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연구자로 살아남기: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의 '교육·연구 재난'은 막을 내렸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대학과 대학원의 공공성은 수준 이하에 머물고 있다. 지속 가능한 2026년의 고등교육은 어떻게 해야 가능한가? 연구자로 살아남기 위해 고등교육 공공성의 필요를 역설하는 김찬호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정책위원장의 글을 게재한다.

월요일의 캠퍼스는 언제나 북적인다. 긴 줄을 서 셔틀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면 식당도 강의실도 도서관도 붐비고 있다. 작은 연구실에는 벌써 같은 방을 쓰는 동료 몇 사람이 나와 있다. 논문을 쓰거나 자료를 검토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 대학원생 연구자인 나의 하루도 그렇게 시작된다.
늘어난 대학생, 줄어든 대학공공성
2000년, 한국의 성인 인구 중 대학을 졸업한 인구는 24% 수준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2024년 이 비율은 56.2%로 늘어났다. 한국은 성인 인구 가운데 절반 이상이 대학 교육을 경험한 국가가 되었다. 25-34세의 청년층에 한정한다면 이 비율은 더 가파르게 상승한다. 한국 청년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70%를 넘어섰고, 2008년 이후 단 한 해도 빠지지 않고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이수율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고등교육을 받는 사람들이며, 대학교육은 이미 엘리트 교육의 단계를 넘어 대중교육이라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1

한낮 학생들로 가득한 캠퍼스의 잔디 광장을 보며 그런 시대를 실감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의심한다. 과연 대중교육으로서 대학은 얼마나 더 존속할 수 있을까. 대학이 교육기관이자 연구기관으로서 그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은 얼마나 남았을까. 아니, 어쩌면 그런 시대는 영영 오지 않은 채 벌써 끝나 버린 것은 아닐까.
2020년 기준 한국의 고등교육 재정에서 공공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3.3%로, OECD 평균인 67.1%보다 20%p 이상 낮았다.2 많은 사람이 고등교육을 받고 있는 반면, 고등교육에 투입하는 재정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미 공공의 영역에 들어온 대학 교육에 대해 한국 사회는 그에 걸맞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 않다.3 그리고 그 사이의 간극은 학생과 연구자 개인의 부담으로 메워지고 있다. 학생들이 부담하는 연평균 등록금 액수는 해마다 상승하고 있고, 2025년에는 700만원 선을 넘어섰다. 특히 올해는 전체 대학교 중 26.8%가 등록금 인상을 결정했다. 등록금을 법정 상한까지 인상한 대학교도 5개교나 있었다. 학자금 대출 체납률은 2024년 17.3%를 기록했다. 고등교육 이수율 1위라는 허울 뒤에는 교육비조차 갚지 못하는 학생들의 현실이 있다.

대학원생의 사정도 썩 다르지 않다. 일반대학원의 등록금 평균액은 736만원에 달한다. 2017년부터 단계적으로 학부 입학금이 폐지된 것과 달리, 대학원에는 여전히 평균 69만 원의 입학금이 남아 있다. 사립대학의 경우 100만 원이 넘는 입학금을 징수하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경제적 부담 아래에서, 대학 교육 현장에 있는 학생들과 연구자의 삶은 언제나 학업과 생계 사이의 줄타기가 될 수밖에 없다. 연구실에서 실험하고, 논문을 쓰고, 학회에 참여하고, 강의를 들으면서도 어느 한 순간 월세와 식비 걱정을 놓을 수 없었다. 그나마 연구 과제를 수주해 인건비나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연구자는 얼마나 될까.
논문을 쓰고 자료를 보다 새벽이 다 되어 퇴근하는 것도 대학원생에게는 흔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때에도 대학원 연구실이 있는 건물에는 불이 켜진 곳이 적지 않게 보인다. 그 안에 있을 사람들의, 나와 별 다르지 않을 삶을 종종 생각해 본다. 대학원생이라는 신분 아래서 일을 해도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연구를 해도 성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그림자 같은 일상을 상상한다. 등대처럼 불을 밝힌 새벽의 연구실에, 저 불은 언제까지 켜져 있을 수 있을까.
부족하고 불평등한 대학원 지원
정부는 2025년 '한국형 스타이펜드' 사업을 시작하며 이공계 대학원생에 대한 최소 소득 보장을 약속했다. 2025년 설정된 기준 금액은 석사과정 80만원, 박사과정 110만원이었다.4 같은 해 보건복지부에서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최저생계비)'으로 제시한 금액은 166만원이었다. 대학원생 한 사람이 수행하는 노동의 가치를 결정하는 데에는 최저임금도 최저생계비도 기준이 되지 못했다. 소위 '대학원생 농담'이 농담만으로 끝나지 않는 시대다.
이 제도마저도 선별된 29개 대학의 이공계열 대학원생만을 대상으로 한다. 인문ㆍ사회계열이나 예술계열 대학원생의 상황은 더욱 열악할 수밖에 없다. 연구과제 자체가 턱없이 적고, 인건비로 지출할 수 있는 재원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대학원은 연구하고 성장하는 공간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고민하는 공간이 된 지 오래다. 그리고 그 고민 끝에 연구 현장을 떠난 뛰어난 선배들을 나는 이미 몇이나 알고 있다.

이것을 과연 학생이나 연구자 개인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 할 수 있을까. 언급했듯 대학교육은 이미 공공의 영역에 들어왔다. 대학은 한국 청년 70% 이상이 거쳐가는 교육 기관이자, 한국 사회 지적 역량의 최첨단에 선 연구 기관이기도 하다. 대학 교육이 지속 가능한 학문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실패한다면, 그 실패는 학생과 연구자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실패로 파급될 수밖에 없다. 교육과 연구 현장이 붕괴하면 사회의 지적 성장도 함께 정체된다. 지금 등록금과 저임금이라는 형태로 대학 구성원들에게 지워지고 있는 부담은, 사실 이들의 교육과 연구를 통해 미래를 그리고 있는 한국 사회 전체가 함께 져야 하는 비용이었을 것이다.
2024년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이후 연구 현장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무시하고 과학기술계를 ‘카르텔’로 몰았던 한 정권이 남긴 후과는 컸다. 기업화되는 대학과 무너져 가는 학술 생태계 위에서, 지금 캠퍼스를 걷는 대학 공동체의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어려운 시간들을 견뎌 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각자의 고통은 그저 각자의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대학이라는 공간의 어느 일부가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재단되어 잘려나갈 때 무너지는 것은 꼭 학문의 생태계만은 아니다. 당장 눈으로 보이는 숫자로는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을 위한 공간이 사라진다면, 우리 사회가 상상할 수 있는 더 나은 미래의 폭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는 2026년도 예산안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 예산을 편성했다. 공적 연구개발 예산은 29조 6천억 원에서 35조 3천억 원으로, 19.3% 증가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대부분은 인공지능과 첨단산업 분야에 치중되어 있었다. 2026년 연구개발 예산에서 인문사회 계열이 차지하는 비율은 0.93%에 불과했다. 인문사회 계열에 배정된 연구 예산이 1% 아래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외의 사례와 비교해 봐도 한국 연구개발 예산의 특정 분야 편중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프랑스는 18.6%, 일본은 13.1%, 미국은 11.2%의 연구개발 예산을 인문사회 계열에 배정한다.5

인공지능 연구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첨단 기술 연구에 국가적 역량이 집중되어야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기초 학문의 생태계가 복원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장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추세에만 집중한다면, 연구의 깊이는 얕아지고 고등교육 기관으로서 대학의 존재 이유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속 가능한 고등교육, 내일이 있는 연구자를 위해
지금 우리 사회가 왜 고등교육에, 기초 학문의 생태계에 공공의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지 의문하는 목소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치르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비용은 없다. 지금 우리가 대학의 공공성에 충분히 투자하지 않는다면, 그 비용은 그대로 미래 세대의 빚으로 남을 것이다. 무너진 교육과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연구 역량이라는 빚으로 남아, 오랜 기간 우리 사회를 괴롭힐 것이다. 연구 현장을 시장의 논리에만 방치해 둔다면, 이 북적이는 캠퍼스는 앞으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될지도 모른다.
청년 70%가 거쳐가는 교육 기관에서 중위소득의 20%에 달하는 등록금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을 성공한 교육 현장이라 할 수 있을까. 30만 명의 대학원생 연구자가 있는 나라에서, 그들의 최저생계비조차 보장해 주지 못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연구 현장이라 할 수 있을까. 연구개발 예산의 1%조차 배정받지 못하는 인문사회 계열의 대학원생이지만, 여전히 나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오늘 밤 불을 끄고 나가는 연구실에, 내일 아침에 다시 불을 켜고 들어올 수 있기를. 그 불이 꺼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기를. 연구실에 남아 있는 동료들이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를 받을 수 있기를. 대학이 그렇게 함께 모두의 미래를 상상하는 공간으로 여전히 남아 있기를. 그런 공간의 소중함을 아는 사회가 되기를. 나는 다만 원할 뿐이다.

김찬호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정책위원장.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있다.
각주
- 남수경 외, 「고등교육의 공공성과 국립대학의 역할에 대한 국민의 인식」, 『담론201』, 21권 3호, 2018. pp.88-89. [본문으로]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 2023 https://www.korea.kr/archive/expDocView.do?docId=40660# [본문으로]
- 세계일보, 2025년 4년제 대학 70% 등록금 인상… 年 평균 710만원 https://www.segye.com/newsView/20250429516673?utm_ [본문으로]
- 사이언스조선, 이공계 석박사에 월 110만원 주는 '한국형 스타이펜드', 올해 35개 대학 혜택 https://biz.chosun.com/science-chosun/science/2025/08/28/HU4EH6SBP5APLNAYHZC47XTLSA/ [본문으로]
- 교수신문, 내년 R&D예산 19.3% 늘었지만 인문사회는 0.93%로 줄어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4903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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