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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모서재

돼지가 되어서라도 살아남아라 - 김석범의 '화산도'와 '바다 밑에서'를 읽고

by Domoleft 2026. 9. 1.

[도모서재] 돼지가 되어서라도 살아남아라 - 김석범의 '화산도'와 '바다 밑에서'를 읽고

재일조선인 작가 김석범의 대하소설 《화산도》, 그리고 그 속편 《바다 밑에서》는 끝나지 않은 제주 4.3의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죽은 자들은 산 자들에게 기억을 남기고, 책은 모든 독자들에게 그 기억을 이어나가기 위해 "돼지가 되어서라도 살아남으라"는 부탁을 남긴다.


김석범의 《화산도》 전집

 

"파란 허공에 총성이 울렸다." 원고지 2만 매가 넘는 김석범의 대작 《화산도》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 총성으로 주인공 이방근은 죽는다. 제주도경 경무계장 정세용을 권총으로 사살한 뒤, 이방근은 그 부근에서 바로 그 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겨눈다. 열두 권을 따라온 독자는 그 순간 한 사람의 죽음뿐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세계가 닫히는 것을 목격한다.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인 6월 5일 《화산도》의 첫 권을 펼쳐, 장장 52일만에 마지막 권을 덮었다. 한동안 마지막 문장 앞에 머물렀다. 먹먹하고 슬펐다. 이것으로 충분한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석범은 이방근을 놓아주지 않았다.


너무나 느린 학살의 이야기

《화산도》는 제주 4.3을 다룬 소설이다. 그러나 열두 권을 읽고 나면 이 설명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게 된다. 김석범에게 제주는 한반도 남쪽에 떨어져 있는 작은 섬이 아니다. 해방된 조국이 어떤 나라가 될 것인가를 둘러싼 거대한 충돌의 한복판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가 끝났지만 해방된 조국은 온전히 독립된 하나의 나라가 되지 못하고 두 동강날 위기에 놓였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선택한 것 가운데 하나가 5.10 단독선거 반대였고, 제주에서 그것은 봉기가 되었다. 그러므로 《화산도》의 4.3은 국가폭력과 민간인 희생의 역사인 동시에 해방된 나라가 어떤 국가가 될 것인가를 둘러싼 정치적 투쟁이다. 제주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목포와 광주, 여수와 순천, 부산과 대구, 서울을 지나 일본으로 뻗어나간다. 멀리 지리산조차 제주와 기묘한 역사적·심리적 연결을 갖는다.

좌측부터: 5.10 단독선거에 반대하는 대중 시위 / 제주 4.3 당시 산간 지방으로 피신한 민간인들

 

그런데 이토록 거대한 사건을 다루는 소설의 속도는 뜻밖에도 느리다. 3권을 읽다가 이상한 문장을 만났다. 이방근이 혁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강몽구와 함께 일본에 갔다가 제주로 돌아가기 전, 도움을 받았던 고달준의 동해고무 사장실에서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작별인사를 하는 장면이다. 전화기 옆에는 사람 키만한 선반이 있고 크고 작은 고무장화가 진열되어 있다. 아침 햇살이 유리문으로 들어와 검은 점이 섞인 빨간색 여아용 고무장화를 비춘다. 공장의 소음과 먼지 속에서 대량생산된 고무장화도 사장실 진열장에 들어 있으니 꽤 고가의 물건처럼 보인다고 이방근은 생각한다.

 

없어도 되는 장면이다. 통째로 삭제해도 줄거리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런 문장이 《화산도》에는 셀 수 없이 많다. 사람들이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술을 마셨는지, 전화는 어떻게 걸었는지, 어떤 길을 걸었는지, 방에는 무엇이 놓여 있었는지,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하고 결혼했는지까지 김석범은 좀처럼 건너뛰지 않는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이토록 참혹한 사건을 다루면서 왜 이렇게 느린가. 읽어 가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김석범은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처럼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아니, 자신이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더욱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때로 《화산도》를 읽는 일은 아주 긴 판결문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 훗날 누군가 이 역사를 부정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판사가 있는 것 같다.

 

그는 모든 반론을 예상하며 하나씩 증거를 쌓는다. 그날 사람들이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쓰고, 방에 어떤 물건이 놓여 있었는지까지 기록한다. 이 사람들은 실제로 살았다. 이런 세계가 실제로 존재했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그래서 나는 이 느린 문체를 김석범이 선택한 하나의 윤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격노가 없어서 차분한 것이 아니다. 가장 깊은 애도를 위해 감정을 극한까지 갈무리한 사람의 서늘한 차분함에 가깝다.


"돼지가 되어서라도 살아남아라"

그 세계의 중심에 이방근이 있다. 부호의 아들이고 좌파에 우호적이지만 조직을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혁명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혁명가들을 사랑하지만 자신은 당원이 아니다. 왜 김석범은 하필 이런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았을까. 열두 권을 읽는 내내 자주 생각했다.

 

이방근은 어느 편에도 완전히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모든 편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다. 혁명의 정당성을 이해하면서도 조직의 어리석음을 비판한다. 민중의 분노에 공감하면서도 그것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패배가 다가오는 것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리면서도 사람들을 버리고 떠나지 못한다. 4.3 봉기 이후 군과 유격대는 4.28 평화협정을 맺고, 비극적인 파국을 피할 가능성이 잠시 열린다. 그러나 경찰과 서북청년단 등의 방해공작으로 협정은 사실상 무력화된다.

4.28 평화협정의 당사자 김익렬(우측)와 김달상. 출처: 제이누리 www.jnuri.net

 

그 뒤 이방근은 산 사람들의 목적이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사라졌다고 판단하고,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으로 밀항해 목숨을 보전하고 혁명의 역량을 남겨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조직은 그것을 기회주의라고 배격한다. 그때 이방근이 아끼는 후배 남승지에게 하는 말이 있다. "돼지가 되어서라도 살아남아라." 그런데 정작 이방근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산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여동생 이유원을 일본으로 보내고, 남승지도 탈출시킨다. 한대용에게는 밀항선을 맡긴다. 그리고 자신은 제주에 남는다.

 

마지막에 그는 4.28 평화협정을 무력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정세용을 죽인다. 그것은 어쩌면 산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남로당원도 유격대원도 아닌 바로 이방근이 피스톨의 방아쇠를 당긴다. 그리고 자신도 죽는다. 마치 자기 목숨을 한라산에 바치는 마지막 제물처럼, 다른 사람에게는 살아남으라고 하면서 자신은 죽는다.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살아남은 사람에게 생존의 의무를 남긴다, 그것이 《화산도》의 끝이었다.


끝난 이야기를 왜 다시 썼을까

그래서 후속작 《바다 밑에서》를 읽는 내내 한 가지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김석범은 도대체 이 소설을 왜 썼을까. 《화산도》는 이미 완결된 소설이었다. "파란 허공에 총성이 울렸다"에서 끝났다면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바다 밑에서》가 사족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몇 개의 숫자를 놓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김석범은 1925년에 태어났다. 1976년 2월 《화산도》의 연재를 시작했을 때 그의 나이는 50세였다. 1997년 대작을 완결했을 때 그는 71세였다. 그리고 《바다 밑에서》를 단행본으로 내놓은 2020년에는 94세였다. 현재 그는 만 100세를 살고 있다. 50세, 71세, 94세, 100세. 이 숫자들 앞에서는 쉽게 말을 보태기가 어렵다. 한 인간이 자신의 중년과 노년을 거의 전부 하나의 역사적 사건에 바친 것이다.

 

국가가 직접 저지르고 때로는 외주화까지 하여 자행했던 제주 사람들에 대한 체계적인 사냥과 학살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는 자기 인생 전체를 제물로 바쳐서라도 그 사건을 잊히게 하지 않겠다는 한 인간의 집념이 나타났다. 그것이 김석범의 문학이었다. 그러니 《바다 밑에서》는 쓰고 싶어서 쓴 후속편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쓰지 않고서는 끝낼 수 없었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죽은 자는 어떻게 살아남는가

 

《바다 밑에서》의 주요 무대는 제주가 아니라 일본이다. 서사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공교롭게도 이방근이 살려 보낸 사람들이다. 여동생 이유원, 남승지, 밀항선을 책임진 한대용.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에는 제주에서 밀항해 온 두 여성이 나타난다.

 

이방근은 이미 죽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가장 강력하게 존재하는 사람은 여전히 이방근이다. 승지와 유원이 그를 기억하고, 꿈속에 나타난다. 한대용과 승지는 그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관계를 죽은 사람이 움직인다. 《화산도》에서 이방근은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바다 밑에서》에서는 '기억되는 사람'이 된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화산도》가 4.3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소설이었다면, 《바다 밑에서》는 4.3을 통과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소설이다.

 

그러고 나면 "돼지가 되어서라도 살아남아라"는 말도 다르게 들린다. 그저 목숨을 보전하라는 말이었을까. 돼지처럼 비참해져도 살아남아서 언젠가 다시 싸우라는 말이었을까. 아니면 살아남아 죽은 사람을 기억하라는 명령이었을까. 살아남는 것은 권리다. 그러나 어떤 참혹한 역사를 통과한 사람에게 생존은 때때로 의무가 되기도 한다. 본 사람은 말해야 한다. 들은 사람은 전해야 한다. 살아남은 사람은 죽은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남승지와 김석범, 그들의 바다 밑에서

1988년 일본 도쿄에서 처음 열린 제주 4.3 40주년 추도식. 출처: 제주의소리(김창후)

 

여기에서 소설과 김석범 자신의 삶이 겹친다. 김석범은 4.3 당시 제주 현장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제주에서 일본으로 밀항해 온 사람들을 일본 내륙으로 안내하는 일을 하면서 사건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그때 만난 사람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훗날 그의 문학 속으로 들어왔다.

 

《바다 밑에서》 후반부에는 제주에서 밀항해 온 두 여성이 등장한다. 그들이 가지고 오는 것은 자신의 몸만이 아니다. 제주에서 있었던 일이 함께 바다를 건너온다. 사람의 몸 안에 기억이 실려 온다. 누군가 그 기억을 듣는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에게 전한다. 그 대목을 읽으며 남승지와 김석범이 겹쳐 보였다. 물론 소설의 인물과 작가를 그대로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둘이 서 있는 자리는 놀랍도록 닮았다. 일본에서 살아남아 제주에서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사람. 남승지가 그 자리에 있고 김석범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바다 밑에서》는 어느 순간 《화산도》의 후속편이 아니라 김석범 자신의 이야기처럼 읽히기 시작했다. 50세에 《화산도》를 쓰기 시작한 사람이 94세가 되어 다시 남승지를 불러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방근에게 "돼지가 되어서라도 살아남아라"는 말을 들은 남승지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김석범도 살아남았다. 살아남아서 썼다. 쓰고 또 썼다. 죽은 사람들을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계속 옮겼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김석범은 이방근을 죽이고도 놓아주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놓아주지 않은 것이다.

김석범 작가. 출처: 제주의소리

 

그제야 '바다 밑에서'라는 제목도 다르게 들렸다. 바다 밑에는 무엇이 있을까. 죽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말하지 못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국가가 감추고 싶었던 진실이 있을 것이다. 제주와 일본 사이의 바다는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건넌 국경이면서 제주에서 밀려난 기억들이 건너온 길이기도 했다. 기억은 물 속에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라진 것은 아니다. 누군가 건져 올리면 다시 지상으로 나온다. 김석범은 평생 그 일을 했다.

 

그래서 《바다 밑에서》를 읽으며 품었던 의문도 마침내 사라졌다. 《화산도》는 이방근의 죽음으로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김석범의 4.3은 이방근의 죽음으로 끝날 수 없었다. 죽은 사람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진실과 인간의 승리

《화산도》 열두 권을 선뜻 권하기는 어렵다. 우선 너무 길고 느리다. 정치적 논쟁도 많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과 걷는 길과 방 안에 놓인 물건까지 읽어야 한다. 그런데 바로 그래서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이미 역사의 결말을 알고 있다. 한반도는 분단되었고, 4.3은 진압되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하지만 《화산도》를 읽는 동안만큼은 그 모든 것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가 된다. 사람들은 토론하고 싸우고 사랑한다. 술을 마시고 밥을 먹고 전화를 건다. 배를 타고 조직을 만들고 조직에서 이탈한다.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살린다. 그들에게 역사는 아직 열린 가능성이다.

 

그래서 《화산도》를 읽는 것은 실패한 역사를 구경하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들이 무엇을 지키려고 했는지를 다시 경험하는 일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여러 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떠올렸다. 이야기의 규모 때문이 아니라 인간을 쉽게 선과 악으로 나누지 않으면서도 끝끝내 인간에 대한 판단을 포기하지 않는 그 깊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다 밑에서》까지 읽고 나자 두 단어가 남았다. 진실과 인간의 승리.

 

4.3에서 죽은 사람들이 승리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봉기가 승리한 것도 아니다.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도 오지 않았다. 그런데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들을 죽인 사람들은 사람의 목숨뿐 아니라 이름과 기억까지 없애려 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실패했다. 그것은 김석범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50세에 쓰기 시작해 71세까지 《화산도》를 쓰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94세에 《바다 밑에서》를 내놓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그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

 

죽은 사람을 완전히 죽이는 방법은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반대도 성립할 것이다. 기억하는 사람이 남아 있는 한 죽은 사람은 완전히 죽지 않는다. 《화산도》의 마지막에 총성이 울렸다. 이방근은 죽었다. 그러나 그 총성을 들은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김석범은 그 이야기를 평생 썼다. 어쩌면 이것이 이 거대한 소설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부탁인지도 모르겠다. 돼지가 되어서라도 살아남아라, 그리고 기억하라. 누군가 기억하는 한, 바다 밑에 가라앉은 사람들은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다.

2018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주 4.3 70주년 추모행사에 참석한 김석범 작가. 출처: 한겨레(연합뉴스)


 

 

화산도

 

김석범 저

전 12권, 김환기·김학동 옮김, 보고사, 1965~1997


 



바다 밑에서

김석범 저

서은혜 옮김, 도서출판 길, 2020

 

'도모서재'는 다양한 독자들이 추천하는 수많은 책 속에서 때로는 세상을 꿰뚫는 날카로움을, 때로는 마음을 울리는 연대의 따스함을 찾고자 하는 웹진 도모의 도서 리뷰 코너입니다.

'도모서재'에 서평을 기고하고자 하시는 분께서는 이도영 편집장(ldy0510@naver.com)에게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나경

현재 정의당 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 '소설 100페이지 읽기'를 루틴으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바쁜 일상에 밀려 이 다짐을 완벽하게 지키지는 못할지라도,

책장을 넘기는 시간만큼은 생활을 지탱하는 단단한 버팀목이 됩니다.

북클럽을 만드는 것이 오랜 희망사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