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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 일반

어느 퀴어 커플의 결혼 준비, 그리고 인스타툰 연재기

by Domoleft 2026. 4. 1.

[사회] 어느 퀴어 커플의 결혼 준비, 그리고 인스타툰 연재기

우리 사회의 시선 속 수많은 일에 울고, 웃고, 그렇지만 결국 명랑하고자 하는 어느 퀴어 커플의 결혼 준비 이야기. 인스타그램 '율율툰'으로 동성 커플의 일상과 결혼 준비 과정을 다룬 만화를 연재 중인 김나율의 글을 게재한다.


작년 7월, 삿포로의 대관람차 안에서 야경을 바라보던 중 여자친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니 한쪽 무릎을 꿇은 여자친구가 뭔가 어정쩡한 자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품 속에서 디지바이스(애니메이션 《디지몬 시리즈》에 등장하는 도구. 시리즈의 상징으로 굿즈화되어 판매되고 있다: 편집자 주)를 꺼내 내미는 여자친구의 긴장된 얼굴 위로 도시의 불빛들이 내려앉았다.

 

앞으로도 계속 나와 같은 이야기 속에 있고 싶다며, 자신과 결혼해 달라는 그 말에 속절없이 눈물을 흘려 버린 것이, 그러니까 내가 여자친구의 '선택받은 아이'(디지몬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간 주역들의 통칭: 편집자 주)가 된 것이 벌써 작년 여름의 일이다. 7년의 연애기간 내내 결혼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댄 나였으니, 내 쪽에서 애걸복걸하다시피 해서 받아낸 청혼과 다름없었지만 어쨌든 청혼은 청혼이었다.

인스타그램 '율율툰' @yoolx2toon

 

반지도 맞췄고 프로포즈도 받았으니 이제 결혼식장을 예약하고 청첩장을 인쇄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면 된다. 간단하다고 생각했다. 당장은 법적 부부가 되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가족이 되겠노라 선언하고, 앞으로 이 가정이 흔들릴 때 여기 모인 사람들이 함께 그 가정을 지탱해 달라는 부탁을 건네는, 그런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시스젠더 헤테로 친구들에게 "밥 한 끼 내면서 너무 거한 부탁 하는 거 아니야?"라던가, 일부 퀴어 친구들에게는 "징하다. 그렇게까지 정상성을 갖고 싶어?"라는 조롱과 자조가 섞인 축하를 받기도 했으나, 헤테로들은 너무도 간단히 해내는 걸 내가 못할 리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세상을 모르는지.

 

식장에 전화를 걸어 "동성 커플인데요, 결혼하려고요." 하고 말할 때, 거절당해 상처받는 것을 염려한 고마운 전직 웨딩 플래너 당원이 우리를 도와주기로 했다. 그런 주변 사람들의 다정함에 기대어 결혼식을 차근차근 준비해 보려 하던 중, 의외의 곳에서 문제와 맞닥뜨렸다.


우리가 처음으로 마주한 문제는 하객 규모의 문제였다. 보통 예식장 예약을 할 때에는 대략적인 하객 규모와 예산에 맞춰 식장을 선택하는데, 이 때 어디까지를 하객으로 초대할 것인지에서부터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다. 모실 수 있는 분들은 최대한 많이 모시자는 나와, 30~50명 규모의 작은 결혼식을 진행하고자 하는 여자친구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거대한 강이 존재했던 것이다. 오픈리 퀴어로 살아 온 나와 몇몇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딱히 커밍아웃하지 않은 여자친구 사이에서 자연스레 발생할 수 있는 의견 차이를 여태 간과하고 있었다니.

 

먼저 여자친구의 주장대로 작은 규모로 결혼식을 진행하는 방법을 고려해 보았다. 하지만 그 경우 비용적 문제가 발생했다. '스몰 웨딩'은 규모만 스몰이지, 제대로 하려면 비용은 절대 스몰이 아니라던 주변 기혼자 친구들의 조언은 모두 뼈아픈 사실이었다. 비용적 문제 외에도 하객 규모를 줄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존재했는데, 청첩을 꼭 주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탓이다. 하객 리스트에서 하나 둘 사람들을 지워갈수록 그들에게 받은 고마운 마음들이 자꾸 생각났다. 분명 내가 커밍아웃한 첫번째 퀴어 친구임에도 짐짓 놀라지 않은 척 건네던 축하와 별 관심도 없었을 내 결혼 이야기를 예의 바르게 들어준 사람들, 적극적으로 결혼식에 꼭 불러달라고 상냥히 이야기해주던 그 모든 이에게 청첩을 주지 않으면 죄송할 지경까지 와 버린 것이다.

 

'결혼에 미친 새X'로 몇 년을 살아오며 '입을 턴' 스스로의 과업을 온몸으로 맞은 셈이다. 나를 지지해주고 내 행복을 빌어준 사람들이 있다는 축복과, 스스로 불러온 재앙 그 어딘가에서 나는 헤매고 있었다. 결국 치열한 공방 끝에 둘 모두 합의를 본 것은 '부모님의 하객은 모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 모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시지 '못하는' 것에 가까운데, 생각해 보라. 부모님께 커밍아웃하는 것과는 별개로 부모님의 친구들, 모든 친인척들에게 대뜸 결혼 소식으로 '대 사회 커밍아웃'을 진행하는 것이 어떨지. 도무지 상상조차 되지 않거니와, 그 뒤에 붙여야 할 무수히 많은 설명들을 떠올리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물론 이미 많은 분들이 알게 되시기는 했다.. 인스타그램 '율율툰' @yoolx2toon

 

부모님 하객 없이 진행하기로 결정한 뒤에도 또 다시 고려할 점이 생겼다. 나는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마친 상태이고 여자친구는 딱히 부모님께 커밍아웃할 생각이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다. 여기서 또 다시 마주한 문제. 혼주석에 우리 부모님만 모실 것인가, 아니면 우리 부모님도 모시지 않을 것인가하는 두 가지 선택지가 새롭게 생겨났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좋겠어"라는 여자친구의 말은 물론 다정하고 배려심 넘치는 것이었지만, 미안하지만 실질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식장 규모를 결정할 수 없게 된 우리는 다른 세부사항부터 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아주 사소한 것들을 이야기했다. 여자친구의 강경한 '드레스는 입기 싫다'는 의견에 맞추어 여자친구는 흰 턱시도를, 나는 드레스를 입기로 결정했다거나, 비건식이 가능하도록 케이터링을 추가하자거나, 입장곡은 둘 다 애니메이션 OST로 하겠다거나 하는. 실현 가능성과 비용 문제는 일단 제쳐 둔 즐거운 상상이었다. 그 이야기를 하며 많이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상상의 단계로 다시금 후퇴했다. 그리고 그 후퇴가 내게 준 굴욕감은 상당했다. 비참하다고 느꼈다. '왜 이렇게까지 결정이 어려운 일이 많지?', '대단한 걸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남들처럼 하고 싶은 것뿐인데 왜 어렵지?' 같은 퀴어적 좌절과 무력감에 나는 손쉽게 빠졌다.

 

하지만 내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무력감에 빠졌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 관성적인 무력감과 좌절이 집처럼 안락하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더 이상 그곳에 안주하기 싫다고, 그 집에 살고 싶지 않다고 외치면서도 뭐든 다 세상 탓을 해버리고 엄살을 부릴 때는 마음이 편안했다. ‘이렇게까지 해서 결혼 같은 걸 굳이 해야하나.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와 같은, 헤테로들의 입을 통해 들었으면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뛰었을 이야기를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스스로에게 하마터면 내뱉을 뻔 했다. 그런 스스로의 저열함과 마주하는 일이 괴로웠다.


명랑해지고 싶었다. 우여곡절을 다 겪고 있지만 결국 해낼 거라는 다짐을, 약속을 남기고 싶었다. 이런 일 쯤은 별 거 아니라는 듯 웃으며 자조 섞인 농담으로 무력감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우리가 겪은 일들을, 앞으로 겪게 될 일들을 자세히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은 만화를 그리자는 것이었다. 작년 12월부터 나는 '동성커플 ㅇㅇ하는 만화'(ㅇㅇ에는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다)를 제목으로, '율율툰(@yoolx2toon)'이라는 인스타툰 계정을 만들었다. 퀴어 커플로 살아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그려 일주일에 한 번씩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다. 둘 다 바빠지며 결혼 계획은 잠시 미뤄 두고 있는 요즘이지만, 여전히 가족에게 커밍아웃한 이야기나 우리 커플의 첫 만남 이야기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을 이어나가고 있다. 나와 여자친구를 실제로 아는 친구들이 짐짓 모르는 사이인 척 존댓말로 댓글을 달아 주는 걸 볼 때면 웃음이 난다. 고맙고 귀엽다.

인스타그램 '율율툰' @yoolx2toon

 

금연 클리닉에 가면 금연 시작과 동시에 주위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려서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부여하라고 조언한다. 니코틴 중독자와 정확히 같은, '이렇게까지 남들 앞에서 유난떨며 말하고 있는데 결혼 못하면 창피할걸?'처럼 다소 구차한 이유로 시작한 만화가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이 된다는 것이 기쁘다. 아무리 우울한 이야기라도 일단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하면 반강제적으로나마 명랑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는 점이 좋다.

 

물론 그건 내 그림 실력이 부족한 탓이다. 우울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려면 그림 실력과 연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만화를 그려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래도 그게 참 좋다. 내게 무례했던 사람, 두려운 마음들, 힘들었던 일을 만화로 옮기고 다시 읽어보면 기어코 피식 웃게 된다는 점이. 놀라운 점은 우리를 아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무반응일 거란 예상과 다르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만화를 봐 주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포즈 선물용 디지바이스 영상이 만화보다 훨씬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나를 좀 슬프게 만들곤 하지만, 괜찮다. 멋진 선물임을 모두가 인정해 준 것 같아 기쁘다. 다른 인스타툰 작가들과 비교하면 초라해지는 숫자지만 꾸준히 팔로워도 늘고 있다.

 

나의 재능을 무한히 과신해 주는 여자친구는 "이러다가 협찬이나 광고 들어오는 거 아니야?" 같은 말을 종종 해 주지만, 그럴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내가 이야기의 천재가 되거나, 말도 안 되게 귀여운 만화를 그리게 되거나, 갑자기 그림실력이 일취월장한다고 해도 어려울 것이다. 어떤 기업이 그 많은 인스타툰 작가들을 다 제치고 굳이 퀴어툰 작가에게 광고를 맡기겠는가(이것은 비단 내 피해의식만은 아니라, 실제로 꽤 많은 팔로워를 보유한 퀴어툰 작가에게 들은 이야기임을 밝혀 둔다).


인스타툰으로 부수익을 창출한다거나 하는 뭔가 대단한 이벤트는 발생할 일이 없겠지만, 그래도 기쁜 일이 많다. 가뭄에 콩 나듯 도착하는 청소년 퀴어들의 디엠이라던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다른 퀴어 커플들의 응원 댓글이 그것이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잠깐이라도 웃음을 줄 수 있다면, 커밍아웃 이후의 삶도 꽤 괜찮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면, '동성결혼 막상 해보니 다 할 수 있더라' 같은 종류의 소소한 용기를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여전히 우리의 결혼은 아무것도 결정된 것 없이 난항에 빠져 있고, 누군가 결혼 준비는 잘 되어 가냐고 물으면 순간 마음이 착 가라앉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요즘은 누가 결혼에 대해 물어보면 "결혼 준비 과정이 담긴 만화를 그리고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다 보면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내 앞에서 하나 둘 울고 웃는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이 그려진다. 흰 턱시도를 입고 웃고 있는 여자친구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가급적, 명랑한 방식으로.

《도모》 기고를 위해 새롭게 그린 필자의 그림



김나율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운영위원. 여자친구와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산다.

인스타그램 '율율툰(@yoolx2toon)'에서 '동성커플 ㅇㅇ하는 만화'를 연재 중이다.

세상을 바꿀 정치와 예술, 우정의 가능성을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