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이중주, 그린란드의 어제와 오늘
베네수엘라 침공에 이어 그린란드 '판매'를 강요하며 패권을 투사하는 트럼프 행정부, 이에 영토 주권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그린란드 파병을 확대하는 덴마크와 EU. 그 사이 묻혀진 그린란드 민중의 진짜 목소리는 어디에 있을까? 덴마크 식민주의와 미국 제국주의의 이중 억압에 맞선 그린란드의 현대사와 현재진행형인 투쟁을 살펴보자.
그린란드는 미국 땅? - 트럼프의 신(新)제국주의

그린란드에 대해 당신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 한국인들 대다수가 '그린란드'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는 이누이트의 땅이자 빙하로 뒤덮인 북극의 동토, 그보다 조금 더 세계지리에 관심이 있다면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자 대륙과 섬의 경계를 가르는 기준, 정치와 세계사에 대해 안다면 덴마크 본토보다 훨씬 거대한 덴마크의 자치령 정도일 것이다. 모두 틀리지 않은 설명이지만, 동시에 결코 그것만으로 이 땅의 역사와 맥락을 직시하기란 불가능한 스테레오타입이기도 하다.
인류가 살고 있는 가장 추운 땅 중 하나, 세계 최대 크기의 섬이지만 동시에 인구는 5만여 명에 불과한 그린란드가 최근 갑작스레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많은 이들이 기후위기로 인한 극지방의 위기를 흔히 말하지만, 오늘날 그린란드를 달구는 것은 단지 기후위기만이 아니다. 작지만 큰 이 섬을 2026년 연초부터 세계정세의 초점에 올려놓은 것은 '그린란드 병합'을 시사하는 도널드 트럼프와 미국의 신(新)제국주의다. 지난 1월 3일 침공으로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납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트럼프는 곧 멕시코, 쿠바, 콜롬비아를 타격할 것이라는 예측을 (남미 각국 좌파 지도자들과의 갑작스런 평화 분위기 조성과 함께) 보란 듯이 뒤집어 버리고는 바로 화살을 그린란드로 옮겼다.
베네수엘라 침공 이후 트럼프는 지난 2기 집권 초기부터 영토확장계획의 일환으로 주장해 왔던 그린란드 '매입'을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매입이 불가능하다면 '군사적 옵션까지 고려'하겠다는 협박을 시작했다. 그린란드의 지정학적 위치와 자원은 미국의 국가안보에 직결되며, 미국이 그린란드를 갖지 않는다면 중국과 러시아가 섬을 노릴 것이라는 논리였다. 협박은 곧 실질적 위협이 되는 경제 분야로 번졌다. "그린란드 병합 계획에 협조하지 않으면 유럽 주요 동맹국들에 대한 관세를 올리겠다"는 트럼프의 발언이 보도되며 그린란드 자치정부뿐 아니라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덴마크 역시 강하게 반발했고, 유럽 측 주요 지도자들 역시 "이런 방식이면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성 발언을 공개석상에서 내놓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해당 이슈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집권 1기였던 2019년부터 이미 트럼프는 미국이 그린란드를 매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단순한 정치적 수사로 여기며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미국이 이제는 더 이상 국제법과 질서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을 세계에 확인시켜 준 지난 베네수엘라 침공 이후, 트럼프의 그린란드에 대한 집착을 단순한 정치적 수사로 여기는 이는 누구도 없다.
그린란드 자치정부(Naalakkersuisut)는 트럼프의 발언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옌스-프레데리크 닐센(Jens-Frederik Nielsen) 그린란드 자치정부 수반은 트럼프 행정부의 영토확장계획 발표 이후 "그린란드는 판매 대상이 아니며, 미국의 일부가 되거나 미국에 통치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고 여러 차례 못박아 왔으며, 베네수엘라 침공 이후로는 실질적인 침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덴마크 및 유럽 각국과의 군사적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덴마크 국방부는 지난 14일 군사훈련을 위해 그린란드 주둔 병력을 증원하고 있다고 밝혔으며1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NATO 주요 회원국 역시 파병에 동참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에 트럼프는 그린란드 파병을 밝힌 유럽 8개국에 대해 추가 관세를 10% 부과하고 6월부터는 25%로 늘리겠다는 식으로 경제 압박을 확대하고 있다.2

소위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 이후 서반구에서의 패권 확대 전략을 명시적으로 밝힌 트럼프이지만, 그럼에도 NATO 핵심 동맹국들과의 군사적 대립을 감수하면서까지 물리적 영토 확장을 노리는 것은 이례적이다. 트럼프가 이렇게까지 그린란드에 집착하는 이유로는 '북극항로'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며 그린란드 희토류에 대한 중국·러시아의 진출을 막기 위함이 흔히 거론된다. 지난 베네수엘라 침공의 이유로 라틴아메리카에서의 패권 재확인과 함께 중·러의 남미 자원 진출 차단이 거론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수많은 미디어에서 이미 다뤄진 트럼프 행정부의 야욕 그 자체를 이 이상으로 재확인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이 글에서는 그보다 조금 더 본질적인 질문들을 다뤄 보고자 한다. '그린란드의 주권은 왜 2026년에도 여전히 덴마크에 예속되어 있는가?' '트럼프는 베네수엘라와 쿠바에 대해서도 '병합'을 말하지 않는데, 그린란드는 왜 이렇게 쉽게 '남의 것'처럼 말해지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그린란드의 역사적·정치적 맥락, 그 중에서도 그린란드가 지난 300년 가까이 덴마크와 미국에 의해 겪어 온 식민주의·제국주의의 궤적부터 짚어 보아야 한다. 동아시아에 사는 우리가 몰랐던 그린란드의 역사를 살펴보자.
덴마크의 그린란드 식민화 역사와 원주민 탄압
극한의 추위와 당대의 기후변화 등으로 그린란드 땅의 주요 민족은 지속적으로 바뀌어 왔다. 현재 존재하는 '그린란드 민족'의 형성은 15세기 경부터로 추정된다. 그린란드에는 기원전 2,500년 경부터 수렵·어로를 기반으로 한 선주민 문화가 이어졌고, 이후 10세기 말~11세기 무렵에는 흔히 '바이킹'으로 지칭되는 노르드인들이 남서부를 중심으로 정착해 농경·목축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15세기 무렵에는 노르드인들이 거의 사라지고, 이 시기쯤 현재의 시베리아 지역에서 그린란드로 건너온 툴레(Thule) 문화권이 그린란드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오늘날의 그린란드 이누이트(Kalaallit, 칼라흘리트)로 이어지는 기반이 형성된다.
한편 그린란드에 대한 덴마크의 본격적인 식민지배는 18세기, 정확히는 1721년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칼마르 동맹)의 사제이자 선교사였던 한스 에게데(Hans Egede)가 상륙해 현 그린란드 수도인 누크(Nuuk)를 식민·선교의 기점으로 삼았다. 초기 식민화는 선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그린란드를 '야만', 덴마크를 '선진'으로 규정하고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기독교화 및 생활양식 변화를 추동하는 형태였고, 이후 덴마크 국가권력의 행정 및 경제 통제가 결합되면서 본격적인 식민통치가 시작되었다. 1774년 덴마크 정부가 왕립 그린란드 무역부를 설치하고 그린란드의 대외 교역을 완전히 독점하면서, 그린란드의 모든 수출 흐름은 덴마크가 쥐게 되었다. 이 독점 체제는 단순한 상업 독점뿐 아니라 그린란드 내부의 자생적 산업화를 억제하고 교역, 가격, 물류 질서 전반을 덴마크 본토에 종속시키는 효과를 냈다.

이전까지 그린란드에 독자적인 국가체제가 없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초기 덴마크 식민주의는 문화적 동화나 폭압적 지배보다는 현지 문화에 크게 손대지 않으면서 경제주권의 수탈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그린란드 원주민들에 대한 직접적 억압이 강화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전후의 단계적 탈식민화 흐름에 따라 그린란드 역시 1953년 덴마크의 행정체제로 완전히 편입되었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헌법 개정을 통해 형식상으로 본토와 동등한 일부이자 구성국이 되었고, 덴마크 의회의 선거구를 2석 적용받았다. 그러나 모든 정책은 철저히 덴마크 중심으로 이뤄졌으며, 그린란드의 모든 것을 덴마크식으로 재구성하는 동화 정책은 더 강화되었다. 즉 그린란드의 1953년은 식민지가 끝난 해가 아니라 단지 식민지 형태가 내국화(內國化)된 해인 것이다.
1950~60년대 그린란드 초등교육에서는 덴마크어가 제1언어, 그린란드어는 제2언어의 자리에 머물렀다. 덴마크어는 돌봄·병원·행정·산업의 모든 영역에서 빠르게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했으며, 그 결과 당시 세대 일부는 그린란드어를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 언어는 지배의 기술이었다. 덴마크어를 모르는 원주민은 시민이 아니라 '관리 대상'이 되었다. 또한 아직 본토 편입이 이루어지기 전이던 1951년 덴마크 정부는 그린란드 이누이트 아이들 22명을 가족과 분리하여 덴마크로 보내 덴마크 사회에 동화시키는 '리틀 데인즈(어린 덴마크인)' 실험을 진행했다. 이들은 고아로 칭해졌지만 대부분은 실제 고아가 아니었으며, 덴마크에서 고등교육과 더 나은 삶을 제공하겠다는 감언이설로 부모들에게 사실상의 강제동의를 얻어내어 분리시킨 아이들이었다.
리틀 데인즈 실험의 대상이 된 아이들은 그린란드로 돌아와서도 고아원에 격리되며 가족과 만나지 못하게 오랫동안 통제받았다. 이들 중 대다수는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많은 아이들이 그린란드어를 평생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3 그린란드인 일부를 식민지배에 유용한 중간계층 엘리트로 양성하려 했던 이러한 발상은 마치 1930년대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황국신민화 정책을 떠올리게 한다. 이에 더해 지난 2022년에는 1966년~1991년 간 원주민 미성년 여성들에게 자궁 내 피임기구(IUD)를 동의 없이 삽입하여 민족 절멸을 꾀하는 강제 피임 정책을 집행한 사례가 폭로되기도 했다. 덴마크 정부의 공식 발표에 의하면 해당 사건의 피해자는 4,500명 규모에 달한다.

최근 들어 덴마크 정부는 그린란드와의 관계 개선을 꾀하며 과거사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리틀 데인즈 실험의 경우 지난 2022년 3월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가 희생자 및 유족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한 바 있으며4, 강제 피임 정책에 대한 사과는 3년간의 조사를 거쳐 작년인 2025년 8월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졌다.5 이러한 우생학적·식민주의적 정책이 공공연히 자행되었던 핵심 시기는 흔히 유럽 복지국가의 황금기로 불리는 1960~1970년대였다. 현대까지도 이어지는 복지국가 덴마크의 기반은 결국 그린란드 식민지와 식민지인들에 대한 자원 수탈 및 민족 말살 정책 아래서 만들어졌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덴마크 식민주의와 미국 제국주의의 이중 억압
덴마크 식민주의는 '끝난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언어·제도의 잔재 형태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식민주의의 균열 위로 미국의 전략이 올라탄다. 조금 더 명확히 한다면 과거 덴마크 식민주의가 횡행할 때 그 위에 올라탔었던 미국의 제국주의 전략이, 그 식민주의가 상당 부분 무력화된 오늘날 더욱 직접적인 신제국주의적 개입으로 부활하려 하고 있다.
그린란드의 '이중 억압'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성격의 두 가지 지배가 교묘히 겹쳐진 구조다. 덴마크가 행정·재정·시민권의 틀을 쥐고 있었다면, 미국은 그 위에 군사·안보·감시 체계를 얹었다. 이 체제의 핵심은 1951년 체결된 미국-덴마크 방위협정이다. 이 협정은 그린란드 내 미군의 주둔, 방위구역 조성 및 군사 활동의 제도적 근거가 되었고, 이후 툴레 공군기지(Thule Air Base)의 장기 주둔을 가능케 했다. 협정 원문은 미국의 방위 활동과 이동·시설 사용에 관한 조항을 포함한다. 기지의 관할권을 인수받은 미 우주군은 지난 2023년 툴레 기지를 피투피크 우주기지(Pituffik Space Base)로 개명함을 밝혔다. 이 조치는 그린란드 주둔 미군의 역할이 오늘날 미사일 경보·우주 감시 등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 주며, 그 목표는 당연히 북극을 둘러싸고 있는 또 하나의 나라인 러시아와 그를 지원하는 중국이다.

이렇듯 이미 제국주의적 영토병합이 가시화되기 전부터 그린란드는 북반구 군사화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냉전 당시 그린란드는 미군 핵전략의 리스크도 떠안아야만 했다. 1968년 1월 툴레 기지 인근에서 핵폭탄을 탑재한 B-52 폭격기가 추락했다. 미군 승무원은 추락 이전 탈출했지만, 사고 이후 복구 작업에 참여했던 그린란드 노동자들은 방사능 피폭으로 후유증에 시달렸으며 해당 지역의 해양자원은 오랫동안 오염되어 이누이트족의 어업 기반을 파괴했다.6 이는 '미국의 안전'에 수반되는 위험이 그린란드에 전가되어 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다.
B-52 추락 사건에서 보여지듯, 그리고 오키나와의 헤노코와 제주의 강정마을을 비롯해 해외 주둔 미군기지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그러하듯, 이 문제의 본질은 기지 건설 및 확장 과정에서 원주민 공동체의 삶이 파괴되고 재편되었다는 것이다. 공군기지가 위치한 툴레 지역에 거주하던 이누구이트(Inughuit, 그린란드 이누이트 중 그린란드 북부 거주자들: 편집부) 87명은 1953년 기지 건설 과정에서 강제로 이주당했다. 이들은 1996년 '버려진 1953년'이라는 뜻의 '힝기탁 53(Hingitaq 53)'을 결성하여 집단 소송 및 권리 회복 투쟁을 제기했다.7 이러한 강제이주 기억은 이후 그린란드 정치에서 자치 확대 요구가 단순한 행정 권한 문제가 아니라 삶의 터전과 존엄, 원주민 권리 문제로 결합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덴마크는 그대로인데 미국까지 들어온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이유는 오늘까지도 덴마크의 식민지배 유산 위에 미국의 군사적·전략적 이해가 덧씌워지며 그린란드의 자기결정권이 분절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트럼프 정부의 그린란드 무력 병합 및 관세전쟁 시사는 이 구조가 위선을 벗어던지고 언제든 노골적인 제국주의 강압으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에 다름아니다.
미완의 주권: 그린란드의 반식민 운동
그린란드인들은 식민주의에 맞서 오랫동안 자기결정권과 주권을 제도화하기 위해 싸워 왔다. 폭발의 촉매가 된 건 1970년대부터 급격히 진행되기 시작한 유럽 통합이었다. 1973년 덴마크의 유럽공동체(EC)·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 당시 그 속령인 그린란드도 함께 가입하게 되자, 그린란드 내부에서는 원거리의 초국가기구가 어업·자원 같은 생존 문제를 좌지우지한다는 반감이 강해졌다. 결국 1970년대 중반부터 덴마크-그린란드 간의 홈 룰(Home Rule, 중앙정부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자치) 협상이 본격화된다. 덴마크 의회는 1978년 11월 29일 '홈 룰 법'으로 불리는 '그린란드 위임 자치법'을 채택했고, 그린란드는 1979년 1월 17일 주민투표로 이를 승인했다. 이후 1979년 5월 1일 법이 시행되면서 그린란드는 자치의회와 행정부를 갖춘 덴마크 왕국 산하 자치령이 된다.

다음 스텝은 1980년대 초에 본격화되었다. 자치령 지위 확보로 정치적 협상의 근거가 마련되자 그린란드인들은 곧바로 대외 경제질서에 대한 결정권을 걸고 싸운다. 1982년 2월 23일 그린란드 자치령 행정부가 시행한 EC 잔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에서는 탈퇴가 근소 우세(53.2%)로 나오고, 덴마크 정부는 이를 협상 지침으로 받아들인다. 그 결과 1984년 3월 13일 '그린란드 조약'이 체결되고, 1985년 2월 1일 그린란드는 EC를 공식 탈퇴한다. 이 사건의 의미는 '자치'가 단순한 행정 분권이 아니라 자원(특히 어업)과 생존의 규칙을 스스로 정하고자 하는 주권적 행동으로 현실화된 첫 사례라는 데 있다. 즉 홈 룰은 단지 제도였고, EC 탈퇴는 그 제도가 실제 자주권으로 가는 발걸음으로 사용된 첫 번째 실험이었다.
이후 자치령 그린란드는 30여 년 동안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고, 동시에 완전한 독립을 달성하고자 하는 독립주의 정치세력들의 힘은 지속적으로 커져 왔다. 2008~2009년은 그린란드 자치의 역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이다. 2008년 11월 25일 그린란드는 자치령에서 한 발 나아간 자치정부(Naalakkersuisut, Self-Government) 도입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했고, 찬성이 크게 우세했다. 그 결과 덴마크는 2009년 6월 12일 '그린란드 자치정부 법'을 제정하고, 이 법은 그린란드인을 국제법상 자결권을 가진 '인민(people)'으로 인정한다는 문장을 전면에 세운다. 동시에 이 법은 추후 그린란드가 독립을 원할 경우 주민투표로 결정하고 이후 덴마크 정부와 협상을 개시하는 방식으로 독립의 길을 최초로 명문화했으며, 국방·안보를 제외한 외교관계의 자율권 역시 보장했다.
그러나 주권의 핵심인 국방·안보는 여전히 덴마크에 남아 있고, 특히 자치정부 수립 이후로도 그린란드의 지정학적 위치성과 그린란드 방위 협정에 기반한 미군의 활동은 그린란드가 완결된 주권에 도달하는 것을 끊임없이 지연시키고 왜곡하는 가장 큰 암초로 작용해 왔다. 여전히 독립을 지지하는 여론이 과반을 넘는 것과 별개로, 트럼프의 압박이 재개된 이후 지난 2025년 치러진 그린란드 총선에서 직전 집권당이던 급진좌파 독립주의 정당 이누이트 공동체당(Inuit Ataqatigiit)이 패배하고 덴마크 연합주의 정당들이 약진한 것은 미국의 신제국주의라는 실존적 위협이 여전한 덴마크의 주권 행사와 함께 그린란드인들의 자결권을 이중으로 옭아매고 있음을 시사한다.

끝나지 않는 그린란드의 투쟁
미완의 주권은 결국 신제국주의의 위협 속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내적 자치가 폭넓게 적용되었다 하더라도 국방에 대한 권리는 여전히 덴마크에게 있었고, 베네수엘라 침공으로 가시화된 미국의 공세 속에서 그린란드는 결국 덴마크와 EU 국가들에게 다시금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덴마크는 국방을 NATO에 의탁해 왔고, 그 수장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미군기지를 설치한 주체 역시 그린란드인 자신이 아닌 덴마크였다. 오늘날 그린란드 문제의 '괴물'은 외부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낯선 존재가 아니다. 덴마크 식민주의가 남긴 상처(동화·인권침해)와 미국 군사체제가 남긴 상처(기지·이주·핵사고)가 완전히 치유되지 못한 상태에서, 이 균열을 비집고 들어오는 트럼프의 신제국주의는 과거의 기억을 먹고 자라는 현재의 위협이 된다.
그러나 녹록치 않은 상황 속에서도 그린란드인들 스스로가 트럼프의 위협에 결코 굴복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반식민·반제국주의라는 운동의 세계적 축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성을 갖는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1월 17일 그린란드 수도 누크에서는 트럼프의 영토 확장 야욕에 반대하는 그린란드인들의 시위와 행진이 열렸다. 그린란드 전체 인구가 5만여 명이고 누크의 인구가 2만여 명임을 고려한다면, 수천 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되는 이 시위에는 섬 전체 인구의 10% 이상이 함께한 것으로 추정된다.8 참석자들은 그린란드 국기와 함께 '그린란드는 파는 것이 아니다(Greenland is not for sale)' 등의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트럼프의 협박은 그린란드의 완전한 주권 획득을 또 한번 유예시키는 중이고, 덴마크는 지금 당장 독립을 추진하기 어렵게 된 그린란드와 더욱 밀착하여 향후에도 잔류를 유혹할 가능성이 높다. 누크에서의 시위와 같은 날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열린 반트럼프 시위에 덴마크 국기와 그린란드 국기가 자연스럽게 함께 등장했다는 사실은, 주권을 향한 그린란드인들의 지난한 투쟁이 다시 한 번 중대한 길목에 섰음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미국인도, 덴마크인도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그린란드 5개 정당의 공동성명9, 한겨울의 누크 시내에 모인 수천 그린란드인들의 목소리는 이들의 주권 획득이 유예되었을지언정 여전히 결코 좌초되지 않았음을 세계에 보여준다. 신제국주의의 발흥이 세계의 자주권과 자결권을 뒤흔드는 2026년,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이중 억압에 맞선 그린란드의 끝나지 않는 투쟁은 오로지 그린란드인들, 혹은 베네수엘라인들, 이란인들 스스로만이 그들 땅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당연한 원칙을 우리에게 재확인시키고 있다.
동백림
혁명과 개량 사이에서 고민하는 국제정세 오타쿠.
현재 시민사회단체 상근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도모의 국제면에 정기적으로 글을 연재하는 중이다.
각주
- 연합뉴스, 덴마크·나토, 그린란드에 병력 파견...美 겨냥 무력시위? https://www.yonhapnewstv.co.kr/news/AKR20260115110735jyQ [본문으로]
- 한겨레, 트럼프, 그린란드 파병 8개국에 "10% 관세"…유럽 "무역협정 중단"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1240270.html [본문으로]
- Al Jazeera, Greenlanders shipped to Denmark as children seek compensation https://www.aljazeera.com/news/2021/12/20/greenlanders-shipped-to-denmark-as-children-seek-compensation [본문으로]
- The Guardian, Denmark PM says sorry to Greenland Inuit taken for ‘heartless’ social experiment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2/mar/10/denmark-pm-says-sorry-to-greenland-inuits-taken-for-heartless-social-experiment [본문으로]
- 한겨레, 덴마크 총리, 그린란드 여성 수천명 강제 불임시술 뒤늦은 사과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1215728.html [본문으로]
- Up Here Magazine, The crash, the Inuit, and the bomb https://uphere.ca/articles/crash-inuit-and-bomb [본문으로]
- Cultural Survival, GREENLAND: Inughuit appeal to Danish Supreme Court for right of return https://www.culturalsurvival.org/news/greenland-inughuit-appeal-danish-supreme-court-right-return [본문으로]
- Al Jazeera, Thousands march in Greenland against Trump’s threats to take it over https://www.aljazeera.com/gallery/2026/1/18/thousands-march-in-greenland-against-trumps-threats-to-take-it-over [본문으로]
- 연합뉴스, 그린란드 정당들 "미국인도, 덴마크인도 되고 싶지 않다" https://www.yna.co.kr/view/AKR20260110059400082 [본문으로]
'국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란 시위를 바라보는 좌파의 시선 (2부) (0) | 2026.01.29 |
|---|---|
| 이란 시위를 바라보는 좌파의 시선 (1부) (0) | 2026.01.28 |
| 침공 이후의 베네수엘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0) | 2026.01.15 |
| 베네수엘라 침공으로 들여다보는 오늘의 미국 (0) | 2026.01.08 |
| 녹색 산업전환의 그림자와 내일: 2025년 노르웨이 총선 분석 (0) | 2025.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