 멈춰세우자
어릴 때 필자에게 처음 삼풍백화점 이야기를 각인시켰던 친척 아저씨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날 '우연히' 자리를 피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대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20대 계약직 청년 노동자에게는 그런 '우연'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위험이 크지 않다'고 인지된 공정에서, 이미 수없이 반복된 산업재해와 같은 이유로, 같은 자리에서 죽었다. 그 죽음을 만든 것은 그 자신이 아니다. 기둥을 깎기로 결정한 사람들, 그리고 그 결정을 막을 수 있었으나 막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이 죽음의 주범이자 공모자들이다.
K-방산이 어떻니, 국민소득이 어떻니, 코스피가 어떻니 하는 말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이야기한다. 우리 스스로도, 주변의 사람들도, 언론마저도 그렇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지탱하고 있는 게 깎여진 기둥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지 30년도 더 넘게 지난 오늘, 우리 사회는 여전히 기둥을 깎고 있다. 누가 기둥을 깎았나? 이윤을 핑계로 직접 기둥을 깎은 기업, 그 기업의 눈치를 보며 방조한 국민의힘, 그리고 그 국민의힘의 눈치를 보며 방조한 더불어민주당이다. 기둥을 깎아 만든 '해피엔딩'을 이젠 멈춰세우자.
김봉독
공인회계사, 세무사. 현재 모 회계법인의 세무팀에서 일하고 있다.
《도모》에 어려운 경제 이슈를 풀어쓰는 글을 기고한다. 조세정의와 진보적 경제정책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세무사지만 여전히 세법은 어렵다.
각주
- 오마이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 사망자 5명 중 2명은 20대 계약직 https://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3239362&PAGE_CD=N0002&CMPT_CD=M0122 [본문으로]
- 프레시안, [속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폭발 사고, 사측 “기존 작업 방식 고수, 관행 따른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 생각”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2026060219450006478 [본문으로]
- 시사인, [단독] GTX-A 178t 철근 누락 “현대건설은 발주도 안 했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7966 [본문으로]
- 서울신문, ‘중처법 1호 사고’ 삼표그룹 정도원 회장 1심 무죄 https://m.seoul.co.kr/news/society/2026/02/10/20260210500265 [본문으로]
- 프레시안, 김종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초당적 처리”…정의당에 호응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2020111012045692766 [본문으로]
- 한국일보, 고 김용균 어머니 “김용균법 1월 시행됐지만 ‘김용균’이 빠져”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mp/A2020120817160000551 [본문으로]
- 한겨레, [단독] 중대재해처벌법 2년9개월동안 실형은 4건뿐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1163428.html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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