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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정치 일반

대전-충남 졸속통합, 지역을 살리려면 행정통합부터 멈춰야 한다

by Domoleft 2026. 2. 15.

[정치] 대전-충남 졸속통합, 지역을 살리려면 행정통합부터 멈춰야 한다

대전광역시와 충청남도의 광역행정통합이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강력한 의지에 의해 유례 없는 '속도전'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철저히 무시되는 소통과 숙의에 더해, 지역과 수도권의 근본적 격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졸속 악법'이라는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된다. 대전-충남 통합 반대에 앞장서고 있는 김윤기 전환 공동대표의 기고를 게재한다.


12월 5일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타운홀 미팅 '충남의 마음을 듣다'. 출처: 연합뉴스

 

오는 2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소위 '행정통합 특별법' 의결이 진행될 예정이다. 잦아들지 않는 파열음과 갈등 속에 통합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호남권, 대경권 등 전국에 난무하고 있는 광역행정통합 논의의 시작은 충청권 4개 시·도 지자체가 2022년 8월 특별지방자치단체 추진에 합의하고, 2024년 12월 18일 '충청광역연합'을 공식 출범시키면서였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반 년도 되지 않은 2025년 9월,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대전광역시당 위원장(현 대덕구 국회의원)은 이러한 흐름에 대해 "권한을 나눠먹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주민 소통 없는 졸속이자 지방선거용"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각주:1]

 

졸속 행정통합 반대는 단지 박 위원장의 입장일 뿐 아니라, 그동안 이 논의를 국민의힘 일부 정치인들의 무모한 독주 정도로 여겨 온 지역사회의 보편적 관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작년 12월 5일, 천안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 '충남의 마음을 듣다'에서 상황은 급반전했다. 이 자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그냥 연합 정도 수준이 아니라 가능하면 대규모로 통합하는 게 좋겠다"면서, 기존의 충청광역연합을 넘어서는 완전한 행정통합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현장에서 "찬성, 반대 손 한번 들어보자"며 거수로 의견을 묻는 등 의제의 무게를 덜어내며 주민 의견 수렴을 마치 가벼운 것인 양 넘기기도 했다.

 

결국 2026년 1월, 박정현 위원장은 "대통령께서 최대치의 특혜와 예산을 약속하셨는데 안 할 이유가 없다"면서 채 한 계절이 지나기도 전에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어 버렸다. 본인이 비판했던 '지방선거용 졸속 통합'의 대표 추진자로 나선 것이다. 입장이 바뀌게 된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시민들에 대한 사과도 없었다. 주민과의 소통과 토론을 그토록 강조하던 민주당은 대통령의 한마디 '하명'이 떨어지자마자 일제히 찬성으로 돌아섰고 법안 발의 열흘 만에 상임위 통과, 설연휴를 낀 2주 후에 본회의 통과라는 초고속 일정을 제시하며 '속도전' 완성에 나섰다.

1월 7일 더불어민주당 대전광역시당의 '대전·충남 통합 및 충청발전특별위원회' 발족 기자회견. 출처: 경향신문


주민 숙의와 공감대 없는 '절차를 위한 절차'

"민주적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과정이 민주적이지도 않고 결과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각주:2] 지난 2일, 김민석 국무총리가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통합 논의에 대해 반대 의사를 담아 한 말이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다. 그런데 문득 드는 질문이 있다. 왜 두 정당의 통합에는 그토록 원칙적 태도를 취하면서, 주민의 삶과 훨씬 더 직결되어 있는 충남-대전 통합에 있어서는 이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가? 앞서 언급한 김민석 총리와 박정현 위원장 말고도 이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 민주당 정치인은 허다하다.

 

민주당은 주민 소통 부족이라는 비판이 일자 부랴부랴 '타운홀 미팅'을 열었다. 그러나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고작 하루이틀 전 공지가 나간 평일 낮 시간대 행사에 참여해 비판적 의견까지 낼 수 있는 직장인과 서민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민주당 소속 구청장들이 동마다 지역 유지 30명씩을 동원해 자리를 채운 행사가 어떻게 진정한 의견수렴일 수 있겠는가. 이는 결코 '소통'이 아니다. 비판을 피하기 위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알리바이 만들기에 불과하다. 심지어 특별법안조차 완성되지 않은 시점에서 열린 행사였으니, 충실한 내용은 애초에 기대할 수도 없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주민투표를 건너뛰려는 꼼수다. 박 위원장은 인터뷰를 통해 "최근 주민투표 이야기나 재의결 이야기가 나오는데 (중략) 다만 행정 절차 자체는 이미 마무리됐다"면서,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모두 의회 의결을 통해 행정 절차를 진행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본인조차 동의할 수 없었던 법안으로 진행된 과거의 행정 절차를 가져와 주민투표를 건너뛰는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못 하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얄팍한 입법 기술을 동원해 민주적 절차를 무력화하겠다는 발상은 누가 봐도 낯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민주당' 아닌가? 물론 국민의힘도 다를 바 없다. 시민사회의 주민투표 요구는 '국가사무'라며 거부하더니, 주도권을 빼앗기자 주민투표를 방패막이삼는 이장우 대전시장 역시 기회주의적 정치 기술자에 불과하다.[각주:3]

좌측부터: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위원장 / 이장우 대전광역시장. 출처: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 대전광역시청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밀어붙이는 무리한 통합에 '이재명표 속도전', '묻지마 속도전'이라는 비판이 따라붙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이번 광역행정통합 추진은 여당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이용하기 위해, 중앙정부가 합법적으로 선거에 개입할 수 있도록 졸속으로 의제를 전면화한 정략적 추진임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덩치를 키우면, 수도권과 대결해서 이길 수 있는가?

절차적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는 애초부터 잘못된 방향 설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신년사에서 '모두를 위한 성장'을 선언하며, 5대 대전환 과제 중 하나로 '지방 주도 성장'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지방 주도 성장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정체된 성장의 돌파구를 지방에서 찾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성장을 통해 지방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인가?

 

여당은 현재 행정통합의 목표를 '수도권 일극 체제와 지역 소멸 극복'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번지수가 틀린 답변이다. 성장은 해법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원인에 가깝다. 수도권 중심주의와 신자유주의 경쟁 체제, 그에서 비롯된 성장지상주의가 이 문제를 비롯해 대한민국이 직면한 수많은 비극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불평등의 양상 중 하나인 지역소멸을 해결하기 위해 성장을 해법으로 삼는다면 문제는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현 집권여당이 학벌 체제 극복의 대안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제시했던 것과도 비슷한데, 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애초에 할 수도 없는 우스꽝스러운 결론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2024년 '서울대 10개 만들기' 간담회에서 축사하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출처: 한겨레

 

지금 지역의 위기는 수도권과 맞서기 위해 덩치를 키우거나, 다른 지역과 경쟁해서 새로운 산업단지를 유치하는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서울·수도권이 다른 지역들을 '내부 식민지'로 삼아 성장해 왔듯, 대전-충남 통합 특별시 역시 지역 내 거점 도시인 대전과 천안을 위해 중소도시와 농어촌을 내부 식민지로 수탈하는 구조를 그대로 복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서울·수도권의 기득권은 그대로 유지되는 다층적인 수탈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 뻔하다. 대한민국 어디에 살더라도 기본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새로운 목표와 가치를 제시하지 못한 채, 경쟁과 수탈의 체제 속에 몸집만 불리는 통합은 문제를 지역 내부로 이식하는 것에 불과하다.


순서가 틀렸다, '서울 공화국 해체'가 먼저

진단이 잘못되면 해법은 엉터리가 되고, 이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 키울 뿐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행정통합을 밀어붙이기 위해 20조 원의 재정 지원, 서울특별시와 동등한 위상 부여, 2차 공공기관 이전 등의 지원책을 내놓았으나, 이 역시 성장지상주의에 입각해 지역, 그 중에서도 일부 거점도시에만 수도권의 과실을 선심 쓰듯 나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이전과 다를 바는 없다. 똑같은 대책을 내놓고 다른 결과를 바라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진단부터 새롭게 하는 일이다.

 

일단 순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과제는 수도권 중심주의의 해체다. 덩치를 키우는 것이 해답이었다면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인 400만 부산이 왜 가장 먼저, 가장 큰 위기에 빠진 것인가? 기관 이전이 해법이었다면 행정수도인 세종과 혁신도시들이 주말이면 유령도시가 되는 일도 없었어야 했다. 이런 대안들은 집중될 대로 집중되고,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서울·수도권의 특권'을 해체하는 특단의 조치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결국 도루묵이 될 뿐이다. 수도권 기득권은 그대로 둔 채 지역도 살리겠다는 것은 어떤 전략이나 계획일 수 없고, 그냥 듣기 좋은 말일 뿐이다.

 

현실을 보자. 2020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매출 상위 100대 기업 중 91개의 본사가 수도권에 있다.[각주:4] 1,000대 기업으로 따져도 7할 이상이 수도권에 있다. 스타트업의 젖줄인 벤처 투자의 80% 이상이 서울 강남과 판교에 쏟아진다. 정치와 행정의 결정권은 여의도와 광화문에 독점되어 있고, 지역에서 번 돈은 카드사와 본사를 통해 서울로 빨려 올라간다. 수도권으로의 이토록 강력한 집중을 깨뜨리지 않은 채 진행하는 행정통합이 무엇을 해결할 수 있겠는가? 서울이 가진 정치·경제적 독점을 그대로 둔 채 지역의 덩치를 키우는 것은, 지역의 인재와 자본이 수도권으로 더 빠르고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수탈의 사다리만 놓아주는 일이 된다.

2020년 전국 1,000대 기업 지역별 분포 및 매출액 비중. 출처: 이투데이

 

2022년 통계청이 발표한 '지역소득(잠정) 및 시도별 소득 역외유출 현황'에 따르면, 전국에서 소득 역외유출 규모가 가장 큰 지역은 충청남도다.[각주:5] 충남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울산 다음으로 높은 약 5,800만 원으로 전국 최상위권 수준인데, 1인당 개인소득은 2,300~2,400만 원 수준에 그친다. 충남에서 생산된 부가가치 중 지역 밖으로 빠져나가는 돈은 연간 약 25조 원이고, 이는 GRDP의 20~25% 수준에 달한다. 삼성디스플레이, 현대제철 등 대기업들의 공장은 충남에 있지만, 본사가 서울에 있어 법인세는 서울에 내고 고임금 임직원의 소비도 서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생산은 충남에서 하고, 돈은 서울이 가져가는 셈이다.

 

이만큼이나 심각한 것은 인재 유출이다. '대전·세종·충남 지역 인구 유출입 현황'[각주:6] 에 따르면 대전·충남 지역 대학 졸업자의 53.8%가 수도권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대전의 경우 매년 2030 청년 세대 약 4,000~5,000명이 순유출되고 있으며, 이들의 80% 이상이 서울·수도권으로 이동했다. 카이스트 석·박사 졸업생의 약 72%가 대전을 떠나 수도권 등으로 취업하고, 대전 지역 잔류율은 20%대 초반에 불과한 수준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임금 격차는 월 평균 약 60~70만 원 이상 벌어진다. 민간기업 부설 연구소의 65%, 연구개발 인력의 70%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단기적인 지원책에 현혹되어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117개나 되는 기존 법률을 무력화하면서까지 통합시장의 결정으로 대체할 수 있는 특례를 보장받으려 애쓰기보다, 경제적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대기업의 현지 법인 설립을 유도하고, 지역 재투자를 의무화해 역외 유출을 최소화하며, 지역정부가 주도하는 지역공공은행 설립 등을 통해 우리 지역에서 생산된 부가 우리 지역과 주민들을 위해 다시 쓰이는 경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방향을 바꾸고,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2016~2020년간 충청권 청년층 인구유입 현황 및 주요 인구감소지역. 출처: 충청투데이


반민주, 반노동, 반기후, 반교육, 반평화… '통합 특별법'의 민낯

한편 이렇게 졸속으로 만들어진 소위 '통합 특별법'은 어떠한가?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 기대는 무색해지다 못해 절망적으로 변한다. 법안 곳곳에 박힌 독소조항들은 지역을 살리기는커녕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어렵게 지키고 확대해 온 민주주의와 노동, 기후, 교육의 가치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폭탄과도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선 통합특별법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형해화한다. 부칙 제1조(시행일)에서 2026년 7월 1일 시행을 명시함으로써 주민투표를 포함한 숙의와 합의 절차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 이를 어쩔 수 없는 일정이라 하더라도, 제10조(조직 운영 등에 관한 특례)는 더욱 심각하다. 통합자치단체장에게 행정기구 설치와 정원 관리 자율권을 부여하여 더욱 큰 권한을 쥐여주는 반면, 이를 견제할 지방의회와 주민의 감시 기능은 대폭 축소했기 때문이다.

 

최근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는 "행정통합을 대비한 지방의회 구성과 선출 기준을 시급히 마련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각주:7] 현행 공직선거법상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안은 선거일 6개월 전까지 시·도지사에게 제출되어야 하는데, 통합 논의에 떠밀려 이에 대한 논의는 전무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동안 대전과 충남은 전혀 다른 기준으로 기초의원 선거구를 획정해 왔음에도 정작 특별법에는 이를 해결할 대안이 담겨 있지 않다. 결국 충남·대전 통합시의 첫 기초의회들은 출범부터 초법적으로 구성될 운명에 처한 셈이다.

행정통합 지방의회 기준 마련을 요구하는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기자회견. 출처: 대전MBC

 

둘째, 이 법은 기업에게는 온갖 특혜를 부여하면서도 노동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큰 '반노동 악법'이다. 제21조(규제자유화구역의 지정 등)는 통합특별시를 국가발전을 선도하는 '규제 자유화 지역'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관계 법령의 규제를 우선적으로 정비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규제의 범위가 모호하고 광범위하여, 도대체 무엇을 어디까지 풀어주겠다는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백지위임이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제30조(투자유치를 위한 지원)는 기업 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명분 아래 노동규제를 해체하고 있으며, 제165조(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한 다른 법률의 적용 배제)는 외국인 투자 기업에 대해 '고령자고용촉진법'의 적용을 배제할 수 있게 하여, 기업이 고령노동자 의무고용 비율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특혜를 주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향후 최저임금 예외 적용, 주 40시간제 무력화,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등 노동자의 기본권, 안전과 생명에 필수적인 규제 해체의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이에 반해 기업을 향한 특혜는 쏟아진다. 제83조(조세의 감면), 제84조(부담금 등의 감면), 제88조(투자진흥지구의 자금 지원 등)는 각종 세금과 부담금의 감면은 물론 자금 지원까지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제89조(국유재산·공유재산의 임대 및 매각)는 투자진흥지구에 입주하는 기업에 국·공유재산을 수의계약으로 넘길 수 있도록 하는 매각 특혜까지 담고 있다. 결국 특별법은 지역 성장을 위한 기업 유치라는 미명 하에 기업의 이윤은 무한대로 보장하고, 노동자의 권리는 극도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이 법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난개발 특별법'이자 '환경 파괴 면허'를 발급하는 것과 다름없다. 국민의힘이 시작하고 민주당이 이어받은 이 법안은 통합을 핑계로 토건의 빗장을 풀고 있다. 제22조(예비타당성조사 면제)와 제74조(개발제한구역의 지정·해제에 관한 특례)는 기존 법의 규제마저 무력화시켰다.

2월 10일 대전지역 시민사회의 대전충남통합 중단 촉구 기자회견. 출처: 오마이뉴스

 

내용의 실체는 더욱 기만적이다. '산림이용지구'라는 이름으로 민간 사업자에게 전망대, 모노레일, 케이블카를 건설할 수 있는 특혜를 주고, '농업진흥지구'를 지정해 농지를 식량 안보의 터전이 아닌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려 한다. 더 큰 문제는 이 모든 과정에 브레이크가 없다는 점이다. 경제성이 없어서 다 망해 가는 사업이라도, 계획이 허술하고 부실해도 '보완'만 하면 허가해 주겠다는 것이다. 특히 제79조(인·허가 등의 의제)는 특별시장이 개발사업 실시계획을 승인하면 건축법, 농지법, 산지관리법 등 무려 44개 법률의 인·허가를 받은 것으로 간주하게 하여 무분별한 난개발의 길을 터 주었다. 이는 '신속한 개발'을 핑계로 주민 의견 수렴과 공청회 같은 필수적인 숙의 과정을 생략하고 폭주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런 독소조항들을 잔뜩 때려넣고, 생색내기용으로 '정의로운 전환 특구'를 지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게다가 기후위기 시대, 탄소중립기본법 등 시대적 과제에 대응해야 할 특별시장의 책무는 법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결국 이 법안은 기후위기라는 절체절명의 과제 앞에서 모든 생명의 생존을 담보로 토건 자본의 배를 불리려는 '기후 포기 법안'이다.

 

넷째, 이 법은 '특권 학교' 설립으로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공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교육 악법'이다. 제90조(교육자유특구), 제95조(국제고 설립), 제121조(영재학교 설립)는 소수 엘리트만을 위한 '귀족 학교' 설립의 포석이다. 더 심각한 것은 제6조(통합특별시의 책무)와 제38조(자치조직 특례)다. 교육 자치를 국무총리와의 성과 협약에 종속시키고, 비전문가를 개방형 직위로 임명해 교육 현장을 좌지우지하게 만듦으로써 교육의 전문성과 중립성마저 훼손하고 있다. 결국 보편적 공교육은 뒷전으로 밀리고 교육 시장화만 가속화되어, 지방 소멸을 막기는커녕 교육 격차로 인한 지역 이탈만 부추기는 자충수가 될 것이 명백하다.

 

마지막으로, 통합특별법은 통합시에 주민들과 전혀 합의한 바 없는 '국방중심도시'라는 명칭을 붙이고 지역의 정체성마저 변경하려 한다. 세계적 군비증강 속 한국의 방산기업들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으며, 민주당은 '방산 G4' 진입을 선언하고 그 핵심 기지로 대전·충남을 지목하였다. 지난 2년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학살 피해자 7만여 명 중 70%는 어린이와 여성이었다. 국방중심도시, 방산도시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학살의 공범이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대전과 충남은 국가에 의해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역사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운동이 수십년 간 있어 왔고, 최근에는 집속탄 공장 설립을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기를 판 돈이 아니라, 모든 생명들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평화다.

충청남도 논산시에 조성될 예정인 '국방 특화 클러스터' 조감도. 출처: 충청남도


평등한 연대를 위한 시간을 만들자

행정통합은 더 파헤치고 더 착취할 곳을 찾아 헤매는 자본의 요구에 응답하는 기득권 정당들의 정략일 뿐이다.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6월 1일 반드시 통합시장을 선출해야 한다'는 저들의 강박적인 시간표부터 과감히 폐기하는 것이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눈 뜨고 코 베어 가는 식의 졸속 결정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백가쟁명식의 다양한 제안과 치열한 토론, 그리고 충분한 공론화와 숙의의 시간이다. 바로 이러한 절차 속에서 정부와 여당, 각 정당은 자신들의 안을 내놓고 경쟁하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미 학계와 시민사회는 성장지상주의에 찌든 현재의 통합 논의를 넘어설 수많은 대안을 내놓았다. 외부 자본 유치가 아닌 지역 자본의 선순환을 꾀하는 '지역순환경제', 물리적 통합 대신 자율성을 유지하며 광역 사무만 분담하는 '행정연합', 주민과 멀어지는 '나쁜 민주주의'를 경계하며 읍·면·동 단위의 주권을 강화하는 '작은 자치', 거대 메가시티가 아닌 소멸 위기 소도시들을 촘촘히 연결하는 '소도시 연합', 그리고 수도권 지배를 막기 위해 협력적 분권화와 공유 자산을 강조하는 '비지배 자유 기반의 공화주의'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다양한 가능성의 씨앗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꼼꼼하게 검토하고 토론할 시간을 시민들에게 온전히 돌려주어야 한다.

 

윤석열 퇴진 광장의 요구는 분명했다. 정권교체를 넘어, 내란 세력이 다시는 발붙일 수 없도록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회대개혁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너진 민주적 질서를 바로 세우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방향과 원칙을 담아내는 개헌으로 그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이는 대통령도 동의한 내용이다. 그렇기에 수도권 일극 체제와 지역소멸 극복은 사회대개혁의 큰 틀 속에서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할 시대적 과제이지, 고작 20조 원 지원이라는 '당근'을 미끼로 지역별로 알아서 처리할 사안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런 파행적인 논의에 제동을 걸어야 할 원내의 자칭 진보정당들은 정부가 만들어 준 '사회대개혁위원회'라는 몽상에 빠져 제 역할을 잃어버렸고, 이제는 졸속 통합 찬성에 더해 '더 큰 통합'을 포퓰리즘적 구호로 내거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각주:8]

대전충남통합특별법안 폐기를 요구하는 정의당 대전시당과 충남도당의 공동 기자회견. 출처: 오마이뉴스

 

정의당 대전시당과 충남도당은 얼마 전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현재의 졸속적인 통합 특별법 논의를 즉각 중단하고 '대한민국은 분권국가'임을 천명하는 개헌 논의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각주:9] 이와 같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민 자치권, 지방 분권, 지역 정치 다양성이라는 대원칙을 확인하고, 자치입법권, 자치재정권, 자치조직권 등을 보장하는 것이다. 지역으로 권력을 과감히 분산하고, 주민 생활권 중심의 행정 체계를 고민하며, 지역 간의 무한 경쟁이 아닌 협력과 연대의 체계를 구축하는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결단해야 할 것은 대한민국을 지배해 온 수도권 중심주의,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 그리고 낡은 성장지상주의와의 과감한 결별이다. 대한민국 어디에 살든 모든 이들은 삶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지역 간·주민 간 연대와 협동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야 한다. 민주주의와 자치의 역량을 확대하며, '성장을 위한 통합'이 아니라 '평등을 위한 연합'으로 당당히 나아가자.


김윤기

전환 공동대표, 전 정의당 부대표.


각주

  1. 대전MBC, 박정현 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 "행정통합 난항..여가부 세종으로"/투데이 https://tjmbc.co.kr/NewsArticle/349178 [본문으로]
  2. 경향신문, 김민석 “합당 과정은 민주적이어야…국정과 직접 연관 없어”…여당 갈등 구도에 참전 https://www.khan.co.kr/article/202602021806001 [본문으로]
  3. 대전MBC, 이장우 "효과 없는 통합 추진 시 주민투표 요구" https://tjmbc.co.kr/NewsArticle/821653 [본문으로]
  4. 문화일보, 100대 기업 수도권 편중 심화… 지방은 9곳뿐 https://www.munhwa.com/article/11259985 [본문으로]
  5. 충청투데이, 충남 역외유출 만년 1등 '심각' https://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5773 [본문으로]
  6. 한국은행, 대전·세종·충남 지역 인구 유출입 현황 및 특징 https://www.bok.or.kr/portal/bbs/P0000800/view.do?nttId=10055207&menuNo=201087 [본문으로]
  7. KBS 뉴스, “통합 대비 지방의회 구성·선출 기준 마련 필요”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482651 [본문으로]
  8. 광주MBC, 진보당 "광주전남 넘어 500만 호남대통합으로" https://kjmbc.co.kr/NewsArticle/1499758 [본문으로]
  9. 오마이뉴스, 정의당 "대전·충남 통합은 주민 배제한 속도전" 특별법안 폐기 촉구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04963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