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가자를 향했던 두 번의 항해, 더 많은 국제연대를 향한 해초의 고민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한국본부(KFFP) 활동가들이 가자로 가는 구호선단에 탑승한 지 세 달이 지났다. 이들이 이스라엘군에 나포된 후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를 직접 언급하고, 귀국 후에는 언론보도와 인터뷰가 이어지며 이들의 항해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항해의 중심에 있던 해초(본명 김아현)를 《도모》가 만났다. 그는 자신의 항해를 어떻게 기억하고, 항해의 경험을 어떻게 이어나가려 하고 있을까.
- 먼저 《도모》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한국본부(KFFP)에서 활동하는 해초라고 합니다. 작년과 올해 가자로 가는 구호선단에 함께했고,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와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 항해를 다녀오신 지 벌써 세 달 가까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전반적으로 비슷한 일상의 연속인 것 같아요. 항해에 대해 멀리서 말로만 접했던 분들께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보내고 있고, 언론 기고나 인터뷰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가자지구의 점령과 학살이 끝나지 않는 이상 항해운동은 계속 이어질 텐데, 이를 한국에서 보다 넓은 대중운동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활동들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건강을 위해 한약도 챙겨먹고 있고요(웃음).
- 귀국 후 여러 국내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해초님이 왜 항해에 참여했는지는 많이 알려졌습니다. 반면 이번 항해운동 자체가 어떤 목표와 방식으로, 어떤 사람들이 함께 준비한 운동이었는지는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 같습니다. 참여하신 글로벌 가자 항해운동에 대해 조금 자세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팔레스타인 항해운동은 가자지구가 이스라엘로부터 봉쇄된 해인 2007년의1 다음 해인 2008년부터 거의 매년 진행중인 운동인데요, 2023년 10월 7일 이후 가자 집단학살이 본격화되며 그 규모가 더욱 커졌습니다. 작년만 해도 다섯 번의 항해 시도가 있었는데요, 그러면서 보다 명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운동 내에서 커졌습니다.
이러한 고민을 반영하듯 올 봄에 있었던 항해는 70여 척의 배와 44개국의 400여 활동가들이 함께한, 역대 가장 큰 규모로 이루어졌는데요. 정치인이나 직업 활동가들은 물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투쟁을 이어 나가고 있는 각국의 많은 분들이 참여하셨습니다. 아시아의 경우에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팔레스타인 의제에 익숙한 이슬람권 국가들은 물론, 베트남2, 일본3 등 다른 국가에서도 처음 참여자들을 보냈습니다.


- 중학생 시절 강정마을 연대활동을 통해 평화운동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되셨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4 그만큼 바다와 항해, 평화는 본인에게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 것 같습니다. 가자 항해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와 연관이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제가 어떤 모종의 전환적 계기 때문에 가자로 가야겠다 결심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데, 사실 저는 강정마을에서 활동할 때부터 팔레스타인 항해운동에 참여하고 싶었거든요. 강정마을 평화운동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면, 2016년에 제주해군기지가 완공된 이후에도 계속 그 규모가 확장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맞서는 주민들의 투쟁 역시 매일같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해군기지에 맞서는 투쟁이다 보니 당연히 '바다'와 관계가 밀접한데요, 그렇기에 오키나와나 하와이 등 다른 섬의 평화운동과 국제연대도 진행되고 있습니다.5 이런 국제연대 경험의 연장선상에서 지난 2023년에는 부산과 제주도를 시작해 일본, 대만 등을 돌며 동아시아 반전평화를 기원하는 항해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6 이런 상황에서 2025년 가자 항해운동이 보다 큰 규모로 진행될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에 함께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말씀대로 이번 항해는 역대 가장 큰 규모로 이루어졌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서구 국가들은 물론 브라질과 남아프리카 공화국 같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서도 노동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성소수자운동 등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기획 단계에서부터 함께 머리를 맞대고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항해의 경험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이번 항해는 규모가 커진 만큼, 가자로 가는 천 개의 매들린호(Thousand Madleens to Gaza, 이하 TMTG), 글로벌 수무드 함대(Global Sumud Flotilla, 이하 GSF), FFC(Freedom Flotilla Coalition, 자유선단연합)의 세 개 선단이 함께했습니다. 세 향해는 가자 향해라는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모였지만,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인적구성이나 조직문화에서 여러 차이점들이 있었어요.
우선 TMTG의 경우에는 주로 서구 출신의 젊은 활동가들이 중심이 된 선단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에너지가 넘치고, 대안적 공동체 지향적인 부분도 존재했죠. FFC는 TMTG에 비하면 보다 연배가 있는 서구 활동가들이 중심이었는데, 그만큼 원숙하면서도 자유로운 분위기는 조금 덜한 느낌이었어요. 마지막으로 GSF의 경우 다른 두 선단에 비하면 보다 수직적인 조직체계가 갖춰져 있지만, 동시에 세 선단 중 참여자의 인종과 국적, 나이가 가장 다양한 편이었어요. 여러모로 의미 있는 경험이었고 자세히 말하라면야 끝도 없이 말할 수 있겠지만, 결국 그렇게 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 하나의 희망을 가지고 모였다는 사실 자체가 감동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 비록 배에 직접 몸을 실은 건 해초와 동현, 승준 등 몇몇 활동가들이었지만, 한국에서도 많은 활동가들이 팔레스타인 항해 한국본부를 구성해 항해를 도왔습니다.7 항해를 후원해 준 한국 사회운동 단위들의 이름이 쓰여진 깃발을 배에 달고 항해하시기도 했고요.8 어떻게 보면 한국 사회운동의 적지 않은 부분이 본인과 함께 항해를 간 것과 다름없지 않나 싶은데요.
이번 항해에 대해 갑자기 튀어나온 '예외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저는 반대로 이번 항해가 앞서 소개드린 강정마을 투쟁을 포함해 군사주의·군국주의에 오랫동안 맞서 온 한국 사회 모든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국 시민사회 내부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의 맥락 속에 있는 운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이들의 활동이 있었기에 이번 항해 역시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도 이런 점들을 느꼈지만, 특히 이번 항해 때는 단순히 저나 몇몇 항해자 개인의 참여가 아니라 '한국 시민사회가 항해에 한국 활동가를 파견한다'는, 그래서 한국 시민사회 전체가 여기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싶었어요. 이러한 지향을 가시화하기 위한 방식 중 하나로 후원단체 깃발 달기를 선택했던 것이고요. 사실 집회나 시위에 단위별로 깃발을 들고 오는 게 한국 사회운동의 문화이기도 하잖아요. 이러한 문화를 해외 활동가들에게 소개하고, 동시에 한국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의 목소리를 함께 가져가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항해 준비 과정에서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한국본부 활동가분들이 처음부터 활동해 주셨는데요, 이분들 역시 팔레스타인평화연대나 플랫폼씨 등 여러 사회운동 단위들의 파견자들이 구성한 실무팀으로 이뤄진 조직이었어요. 작년 항해의 경우에는 강정마을 등지에서 저와 함께 활동했던 동지들이 중심이 되어 언론대응과 대정부 항의행동 등의 실무를 맡았었는데, 이번 항해에서는 그런 역할이 한국 시민사회 전체로 확장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죠. 그렇게 이번 항해를 한국 시민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 나가고 지지한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습니다.


- 말씀대로 이번 항해가 본인의 첫 항해는 아닙니다. 이미 작년 9월 항해를 다녀오셨다가 이번처럼 나포된 적이 있으신데요, 지난 항해와 이번 항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두 항해는 한국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에 있어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우선 앞서 말했듯, 이번 항해는 이전 항해보다 더 많은 한국 시민사회운동 내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내 보다 대중적인 운동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두 명의 활동가가 추가로 함께한 건 물론 이렇게 다양한 단위의 구성원들로 항해본부를 꾸렸던 것 자체가 성과가 아니었나 싶고요, 그만큼 보다 많은 당사자들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연루되었다는 감각을 갖게 되면서 대중적 공감도를 넓힐 수 있던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항해 자체에 집중해서 말씀해 보자면, 이번 항해는 규모가 크기도 했지만 동시에 중동 정세와 이스라엘의 위협으로 굉장히 위험했던 항해였습니다. 특히 이스라엘군에 의해 10명의 항해자들이 사망했던 2010년 항해9 이후로 가장 위험했던 항해라고 평가됩니다. 그만큼 파급력과 논란 모두 더 컸죠. 동시에 한편으로는 저희 항해자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력이 널리 알려지면서, 저희보다 더 오랜 시간 더 구금되고 더 심한 폭력을 경험하는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의 문제 역시 일정하게 가시화될 수 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녀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주변에서 만류하는 분들이 많기는 한데, 저는 가끔 저희 항해 관련 댓글을 찾아 읽고는 하거든요(웃음). 이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는데, 작년 항해 때는 팔레스타인 상황 자체에 대해 아예 알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다면 이번에는 저를 포함한 항해자들을 개인적으로 비난하는 경우에도 이번 학살과 전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분명히 인식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았어요. "그런 데를 왜 가느냐" "그런 일 겪을 줄 몰랐느냐"고 뭐라 하는데, 사실 이 말 자체가 가자에서 무언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고, 그 책임이 이스라엘 측에게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하는 말이잖아요? 그런 차원에서는 분명한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라도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인식하는 분들이 많아진 건 다행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과의 거리 때문인지 이를 단순히 먼 나라 일로만 여기거나, 관심 갖고 공감하더라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모르는 분들이 아직은 많은 것 같은데, 이 때문에 아직 자신의 삶에 와닿는 문제로 여기는 분들이 많은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억압이 한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범주에서 이루어지고, 이런 상황에서 외국뿐 아니라 한국 기업들 역시 팔레스타인 점령과 학살에 공모하게 되잖아요. 이런 공모가 보다 와닿을 때 보다 실천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차원에서 이번 항해는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귀국 후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두 번째 항해를 다녀오시며 "더 진지해지고 섬세해졌다"1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보면 본인도 이번 항해를 경험하며 많은 고민과 변화를 경험하신 것 같은데요.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아무래도 여권무효화 문제가 가장 컸죠. 이것 때문에 항해 준비 당시에도 여러 어려움을 겪었고, 나포된 이후에도 안전보장 차원에서 더 긴장되고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었어요. 사실 꼭 가자지구 건이 아니더라도 국제적 분쟁지역에서 자국민의 구호활동을 원천 차단하는 한국의 여권법이 해당 지역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을 원천 차단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여권법이 존재하는 이상 팔레스타인을 포함해 국제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지역에 대한 한국 사회의 연대와 지지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제 여권무효화를 계기로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스라엘 점령군으로부터 경험했던 국가폭력의 문제 역시 빼놓을 수 없는데요, 작년과 비교해 봐도 그 수위가 훨씬 컸습니다. 이번에는 혼자 간 게 아니라 동현과 승준이라는 동료들과 함께 간 상황이다 보니, 이들이 저와 함께 이스라엘 점령군의 폭력을 경험했다는 사실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 역시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해당 인터뷰에서 말했던 진지해지고 섬세해졌다는 표현도 이와 관련이 있는데요. 저도 이전에는 식민주의에 대해 책에서나 배웠지 그 폭력성을 직접 경험할 일은 잘 없었는데, 직접 이스라엘 식민 가해 권력과 마주하고 이들이 가하는 실재적, 구체적인 폭력을 경험하면서 이에 대해 더욱 성찰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여권취소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번 항해, 더 나아가 팔레스타인 문제를 대하는 이재명 정부의 태도에 대해 보다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4월 이재명 대통령은 SNS에 팔레스타인 수감자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폭력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냈습니다.11 본인과 다른 항해자들이 나포되었을 때는 이를 국무회의에서 직접 규탄하고 무려 '네타나후 체포영장 검토'까지 언급하며 대책을 마련하라 지시하기도 했습니다.12 이전 대통령들은 물론, 작년 항해 때의 정부 반응과도 사뭇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재명 대통령이 해당 트윗을 올렸을 때는 보안상의 이유로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지 않아서, 주변 친구들을 통해 이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 정도 되는 국가의 정상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서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많았던 기억도 납니다. 하지만 이를 보는 제 심정은 그것보다는 조금 복잡했는데요, 한국 대통령이 팔레스타인 의제를 언급한다는 것이 무의미하진 않겠지만, 주요 정치인의 SNS에서 한두 번 언급된다고 이 문제가 결코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습니다.
문제 자체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는 건 없으면서, 이미지 정치를 위해 이를 온라인상에서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트럼프와 같은 권위주의 정치인들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일종의 '좋은 거짓말' 같다고 생각했는데요, 사실 한국 시민사회가 그동안 팔레스타인과 연대해 온 것에 비하면 한국 정치는 이에 너무나도 관심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잖아요. 이재명 대통령과 한국 정부가 단순히 SNS 상에서의 한두 마디를 넘어, 실제 세상에서의 점령과 학살을 막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에 나서는 것이 더더욱 필요한 것 같습니다.

- 조금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항해를 떠나기 전인 올해 초 겨울 정의당에 입당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진보정당운동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영역에서 활동하셨는데, 항해 전 정의당 입당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입당 사실을 처음 공개한 건 2월 있었던 권영국 전 정의당 대표님의 출판기념회에 참여해서였는데요, 당시 대표님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계획이라는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었거든요. 마침 항해 기간과 지방선거 기간이 겹치기도 하니, 정의당 활동가 분들께 인사드릴 겸 저희 항해를 더 널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정의당이 제 항해를 지지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한편에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정치의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관심도가 미흡한 상황에서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을 항해운동에 보다 깊이 연루시키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정의당 입당이라는 선택은 그런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이해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 노동당·녹색당·정의당 등이 최근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한국 진보정치의 국제연대 전통은 유럽이나 남미 등 해외 다른 정당과 운동의 사례에 비교하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 진보정당운동이 팔레스타인 연대, 더 나아가 국제연대 전반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요?
개인적으로 한국 정치에 있어 늘 아쉬웠던 것 중 하나가, 내부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국내 문제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만약 제가 진보정당에서 활동을 이어 나간다면 국제연대 활동에 집중하면서 이러한 한국 정치의 일국적 경향성과는 차별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사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의 경우, 항해운동에 활동가들은 물론 진보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직접 참가하기도 했거든요.13 이처럼 유럽이나 다른 지역 진보·좌파정치의 경우 한국에 비해 국제연대적 경향성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정착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한국 진보정당들의 활동을 너무나도 응원하고, 특히 여러 투쟁현장에 꾸준히 관심 가지고 연대하며 큰 힘이 되어 주신 부분은 참 감사하지만, 동시에 이런 국제연대 문제에 대해 보다 관심을 가지고 전당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그동안 정의당과 한국 진보정당운동이 인권과 사회정의를 위해 지속해 온 국내 투쟁들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한다면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 냉정히 말해,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벗어난 국제문제에 대해 한국 사회 전반의 관심이 큰 편은 아닙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팔레스타인 문제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것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미얀마 등 아시아 곳곳의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연대하는 목소리들이 있었던 것을 보면, 식민지배와 독재에 맞서 투쟁한 한국 사회의 집단적 기억이 국제연대적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분명 있어 보입니다. 팔레스타인과 관련해서도 이와 같은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한국 사회 구성원 일반이 국제 문제에 관심을 크게 갖지 않는 데에는 한국 언론이 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부분이 크다고 생각하는데요, 바꿔 말하면 한국 시민사회가 국제연대적 관점을 가지고 이를 제대로 전달한다면 충분한 파급력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련해서도 여러모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만 앞서 말했듯 여기에 어떻게 연대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 많은 상황인데, 사회운동이 이들을 위한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팔레스타인뿐 아니라 말씀해 주신 미얀마와 같이 억압을 경험하고 있는 지역이 세계 곳곳에 많지 않습니까. 동시에 한국 사회 내부에도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억압적 현장들이 있고요. 말씀해 주신 대로 한국 현대사의 투쟁과 연대의 기억을 바탕으로 국내외 억압의 현장을 연결짓기 위한 고민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나 싶은데요,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이 이를 위한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인터뷰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으니, 조금 개인적인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오는 27일에는 여권 복구 행정소송 선고가 있고, 2학기에는 한예종 복학도 예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작가들과 함께 김근태 기념 전시관에서 공동전시도 진행 중이고요.14 활동가로서도, 한 개인으로서도 하나의 분기점이 될 만한 시점인 것 같은데요. 앞으로의 삶에서 평화운동과 팔레스타인 연대활동을 어떻게 이어 가려 하십니까?
앞서 말씀드렸듯, 한국 시민사회의 국제연대를 가로막는 여권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운동에 몰두하고 싶습니다. 또한 영상과 영화를 전공한 미술인으로서 제가 생각하는 이러한 고민과 가치들을 예술 속에 담아내는 활동에도 전념할 계획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항해에서 얻었던 경험을 보다 넓고 대중적인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으로 확장시키는 작업을 이어나가게 될 것 같습니다.

-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인터뷰를 읽을 한국의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가들, 그리고 어쩌면 이 인터뷰를 읽게 될지도 모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우선은 팔레스타인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올해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식민지배가 진행된 지 78년이 되는데요,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항을 이어나가고 계시잖아요. 인티파다 때를 보면 어린아이들조차 이스라엘군에게 돌을 던질 정도로 이러한 저항의식이 민중 전체에 깊게 스며들어 있고요.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공동체 단위에서 자신의 땅, 자신의 문화를 지켜 나가는 저항의 지속성에 팔레스타인의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가다가 팔레스타인이 정말로 해방되겠느냐고 묻는 분들이 계신데, 저는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실제로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팔레스타인의 삶, 팔레스타인의 일상 속 굽히지 않는 에너지가 제게 그런 확신을 주는 것 같습니다. 사실 팔레스타인 연대 하면 우리가 팔레스타인을 위해 주는 것만 생각하는데, 저는 반대로 연대자들이 팔레스타인에게 기대고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얻어가는 것도 적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동시에 이러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으로서의 삶'이 세계의 다른 억압받는 이들에게 주는 영감이 결코 적다고 말할 수 없죠. 비록 가시화되지 않을지언정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자본주의가 낳은 억압과 지배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한국에 사는 우리도 이로부터 배울 점이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본 인터뷰가 진행된 지 이틀 후, 서울행정법원은 해초가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낸 여권 반납 명령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인권과 국제법이라는 인류 보편적 원칙이 아니라 외교부의 보신적이고 편의주의적인 행정조치의 손을 들어 준 유감스러운 판결이었다. 판결 이후 기자회견에서 해초는 해당 판결에 굴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지, 어떤 세상으로 나야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해초와 향해자들을 포함, 한국에서 팔레스타인에 닿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김원
동국대학교 맑스철학연구회 전 회장, 전환 국제연대팀장.
동국대학교와 고양시, 대학원생노조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넓고 멀리 보는 이론과 구체적인 공간에서의 실천을 겸비한 운동을 지향한다.
각주
- 위키피디아(영문판), Blockade of the Gaza Strip https://en.wikipedia.org/wiki/Blockade_of_the_Gaza_Strip [본문으로]
- Al Jazeera, Vietnamese activist Bao Ngoc places rare national spotlight on Gaza, https://www.aljazeera.com/news/2026/7/16/vietnamese-activist-places-rare-national-spotlight-on-gazas-suffering [본문으로]
- 週刊金曜日,イスラエル軍の襲撃は「海賊行為」 日本人船長、緊迫の6時間を報告, https://www.kinyobi.co.jp/kinyobinews/2026/06/25/antena-1760/?utm [본문으로]
- 오마이뉴스,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섬으로의 항해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24557 [본문으로]
- 참여연대, [연속기고 ②] 강정 평화운동은 국제연대를 통해 든든해진다 https://peoplepower21.org/peace/2015130 [본문으로]
- 경향신문, 동아시아 반전·평화 항해 프로젝트 ‘공평해’ 부산 도착···8일 대마도로 출항 https://www.khan.co.kr/article/202306061213001 [본문으로]
- 오마이뉴스, '왜 가냐' 질문에 답합니다, 구호선단 지탱한 '육지 활동가들'의 호소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45594 [본문으로]
- 인스타그램 STRASAFFICA* https://www.instagram.com/p/DYZIU4wCAgQ/?igsi=cTY2eWVjcGNtOHpr [본문으로]
- 위키피디아(영문판), 2010 Gaza flotilla raid, https://en.wikipedia.org/wiki/2010_Gaza_flotilla_raid [본문으로]
- 한겨레21, 해초 "고립된 땅으로의 항해, 내가 아는 유일한 방식"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9522.html [본문으로]
- 이재명 X(트위터) https://x.com/Jaemyung_Lee/status/2042388873570107631 [본문으로]
- 연합뉴스, 이 대통령, 구호선단 나포 강력 비판…"네타냐후 체포영장 검토" https://www.yna.co.kr/view/MYH20260520020100038 [본문으로]
- Middle East Monitor, France investigates alleged torture of French MP and Gaza flotilla participants by Israel https://www.middleeastmonitor.com/20260723-france-investigates-alleged-torture-of-french-mp-and-gaza-flotilla-participants-by-israel/ [본문으로]
- 김근태기념도서관, 《함께 있다는 것을 전해줄 말들》 https://www.geuntae.co.kr/Exhibit_Current/view/23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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