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학원 심야교습 연장 속, 실종된 강사노동자의 노동권
서울시의회가 얼마 전부터 추진하고 있는 학원 심야교습시간 연장 조례, 그러나 이는 단지 청소년과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야간노동의 연장은 학원 강사노동자들의 노동시간 확대와 착취 심화를 불러온다. 학원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심야교습 연장을 강사노동자들의 노동권 입장에서 바라본 필자 에스텔의 글을 싣는다.
※ 읽기 전에: 〈 청소년의 잠과 인권을 팔아넘기는 학원 심야교습 연장 조례에 반대하며〉 , 2025.12.06.〈도모〉
청소년의 잠과 인권을 팔아넘기는 학원 심야교습 연장 조례에 반대하며
[사회] 청소년의 잠과 인권을 팔아넘기는 학원 심야교습 연장 조례에 반대하며얼마 전 서울시의회에는 학원 심야교습시간을 밤 12시까지로 연장하는 조례안이 국민의힘 시의원 20명에 의해 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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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시의회에는 현재 밤 10시까지로 정해져 있는 학원 등의 교습시간 제한시간을 고등학생 대상으로만 자정까지로 연장하는 조례안이 국민의힘 시의원 20명에 의해 발의되었다. 천만 명의 시민들이 살고 있는 수도이자 대부분의 학령인구가 집중되어 있으며 사교육 열기가 가장 높은 서울에서 이 조례안이 통과된다면, 조만간 경기도 등 현재 밤 10시 이후의 학원 교습을 제한하고 있는 다른 지역에서도 제한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퍼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학원 등의 교습시간 제한 제도는 애초에 학생들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 만큼 지금까지는 해당 논의에서 주로 학생인권·청소년인권이 핵심적인 쟁점으로 다루어졌다(상단 링크 〈도모〉 12월 6일 기사 참조: 편집부). 관련 논의에서 가장 취약한 주체들인 학생 당사자들의 의견과 인권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물론 동의하지만, 이 사안에 있어 현장의 또 다른 주체인 학원 강사노동자의 관점이 다뤄지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은 무척 아쉽다. 필자는 학원 강사노동자로의 경험이 있는 입장에서 학원 등 교습시간의 제한 완화가 학원 강사노동자들의 노동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 조례의 다른 이름은 '강사노동자 야간노동 확대 조례'
본인의 과거 경험 등에 기반하여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단과학원들의 업태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학교-학원-집의 거리에 따라 학생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학교 일과가 끝나고 이동시간을 감안할 때 평일 5시 혹은 그 이후에 학원에 도착하게 된다. 이런 경우 학원강사는 늦어도 4시 정도에는 출근하여 수업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강사들은 제한된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수업을 소화할 수 있도록 수업에 배치되는데 보통 저녁 5시부터 10시까지 2시간 반씩 두 번의 수업을 하거나,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4시간짜리 수업 한 번을 하게 된다.
그러나 강사들의 업무환경은 10시에 수업이 끝난다고 하여 바로 퇴근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강사들은 10시에 수업이 끝난 이후 여러 잡무를 마무리해야 귀가할 수 있고, 그러면 11시 이후에나 늦은 저녁을 먹을 수 있다. 이러한 생활패턴 특성상 당뇨나 고혈압, 역류성식도염 등의 질환이 평균적인 집단보다 훨씬 흔하다. 또한 학원 특성상 당연히 주말이 평일보다 더 중요할 수밖에 없고, 주말엔 오전 9시부터 수업을 하는 경우도 굉장히 잦다. 근무 사이 최소한의 휴식시간 역시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이처럼 학원 강사들은 현재에도 이미 초과노동과 야간노동을 강요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심야교습에 대한 제한이 완화된다면 강사들은 2시간 혹은 그 이상의 수업을 추가로 할 것을 요구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강사들의 월급 액수 자체는 일반 직장인보다 다소 많을 수 있겠으나, 주로 계약직이나 프리랜서이므로 여러 복리후생이 존재하지 않고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얼마 전의 쿠팡 심야배송 관련 논쟁에서도 그랬듯, 과중한 노동 및 야간노동에 관한 논쟁에서는 '선택'이 꽤 중요한 화두가 된다. 그러나 이 경우 강사의 선택권은 사실상 없는 것에 가깝다. 강사들의 월급구조는 크게 정액제와 정률제로 나뉘고 이 둘을 혼합한 계약도 있다. 정액제의 경우 흔히 생각하는 포괄임금제 구조에 가까우면서도 프리랜서 계약의 형태를 띠고 있기에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경우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을 지정하는 일이 많아 법적으로 따지고 들면 고용관계를 인정받을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근로기준법상 보호를 보장받는 것은 쉽지 않다. 정률제의 경우 더더욱 프리랜서의 성격이 강하다. 강사는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형태이고, 수입의 대부분은 학원에서 자신의 반에 몇 명의 학생을 배정하냐에 달려 있다. 그렇기에 학원이 강사를 해고하고 싶다면 그냥 수입의 격감을 유도하여 강사가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게 하면 된다.
즉 현재 대부분의 강사들은 노동시간 상한 등에 대한 노동법상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학원의 요구에 반대하기조차 어려운 지위에 놓여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원 등의 교습시간 확대는 곧바로 강사들에게 야간노동과 장시간 노동의 확대로 돌아오게 된다. 이미 주 52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강사들의 근무시간은 더 늘어나게 될 것이며, 퇴근할 때 대중교통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생활패턴은 더욱 망가져 건강은 훨씬 악화될 것이다. 야간근로수당 등으로 월급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노동환경의 악화에 비해 그 보상은 적을 수밖에 없고, 그마저도 최소한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다 소모될 뿐이다. 이 과정에서 이미 소진된 강사는 이직이나 휴식은 꿈도 못 꾸며 계속해서 착취당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교육의 질 역시 저하될 수밖에 없다.
교습시간 확대, 모두에게 악몽일 뿐

학원 등의 교습시간 제한이 완화되면 학생들은 무한경쟁 속 가뜩이나 부족한 최소한의 수면과 휴식조차 박탈당한다. 학교에서는 졸거나 학원 숙제를 하는 데 급급하고, 학원에 와서야 겨우겨우 공부를 따라가거나 그도 아니라면 학원에 와서도 졸게 되는 악순환이 더 강화된다. 학부모의 교육비 지출은 지출대로 늘어나지만 정작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설령 좀 더 공부를 잘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학령인구의 절반이 서울-경기권에 밀집한 상황에서 이는 제로섬 게임이자 무한으로 강요되는 군비경쟁일 뿐이다.
물론 학생들이 학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만큼 양육자의 몸과 마음은 좀 더 편해지기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학부모들이 학원에 더 강한 통제를 외주로 맡기는 것에 불과하며, '나는 자녀를 위해 충분한 희생을 다했다'며 자녀들의 희생을 애써 외면하는 자기만족을 가져다 줄 뿐이다. 이뿐만 아니다. 교육청의 담당 공무원들은 '지금도 10시 단속을 돌고 집에 가면 10시가 훌쩍 넘는데, 교습시간이 자정까지로 연장되면 대체 집에는 언제 가라는 거냐'며 경악하고 있다. 즉 이번 야간교습시간 제한 완화는 학생들에게 휴식권 박탈을, 학부모에게는 교육비 지출 증가를, 노동자들에게는 야간노동의 확대를 불러온다. 모든 주체에게 악몽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정말로 야간교습 확대가 모든 주체에게 악몽인 것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득을 보는 주체가 딱 하나 존재한다. 이는 바로 대형 입시학원을 중심으로 한 학원자본이다. 야간교습시간이 늘어난다면 학원은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단지 학생과 강사에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만으로 교육청이 권고하는 교육비 기준을 계속 준수하면서도 수입을 증가시킬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이번 조례안은 학생과 학부모, 노동자 모두를 희생시키며 착취적인 사교육업계의 구조를 강화시키고 학원자본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장치일 뿐이다.

여기에 이렇게 백해무익하고 사교육업계의 배만 불려 주는 조례를 추진하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황당하게 만든다. 이들은 마치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걱정하는 듯 하지만 정작 학원 교습시간이 10시까지로 제한된 지역에서 유의미한 학업성취도 감소가 있었는지에 대한 자료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타 지역과의 '형평성'을 운운하지만 정작 서울의 학원 교습시간이 10시까지로 제한됨에도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타 지역의 그것을 두 배 이상 넘어서고 있는 상황1은 외면한다. 이런 상황에서 야간교습의 연장은 학생들의 피로도를 증가시켜 학업에 대한 열의를 깎아내리고, 서울 학부모들의 사교육 의존 및 타 지역과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누군가의 밤은 곧 나의 밤이 될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퇴행적 움직임을 저지하고 더 나은 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는 더 강고한 전선의 구축이 필요하다. 현장의 노동자인 강사들과 함께 프리랜서·특수고용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청소년·학생의 인권을 중심으로 인권단체들을, 학생들의 늦은 귀가에 따라 추가적인 근무를 요구받을 수 있는 여러 노동자들을, 공교육 환경의 붕괴를 재촉하는 움직임에 저항하는 교사들을, 최종적으로는 이런 환경을 떠받치는 학벌주의·능력주의 구조와 지역과 소득에 따른 교육격차를 해소할 국토균형발전 및 복지에 대해서까지 엮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야간교습과 야간노동에 맞서는 학생과 강사노동자들의 연대가 일상화될 때 비로소 학생인권법 제정과 강사노동의 정당한 노동권 인정은 함께 실현될 수 있고, 우리는 나이와 위치의 차이를 넘어 모두의 권리를 위해 함께 걸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글을 읽게 되는 많은 '성인' 독자들의 역할이 더더욱 중요함을 느낀다. 야간학습에 시달려 피곤한 학생들을 보며 "우리 땐 새벽까지 공부했다"며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혹은 별 관심 없이 그저 자기 할 일을 하러 가는 역할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이 문제와 자신의 삶이 맞닿아 있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찾으며 이 전선이 우리 모두의 전선임을 인식하고 함께할 수 있었으면 한다. 오늘 누군가의 밤이 과중한 노동과 학습으로 사라지는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그냥 지켜본다면, 누군가의 노래 가사처럼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2 테니까.

에스텔
트위터 '에스텔 뉴스계정(@t_ransborder)' 계정주. 세븐틴의 디노를 사랑합니다.
"두렵겠지만 길게 보라. 희망이란 훈련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우리에겐 최선을 위해 노력할 도덕적 책임이 있다." - 리베카 솔닛
각주
- KBS 뉴스, 사교육비 1인당 월평균 47만 원…서울 고등학생은 102만 원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99394 [본문으로]
- 이랑, 〈늑대가 나타났다〉중 https://www.youtube.com/watch?v=fNDjvRIu1Ys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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