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의 말 (2026년 6월호)
우리는 패배하지 않는 종류의 꿈을 꾸죠


타인의 글을 편집하고 나의 일종의 정견이나 특정한 이슈에 대한 의견을 길게 늘여쓰는 일과는 별개로(그것이 쉽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편집장의 말을 매달 쓴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매체엔 목적성이 존재하겠지만, 상대적으로 아주 명백한 목적성이 존재하는 《도모》와 같은 매체는 조금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무얼 쓰든 어차피 '답정너'식의 글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번 호 편집장의 말은 아주 긴 글을 썼다가, 전부 지우고 뜯어고쳤다. 모두를 피곤케 하는 냉소와 조소, 조롱의 시대, 그리고 그런 것들로 점철된 선거를 불과 하루 앞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몇 단락을 써내려가다 보니 어느 순간 나 자신이 이미 그런 세상에 꽤 지쳐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치고 피곤한 티를 역력하게 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는 지치지 맙시다"라는 말을 한다면 도대체 어떤 설득력이 있을까. 그런 글은 안 쓰느니만 못하지 않을까. 그럴 바에야 이번 호는 굳이 편집장의 말을 쓸 필요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한 편의 영상을 봤다.
선거라는 것은 그에 관여된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노동이 투여되는 아주 총체적이며 집약적인 이벤트다. 과반이 넘는 득표로 당선되는 거대 정당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선본)에게도, 고작 몇백 표를 받고 냉혹한 현실정치의 벽 앞에 잠시 멈춰서는 군소 진보정당 후보의 선본에게도 그렇다. 한 번의 선거를 치른다는 것은 곧 그 과정에 함께한 모든 사람들 사이에 셀 수도 없이 많은 서사가 쌓여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D-2도, D+1도 아닌 D-1이라는 시점은 어쩌면 함께해 왔던 그 모든 서사를 한 번쯤 반추하기에 가장 적절한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모두가 이미 결과를 짐작하고 있지만 여전히 때로는 기대감으로, 때로는 걱정으로 전유되는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그렇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은 애매모호한 시점에 모든 사람들은 그간 걸어왔던 길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마치 눈 감았다 뜨면 지나갈 법한 하루라는 시간, 1이라는 숫자가 주는 그 모든 종류의 설렘과 떨림, 두려움과 걱정을 뒤로 하고. 이 글을 탈고하는 지금으로부터 불과 2시간 전 올라온 이 영상은 바로 내일로 다가온 6.3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녹색당 후보로 강서구의원 선거에 출마한 김유리 후보(라선거구 공항동, 방화1·2동) 선본이 올린 선거운동 기록영상이다.
나는 김유리 씨와 개인적으로 전혀 인연이 없다. 이 글을 읽고 이 영상을 틀어 보는 사람들 중에 많은 수도 아마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영상은 진짜 '답정너' 그 자체인 영상이다. 그렇지만 이왕 답이 정해져 있는 이야기를 할 거라면 최소한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낫다. 때때로 바보스러운 솔직함은 분명한 감동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신파극을 좋아하느냐고 욕해도 할 말은 없다. 영상의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미루와 Sick Jeff의 노래 〈언더독 찬가〉는 우리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패배하지 않는 종류의 꿈을 꾸죠
우리는 가시밭길 위에서도 춤을 추죠
우리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손을 맞잡았을 때 가장 커다랗죠
얼마 전 오래간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로부터 "너는 왜 아직도 그 당에 있냐"는 말을 들었다. 아마 말하자면 몇 시간을 떠들 수 있고, 수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언젠가는 좀 더 길게 해야 할 날이 다시 올지도 모른다. 다만 그때의 나는 그냥 그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글쎄, 아직도 굳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뭐든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 뭐든. 그게 뭐든 말이다.
독자적 진보정당의 당적을 갖고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로부터 하루가 지나면 예고된 패배를 맞이할 것이다. 어떤 핑계와 명분으로 위안을 삼더라도 패배는 항상 뼈아픈 일이라는 것을, 그들 중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크고 작은 패배들을 늘상 겪어 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씁쓸한 뒷맛을 삼키고 다시 일어서서 또 다시 선거에 도전하는 이유는 '패배하지 않는 종류의 꿈을 꾸기 때문'이라는 것임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 꿈을 꾸게 된 경위는, 그 꿈의 세세한 내용이 무엇인지는 모두에게 있어 다르겠지만, 어쨌든 '뭐든' 이유가 있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나.
이왕 답정너 같은 글을 쓰기로 한 마당에, 마지막으로 정말 뻔한 부탁을 하나 드리며 글을 닫는다. 모든 '언더독'들을 위하여, 소극(笑劇)의 쓴웃음이 진짜 웃음으로 바뀌는 세상을 위하여, 독자적 진보정치를 위하여, 그리고 패배하지 않는 종류의 꿈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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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영
전환 기관지 편집위원장이자 《도모》 편집장.
아마추어 디자이너 일도 가끔 한다.
여전히 사회운동과 진보정치가 만들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믿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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