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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침공 이후의 베네수엘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by Domoleft 2026. 1. 15.

[국제] 침공 이후의 베네수엘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1월 3일 세계를 뒤흔든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이후,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민중들은 공습과 납치가 주는 공포감 속에서도 다시 트럼프 정권에 맞서 거리로 나오고 있다. 베네수엘라와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적 맥락부터 침공 이후의 전망과 평가, 그리고 노골적 신제국주의에 맞선 연대의 필요성을 되짚는다.


미국 마약단속국(DEA)에 의해 납치되어 이송되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2026년 새해 벽두 카라카스에 내려쳐진 무자비한 야만의 선언, 미국의 카라카스 공습과 마두로 대통령 내외 납치는 전 세계에 충격과 두려움을 주었다. 초유의 사태에 한국에서도 그간 베네수엘라에 큰 관심이 없던 여러 분석가, 연구자, 언론인들이 연일 분석과 보도를 내놓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나온 절대 다수의 분석은 베네수엘라 민중의 삶과 그들의 미래가 아니라, 미국의 관점에서 해당 사태가 미국 경제와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또한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주요 논점으로 삼았다. 혹자는 '베네수엘라의 체제가 완전히 끝났다'며 베네수엘라가 이제는 미국의 보호국이 되었다는 주장을 기정사실처럼 늘어놓는다.

 

그러나 진보·좌파의 관점에서,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베네수엘라를 바라볼 때는 지정학·경제학적 호사거리로서가 아니라 보다 더 객관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이 상황이 세계 민중의 더 나은 삶과 존엄을 위한 투쟁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CIA의 희망사항이나 국내 '전문가'들의 도식적 주장에 휘둘려서는 진보 세력의 독자적 인식 구축과 그에 기반한 보다 적절한 연대행동을 고민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번 기고에서는 침공 전후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정부와 체제, 민중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으며 더 나아가 라틴아메리카 전체의 시점에서 이번 사건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뤄 보고자 한다.


과거: 볼리바르 혁명과 베네수엘라의 사반세기

1월 3일 이후 일어난 여러 사건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베네수엘라 사회와 경제가 침공 이전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 재점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1998년 우고 차베스(Hugo Chavez)의 대통령 당선 이후, 1999년 의회 선거 승리와 신헌법 제정을 통해 제5공화국인 현재의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차베스 정부는  강력한 기층 사회운동을 기반으로 하여 수많은 개혁을 이뤄냈다. 특히 무상의료, 주거공급, 무상교육 등의 정책은 당시 한국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세계 좌파정치의 방향성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차베스 정부는 선거를 통해 집권을 도모하는 진보·좌파 정당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공약을 실현해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볼리바르 혁명이 '혁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었다. 과거 칠레의 아옌데 정부가 표방했던 '사회주의를 향한 길을 만드는 정부'와도 같이, 차베스 정부는 사회주의를 지향했을지언정 그 자체로 사회주의적 대안 체제에는 도달하지 못했던 정부였다. 기존 베네수엘라의 대의민주주의와 국가 체제를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점, 이것이 볼리바르 혁명 이후 현재까지의 베네수엘라 체제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이다.

1998년 대선에서 지지자들과 함께한 차베스. 출처: 로이터

 

2000년대 10년을 거치며 정착된 새로운 베네수엘라 사회의 핵심은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들이 국영 석유사 PDVSA의 경영과 석유 수출입을 관리하며 복지를 운용하는 체제였다. 이는 자본주의 경제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다수 시민들이 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복지국가로의 변모를 불러왔다. 물론 사회운동에 근간을 두어 집권한 차베스 정부의 특성 상, 이 시기의 베네수엘라는 농민운동, 노동운동, 성소수자 운동, 주거권 운동 등 여러 사회운동 단체가 활동하며 정치의식이 크게 높아진 사회가 되었다. 이는 대선 투표율에도 반영되었다. 2000년 56.3%로 시작한 투표율은 2006년 74.7%, 2012년 80.20%로 최고점을 달성, 베네수엘라 사회의 정치의식이 복지와 사회 운동의 활성화 속에 고도화되었음을 보여 준다.

 

당시 차베스의 주요 정책은 국영 석유회사 PDVSA의 완전한 국유화, 금·리튬 등 희토류 국유화, 무상의료·무상교육 등의 복지 정책, 상파울루 포럼·UNASUR(남미국가연합)·CELAC(라틴아메리카카리브 공동체) 등의 라틴아메리카 통합 및 연대 정책이었다. 정책에 들어가는 자금은 대부분 국유화된 석유 산업에서 나왔다. 석유 기반의 추출주의 경제는 경제제재에 대한 극도의 취약성이라는 약점과 함께 '이전 체제와의 연속성'이라는 또다른 약점을 만들어냈다. 차베스 집권 이후 기간산업 주요 요인과 고위직 공무원은 교체되었지만, 석유 수출과 수입에 의존하는 수익 구조는 변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국제 무대에서 해외 자본과 연결되는 '연락책'의 존재가 매우 중요했다. 과거 아옌데 정부와 달리 국유화와 노동자 경영, 자주관리 등은 비약적으로 증가하지 않았고, 내수 경제의 대부분은 여전히 민간 산업이 담당하여 베네수엘라 상공회의소(Fedecámaras) 등 민간 자본의 역할과 중요성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러한 구조가 갖는 위험성에 대한 인식은 차베스 스스로부터 뚜렷하게 가지고 있었다. 2006년 대선에서 3선에 성공하여 집권 기반을 안정화한 차베스는 협동조합 실험이나 지역 기반 사회주의 자치공동체인 코뮌(Comuna) 도입과 같이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사회주의적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변혁적 요소들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고자 했다. 복지국가로 거대화된 행정 체계와 테크노크라트들의 권력 점유 증가 속에서, 기층 기반 민주주의의 확대와 대안체제로의 이행을 진행하지 못한다면 결국 볼리바르 혁명이라는 프로젝트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어 차베스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시작된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사회주의 모델로의 본격적 이행 의지를 명확히 보였다.

베네수엘라의 지역 자치공동체 코뮌(Comuna). 출처: The People's Dispatch

 

미국의 공습 직후인 1월 4일, 《뉴욕 타임스》에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대학의 콜레트 카프릴레스(Colette Capriles) 교수가 기고한 글[각주:1]은 볼리바르 혁명 이후 테크노크라트들의 성장을 부각시키며 베네수엘라 사회에 대한 암울한 이미지를 양산한다. 이러한 비판에는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다. 세르게이 유르착의 저서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는 스탈린 시대 이후 정착된 관료적 복지국가 소련에서 사적 네트워크가 계급적, 공적 관계를 대체하고, 대중은 체제에 대한 격렬한 반대도 지지도 표하지 않는 '회색 지대'에 머물러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와 유사한 관료화 경향은 차베스 말년부터 분명 존재했다. 특히 카프릴레스 교수는 현 대통령인 델시 로드리게스와 국회의장 호르헤 로드리게스 남매가 깊이 관여되어 있는 석유 사업과 군이 관여된 희토류 등 광산 사업을 중심으로 이들의 국가 점유로 인해 볼리바르 정부가 베네수엘라 민중과 이격된 독재적 정부가 되었음을 강조한다. 또한 사적 네트워크가 공적 관계를 넘어 생존, 취업, 물자 확보에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도 주장했다.

 

카프릴레스 교수뿐 아니라 마두로 대통령이 2013년 차베스 대통령의 사망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처음 당선된 이후 이르면 2015년, 늦게는 현재까지도 과거 차베스 대통령 시절 볼리바르 정부와 함께 일했던 전직 장관이나 관료 출신 인사들의 회고와 분석이 쏟아져 왔다. 이들 중 대부분은 CIA나 USAID 등에 포섭되어 전향했거나 자기 자신의 권력 상실에 대한 실망으로, 혹은 본인의 정치적 지위 획득을 위해 온갖 부정적 분석과 전망을 내놓았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차베스 집권기와 그 이후 마두로 집권기를 대립항으로서 비교하며, '마두로 집권기 베네수엘라 체제의 비민주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는 차베스의 사망 이후 베네수엘라 사회가 처한 국내외적 맥락이 빠져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임기 시작 직후부터 우파들이 주도한 'Guarimba' 시위, 중국의 성장 둔화와 유가 하락으로 인한 경제 위기, 미국과 서구의 경제제재로 인한 경제 붕괴 및 대량 이민, 코로나 팬데믹 등 국가가 파괴될 만한 위기를 지속적으로 겪어 왔다. 2017년에 이르면 2000년대 장관을 역임했던 사람이 "볼리바르 혁명은 끝났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경제위기 대응 과정에서 강화된 관료의 권한이 미치는 악영향이 심화되었다. 그러나  이런 위기 상황은 베네수엘라 사회 내부 모순의 강화와 함께 코뮌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시스템의 도래 역시 불러왔다. 차베스가 2012년 방향타 대전환(Golpe de timón)을 통해 "코뮌이 모든 사회 생활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한 만큼, 코뮌의 확장과 투쟁 또한 관료적 영향의 확대와 동시에 반대급부로 늘어났다. 특히 경제제재로 창궐한 식량 부족 사태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는 코뮌을 통한 모두의 참여가 아니면 생존이 어려웠다.

2014년 베네수엘라 우파들이 주도한 'Guarimba' 시위. 출처: AFP

 

팬데믹 직전인 2019년에는 코뮌 운동 측에서 코뮌 지원과 활성화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쏟아져 나왔다. 결국 팬데믹 이후 해당 의견을 수렴한 마두로 정부는 2024년 코뮌법을 개정하여 인민질의(Consulta Popular)와 전국적 투표 과정으로 코뮌의 사업과 의제를 선정하고 선정된 사업당 최대 10,000달러를 지원하는 정책을 펼쳤다. 2025년에는 총 4차례 인민질의가 이루어졌고, 마지막 제 4차에서는 투표를 통해 약 15,000건의 사업이 선정되어 정부 지원과 인증을 받았다. 또한 마두로 정부는 2025~2026년까지 모든 기초 행정을 코뮌에 이양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왔다.

 

특기할 지점은 코뮌과 관료층의 이중권력, 그리고 권위주의와 직접민주주의 경향의 혼합적 이질성이다. 분명 베네수엘라 정부는 경제 위기를 맞이하면서 보다 억압적으로 변해 왔다. 특히 자본과 해외 연줄이 있는 우파 야권보다는 노동운동 기반의 베네수엘라 공산당(PCV), 사회주의의 물결(Marea socialista) 등 좌익 반대파에 대한 탄압이 더욱 가혹했다. 경제위기 속에 축소된 복지와 BRICS 국가들의 신제국주의적 투자, 추출주의적 광업에 대해 가장 크게 저항하는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경향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집권당인 베네수엘라 통합사회당(PSUV)이 여전히 직접민주주의 원칙을 견지하는 코뮌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는 특이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카라카스 등 대도시 관료층만이 아닌 농업과 경공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코뮌은 여전히 PSUV 정부와 차베스주의(Chavismo)를 표방하며 주권 수호와 사회주의 실현을 목표로 베네수엘라 사회를 아래에서부터 추동해가고 있다.

 

차베스의 죽음과 제재로 인한 경제위기는 베네수엘라 사회의 형태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했다. 석유 수출로 발생한 수익으로 모든 생필품과 자본재를 수입하여 살아가던 복지국가-산유국은 이제 코뮌과 관료주의, 권위주의와 직접민주주의가 병존하는 이질적이면서도 역동적인 사회가 되었다. 이러한 베네수엘라의 현재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현 상황에 대한 이해란 불가능하다.


침공 이후, 현재와 미래

1월 3일 밤 미군의 공습으로 불타는 카라카스. 출처: NPR(게티이미지)

 

2026년 1월 3일 미국의 공습은 베네수엘라 사회에 또 하나의 충격적 전환점을 만들었다. 미군은 수도 카라카스와 외항 라과이라의 군사기지를 비롯한 전략적 거점에 드론 및 미사일 폭격을 가함과 동시에 카라카스의 푸에르테 티우나(Fuerte Tiuna) 기지 내부 안전가옥에 머물던 마두로 대통령과 영부인 실리아 플로레스를 델타 포스 수백 명을 동원해 납치했다. 작년 8월부터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침공 위협과 함대 전개, 어선 폭격, 해상 봉쇄 등 군사행위를 지속해 왔으나, 베네수엘라 내부에서는 이런 형태의 공습과 납치 작전에 대한 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999년 차베스의 취임 이래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미국의 꾸준한 위협을 받아 왔으며 지난 몇 개월간은 확실한 군사적 도발을 받아 온 상태에서, 베네수엘라군이 제대로 된 저항 하나 못하고 대통령을 내주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이 상황을 눈앞에 두고 베네수엘라 내부에서부터 미국, 한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음모론이 양산되고 있다. 마두로 납치 직후 현지시각 1월 3일 아침, 델시 로드리게스(Delcy Rodríguez) 부통령은 대법원으로부터 대통령 직무 임시 수행 자격을 승인받고 1월 5일 임시 대통령 직무대행(Presidenta encargada interina)으로 취임했다. 이와 함께 델시의 남매인 호르헤 로드리게스는 국회의장으로 재선출되었다. 이러한 권력이양은 공습 직후 미국에 호응하여 정부 전복을 노리는 우파 시위대나 군부 쿠데타가 없었다는 점, 트럼프 역시 기자회견에서 델시의 직무대행을 인정했다는 사실과 맞물려 미국 SNS를 중심으로 로드리게스 남매가 마두로를 배신하고 미국에 넘겼다는 소위 '내부 쿠데타'론이 확산되는 이유가 되었다.

 

로이터 통신은 마두로 납치 당시 델시가 모스크바에 있었다는 출처불명의 뉴스를 전하며 마치 델시가 푸틴 및 트럼프와의 합의 하에 마두로를 배신했다는 이미지를 심었다.[각주:2] 또한 여러 외신은 델시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며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그러나 서로 모순적인 이미지를 선전했다. 뉴욕 타임스는 '협상자'로서 델시의 모습을 부각했다. 델시는 베네수엘라 중앙대 졸업 후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공부한 경력을 기반으로 해외 연줄을 통해 베네수엘라 정권의 석유 판매를 오랫동안 담당해 왔다. 따라서 이들 언론은 델시가 미국 석유자본과의 접촉을 다시 늘려 미국의 이해에 부합하는 행동을 할 것이라 전망했다. 이와 반대로 워싱턴 포스트 등의 언론에서는 로드리게스 남매의 아버지인 사회주의자 호르헤 안토니오 로드리게스가 1976년 친미 정권의 정보국과 CIA에 의해 고문 및 살해당했음을 언급하며 '태생적 골수 차베스주의자'라는 강경파 이미지를 부각했다.

취임 선서를 하는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임시대통령. 출처: 신화통신

 

델시 로드리게스의 취임 이후 트럼프는 지속적으로 새 정부와의 협상 의향을 언급하면서도 원하는 바를 듣지 않으면 추가 공격을 감행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 왔다. 사실상의 협박 속에서 1월 7일 트럼프가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석유 공급분 3,000~5,000만 배럴을 확보했다고 올린 직후, PDVSA 역시 미국에 대규모 석유 판매를 위한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공지를 올려 이것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작년 3월 재개된 베네수엘라 내 미국 정유회사 셰브론의 영업도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다. 혹자는 이를 소위 '내부 쿠데타'론의 증거로 제시하며 정권 내 대미 온건파이자 기술관료인 델시 로드리게스와 트럼프의 물밑 합의를 통해 마두로가 축출되었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상기했듯 코뮨이라는 기층과 대중운동 및 직접민주주의, 관료화된 정부라는 복합적 성격을 지닌 베네수엘라 정부와 PSUV의 구조 속에서 특정 개인의 성격과 방향성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자 각자의 이해관계가 섞인 왜곡이다. 마두로 정부는 작년부터 이미 강경한 정치적 언사와는 별개로 경제제재 해제 및 석유 무역 정상화를 핵심 노선으로 삼아 다양한 물밑 노력을 해 왔고, 델시의 행보 역시 이의 연장선에 가깝다. 마두로는 이미 납치 이전 마지막으로 국영방송 텔레수르(TELESUR)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미국 회사들의 베네수엘라 유전에 대한 투자를 "어디든, 언제든 받아들일 의향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각주:3]

 

현 정부의 노선이 마두로 정부 노선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은 미국이 베네수엘라에게 중국, 이란, 쿠바, 러시아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주문했지만, 델시가 취임 직후 중국 대사와 접견을 가진 것에서도 드러난다. 비록 미국의 침공이 베네수엘라에 더 적극적인 협상과 우파 정치범 석방 등 몇몇 조건을 강요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델시 로드리게스의 정책기조는 큰 틀에서 차베스주의 정권의 기존 기조와 배치되지 않는다. 1월 3일 대법원의 임시대통령 승인 직후 첫 공개방송에서 델시는 확고한 '마두로 충성파'로 분류되어 온 국방부 장관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내무부 장관 디오스다도 카베요와 동석하여 주권 수호와 마두로 대통령 석방을 요구했다. 베네수엘라 관료층과 더불어 군, 경 또한 흔들림 없이 베네수엘라 정부에 충성하고 있다는 증거다.

임시대통령 취임 이후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국방장관(왼쪽 첫 번째), 디오스다도 카베요 내무장관(왼쪽 세 번째)과 함께한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대통령. 출처: 로이터

 

한편 베네수엘라의 상황에 대해 미국,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우익 세력은 침공을 규탄하는 시민들을 비웃으며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정작 마두로 축출과 '민주주의 회복'을 지지하고 있다'는 논지를 펼치고 있다. 실제 침공 이후 카라카스에서는 우파 야권이 주도한 시위가 열렸으며, 베네수엘라계 이민자들이 가장 많은 플로리다를 비롯해 서구 각국에서는 베네수엘라계 이민자 공동체를 위시한 우파들의 침공 지지 시위가 벌어졌다. BBC, CNN 등 주요 서구 언론 역시 이러한 시위를 크게 보도하며 '실제 베네수엘라인들은 트럼프의 침공을 지지한다'는 인식을 퍼뜨리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이는 현 베네수엘라 사회의 속성을 객관적으로 파악한 결과물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현 상황을 취사선택한 것에 불과하다. 차베스주의 지지 세력인 차비스타(Chavista)들의 핵심 구성은 차베스 시기 복지 정책의 수혜를 입어 극빈층에서 탈출한, 그러나 여전히 베네수엘라 내에서는 중하류층 및 빈곤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상위 중산층 이상이 중심이 된 우파 야권 지지층과 달리 주요 SNS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제한적이며, 디지털 리터러시도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 우파 주도 시위가 SNS 바이럴을 훨씬 많이 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구 각국의 베네수엘라 공동체가 주도하는 시위 역시 차베스주의 정권을 피해 해외로 망명한 우파들이 주축이라는 점에서 베네수엘라 현지의 실제 민심을 대변하기란 불가능하다. 특히 미국의 예상치 못한 군사작전과 그 이후의 혼란한 정세 속, 단지 '마두로가 축출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고무된 우파들과 달리 좌파들의 입장에서는 상황에 대한 빠른 진단과 파악이 어려웠다는 점 역시 감안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차비스타들과 미국의 침공에 반대하는 수많은 시민들은 거리로 몰려나오고 있다. 특히 침공 직후인 1월 3일, 4일의 비교적 소규모 시위를 넘어 1월 5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침공 규탄과 마두로 부부의 석방을 위한 대규모 시위가 전국에서 연일 벌어지고 있다.[각주:4] 공습과 납치라는 초유의 사태가 주는 공포감에도 불구하고, PSUV 당원들과 특히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한 수만 명 이상의 민중이 거리로 나온다는 것은 기층에서부터 임시정부까지 차베스주의 운동의 단결이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베네수엘라 현지에는 이것이 어떤 결말이나 끝이 아니라, 이전부터 지속되었고 앞으로도 수년간 이어질 긴 싸움의 일환이라는 시각이 널리 퍼져 있다. 지난 4차 인민질의에서 결정된 사업은 여전히 각 코뮌에서 실행 중이고, 공습의 피해 복구와 경제활동 또한 이어지고 있다. 현지시각 1월 12일에는 휴교령이 해제되고 학생들의 등교도 다시 시작되었다. 투쟁의 결말까지는 갈 길이 멀다.

1월 5일 마두로 석방을 요구하는 카라카스 도심의 시위. 시위 참석자가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을 석방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출처: EPA


침공 전후 라틴아메리카의 상황

1월 3일 공습 이후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는 당연히 커다란 충격과 여러 상반된 반응이 잇따랐다. 특히 침공 이후 트럼프의 압박을 받은 좌파 정부들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멕시코 셰인바움 정부, 콜롬비아 페트로 정부는 여러 성명을 통해 미국의 협박과 폭력을 가장 강력하게 규탄했다. 이미 작년부터 미국은 마약 밀매 근절을 명분삼아 각국의 좌파 정부를 압박해 왔고, 베네수엘라 영해뿐 아니라 콜롬비아 영해, 멕시코 근해 태평양에서까지 미국의 어선 폭격으로 수많은 어부와 청년들이 살해당했다. 미 법무부가 마두로 납치 이후 스스로 '로스 솔레스 카르텔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인정한 것처럼[각주:5] 이러한 마약몰이는 완전한 거짓말이지만, 그러나 미국은 이번 공습과 납치를 통해 극단적인 군사적 행동을 언제든 시도할 수 있음을 남미 각국에 다시금 확인시켰다.

 

1월 4일 열린 CELAC(라틴아메리카카리브공동체) 긴급 회의에서는 칠레, 멕시코, 콜롬비아, 브라질, 우루과이, 스페인 등 스페인어권 좌파 정권들이 연대하여 미국의 침공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각주:6] 한편 브라질의 룰라 정부는 미국의 공습으로 인한 신장투석기 창고 전소로 1만 명의 베네수엘라 내 투석 환자들이 위험에 처하자 의약품과 식료품 총합 400톤의 물자를 베네수엘라로 보내기로 결정했고, 1월 10일 초도 인도분인 40톤의 의약품이 카라카스에 도착했다. 이렇듯 초유의 사태 앞에 라틴아메리카 좌파들은 연대를 넓히며 함께 미국 제국주의의 개입에 맞서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라틴아메리카 연대의 전망을 그리 장밋빛으로 보기는 어렵다. 핵심은 아르헨티나의 밀레이, 에콰도르의 노보아 정부 등 극우 세력 간의 연대 및 친미 종속성이 훨씬 강해진 데 비해 좌파 정부들 간의, 그리고 각국의 진보적 사회운동 간의 연계성이 과거에 비해 떨어졌다는 점이다. 1기 핑크 타이드 당시에는 2006년을 기점으로 우루과이, 파라과이, 칠레, 에콰도르, 볼리비아, 온두라스 등에서 좌파 정권이 연쇄적으로 집권했고, 핑크 타이드의 핵심 지도자였던 차베스는 '석유 외교'를 통해 이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며 라틴아메리카 단결과 통합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당시 브라질의 룰라 또한 60~8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바탕으로 보다 과감한 라틴아메리카 통합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차베스와 룰라. 출처: 로이터

 

그러나 이런 추세는 중국의 성장 둔화와 세계 원자재 가격 하락, 우파의 반격 및 사법 쿠데타 등으로 한 번 단절된 뒤 핵심 축이던 베네수엘라가 제재와 고립으로 주체적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사실상 부활하지 못하고 있다. 2019년 이후 다시 2기 핑크 타이드 정권들이 집권했음에도 반제국주의와 자립을 목표로 한 라틴아메리카 통합은 재개되지 못했다. 미국을 매개로 한 우파 정권의 연대는 나날이 강화되었지만 쿠바-니카라과-베네수엘라의 'ALBA 동맹'은 각국의 경제제재로 물리적인 연대 확대가 어려웠고, 칠레-우루과이-콜롬비아-멕시코-브라질 등 중도좌파 정부 간의 연대는 형식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2024년 베네수엘라 대선은 핑크 타이드의 분열을 확인할 수 있는 선거였다. 칠레와 브라질, 콜롬비아는 해당 대선을 부정선거라고 비판했고, 베네수엘라는 주 베네수엘라 칠레 대사관을 철수시켰다. 한편 브라질은 2024년 베네수엘라가 BRICS 가입을 신청하자 거부권을 사용하여 가입을 봉쇄했다.

 

특히 미국의 제재로 인해 베네수엘라 경제가 붕괴하면서, 집권을 노리는 주요 중도좌파들에게는 베네수엘라의 연계가 선거에서 불리한 요소가 되었다. 칠레의 사회당(PS), 광역전선(FA)을 비롯한 좌파들은 '권위주의'를 비판하며 마두로 정권과 각을 세웠고, 아르헨티나의 좌파 페론주의자들은 베네수엘라를 지지했지만 2010년대 후반 우파 마크리 정권의 집권 및 2020년대 극우 밀레이의 집권으로 정세가 완전히 반전되었다. 인접국이자 공통된 역사를 공유하는 콜롬비아에서도 마약카르텔로 변질된 친 베네수엘라 좌익 게릴라의 존재로 인해 현 대통령 구스타보 페트로를 비롯한 주요 좌파들은 베네수엘라와 각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차베스 시절 라틴아메리카 진보의 선두주자에서 이제는 '아픈 손가락' 정도로 이미지가 격하된 것이다.

 

결국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습은 이토록 지지부진해진 진보정권 간의 연대를 파고든 미국의 협박이자 충격이었다. 침공 이후 각국의 정부들은 자국 방어 위주의 행동을 이어나가면서 동시에 미국과의 물밑 접촉에 애쓰고 있다. 트럼프가 공습 직후 콜롬비아에 "다음은 페트로다"라는 협박을 날리자 페트로는 1월 7일 전국 집회를 소집해 각지에서 수만 명 규모의 인원을 동원했고, 집회 직전 트럼프와 직접 통화를 진행했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공습 직후 페트로 대통령 및 셰인바움 대통령과 통화를 가졌으며 셰인바움 대통령을 브라질로 초청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트럼프가 멕시코에 대해 지상군 투입을 시사하자 불개입 및 주권 수호 원칙에 대한 입장을 다시금 천명했으며, 한편으로는 1월 12일 트럼프와 통화를 갖고 미군 지상군 투입 반대, 베네수엘라 개입 반대 등을 명확히 함과 동시에 협상을 통해 쿠바에 대한 멕시코의 석유 수출 허가를 받아냈다.

좌측부터: 1월 7일 콜롬비아 보고타의 대규모 트럼프 규탄 집회 / 트럼프와 페트로의 통화. 출처: NPR(AP) / Colombia One

 

그러나 트럼프와의 협상이 또 다른 침공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투트랙 전술임을 감안하더라도, 1월 3일 미국이 행한 일이 라틴아메리카에 뜻하는 바는 변하지 않는다. 미국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민주주의, 평화, 협력, 공영 등의 위선을 내세우지 않고, 라틴아메리카에서의 독점적 지위와 천연자원 및 주요 산업에서의 중국·러시아 배제를 명확히 요구하고 있다. 한편 베네수엘라 역시 정치적 언사와 별개로 침공 이전 미국과의 물밑 협상을 이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이 협상을 지속하다가도 언제든 타국에 군사작전을 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확인되었기에 상황은 더욱 위험하다. 침공 이후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해상 봉쇄를 이어나가며 언제든 재침공이 있을 수 있다는 위협을 가하는 한편, 콜롬비아, 멕시코, 브라질에게는 일정한 유화책과 지속적 위협을 동시에 가하고 있다.

 

지난 주부터 백악관에서 들려오는 다음 타겟은 바로 쿠바다. 트럼프는 쿠바계 이민자인 마르코 루비오를 쿠바의 대통령으로 임명한다느니, 쿠바의 최후는 정해져 있다느니 하는 공격적 언사를 가함과 더불어 베네수엘라의 대 쿠바 석유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이는 쿠바계 우익 정치인들의 주도로 이루어진 베네수엘라 침공이 마두로 정권 제거와 함께 자원 통제로 쿠바의 보급선을 끊어 고사시키려는 이중전략임을 시사한다. 이는  표면적으로 의회민주주의의 틀을 유지하고 있어 무력개입 이외에도 개입 방식이 다양한 브라질, 콜롬비아, 멕시코 등을 제치고 가장 눈엣가시인 베네수엘라와 쿠바를 먼저 처리하겠다는 계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이 무너지면 라틴아메리카에 자주의 미래는 없다. 쿠바는 경제제재 속에서 물자 부족으로 고생하면서도 오늘날까지 라틴아메리카에서 국제주의의 소명을 다하고 있다. 남미 국가들에 대한 쿠바 정부의 지속적인 의료지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1월 3일 마두로 대통령 내외가 납치당할 때 쿠바 내무부 및 혁명군 소속 32인은 마두로를 지키다 전사했다. 1973년 칠레, 피노체트와 CIA의 쿠데타로 아옌데 대통령이 항전할 때 그 곁을 지킨 것은 바로 쿠바 군인들이었다. 1980년대 미국이 콘트라 반군을 동원해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권을 침공했을 때에도, 쿠바의 의사, 기술자, 군인들은 라틴아메리카의 자주와 평등을 위해 그곳에 있었다.

이스라엘인들의 파타고니아 산림 사보타주. 출처: X(트위터) @Adamemedia

 

미국이 총칼과 미사일로 라틴아메리카의 주권과 자유를 빼앗으려 위협하는 동안, 남미 중에서도 가장 남쪽의 칠레-아르헨티나에 걸친 자연의 땅 파타고니아에서는 또 다른 끔찍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극우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의 비호를 받는 이스라엘군(IDF)과 이스라엘 관광객들이 파타고니아의 울창한 산림에 불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칠레의 에우헤니오 세단 상원의원은 얼마 전 IDF 소속 군인들이 최근 지속적으로 파타고니아의 지형을 조사해 왔음을 밝힌 바 있다.[각주:7] 최근에는 IDF 소속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 관광객 2명이 방화 혐의로 당국의 공식 수배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의도적 방화와 사보타주임이 명백한 이 사태는 법적으로 매매할 수 없는 보호대상 산림을 불탄 땅으로 바꿔 매매가 가능하게 만들고,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자행해 온 정착민 식민주의를 또 다른 땅에서 실현시키고자 하는 제국주의의 세계적 발흥이다. 미국의 미사일은 베네수엘라와 쿠바를 향하고 이스라엘의 총부리는 가자지구를 넘어 파타고니아를 향하지만, 이들의 목표는 단일하다. 라틴아메리카의, 팔레스타인의, 그리고 오늘날의 세계에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맞서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의지를 꺾고 자신들의 패권에 의해 주도되는 야만의 세계를 다시금 도래시키는 것이다.

 

오늘날 희망은 단지 트럼프의 전횡에 맞서 버티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진보정권들에만 있지 않다. 이미 거리로 나오기 시작한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멕시코의 저항하는 민중에 있고,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며 베네수엘라의 제국주의 침공을 규탄하는 세계의 시민들에게 있다. 정권이 바뀌거나 미국의 개입이 더욱 노골적으로 가시화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단결한 민중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야만의 시대를 막아낼 희망이다.


이산

사회학도. 라틴아메리카 정치 및 사회운동, 사회변혁을 주된 관심사로 삼아 교류와 탐구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칠레에서 1년간 사회학을 공부한 경험으로 칠레 사회운동에 대한 소개 및 분석을 주로 한다.


각주

  1. The New York Times, This is what Venezuelans really want https://www.nytimes.com/2026/01/04/opinion/venezuela-maduro-trump-people.html?searchResultPosition=1 [본문으로]
  2. Reuters, Venezuela vice president Rodriguez in Russia, four sources say https://www.reuters.com/world/americas/venezuela-vice-president-rodriguez-russia-four-sources-say-2026-01-03/ [본문으로]
  3. TELESUR English, Special Interview | President of Venezuela, Nicolas Maduro https://www.youtube.com/watch?v=5smOORlDb9o [본문으로]
  4. TRT World, Caracas erupts in pro-Maduro protests as Rodriguez asserts no foreign entity controls Venezuela https://www.trtworld.com/article/8e047f3c745b [본문으로]
  5. 뉴스1, '마두로가 수장' 美지목 마약카르텔…법무부 공소장 "실재 안해" https://www.news1.kr/world/usa-canada/6031691 [본문으로]
  6. 뉴시스, 스페인+중남미 5개국 "美 베네수 개입·자원 통제, 극도로 위험한 선례" https://www.newsis.com/view/NISX20260105_0003464564 [본문으로]
  7. X @DD_Geopolitics https://x.com/DD_Geopolitics/status/2010387732322042014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