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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독재와 침공에 맞서는 한국의 이란 디아스포라, 시아바시 사파리 교수를 만나다 (1부)

by Domoleft 2026. 3. 19.

[인터뷰] 독재와 침공에 맞서는 한국의 이란 디아스포라, 시아바시 사파리 교수를 만나다 (1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이 날로 그 강도를 높여 가고 있다. 한편 대규모 시위로 위기에 처했던 이란 신정 체제 역시 침공으로 인해 내부적 결속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많은 지정학적 분석들 사이,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찾아내야 할 핵심은 무엇일까? 재한 이란계 디아스포라로서 중동 문제에 대한 연구자이자 반전운동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시아바시 사파리 교수가 바라보는 제국주의 침공과 오늘날의 이란,  《도모》가 인터뷰했다.


《도모》와 인터뷰하는 시아바시 사파리 교수

 

- 먼저 《도모》 독자들을 위한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올해로 10년째 서아시아언어문명전공 교수를 맡고 있는 시아바시 사파리(Siavash Saffari)라고 합니다. 서울대에 오기 전에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중동학 박사후연구과정을 밟았고, 앨버타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중동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 지난 3일 있던 이란 침공 규탄 기자회견[각주:1]에서 이란계 캐나다인 이민자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는 1980년대 이란에서 태어났고 1990년대 후반 캐나다로 이민을 갔습니다. 덕분에 성장기의 대부분을 이란에서 보냈는데, 여전히 제 삶에 있어 굉장히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캐나다에 온 이후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거대한 이란인 공동체가 있는 벤쿠버에서 보냈는데, 한국인 공동체 바로 옆에 있어 한국인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굉장히 정치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랐는데요, 친척 중 샤 왕정 체제와 이슬람 공화국 체제 모두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희 가족을 포함한 많은 분들이 탄압을 피해 해외로 망명을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어머니를 포함해 외가 쪽 많은 가족이 여전히 테헤란에서 살고 계신데요, 그 분들과도 여전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이 제 삶에 여러모로 많은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3월 3일 미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미국의 이란 침공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파리 교수. 출처: 오마이뉴스

 

- 말씀해 주신 이란과 캐나다 사이의 중간적·교차적 정체성이 연구 활동에도 영향을 주었나요?

 

물론이죠. 우리의 개인적 삶의 경험은 우리의 정치적 선택이나 학문, 예술활동 모두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으니까요. 저는 2001년에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그리 훌륭한 학생이 못 되었습니다. 아직은 인생에서 뭘 해야 할지 스스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예술사부터 영문학, 컴퓨터과학까지 온갖 종류의 수업을 잡다하게 들었죠(웃음). 그러다가 그 해 9.11 테러가 일어나고 조지 W. 부시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연달아 침공하며 제 삶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부시가 이란을 '악의 축'이라 부르며 공공연히 침공을 위협하던 때도 이 때였습니다. 변화하는 국제정치 환경 속에서 정치와 역사, 그 중에서도 제가 나고 자란 중동의 정치와 역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습니다.

 

당시 북미에는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혐오) 정서가 매우 만연했습니다. 길거리에서 무슬림 이민자들이 폭행당하는 경우도 많았고, 심지어 교수들이 수업 중에 "무슬림들은 민주주의를 이해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식의 말을 공공연히 하기도 했죠. 이 때문에 이슬람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 깊이 숙고하기 시작했고, 이는 지금도 중동 정치에 대한 제 연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당시 캐나다에서는 중동 참전자들 중 희생자가 늘어나며 반전 운동이 대두되었는데, 해당 운동에 적극 참여한 것 역시 반전운동가로서 저의 경험에 있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2003년 2월 15일 캐나다의 이라크 전쟁 반전 시위. 출처: The Spring springmag.ca

 

- 본격적으로 현 전쟁에 관련해 질문드리고자 합니다. 미국은 전쟁 당시 속전속결로 이란 정권을 전복하고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거의 2주가 다 되어 가는(해당 인터뷰는 3월 13일에 진행되었다: 편집자 주) 지금도 전쟁은 진행 중입니다. 이란 정권의 항전 의지 역시 나날히 강해지고 있는데요, 앞으로 전황이 어떻게 변화하실 것이라고 예상하시나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쉽사리 예측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번 전쟁에 대한 미국의 전략이 대단히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이란의 핵개발 능력을 제거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가 다음 날에는 이란 해군 작전 능력 파괴가 목표라고 말하는 등 일관된 계획이 부재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위 '레짐 체인지' 이야기가 자주 나오지만, 이를 정확히 어떻게 이루겠다는 건지, 이란 정권을 어떻게 굴복시키겠다는 건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점도 없어 보입니다. 여기에 오래 전부터 이슬람 공화국의 힘을 약화시키는 게 가장 큰 목표였던 이스라엘의 계획까지 얽히면 문제는 대단히 복잡해집니다.

 

말씀대로 이란의 반격 능력을 크게 과소평가했던 것 역시 전쟁이 수렁에 빠지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란이 이번 전쟁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력한 것도 아닙니다. 최소 6개월 간 이스라엘과 중동 전역의 미국 자산에 대한 공격을 이어나갈 능력이 있고, 아직까지 사용하지 않은 비축 무기량도 많습니다. 여기에 미국이 전황을 악화시키면 자신들도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설치하겠다[각주:2] 위협하는 등 확전마저 불사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이 자신들이 목표치로 제시했던 그 어느 것도 온전히 성취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는 크나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 린지 그레이엄 미국 상원의원이 만약 전쟁이 몇 주 더 길어질 경우 이란에 지상군을 파병하는 것을 불사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는데요[각주:3], 그만큼 현재 미국이 여러모로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는 발언이었습니다. 현재로서는 미국이 보다 깊은 전쟁의 수령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을 마땅한 방도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3월 3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이란 침공을 옹호하는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 출처: POLITICO

 

- 한편 이란 정권이 이번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일반적인 주류 미디어에서는 이들을 단순히 종교적 광신에 찌든 미치광이 정도로 취급하며 이들의 전략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데요, 이를 넘어서는 이해가 가능할지 궁금합니다. 이슬람 공화국은 이번 전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나요?

 

우선 이것부터 분명히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현 이슬람 공화국은 매우 권위주의적인 신정 체제입니다. 자국민, 특히 여성의 권리를 강력히 억압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후퇴시키는 신자유주의적 정책 역시 여럿 추진했습니다.[각주:4]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투옥과 고문이 일상적인 것은 물론이고요. 현 이란 정권의 이러한 억압적인 면모가 비판받아야 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슬람 공화국을 단순히 '비이성적 행위자'로 악마화하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이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들이 처한 지정학적 리스크를 이해하는 방식이 있고, 이에 대한 나름의 대책 역시 그동안 마련해 왔습니다. 실제로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반미 노선과 별개로, 지난 47년 간 이슬람 공화국은 여러 차례 미국에 대해 실용적인 자세를 취하며 이들과 협력해 왔습니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에는 미국의 동맹세력이던 북부동맹을 후원하며 임시정부 건설을 지원했고,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에도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침공의 원흉이던 사담 후세인 정권의 붕괴를 묵인했습니다.[각주:5]

 

2010년대의 대(對) IS 군사작전 당시에도 미국은 이란의 주요 파트너였습니다. 2020년 트럼프 1기 행정부에 의해 암살당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이 해당 협력의 실무를 맡았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각주:6] 물론 그럼에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레이건 정권의 후세인 지원이나 부시의 '악의 축' 발언에서 보여지듯 미국과 이란이 서로 오랜 기간 적대관계를 이어 온 것 역시 엄연한 사실입니다. 이에 이슬람 공화국은 자강을 내세우며 미국에 비해 한참 부족한 정규군 병력의 대안으로 미사일과 드론 등 비대칭 전력에 투자하고,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예멘의 후티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아우르는 중동 내 동맹세력 구축에 힘써 왔습니다. 미국의 공격이 이어지더라도 이에 버티기 위한 만반의 태세를 갖춘 거죠.

2020년 암살당한 가셈 솔레이마니 전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의 사진을 들고 있는 테헤란의 반미 시위자. 출처: Wana News Agency(로이터)

 

요점은 이란 정권의 비민주성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이들이 이번 전쟁을 스스로의 존재론적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과거 8년 간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체득한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근본적 위기의식이 있고, 이번 전쟁은 이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많은 이들이 이번 전쟁에 대해 놀랐던 것은, 트럼프가 그동안 스스로 고립주의자를 자처하며 이전 대통령들의 대외개입을 비판하는 노선을 취해 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난 1월 베네수엘라 침공까지만 해도 트럼프가 먼로 독트린을 본따 세계 다른 곳에서 발길을 떼는 대신 라틴아메리카에 집중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는데요, 이런 예상을 깨고 그가 역대 가장 파괴적인 방식으로 중동에서의 침략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요?

 

크게 세 가지 점을 짚고 싶습니다. 우선 첫째,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의 성향을 '반전주의'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마가의 핵심은 결국 '아메리카 퍼스트'이고, 만약 미국의 국익과 이미지를 해치지 않고, 그러니까 막대한 예산을 들이지 않고 많은 미군의 희생을 낳지 않는 방식으로 전쟁을 진행한다면 이들은 언제든지 이를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지난 베네수엘라 침공이 대표적인 예시겠죠. 현재 미국 사회에서 이번 전쟁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큰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지지층 내에서는 여전히 전쟁에 대한 지지도가 압도적입니다.[각주:7]

미국의 이란에 대한 군사 행동과 지상군 파병 여부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한 여론조사. 출처: 퀴니피악 대학교

 

둘째, 트럼프의 말과 행동을 구분해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트럼프가 2016년 공화당 경선에서 과거 정권의 전쟁들을 비판하고 2024년 대선 당시에도 "카말라 해리스가 당선되면 3차 세게대전이 일어날 것"이라며[각주:8] 자칭 '평화주의 대통령'을 내세운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 임기나 지금이나 트럼프 정부의 실제 정책은 평화주의와 거리가 멀죠. 당장 이번 두 번째 임기부터 예멘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으로 시작했고[각주:9] 말씀하신 대로 올해 초에도 베네수엘라를 침공해서 마두로 대통령을 불법적으로 납치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을 포함한 중동 전역에서의 전쟁 지원 역시 변함없습니다. 따라서 선거 때의 선전과는 별개로, 실제 대통령 트럼프는 대단히 호전적인 인물로 이해하는 게 옳습니다.

 

마지막은 이번 전쟁을 보는 트럼프의 관점에 대해서입니다. 트럼프가 이번 이란 침공을 베네수엘라와 같이 속전속결로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보도가 여럿 있었습니다.[각주:10] 사우디나 아랍에미리트(UAE) 같은 미국의 걸프 동맹국들에도 전쟁이 3~4일이면 끝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합니다. 그러나 보다시피 이는 그의 오판이었죠. 이란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고, 미군 사망자와 자산 파괴도 나날이 늘어 가고 있습니다. 전쟁이 지속된다면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 역시 늘어만 갈 테고 결국 경제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전쟁을 신속히 끝낼 것"이라는 트럼프의 호언장담을 믿었던 그의 지지층 사이에서도 동요가 일 것이고, 트럼프도 종전 압박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 마침 올해는 미국에서 중간선거가 있는 해입니다. 이번 전쟁이 미국 정치, 더 나아가 미국 사회 전반에 과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이 끼쳤던 것과 비슷한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베네수엘라 침공과 연이은 마두로 납치의 경우 민주당 지지층의 폭넓은 반발을 샀지만, 마가 지지층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습니다. 워낙 속전속결로 이루어져 '부정적 여파'라고 할 만한 것이 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슷하게 전쟁의 부정적 여파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지금 선거가 치러진다면 마가 지지층들은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할 겁니다. 하지만 중간선거는 11월이고, 그 이전인 7~8월에는 주요 후보들의 경선이 몰려 있습니다. 만약 전쟁이 이때까지 지속되거나 종결되더라도 유가 및 물가 상승 등의 부정적인 영향이 현재진행형이라면, 아무래도 트럼프와 공화당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겁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이후 지지 여론조사. 공화당 지지층의 과반 이상이 침공에 찬성했다. 출처: Data for Progress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에도 초반에는 공화당 지지자, 민주당 지지자 가릴 것 없이 전쟁에 대한 지지가 컸지만, 전쟁이 장기화되고 그 피해가 늘어나자 2008년에 전쟁에 반대했던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2016년 대선에서는 전쟁 지지 여부로 타 공화당 후보들을 비판했던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죠. 10년 동안 두 명의 대통령의 탄생에 기여할 정도로 이라크 전쟁이 미국인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쳤던 것입니다.

 

단순히 선거를 넘어 미국인들의 세계관 자체에도 장기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가 지지층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이런 식의 '영원한 전쟁'에 회의감을 품고 세계 속 미국의 위치에 대해 숙고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겠죠. 혹시라도 이번 전쟁을 통해 미국이 중동에서 자신의 패권적 위치를 상실하기라도 한다면, 그 여파는 더욱 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이번 이란 침공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쟁, 더 나아가 미국-이란 관계 전반에서 이스라엘의 역할에 대해 보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우선은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국부로 여겨지는 테오도어 헤르츨과 같은 초기 시오니스트들은 중동에 건설될 유대인 국가가 동양의 '야만인'들에 맞선 서구 '문명인' 공동체의 최전선이라는 식의 묘사를 거리낌 없이 했습니다.[각주:11] 이는 비단 서방 주요국들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건국 당시부터 스스로를 서구 식민주의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미국은 이스라엘을 발명해야만 했을 것"[각주:12]이라는 조 바이든의 유명한 발언이 대표적이죠. 미 제국주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국부' 테오도어 헤르츨. 출처: The Economist

 

건국 이후 서구 식민주의와 미국 제국주의의 중동 전초기지로서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지상과제는 중동에서 서구의 패권을 방해하는 역내 국가들의 힘을 제거하는 일이었습니다. 과거 냉전 시절 이스라엘의 핵심 표적은 아랍민족주의와 아랍사회주의를 내세우는 이집트의 나세르 정권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나세르를 '중동의 히틀러'로 묘사하는 흑색선전을 이어가며 미국과 유럽이 나세르의 자주-비동맹 노선을 지지하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나세르 사후 이집트에 친서방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새 표적이 되었습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이후에는 이란이 주요 표적이 되었고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것은,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지정학적 대립이 1979년 혁명 이후 갑자기 탄생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 이란은 다른 중동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유엔에서 이에 반대표를 행사했습니다.[각주:13] 1953년 미국 CIA가 지원한 군사 쿠데타로 민족주의적 모사데크 정권이 물러나고 친미 성향의 팔라비 절대왕정 체제가 들어선 이후에는 물밑에서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여전히 미수교국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팔라비 왕조 시기의 이란과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친미 핵심 맹주국'으로서의 위치를 두고 서로 경쟁하는 사이였습니다. 여기에 유대인과 페르시아인 사이의 역사 감정에서 비롯된 민족감정 역시 중요하게 작용했죠. 이런 경쟁의식이 작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양국의 핵개발 프로젝트입니다. 1970년대 당시 이란의 샤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는 이스라엘의 핵 보유에 강한 우려의 시선을 보냈는데, 이는 이를 중동의 패권이 이스라엘로 넘어가는 신호탄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란은 비밀리에 핵개발을 검토했는데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핵개발에 대한 위기의식이 강하게 작용하였다고 평가됩니다.[각주:14]

좌측부터: 이스라엘의 핵개발을 폭로한 선데이 타임즈 기사 / 프랑스와 팔라비 왕조의 원자로 거래를 다룬 뉴욕타임즈 기사. 출처: The Times / The New York Times

 

아이러니하게도 이란-이스라엘 관계가 다소나마 개선된 것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였습니다. 당시 양국은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라는 공통의 적이 있었고,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에도 비밀리에 군사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이란과 이스라엘 관계가 지금처럼 악화된 것은 1991년 걸프 전쟁 이후 이라크가 중동의 패자 위치를 상실하고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중동의 패권국으로 본격적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이후입니다.

 

이 때 이란-이스라엘의 적대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현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를 비롯한 이스라엘 우익입니다. 네타냐후는 자신이 40년 넘게 이란의 위험성을 경고해 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는 했는데[각주:15] 때로는 단순한 반이란 선전을 넘어 미국 정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위한 로비 활동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오바마의 경우 2015년 이란과의 핵 협상 당시 이를 저지시키려는 이스라엘 로비 세력의 강한 압박을 받기도 했죠.[각주:16] 어쩌면 이번 전쟁과 트럼프를 통해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지정학적 꿈을 드디어 성취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학교와 병원에 폭격이 이어지고, 사망자 중 여성과 아이들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가자의 참상이 연상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전쟁과 가자 집단학살을 어떻게 연관지어 바라볼 수 있을까요.

 

앞서 설명했듯, 이번 전쟁은 미 제국주의의 전초기지로서 이스라엘이 중동 전역을 무대로 펼치는 식민주의 계획의 일환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 둘은 연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서의 아파르트헤이트와 집단학살을 넘어 중동 곳곳에서 점령과 침공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레바논에 대한 반복된 군사개입이 대표적입니다. 이스라엘은 1978년 레바논 내전 개입을 시작으로 2006년, 2024년 그리고 이번까지 여러 차례 레바논을 침공해 왔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스라엘군은 베이루트를 포함한 레바논 전역에 폭격을 이어 나가고 있는데요, 몇몇 지역의 사진은 가자와 구별이 힘들 정도입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제 테헤란에 사는 저희 어머니와 통화했는데요, 매일같이 머리 위에서 폭탄과 미사일, 드론 소리가 들린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는 2023년 10월 7일 이후 가자지구 주민들의 묘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미 이스라엘에서는 이번 전쟁 이전부터 이란 이후 카타르나 튀르키예를 다음 주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속속 나오고 있었습니다.[각주:17] 중동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행보가 결코 이란이 끝이 아님을, 그들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중동의 모습을 만들기 전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2부에서 계속)

 


김원

동국대학교 맑스철학연구회 전 회장, 전환 국제연대팀장.

동국대학교와 고양시, 대학원생노조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넓고 멀리 보는 이론과 구체적인 공간에서의 실천을 겸비한 운동을 지향한다.


각주

  1. 오마이뉴스, 미대사관 앞 피투성이 책상... "미국·이스라엘의 끝없는 거짓말",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11507 [본문으로]
  2. 연합뉴스, 호르무즈에 기뢰 깔렸나…미 "이란, 소형선으로 설치 시작"(종합) https://www.yna.co.kr/view/AKR20260313056951009 [본문으로]
  3. Politico, MAGA war skeptics rage over Lindsey Graham https://www.politico.com/news/2026/03/10/lindsey-graham-iran-war-backlash-00821326 [본문으로]
  4. PPE Sydney, What Can Neoliberalism Tell Us About The Iranian State? https://www.ppesydney.net/what-can-neoliberalism-tell-us-about-the-iranian-state/ [본문으로]
  5. MepaNews, How did Iran cooperate with the US in the invasion of Afghanistan and Iraq? https://www.mepanews.com/iran-us-coop-68922h.htm [본문으로]
  6. Bilveer Singh, 「Implications of Soleimani’s Killing for South and Southeast Asia」, 『Counter Terrorist Trends and Analyses』, Vol. 12, No. 2, 2020 [본문으로]
  7. Quinnipiac University Poll, U.S. Military Action Against Iran: Over Half Of Voters Oppose It, 74% Oppose Sending Ground Troops Into Iran, Quinnipiac University National Poll Finds; Vast Majority Expects The Conflict To Last Months Or More https://poll.qu.edu/poll-release?releaseid=3952  [본문으로]
  8. 경향신문, 트럼프 “해리스 당선되면 세계는 불타서 없어질 것” https://www.khan.co.kr/article/202410020820001 [본문으로]
  9. 중앙일보, 트럼프, 예멘 후티반군에 대규모 공습 명령…후티 "9명 사망"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20876 [본문으로]
  10. 한겨레, 트럼프 ‘이란전 속전속결’ 오판…시진핑과 회담 연기 ‘도미노 파장’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1249730.html [본문으로]
  11. A-Shabaka, The Continuation of Zionist Settler Colonialism, https://al-shabaka.org/commentaries/the-continuation-of-zionist-settler-colonialism/ [본문으로]
  12. C-SPAN, User Clip: Joe Biden- USA would have to invent an Israel, https://www.c-span.org/clip/senate-highlight/user-clip-joe-biden-usa-would-have-to-invent-an-israel/4964168 [본문으로]
  13. SpecialEurasia, Iran’s Backing of Palestine: a Historical and Ideological Convergence, https://www.specialeurasia.com/2023/12/18/irans-backing-of-palestine/ [본문으로]
  14. The National Security Archive, U.S.-Iran Nuclear Negotiations in 1970s Featured Shah's Nationalism and U.S. Weapons Worries, https://nsarchive2.gwu.edu/NSAEBB/NSAEBB267/  [본문으로]
  15. The Times of Israel, Hitting back at Lapid, Netanyahu says he spent 40 years warning of Iranian threat but was always ‘met with ridicule’, https://www.timesofisrael.com/liveblog_entry/hitting-back-at-lapid-netanyahu-says-he-spent-40-years-warning-of-iranian-threat-but-was-always-met-with-ridicule/ [본문으로]
  16. The New York Times, Fears of Lasting Rift as Obama Battles Pro-Israel Group on Iran, https://www.nytimes.com/2015/08/08/world/middleeast/fears-of-lasting-rift-as-obama-battles-pro-israel-group-on-iran.html [본문으로]
  17. Responsible Statecraft, After Israel's strike in Qatar, is Turkey next?, https://responsiblestatecraft.org/israel-turkey-2674029357/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