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구스타보 페트로의 콜롬비아, 미국과 마약 카르텔에 맞서다
트럼프가 '마약상'이라 지칭한 콜롬비아 대통령 구스타보 페트로는 마약에 누구보다 단호히 맞서고, 가자 민중과 연대하며, 기후위기의 관점에서 미국의 중남미 자원 수탈을 비판해 온 정치인이다.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 마약 카르텔을 지원하고 중남미를 종속화해 왔으며, 이에 맞선 페트로와 콜롬비아의 투쟁은 오늘날의 국제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베네수엘라에 이은 트럼프의 콜롬비아 침공 위협
지난 10월 19일,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콜롬비아 대통령 구스타보 페트로(Gustavo Petro)를 '마약상'이라 비난했다. 지난 9월 페트로 정부의 콜롬비아를 미국의 마약 퇴치 협력국에서 제외한 데 이어,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을 '로스 솔레스 카르텔'이라는 가상 마약카르텔의 두목으로 지칭한 것과 똑같은 종류의 언사를 콜롬비아에도 구사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에 덧붙여 콜롬비아가 코카인 생산량의 최고조를 갱신했으며, 코카인 생산을 줄이지 않을 시 "미국이 직접 하겠다"며 사실상의 무력 개입 신호를 보냈다. 이어 10월 25일에는 미 재무부와 OFAC(해외자산통제국)이 페트로 대통령 개인에 대한 제재를 부과했다. 카르텔의 자금을 막겠다는 핑계였다.
그러나 이 비난의 진짜 이유는 페트로가 마약 퇴치에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미국의 이익과 결부된 기존의 마약-폭력 시스템을 해체하려 하기 때문이다. 미국 마약단속국(DEA)의 자료나, UN 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자료를 근거로 하더라도 페트로 정부가 출범한 2022년 이래 콜롬비아의 코카인 생산 증가폭은 크게 줄어들었다. 페트로 대통령은 UN 자료가 코카인 재배지의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은 오류로 인해 추정 생산량이 과다집계되었다는 비판을 했고, UN 조사관들은 오류를 인정했다.1 페트로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이전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마약 카르텔과 연루된 부패한 정치인들을 수없이 고발하고 비판해 온 바 있다. 그로 인해 살해 위협도 수없이 받았고, 친구와 지인의 집을 전전하며 긴장 속에 살았다. 총을 침대 맡에 두고 잔 적도 많다.
그렇다면 왜 트럼프는 마약상과는 가장 거리가 먼 페트로 대통령을 마약상이라 칭했는가? 외신과 콜롬비아 거대 언론사들, 국내외 지정학 분석가들은 페트로 대통령의 '도발 행보'를 이유로 든다. 미국이 지난 8월 베네수엘라 인근 카리브 해역에 항모전단을 파견한 이후, 페트로는 가장 강력하게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위협을 비판해 왔다. 8월 페트로는 X(구 트위터)를 통해 "베네수엘라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에는 콜롬비아도 끌려들어갈 것이며, 카리브 해 전단 파견은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전체에 위협을 가하는 행위"라고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9월 말 뉴욕에서 열린 UN 총회 연설에서 페트로는 가자에서 벌어지는 집단학살을 비롯해 주요 강대국들의 기후위기에 대한 외면과 미국의 남미 주권 훼손을 강경하게 비판했다. 카리브 해에 파견된 항모전단이 미사일로 카리브 해상의 소형 보트에 탄 사람들을 살해했고, 그 중 콜롬비아인이 있었다 확인된다면 트럼프와 고위 결정권자들을 형사재판에 회부해야 한다고 이야기한 대목에서는 미국 대표단이 회장에서 걸어나가기도 했다. 페트로의 말은 단순히 총회 회장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연설 이후 뉴욕 시장 당선인 조란 맘다니와의 면담, 칠레 대통령 보리치가 주도하는 언제나 민주주의(Democracia Siempre) 정상회담 참여, '우리의 인류, 우리의 책임' 행사 참여 등 여러 국제교류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했고, UN 건물 앞을 메운 팔레스타인 연대집회에 참여하여 군중 앞에서 "그 어느 군대도 인류에게 총을 겨눠서는 안 됩니다. 미군 병사 여러분, 인류에게 총을 겨누는 명령에 복종하지 마십시오"라는 연설을 했다.2
트럼프는 격분하여 페트로가 콜롬비아로 돌아간 이후 그의 미국 비자를 취소했지만, 페트로는 여러 연설과 국무회의를 통해 "무릎을 꿇지 않겠다"며 자신의 입장을 굳건히 고수했다. 트럼프의 제국주의적 침략 야욕과 콜롬비아를 '속국'으로 대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도 멈추지 않았다. 이런 배경 속에서 베네수엘라에 이어 콜롬비아에 대한 침공 위협이 이루어지자, 서구의 주류 언론은 트럼프와 페트로가 설전을 벌이다가 이런 상황에 처했다며 자극적인 부분만 뽑아내고 있다. 그러나 가십성 음모론의 영역을 떠나, 지금 미국과 트럼프가 콜롬비아에 각을 세우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콜롬비아와 미국 현대사의 맥락 속에서 이유는 명확하다. 코카인과 마약 카르텔이다. 이들을 처벌하고 퇴치하기 위함이 아니다. 보호하기 위함이다.

'마약과의 전쟁'
1971년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오던 미국 국내의 코카인 및 마리화나 소비가 1968년 히피 문화의 확산과 함께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이를 명분으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마약 사용과 소지 일체가 불법이자 단속대상이 되었고, 특히 취약계층인 흑인을 중심으로 마약사범 재소자가 속출했다. 그 자체로 인종주의·빈곤혐오적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지만, '마약과의 전쟁'이 갖는 진짜 의의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마약과의 전쟁'은 1964년 브라질 군부 쿠데타, 1973년 칠레 군부 쿠데타, 1976년 아르헨티나 군부 쿠데타, 1980년 멕시코 PRI 당의 신자유주의 전환 등으로 이미 한 차례 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의 위협이 제압된 라틴아메리카의 이권에 미국이 더욱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명분이 되었다.
1979년 니카라과에서 좌익 반군인 산디니스타(Sandinista, FSLN)가 미국의 꼭두각시였던 소모사 독재정권을 무너뜨리자, 미국은 즉각 인근의 친미 위성국인 과테말라와 온두라스에서 콘트라(Contra) 우익 반군을 조직했다. 이들을 조직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에는 콜롬비아 및 중앙아메리카 등지에서 코카 잎을 재배하고 코카인을 만들어 미국에 팔게끔 하는 방식도 포함되었다. CIA가 해당국의 마약 카르텔에게 코카인 제조법과 효율적인 코카 잎 재배 방식을 가르치고, 미국 국내로 코카인을 밀수한 사실은 이미 미국에서도 기밀해제된 CIA의 콘트라 반군 관련 문서와 그에 기반한 수많은 저술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원래 페루와 볼리비아의 원주민인 아이마라·케추아 족이 고산 지대의 기호품으로 재배하던 코카 잎은 콜롬비아의 소외된 농촌 지역에서 총을 든 카르텔에 의해 대규모로 재배되는 플랜테이션 작물로 변화했다. 여느 플랜테이션 작물이 그렇듯 생산량의 거의 전부는 수출용이었다.
미국의 비호 속에 코카인 산업에 뛰어든 것은 어딘가에서 갑자기 생겨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미 20세기 초반부터 국가의 지배력이 취약하고 민주주의나 현대적 인권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콜롬비아의 서부 및 동부 국경지대에는 불법적 에메랄드 광산이 성행해 왔다. 불법 광산에서 노예노동을 통해 생산된 에메랄드는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되었고, 이를 운송하기 위한 국내 네트워크 및 국제 밀수 네트워크, 노예를 감시하기 위한 사병 조직 등이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 그런 범죄조직이 코카인 생산으로 넘어가는 것은 그저 사업 분야 확장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드라마 <나르코스>로 유명해진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메데인 카르텔의 시대를 넘어, 1990~2000년대 FARC(콜롬비아무장혁명군)과 ELN(민족해방군) 등 좌익 게릴라와 AUC(콜롬비아 연합자위대) 등 우익 준군사조직 및 군경의 전쟁으로 특징지어지는 피비린내나는 시기에 이들 에메랄드 상인들은 콜롬비아 코카인 산업을 지배했다. 이들은 CTI(검찰청 기술수사단), DAS(국가안전기획부) 등 콜롬비아 정부의 관리 및 요원들, 군부와 유착하여 내부고발자를 제거하고, 수사 정보를 사전에 유출하며, 조직원들과 연락책의 사법 절차를 지연 및 방해하고 수출 통관을 자유롭게 통과하며 세력을 키워나갔다.
한편 AUC를 비롯한 준군사조직들 역시 에메랄드 상인들로부터 코카인 산업의 패권을 빼앗고자 했다. 이들은 주로 중앙아메리카에서 '바나나 공화국(플랜테이션 농작물 수출에 의존하며 미국 자본과 대기업들에게 경제가 종속된 국가를 이르는 말: 편집자 주)'을 만들어 정부를 전복하고 노동자들을 학살한 것으로 악명 높은 Chiquita(전 유나이티드 프루츠 컴퍼니) 등의 자금지원을 받아 코카 잎을 재배하며 FARC, ELN 및 에메랄드 상인과 같은 경쟁자들과 그들의 지배 하에 있는 농민들을 학살해 나갔다.
오랜 기간 미국의 종속국이었던 콜롬비아 정부는 미국의 정책을 따라 '마약과의 전쟁'과 게릴라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군경을 통한 무력대응을 펼쳤지만, 실상 이는 정부와 유관한 마약 세력을 비호하기 위해 다른 마약 세력을 제거하는 폭력적인 항쟁에 불과했다. 대 카르텔 강경책으로 악명높은 알바로 우리베 전 콜롬비아 대통령은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재임하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마약 관계자로 몰아 초법적 살인(falsos positivos)을 6,400건 이상 저질렀다. 그러나 우리베는 정작 메데인 카르텔 등 여러 마약 카르텔들에게 선거 자금을 후원받은 한통속이었다. 공무원부터 대통령, 국회까지 콜롬비아의 국가 기관 전체가 마약 카르텔과 한몸이 되어 이런 세상에 저항하는 노동조합 간부, 활동가, 농민 조합장, 원주민 지도자들을 살해하고 콜롬비아인들을 폭력과 빈곤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은 우리베 정부를 두고 '마약과의 전쟁'에 가장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동맹이라며 무조건적 지지를 표했다.

콜롬비아의 코카인 문제와 그로 인한 지속적 혼란·폭력은 미국에게 있어 유용했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콜롬비아를 통제하고, 베네수엘라나 에콰도르 등 남미 '핑크 타이드' 좌파 정권에 개입하기 위한 기지를 마련하기에 무엇보다 좋은 조건이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에메랄드 상인 중 한때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던 '돈 훌리오'는 10년 간 912톤의 코카인을 수출하여 약 3조 9천억 원을 세탁했다. 보통 콜롬비아에서 1kg에 2~3천 달러에 불과하는 코카인이 미국에 도달하면 1kg에 5만 달러가 되어 수십 배로 불어난다. 기본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지만, 중간 리스크와 밀수 네트워크로 인해 이윤율이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대부분 현금으로 이루어지는 이 마약거래의 이윤을 합법적 시장 내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세탁 과정이 필요하다. 한국이나 일본의 조직폭력배들은 대부분 합법 비즈니스, 부동산업이나 요식업, 건설업 등을 통해 이를 해결하지만, 카르텔들은 초국가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기에 다른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그것은 바로 J&P 모건, HSBC, 도이체방크 등 자본주의의 중심에 서 있는 초대형 은행과 직접 거래하는 것이다. 이미 2012년 HSBC가 멕시코 시날로아 카르텔의 돈세탁을 도와주고 있다는 폭로가 있었으나3, HSBC의 5주치 이익에 불과한 19억 달러의 과징금만 추징하고 해당 사건은 종결되었다. 영국 재무부가 "HSBC의 경영진을 기소하면 금융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 경고하여 미국 법무부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들 은행에게 있어 카르텔과의 거래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대부분 현금으로 이루어지는 카르텔 거래의 특성상, 지속적으로 막대한 현금 순자산을 확보할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카르텔과의 거래가 적발되어 과징금을 내더라도 이는 단순히 '사업상 비용' 정도로 치부된다. HSBC는 카르텔 조직원들에게 직접 조세 피난처의 계좌를 터 주기까지 했다.
결국 아무리 미국이 마약단속국(DEA)과 이민관리국(ICE), 경찰과 군대, 국경경비대까지 동원하여 요란스럽게 단속과 사살, 체포를 벌여도 이는 쇼에 그칠 뿐이다. 오히려 카르텔이 존재하고 마약과 불법 광산 네트워크가 존재함으로써 남미 카르텔의 상위에 위치하는 미국 국내 카르텔들과 초국적 금융자본은 라틴아메리카를 더욱 착취·수탈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미국 정부로서도 라틴아메리카 정권들이 행정·지방장악력을 높여 국가를 정상화하는 것을 막고, 치안 불안과 카르텔에 대한 공포를 이용하여 좌파 정부의 집권을 방지하며, 여차하면 국내에 개입할 명분으로까지 사용 가능한 카르텔을 없앨 이유는 없다. 국내정치에서도 고전적인 '외부의 적'으로 통하는 외국 카르텔의 존재는 트럼프와 과두 자본이 미국 국내의 진보적 목소리를 더욱 억압하고 이윤을 쥐어짜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치안과 안보라는 주제는 이스라엘과의 협력, 팔란티어 등 감시 시스템의 설치를 정당화한다.

닉슨의 '마약과의 전쟁'을 벤치마킹하고자 하는 듯한 트럼프는 정작 콜롬비아 카르텔, 에콰도르 카르텔, 파라과이 카르텔, 아르헨티나 카르텔, 페루 카르텔, 미국 카르텔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이야기하는 카르텔은 항상 멕시코 카르텔이다. 트럼프에 따르면 미국 국내에서 마약을 유통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모두 멕시코 카르텔이며, 몇 명을 체포하고 몇 명을 살해했다는 것을 업적 삼아 자랑한다. 서구 언론은 미국 국내 카르텔들을 '갱단', '킹핀(갱단의 보스를 말하는 은어: 편집자 주)' 정도로 지칭하며 이들이 실제로 각 대도시의 일부와 여러 지역을 장악하고 정경유착을 통해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은 축소한다. 멕시코의 카르텔은 국가 주권을 천명하는 좌파 셰인바움 정부의 멕시코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어 주는 '마약 테러리스트'지만, 국내 카르텔은 카르텔이 아니라 갱단일 뿐이고, 따라서 '마약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마약과의 전쟁'을 끝내자
헤이그 그룹 회의에서 페트로 대통령의 발언에 따르면, 이런 폭력의 역사 속에서 70만 이상의 콜롬비아인이 살해당했다.4 페트로는 이를 두고 "10개의 가자"가 콜롬비아에서 일어났다고 이야기한다. 페트로 자신이야말로 이런 폭력의 역사에 온몸으로 저항해 온 사람이기에 그의 말은 더욱 무게감을 갖는다. 그는 1970년 부정선거를 계기로 결성된 도시게릴라인 4월 19일 운동(M-19)에 참여하여 부패한 경찰과 정부, 카르텔에 대항하는 활동을 펼쳤고, 노동조합 조직에 전념하여 1984년 시의원으로 선출되었다가 1985년 법무부 청사 점거 사건 당시 총기소지죄로 체포되어 2년 간 수감생활을 했다.
이후 M-19는 애국연합(Unión Patriótica)라는 정당으로 정치세력화하여 30명 이상의 국회의원을 배출하고 정치적 성공을 이루었다. 그러나 1984년부터 2018년까지 무려 34년 동안 애국연합의 유력 대선후보, 국회의원, 여러 활동가들은 살해당하거나 살해 위협에 직면했다. 이는 국가안전기획부(DAS)와 준군사 민병대, 카르텔의 합작품이었다. 2016년까지 살해당한 애국연합의 활동가는 5,733명에 달한다.5

페트로는 죽음의 위기를 수없이 넘기며 1998년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고, 2005년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직후 수크레 주에서 농민 학살을 자행하던 준군사조직과 정부 간의 결탁을 폭로하며 마약과의 전쟁의 진실을 세상에 알렸다. 이는 콜롬비아 정치에서 파라폴리티카(parapolítica), 즉 준군사(파라밀리타르, paramilitar)와 정치(폴리티카, política)의 결탁을 하나의 개념으로 만드는 시초가 되었다. 이후 2012년까지 전직 상원의장 13명 중 12명이 해당 혐의로 조사를 받거나 유죄 판결을 받았고, 97명의 상원의원과 102명의 하원의원이 용의선상에 올라 40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2012~2016년 콜롬비아 수도인 보고타의 시장으로 재임하며 사회주택 건설, 마약 중독자 의료지원센터(CAMAD) 건립, 신규 건축 공공임대할당 의무제 도입 등을 통해 범죄와 마약의 근본 원인인 빈곤을 없애고자 하였다.
이런 사람이 마약 카르텔의 두목이라는 비난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페트로가 대통령이 된 이후 콜롬비아의 코카 잎 재배지 증가율은 이전 이반 두케 우익 정부의 50%에서 6%로 급감했다. 이와 함께 동부 카타툼보 및 클란 델 골포(Clan del Golfo)의 재배지, 다리엔 갭(Darien Gap)으로 유명한 파나마 접경지대 다리엔의 카르텔에 대한 지속적 체포와 함께 연루된 검찰, 군경 및 정부 인사의 파면과 처벌을 통해 사상 최대 코카인 압수량을 갱신하고 있다. 좌익 반군 FARC와 정부 간의 평화협정 준수를 통해 양대 게릴라인 FARC와 ELN 중 한 쪽을 제압하고, 사실상 베네수엘라 접경지대의 마약 카르텔로 변한 ELN과의 협상만을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 농민들에게는 회복 프로그램과 커피 등 대체 작물 재배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자발적으로 코카 잎 재배를 포기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10월 21일 국무회의에서 페트로는 세계적 규모의 마피아 연합체가 수도 보고타와 쿤디나마르카 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은 이탈리아, 프랑스, 중동 국가들, 스페인, 멕시코, 미국의 범죄 조직과 연계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들에 의해 코카인은 유럽으로 수출되며, 여성·아동 인신매매 및 무기·장기밀매와 자금 세탁이 이루어진다고도 이야기했다. 또한 국가정보국(DNI) 국장에게 이들과 연계된 정치인, 법조인의 명단을 담은 보고서를 "저들이 우리를 죽이기 전에" 공개하라 요구했다. 이들은 베네수엘라 국경에서 SAM-16 대공 미사일로 페트로 대통령이 탑승한 대통령 전용기를 공격하려고 했으나 무기가 고장을 일으켰다.6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은 미국에게, 정확히 이야기해서 미국의 과두 자본에게 좋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페트로는 눈엣가시다. 특히나 페트로와 그의 좌파 정치연합인 Pacto Histórico(역사적 협약)은 단순한 정치세력을 넘어 수십년 간 미국과 콜롬비아 우파가 연합하여 자행해 온 폭력의 희생자들이기도 하다. 당장 지난 10월 26일 치러진 2026년 대선 경선에서 당선된 여당 대선 후보 이반 세페다(Ivan Cepeda)는 콜롬비아 준군사조직들의 학살을 제네바에 기소하려다 살해된 구 콜롬비아 공산당 서기장 마누엘 세페다의 아들이다. 이들이야말로 미국과 서방이 조장한 마약과 카르텔이라는 피로 물든 산업과 체제에 대한 안티테제다. 이들은 단순히 피에 젖은 콜롬비아 우파를 극복하는 것을 넘어 카르텔과 이를 필요로 하는 국제 자본주의에 맞서 콜롬비아가 '생명(vida)의 강대국', 농업 강국이 되어야 한다 이야기한다.
페트로는 유엔 총회 연설에서 인류의 적을 탐욕으로 규정했다. 기후위기를 외면하고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탐하는 것은 바로 자본의 무한 이윤을 향한 탐욕이고, 죽은 물질인 마약을 비극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인 마약상의 탐욕이다. 따라서 그는 콜롬비아와 인류가 기후위기가 제기하는 멸종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류가 하나된 정치적 주체로서 전력을 다하여 탈탄소를 실현하고 IMF, 세계은행을 위시한 거대 금융자본을 인류의 통제 하에 두는 평등한 세계 질서를 수립해야 함을 주장했다. 그 첫걸음은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재생 에너지 투자이며, 세계 군대의 자발적 통합군을 통해 가자의 집단학살을 멈추는 것이기도 하다. "가자에 떨어지는 미사일은 카리브 해에 떨어지는 미사일이자, 평등과 자유를 바라는 모든 인류에 떨어질 미사일이기 때문"이다.

민족과 주권, 한국과 콜롬비아
최근 한국과 캄보디아, 중국, 동남아 전체를 아우르는 범죄 스캔들은 혐중, 혐캄보디아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극우 일각에서는 군대 파견 주장처럼 캄보디아의 주권을 명백히 침해하는 제국주의적 주장 또한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국내의 수많은 분석처럼, 캄보디아 범죄 사건은 자본주의가 낳은 모순의 결과다. 상술한 콜롬비아의 파라폴리티카와 같이 우익 독재권력 하에 놓인 캄보디아의 취약한 통치 구조와 이를 착취와 수탈의 적기로 판단한 한국·중국 등 외국 자본의 무분별한 침투 속에 중국 푸젠성 카르텔을 위시한 국제적 범죄조직이 자라난 것이다.
한국 청년들이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이 네트워크에 연루되는 현상은 한국 내부의 경제적 모순(청년 실업, 산업 공동화)이 단순히 국내 문제가 아니라, 제국주의적 불균등 발전의 사슬 속에서 다른 주변부 국가의 착취 구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명확히 보여 준다. 한국의 금융자본이 캄보디아 농민의 토지를 약탈하며 불법 네트워크가 번성할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적 토양, 빈곤과 절망을 확대재생산하는 데 일조하는 현실은 합법적 자본축적과 불법적 폭력이 국경을 넘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착취 구조를 심화시키는지를 증명한다. 이는 페트로가 맞서 싸우고 있는 콜롬비아의 합법·불법 자본-국가 유착 구조와 다르지 않다.
한편 한국의 세계적 착취구조에 대한 공모는 단순히 민간영역에 있는 자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재명 정부는 '방위산업 강대국'을 목표로 가자 집단학살을 주도하는 이스라엘과의 군사적 협력과 방위산업 투자를 늘려나가고 있다. 한국석유공사가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가자 수역의 가스 채굴권을 구매한 사례는 한국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미국의 '방위 파트너'로서 학살을 외면하며 제국주의적 질서에 편승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재명 정부가 주장하는 방위산업의 국익과 안보는 결국 미국이 주도하는 피의 제국주의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얻어내는 '피로 물든 돈'인 것이다.
콜롬비아의 투쟁에 대한 관심과 연대는 우리 자신의 현실을 비추고 미래를 여는 거울이다. 페트로가 미국의 위협 앞에서 "무릎꿇지 않겠다"며 주권을 외치고 UN 연설에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파괴성에 맞서 인류 보편의 가치를 역설하는 모습은, 국내의 문제가 결국 국제적 문제 및 글로벌 체제의 문제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문제임을 보여 준다. 한국의 평화와 평등은 더 이상 고립된 민족주의적 국제관에서도, 미국과의 동맹 강화 속에서도 찾을 수 없다. 재벌 자본의 지배로부터 경제주권을 되찾고, 주한미군으로부터 군사 주권을 회복하며, 나아가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팔레스타인 등 동일한 제국주의적 억압에 맞서 싸우는 모든 민중과 연대하는 '새로운 국제주의' 속에서만 이는 실현될 수 있다.
이산
사회학도. 라틴아메리카 정치 및 사회운동, 사회변혁을 주된 관심사로 삼아 교류와 탐구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칠레에서 1년간 사회학을 공부한 경험으로 칠레 사회운동에 대한 소개 및 분석을 주로 한다.
각주
- Colombia One, Colombia’s Petro Urges UN to Revise Report on Cocaine Production https://colombiaone.com/2025/09/25/colombia-petro-cocaine-production-un-report/ [본문으로]
- Bloomberg, Colombian leader Gustavo Petro's call to defy Trump amplifies rifts in region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25-09-27/colombian-leader-gustavo-petro-s-call-to-defy-trump-amplifies-rifts-in-region [본문으로]
- 한겨레, "HSBC, 멕시코 마약단 돈세탁 통로였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543013.html [본문으로]
- Progressive International, Today's barbarism will be defeated in Palestine is free https://progressive.international/wire/2025-08-06-todays-barbarism-will-be-defeated-if-palestine-is-free/en [본문으로]
- Justice for Colombia, 5,733 members of Patriotic Union party murdered or disappeared over 1984-2018 https://justiceforcolombia.org/5733-members-of-left-wing-patriotic-union-party-were-murdered-or-disappeared-between-1984-and-2018/ [본문으로]
- X Gonzalo Guillén(@HELIODOPTERO), https://x.com/HELIODOPTERO/status/194168758742229820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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