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의 말 (2026년 5월호)
씁쓸한 인터내셔널과 빛나는 세계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이라면 다들 한 번쯤 들어 보셨을 법한,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로 시작하는 민중가요 〈인터내셔널가〉는 그 인지도에 비해 정작 한국의 집회·시위 현장에서 그리 많이 불리는 노래는 아닙니다. 보통 집회에서 팔뚝질을 하면서 이 노래를 부르게 되는 것은 1년에 단 한 번, 5월 1일의 노동절 대회(그리고 과거에는 그 전날의 4.30 노동절 전야제까지)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이 노래를 부를 때는 왠지 보통의 집회에서 민중가요를 부를 때와 조금 다른 느낌이 들곤 합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내가 여전히 국경을 뛰어넘어 면면히 이어져 오는 어떤 운동의 전통 가운데에 존재하는구나, 싶은 정도의 생각이라 할까요.
그 중에서도 이번 노동절에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은 또 좀 더 다른 느낌이리라 생각했습니다. 그건 이번 노동절이 '되찾은 노동절'이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의 5.16 쿠데타 이후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근로자의 날'을 5월 1일의 공식 명칭으로 정했으니 무려 63년 만에 본래의 이름을 되찾은 셈입니다. 이름이 그렇게 중요한가, 할지도 모르겠지만 여전히 '노동'이라는 단어가 경원시되고, '노동자성'이 무언가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되곤 하는 한국 사회에서 드디어 노동절이 정명(正名)을 되찾은 것은 단순히 기념일 하나의 이름이 바뀐 정도의 의미만은 아닐 겁니다. '근로(勤勞)'와 '노동(勞動)'의 의미적 차이는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테니 굳이 되짚지 않겠습니다.
실제로도 이번 노동절 대회에서 부른 인터내셔널가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상상했던 것과는 좀 다른 의미에서 그러했습니다. 한국 노동운동의 대표자라 할 수 있는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에 오기 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주최한 노동절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이 백날 투쟁과 파업만 하는 조직이 될 수는 없기에 그 자체를 그리 문제삼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모든 행위와 상황은 그것이 놓여 있는 맥락에 입각해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4월 20일 유명을 달리한 화물연대노조 故 서광석 열사의 죽음은 명백한 살인이었습니다. 그 살인의 주범은 교섭 책임 회피와 파업파괴로 화물노동자들의 생계를 정조준한 CU BGF와 그에 동조해 폭력진압을 일삼은 공권력이었지만, 한 노동자의 참혹한 죽음이 있고 나서조차 "노란봉투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즉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입장만을 되풀이하는 - 심지어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었던 - 고용노동부 장관과 그의 상관인 대통령은 '주범'은 아닐지언정 한 죽음의 방관자가 되고 있음은 명확합니다.
노동절 기념식에 참석한 대통령 앞에서도 '열사 정신'을 이야기하며 투쟁 중인 노동자들을 언급한 민주노총 위원장 개인의 진실성을 별로 의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서광석 열사가 생전 바랬고 그의 동지들이 지금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 '화물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여전히 그와는 몇 광년쯤 떨어져 있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는 장관과 대통령을 최소한 '되찾은 노동절'에 꼭 만나러 갔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노동절의 이름 하나 말고 과연 무엇을 '되찾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부르는 인터내셔널가는 꽤나 씁쓸했습니다.
한편으로 서광석 열사가 바랬던 노동자성의 인정이 오늘날의 사회에 있어(그리고 한국의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에 있어) 정말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교섭권을 갖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좀 더 많아진다' 정도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고용관계에 기반해 있는 한국의 복지체계에 그제야 비로소 편입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동자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노동자이지만 노동자가 아니고 사업자이지만 사업자가 아닌,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다시 볕 드는 곳으로 나와 괴리 없는 자아정체감을 만들어갈 수 있게끔 하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단순한 고용관계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 '시민성의 확장'에 다름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오늘의 세계가 여전히 빛을 잃지 않는 이유는 그 시민성의 확장을 아주 더디더라도 분명한 목적의식으로 삼아 이뤄나가고 있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퀭하기 그지없는 도시의 아스팔트 바닥에도 햇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작은 입자들이 존재하듯이, '비시민'과 '비국민' 따위 규정이 난무하는 이 사회에도 스스로 반짝반짝 빛나며 자신의 존재를 결코 지우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법적으로 관계를 인정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그렇고, 철저히 유린된 장애인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이 그렇고, 난개발과 쓰레기가 무너뜨리는 지역의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주체로서 나서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런 일상 속의, 아주 사소하지만 분명히 빛나는 경험들 하나하나가 모여서 우리 사회의 시민성은 지금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확장되고 있다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전제한다면, 여전히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故 서광석 열사와 그 동지들의 염원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한번 더 낙관해 볼까 합니다. 씁쓸한 인터내셔널과 빛나는 세계가 공존하는 5월 초의 봄날 아스팔트 바닥을 쳐다보며 《도모》 2026년 5월호를 독자 여러분께 보내드립니다.
다가오는 6월 3일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입니다. 도대체 무슨 1년에 한 번씩 선거가 돌아오는가 싶기는 하지만, 아마도 다음 호는 지방선거 특집호가 준비되지 않을까 합니다.
도모는 다음 호에도 좋은 기사로 여러분을 찾아뵙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도영
전환 기관지 편집위원장이자 《도모》 편집장.
아마추어 디자이너 일도 가끔 한다.
여전히 사회운동과 진보정치가 만들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믿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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