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의 말 (2026년 4월호)
꽃 피는 세계를 기다리며


역시 춘삼월인지, 환절기가 뭔지, 감기에 걸려서 근 며칠 동안 고생했습니다. 하필 감기 기간이 마감과 겹쳐서 참 힘들었지만, 이번 달에도 어김없이《도모》 2026년 4월호를 여러분께 보내드립니다.
이번 달 도모는 크게 두 가지를 다루고자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것과 조금은 멀어 보이는 것 하나씩. 가까운 것은 '새학기'입니다. 매월 1일(혹은 그에 가장 가까운 평일)에 발행하는 웹진의 특성상 3월에 작성한 기사들이 4월 초에 여러분을 찾아뵙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만, 일종의 '개강 특집'이라고 보아 주셔도 좋겠습니다. 이 중 메인 타이틀은 '2026년의 학생운동'입니다. 학생운동의 시대가 끝났다는 말은 모든 세대에서 나오지만, 그 말이 여전히 나오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아직도 누군가가 학생운동의 깃발을 내리지 않고 있음을 방증합니다. 어느 때보다 탈정치화되고 파편화된 대학사회에서 여전히 진보와 평등을 목 놓아 외치고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이번 호 기획기사에서 그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학생뿐 아니라 학내 다양한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고, 더불어 '개강'은 동시에 '개학'이기도 하기에 청소년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한편 이보다 조금은 멀어 보이는,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또 하나의 타이틀은 '평화'입니다. 끔찍하고 두려운 전쟁의 시대 한복판을 우리가 걷고 있다는 것을, 이 글을 읽으실 분들에게는 굳이 부연하여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믿습니다. 그런 시대 속에도 묵묵히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외세의 제국주의도 국내의 전체주의도 아닌 진짜 평등과 평화의 땅을 만들고자 이역만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이란인이 있습니다. 주한미군 주둔 80년, 탱크와 전투기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늘 이 땅을 짓누르는 전쟁의 역사 속에서 동원당해 왔음에도 결코 침묵하지 않고자 하는 미군 '위안부' 피해자 여성들도 있습니다. 냉소와 무관심 속에서도 팔레스타인과 이란의 민중과 늘 연대하고자 애쓰는 2026년의 학생운동가들도 이 논의에서 빼놓을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한편 늘 '오타쿠'임을 자처하고 이번 달에도 또 조립하지 못할 두 상자의 건담 프라모델을 사 버린 제게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것은 서브컬처와 평화, 서브컬처와 사회운동이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 준 일본의 새로운 반전평화운동이었습니다. 한국에 왔을 때 잠시 만났던 것을 계기로 친해진 고토 씨는 후쿠오카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인권변호사입니다. 물론 어쩌면 저보다 더 건담 시리즈를 사랑하는 중증 건덕후(건담 오타쿠)이기도 합니다. 그는 다카이치 총리의 호르무즈 파병을 반대하는 최근 일본의 반전평화운동을 소개하며 이렇게 전합니다.
"3월 28일에는 '오타쿠'가 주도하는 반전 시위가 일어나,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아이돌, 철도 등의 서브컬처에 열광하는 3,800여명의 마니아(오타쿠)들이 국회 앞에 모였다. 이 시위에서는 '최애가 있는 세계를 전쟁터로 만들지 말라'는 슬로건 아래, 최애의 일러스트를 내걸거나 코스프레를 한 오타쿠들이 오타쿠 문화를 지키기 위해 일어났다."
"최애가 있는 세계를 전쟁터로 만들지 말라"
조금은 우습고 조금은 오글거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말이 그 어떤 말보다도 지금 필요한 평화의 본질을 가장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서로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이해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토미노 요시유키의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가 있는 세계를, 중증 '밀덕'이자 좌익으로서 자신의 자기모순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세상을 그려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있는 세계를 저는 원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긍정하고 전쟁의지를 고양시키는, 불평등과 착취가 기본값이 된 세계에서 그런 작품들은 결코 나올 수 없을 텝니다.
어젯밤에 마감을 위해 집 앞의 24시 카페에서 열심히 글들을 편집하다가 담배를 한 대 태우러 나와서 마주친 것은 벌써 벚꽃이 피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었습니다. 사실은 평생 살면서 식물에 별로 관심이 없어 왔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올해는 더더욱, 자연의 변화 따위를 관찰하기에는 물리적으로 몰려오는 일들과 마음을 힘들게 하는 세계의 소식들 때문에 꽃 피는 세계의 아름다움을 볼 겨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벚꽃은 언제 보아도 예쁩니다.
자연의 놀라움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무리 춥고 피곤한, 혹은 엄혹한 시기가 지나더라도 반드시 다시 꽃이 피어나는 시기가 도래한다는 점일 겁니다. 백 번을 읊어도 모자랄 평화, 평화, 평화. 그 평화의 꽃이 피어나는 이란을, 가자지구를, 쿠바를, 일본과 미국을, 대학 구성원들과 성소수자, '위안부' 피해자들의 마음을. 그리고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에까지 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려 봅니다.
도모는 다음 호에도 좋은 기사로 여러분을 찾아뵙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도영
전환 기관지 편집위원장이자 <도모> 편집장.
아마추어 디자이너 일도 가끔 한다.
여전히 사회운동과 진보정치가 만들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믿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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