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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씨네도모

음악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 단편선이 외치는 '음악만세'

by Domoleft 2026. 9. 10.

[씨네도모] 음악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 단편선이 외치는 '음악만세'

2025년 제22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한 밴드 단편선 순간들, 그 중심인물 단편선은 '한국 인디계의 살아있는 역사'임과 동시에 2010년대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회운동의 장에 함께해 온 열정적 연대자다. 다큐멘터리 영화 〈음악만세〉에는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가 내놓는 해답이 담겨 있다.


"여러분들은 미래로 가십시오,
더 이상 울지 않고, 더 이상 죽지 않는 그 미래로
거침없이, 당당하게 가십시오.
끝까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지난 2022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37년간의 한진중공업 복직 투쟁을 마치는 행사에서 남긴 전설적인 연설문이다.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나 다름없는 대한민국 최장기 해고자가, 복직과 은퇴를 함께하는 날에 자신의 일터였던 조선소에서 눈물과 함께 외친 문장.

2022년 2월 25일, 영도조선소 단결의 광장에서 열린 복직 기념 행사에 참여하여 연설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 출처: 오마이뉴스

 

이제 이 연설문은 일렉기타 리프와 함께 홍대와 이태원의 라이브 클럽, 인천과 철원의 락 페스티벌에서 울려퍼진다. 관객들은 김진숙 지도위원의 연설을 '떼창'한다. 지난 2024년, 밴드 '단편선 순간들'이 발매한 데뷔 앨범이자 정규 1집 〈음악만세〉에 실린 동명의 곡에 해당 연설이 삽입됐기 때문이다. 밴드의 이름으로 처음 발표하는 정규 앨범, 앨범명과 동명인 타이틀곡. 밴드와 프론트맨의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하는 곡이지만, 이 곡엔 보컬 단편선의 목소리가 아닌 김진숙의 외침이 있다.


단편선 순간들은 해당 앨범으로 지난해 제22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과 '최우수 모던 록 음반' 부문에서 수상했다. 역시 동명의 영화, 다큐멘터리 〈음악만세〉는 밴드의 수상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후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카메라는 밴드 단편선 순간들을 이끄는 인물인 '단편선'의 2년을 부지런히 쫓는다.

출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한국 인디 음악, 락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회기동 단편선', '단편선과 선원들' 이라는 이름을 한 번쯤은 접해봤을 것이다. 단편선은 20여년 전 활동을 시작해 솔로와 밴드로 여러 장의 앨범을 냈고, 2026년 현재까지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여러 차례 수상한 '인디계의 역사'와도 같은 인물이다. 동시에, 락 음악에는 별로 관심 없는 운동권에게도 단편선은 익숙한 이름일 수 있다. 두리반 투쟁[각주:1]을 비롯한 2010년대 사회운동의 주요한 투쟁들에 함께한 인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단편선의 음악을 들어 봤거나, 투쟁 현장에서 마주친 적 있는 이라고 해도 이 영화의 흐름을 완벽하게 쫓아가기란 쉽지 않다. 일단 공간이 계속 바뀌고, 낯선 인물들도 계속 등장한다. 계속 변하는 공간, 변하는 인물들 사이에서 단편선은 음악을 연주하고, 구호를 외치고, 녹음실에서 골몰한다. 그는 밴드의 프론트맨이었다가, 홍대 앞 예술가 협동조합의 이사였다가, 또 동료 뮤지션의 음반을 제작하는 프로듀서였다가, 투쟁 현장의 연대자였다가, 친구들과 술 마시며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뱉는 40대 남성이 되기도 한다. 다만 이 장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어느 자리에도 그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밴드도, 협동조합도, 프로듀싱도, 연대도, 술자리도, 전부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이다.

2010년 3월 6일, 홍대 앞 두리반 투쟁 현장에서 공연 중인 단편선. 출처: 오마이뉴스


단편선을 처음 접한 이들에게는 영화의 서술 방식이 당혹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오래 활동해 온 인디 뮤지션이 멋진 앨범을 발매해 큰 상을 받았다, 로 끝나는 '단편선 전기 영화'도 아니고, "음악은 세상을 바꾼다"라고 명시적으로 외치는 영화도 아니다. "그래서, 단편선이 뭐 하는 사람인데?"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인 셈인데, 핵심은 여기에 있다. 균질하지 않고, 종종 느슨하고 흐트러진 것처럼 보이는 이 모든 게 단편선의 활동이고, 삶이다. '이곳저곳 많이 다니는데, 도통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는' 단편선의 일상은 음악이, 음악가가 이 사회와 어떻게 맞닿는지를 날것으로 보여준다.

영화의 제목이자, 앨범명이자, 곡명인 '음악만세'는 영화가 끝나갈 때까지 완곡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밴드 결성 이후 2년간 열린 대다수의 공연을 교차편집해 담았지만, 영화는 어느 한 무대도 '결정적 순간'으로 특권화하지 않는다. 하나의 극적인 상황 대신, 반복되는 무수한 노래들을 담는다. 이는 밴드의 이름이 '순간들'인 것과도 이어진다.

 

음악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프론트맨의 얼굴, 악기를 다루는 손끝의 클로즈업, 감명 받은 관객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하지만 박홍열, 황다은 감독의 카메라는 무대가 아니라 관객들 사이에 서 있다. 교차편집을 벗어나 유일하게 온전한 길이로 등장하는 '2025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오프닝 공연 모습도 다르지 않다. 영화의 엔딩을 장식하는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무대 위 멤버들 대신 나부끼는 깃발들과 관객들을 넓게, 오래 담는다. 클라이맥스를 완성하는 건 무대 위 단편선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함께 "음악 만세"를 외치는 얼굴들이다.

2025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단편선 순간들과 환호하는 관객들. 출처: 유튜브 DMZ 피스트레인/ 유튜브 단편선 순간들


같은 제목을 가진 음반과 영화가 영어로는 다르게 옮겨지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앨범 '음악만세'의 영제는 'Hail to the Music', 영화의 영제는 'VIVA Music'이다. 'Hail'은 누군가에게 바치는 '경의'의 의미가 강한 단어다. 한편 'Viva'는 거리에서 울려퍼지는 구호처럼, 여럿이 함께 외칠 때 완성되는 말에 가깝다. 앨범이 창작자가 음악 앞에 서서 되뇌이는 다짐이었다면, 영화는 그 다짐이 두리반 골목, 홍대 지하 공연장, 광화문 광장과 철원 고석정을 거치며 여러 목소리로 번져 가는 순간들을 기록한다.


영화 후반부, 단편선은 한 행사에 참여해 '음악은 어떻게 사회를 부르는가'라는 제목으로 강의한다. 단편선은 말한다. "음악으론 혁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는 덧붙인다. "음악이 사회를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고, 사회를 조금 더 좋게 하는 데 일조할 수는 있겠지." 그렇게 그는, 늘 그랬듯 홍대 지하 연습실로, 자신의 음악을 필요로 하는 연대 현장으로, 동료 음악가의 녹음실로 다시 향한다.

 

음악은 사회를 부를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세상을 바꾸는 건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 음악을 함께 '경험'하는 사람들이다. 음악만으로는 할 수 없지만, 음악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음악은 천박해야 해!"라고 외치다가도, 누군가 자신의 음악을 필요로 하면 어디든 가는 사람. 그 일을 20여년간 해 온 사람, 단편선. 그가 홍대 앞에서 20여년 간 그려온 궤적 위에 김진숙의 목소리가 담긴 건 우연이 아니다. 결국 그들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미래로 가자고, 그리고 함께 가자고.

 

〈음악만세〉는 올해 열린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 이후 제22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등에서 상영됐고, 곧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전국의 더 많은 상영관에서 "음악 만세!"가 울려퍼지는 순간들을 기대해 본다.

2025년 제22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상을 수상하는 단편선 순간들. 출처: 한국대중음악상

 


 

음악만세

 

박홍열, 황다은 감독

다큐멘터리 / 110분 / 2026

 

 

'씨네도모'는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 등의 다양한 영상매체를 진보·좌파적 시각에서 비평하고 문화적 상상력을 함께 나누는 웹진 <도모>의 영화 리뷰 코너입니다.

'씨네도모'에 글을 기고하고자 하시는 분께서는 이도영 편집장(ldy0510@naver.com)에게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장태린

 

학부에서 법학을,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습니다.

잘 포착하고, 잘 전하는 사람이 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각주

  1. 2009년 홍대 앞 식당 '두리반'이 강제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다양한 활동가들과 진보정당 당원들, 홍대 앞에서 활동하던 인디 뮤지션들이 철거에 맞서 531일간 연대했던 투쟁이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어려움을 겪는 인디 뮤지션과 소상공인, 청년들의 연대를 보여준 대표적 투쟁으로 꼽힌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