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진보정당 청년활동가의 반수 후기: '공정한 입시'란 가능한가?
지난 11월 14일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개최되었다. 여전히 계속되고 심지어 더욱 심화되는 중인 한국 사회의 교육불평등과 서열화에 진보정치는 어떻게 맞서야 할까? 올해 반수를 겪고 수능시험을 친 진보정당 청소년 활동가의 고민을 게재한다.

지난 11월 14일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열렸다. 이 날 수능을 친 나는 올해 반수를 했다. 단순한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닌, 한국 대학입시에 대한 복잡하고 이중적인 생각에 기반한 선택이었다. 중학교 때 외고 입시에 낙방하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 후회와 방황을 해 왔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한국 사회 특유의 가스라이팅으로부터 나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주변의 고학력 지인들에게 알게 모르게 열등감을 느꼈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직업'을 가져 남들이 함부로 무시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의 관심과 지원은 감사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큰 부담이었다. 재수와 3수를 해서라도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러면서도, 많은 한국 청소년들이 그러하듯 대학입시에 대한 모종의 불만과 회의감이 드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EBS에서 2023년에 방영된 <다큐멘터리 K-교육격차>를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해당 다큐멘터리는 교육격차가 아주 오래 전부터 지속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인지적인 능력에서의 가족 배경에 따른 차이가 3세 이전부터 드러나기 시작해서 3세 때가 되면 상당한, 유의미한 격차가 발생해 있고, 그로부터 3세부터 7세까지 격차가 계속 증가한다는 최성수 연세대학교 사회학 교수의 인터뷰도 있었다.1 대학입시 중심의 한국 교육이 힘들기는 해도 적어도 공정하기는 하다고 생각해 왔던 내게 이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불평등 부추기는 사교육, 사교육 부추기는 대학입시
한국 사회의 사교육에 대한 지출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2024년 기준, 대한민국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약 29조 2천 억 원으로 1년 전보다 7.7% 증가했다. 학생 수는 521만 명에서 513만 명으로 8만 명(1.5%) 줄었는데 사교육비 총액은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2 이 와중 초등학교 과정에서 사교육에 대한 지출이 가장 높다는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마치 모두들 위에서 소개한 EBS 다큐멘터리에 나온 내용, 즉 교육격차는 어린 시절부터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것만 같다.

이렇게 사교육에 대한 투자가 늘어날수록, 교육불평등 역시 강화되어 간다는 것은 다수의 연구를 통해 여러 차례 증명되어 왔다. 소득이 많은 가정일수록 아이의 사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고, 이는 결국 모두를 위한 공정한 교육기회 보장이라는 공교육의 기본 취지를 근본에서부터 망가뜨린다.3 교육이 불평등을 해소하는 게 아니라 불평등을 악화하는 기제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실제 통계로도 증명된다.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소득이 800만 원 이상인 고소득 가구의 학생은 1인당 월평균 67만 6천 원을 사교육에 지출하는 반면, 300만 원 미만의 저소득 가구 학생은 20만 5천 원을 지출하는 데 그쳐 3.3배에 달하는 격차가 발생했다.4 지금과 같이 대입 사교육에 대한 투자가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공교육은 사실상 명목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러한 교육불평등은 정시 응시생 중 소위 N수생의 비율이 더욱 늘어나며 심화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도 대학입시를 이어나가려면 학원비와 교재비, 인강비 등 입시준비에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게 당연히 유리하다. 변화하는 입시환경 속 관련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수도권 학원가 거주자 역시 유리하다. 이처럼 N수생 중심의 대학입시 체제가 고착화될수록 부모의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른 불평등이라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는 더욱 악화된다.5
본질적인 문제는 수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 대학입시 시스템 자체가 교육불평등을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단일한 출발선과 동일한 목적지를 가정한 '공정한 경쟁'이라는 수능의 신화와 달리, 실제로 이는 사교육 투자 능력과 지역 사교육 네트워크를 통해 출발선 자체가 벌어져 있는 상황에서 수도권 고소득층 학생들에게 유리한 구조적 불평등을 은폐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수능 창시에 기여한 박도순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마저 시험점수를 만능으로 여기며 줄세우기 교육을 강화하는 현 수능 시스템에 대해 문제제기했을 정도다.6 학생부종합전형을 포함한 여러 수시전형이 추가되며 이전과 같은 시험 일변도의 입시는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사회적 선별 기능만을 충족시키며 공정성과 공공성이라는 민주사회 교육의 핵심 가치들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누군가는 어렸을 때부터 남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 영어유치원을 가고, 의대 진학을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수학을 공부한다.7 반면 여기에 낄 비용을 지불하지 못하는 이들은 소외되어 간다. 개인적인 경험을 돌아보면, 나 역시 매번 휙휙 바뀌는 입시정책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학원을 더 끊는 등 사교육에 스스로를 옭아매 왔다. 과거 학력고사 체제에서 대입을 치룬 우리 부모님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셨지만,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면 밀려나는 지금과 같은 입시 중심 교육 시스템에서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서열 중심, 능력주의 중심 입시를 넘어 평등사회를 위한 공교육으로
과거 개그콘서트의 한 프로에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가 탄생한 적이 있다. 해당 대사가 유행어가 된 데에는 프로 자체의 재미도 있었겠지만, 모두들 그 말이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사실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 기억만 안 해 주는 수준이면 다행이다. 한국 사회는 소수의 '성공'한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마치 벌을 받아야 하는 것마냥 대접받는 방식으로 굴러간다. 학생들은 모두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건동홍-국숭세단'이라는 도식화된 대학 서열 구조를 외우고 있으며, 해당 구조에 편입되고 밀려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다. 해당 구조의 가혹함과 부조리함에 대해 알지만, 동시에 해당 구조에서 밀려나면 더욱 가혹하고 부조리한 삶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과거 청소년 시절이나 지금이나 해당 시스템에 불만이 많으면서도 여기에 여전히 동참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여러모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보다 이윤을 더 중요시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서고자 진보정당 활동가가 된 후에도, 해당 시스템을 굴러가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인 교육 시스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간혹 한국 입시제도, 더 나아가 학벌주의 자체를 옹호하는 이들도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한국같이 인적 자원의 역할이 중요한 나라에서는 서열화된 입시교육이 인재양성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 열심히 노력해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그만큼의 보상이 필요하다는 등의 논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세계인권선언은 '교육은 인간 개성의 완전한 발전과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완전한 존중을 목표로 하여야 한다'8고 명시하고 있다. 나는 묻고 싶다. 한국의 학벌 중심 입시제도가 과연 이 목표에 부합하는가? 몇 시간 동안 치르는 오지선다형 시험이 한 개인의 인격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논리만을 숭배하는 교육제도는 평등과 연대와 같은,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에 과연 어떤 도움을 주는가?
올해 수능을 치른 뒤 수능, 더 나아가 대학 입시의 존재의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지금과 같은 서열화된 입시 위주 교육에서는 누군가가 성공하면 누군가가 패배할 수밖에 없다. 제 아무리 '공정'하게 줄을 세운다고, '능력 중심'으로 줄을 세운다고 하더라도 이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 줄의 맨 뒷자락에 있거나 아예 줄에서 밀려난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사람들의 존중감은 더욱 옅어질 수밖에 없다. 보다 평등한 한국 사회를 위해서, 서열화된 한국 입시교육의 철폐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올해 나와 함께 수능을 치른 49만 명의 수험생 모두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정말로 수고하셨다. 여러분이 받아들일 최종 점수가 무엇이든 간에, 이는 여러분의 삶을 대변하는 유일한 기준도, 여러분의 앞으로의 삶을 결정할 유일한 지표도 아니다. 대학입시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과는 다르게,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도 상명하복의 피라미드도 아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상은 그렇게 유지될 필요가 없다. 정해진 레일에서 벗어나, 더 넓게 보며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자.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평등과 공공성의 원리로 유지되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가자.


김나은
노동-정치-사람 회원, 정의당 당원, 청소년 활동가.
각주
- EBS, 교육 격차는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 | 다큐멘터리 K - 교육격차 1부 격차의 조건, https://www.youtube.com/watch?v=5qPfv9vZ438 [본문으로]
- 연합뉴스, 학생수 줄었는데 2조 더 썼다…작년 사교육비 29조2천억 '역대최고', https://www.yna.co.kr/view/AKR20250313063400530 [본문으로]
- 강창희·박윤수, 「사교육과 학생의 학업성취도 분포: 교육 불평등에 대한 사교육의 함의」, 『한국경제학회』, 2023, https://kiss.kstudy.com/Detail/Ar?key=3895179&utm_ [본문으로]
- 교육부,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 https://www.moe.go.kr/boardCnts/viewRenew.do?boardID=294&boardSeq=102822&lev=0&searchType=null&statusYN=W&page=1&s=moe&m=020402&opType=N [본문으로]
- 한국교육개발원, [보도] 대입 N수생 증가 실태 및 원인과 완화 방안, https://www.kedi.re.kr/khome/main/announce/selectBroadAnnounceForm.do?article_sq_no=36042&board_sq_no=3&selectTp=0&utm_ [본문으로]
- 한겨레, 수능 성적표 도착? 수능창시자 “이런 수능 할 필요 없어”,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975493.html?utm_ [본문으로]
- Money S, 초등학생이 고교 수학 공부… '초등 의대반' 전국 확산, https://www.moneys.co.kr/article/2024081408411368523 [본문으로]
-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 https://www.ohchr.org/en/human-rights/universal-declaration/translations/korean-hankuko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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