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의 말 (2026년 1월호)
"나는 새해 첫 날이 싫다"


요즘 종종 그런 생각을 합니다.
'대전쟁과 위기의 시대에, 실존적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국가에서 시민성을 인정받는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마도 이런 생각을 전보다 더 많이 하게 된 것이, 오늘 《도모》1월호를 읽어 주시는 분들 중 저뿐만은 아니리라 믿습니다.
도모 1월호 뉴스레터 발송으로부터 불과 3일 전인 1월 3일,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를 침공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실비아 플로레스 영부인을 납치했습니다. 여전히 인명피해는 추산 중이지만 베네수엘라인과 마두로의 경호원으로 일하던 쿠바인들 중 80여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트럼프는 침공 다음날의 기자회견을 통해 "베네수엘라를 우리가 관리할 것이"라며 "미국의 석유회사들이 베네수엘라의 인프라를 재건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조지 부시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던 솔직하기 그지없는 자기고백, 민주주의든 뭐든 상관 없고 오직 석유와 자원만이 우리의 목적이라는 선언을 세계를 대상으로 행했다는 점에서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싶습니다.
트럼프가 세계에 던진 새해 선물은 본래도 유명무실했던, 그러나 여전히 최소한의 규칙으로 작동했던 국제법과 자유주의적 세계질서의 규범이 이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폭넓은 공포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대만을 침공하여 라이칭더 총통을 납치하든, 푸틴이 다시 한 번 키예프(키이우)에 특수부대를 보내 젤렌스키를 납치하든 상관 없어진 세상. 그럼에도 여전히 '강대국과의 외교관계'와 '자국 이익이 우선'임을 핑계로 제국주의의 부활을 규탄하지 못하는 서방세계의 - 한국을 포함한 - 주요 국가들. 단 한 번도 '자유민주주의' 아래의 국제관계가 호혜적이고 평등하다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에 동의해 본 적은 없었지만,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세계는 냉전 종식 이후 수십년간 써 왔던 기만의 가면마저 벗어던지는 시대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우리가 실존적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주장을 누군가는 반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전쟁 중인 국가다", "북한이 어제도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그것은 '전쟁 중'이라는 허위의식을 탑재하지 않는다면 결코 스스로의 정치를 정당화할 수 없는 자들의 주장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지금 한국을 정말 전쟁과 죽음의 위협에 가까워지도록 만드는 것은 그 허위의식입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베네수엘라와 똑같이 해야 한다'는 주장이, '중국인들을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근거하고 있는 논리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점점 더 어지러워지는 세계질서 속에 한국의 상황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연말을 뜨겁게 달군 것은 단연컨대 '쿠팡 사태'였습니다. '새벽배송 논쟁'으로 시작된 쿠팡 사태는 곧 역대급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겪으며 범국민적 분노를 불러왔습니다. 여론은 들끓고 있지만, 그러나 여전히 쿠팡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은 요원합니다. 지금 쿠팡의 문제는 단지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며 비난받는 김범석 씨 개인의 문제도, 개인정보를 유출한 개발자 개인의 문제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쿠팡의 문제는 플랫폼 공룡의 독과점 문제, 한국 사회의 노동 문제, 그리고 만연한 소비자주의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상징하는 난국과도 같습니다. 정치권은 그 사실을 모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문제들에 대한 본질적 해결책을 찾는 것보다는 쿠팡에 적당한 과징금을 물리는 선에서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 더욱 이익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화나고 또 두려운 오늘날의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아주 작지만 그런 세상의 질서에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단 하나의 희망입니다. 베네수엘라 침공 다음날인 1월 4일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 진보정당들과 시민사회는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제국주의의 부활에 반대함을 당당히 밝혔습니다. 쿠팡을 떠나자는 '탈팡' 운동은 비록 불매운동이 갖는 본질적 한계를 노정하고 있을지라도 실제 쿠팡의 영업에 그리 작지만은 않은 타격을 입히고 있습니다. 이런 운동들이 여전히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행동이 침공이 터지고, 혹은 쿠팡 사태가 터지고 나서 이에 대한 분노만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점점 더 혼란해지는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자유, 평등, 평화를 외쳐 온 끝나지 않는 우리 운동의 역사 속에 서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의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나는 세계 첫 날이 싫다"고 일갈합니다. 새해를 어떤 단절점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금융과 결산, 재테크를 위한 하나의 기점으로 받아들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태도를 그는 비판합니다. 이 태도는 오늘날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을 사고하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모를 읽는 분들 중 주식이나 코인의 새해 흐름에 집중하는 분이 그리 많지는 않겠습니다만, 그 어떤 운동도 새해를 기점으로 단절되거나 새롭게 시작되지 않는다는 사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운동과 이 시대에 실종된 가치들을 끊임없이 호명하는 태도라는 것. 올해를 시작하면서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올해도《도모》는 더 좋은 기사와 입장, 주장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뵙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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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영
전환 집행위원, <도모> 편집위원.
아마추어 디자이너 일도 가끔 한다.
여전히 사회운동과 진보정치가 만들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믿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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