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청소년의 잠과 인권을 팔아넘기는 학원 심야교습 연장 조례에 반대하며
얼마 전 서울시의회에는 학원 심야교습시간을 밤 12시까지로 연장하는 조례안이 국민의힘 시의원 20명에 의해 발의됐다. 학교에 다니고 있는 청소년인 필자가, 학원자본과 사교육 산업의 이해관계에 청소년의 잠과 인권을 팔아넘기려 하는 서울시의회의 심야교습 연장 조례안을 낱낱이 비판한다.

지난 10월 20일, 국민의힘 정지웅 서울시의원은 시의회에 현재 저녁 10시까지로 정해져 있는 학원 등의 교습시간을 고등학생 대상으로 12시까지 연장하는 조례안을 같은 당 의원 19명의 찬성으로 발의했다. 서울시의회 다수당인 국민의힘(75석)은 이 조례안의 발의와 통과를 주도하고 있지만, 발의자인 정지웅 시의원이 학원연합회 인사를 초청하여 개최한 토론회에 시의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이 이름을 올리는 등1 이에 맞서야 할 야당 일각에서조차 외려 동조하는 듯한 움직임이 존재하는 것 역시 큰 문제다.
조례안에는 표면적으로 '형평성'과 '선택권 보장'이라는 그럴듯한 단어들이 나열되지만, 이 조례에 정작 이 결정의 무게를 매일같이 감당해야 하는 청소년들의 현실은 단 한 줄도 담겨 있지 않다. 지금도 청소년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일정 사이에서 수면 부족에 허우적대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학업 경쟁은 이미 극단에 다다랐고, 일상은 과로와 피로로 잠식되어 있다. 그럼에도 서울시의회는 청소년의 삶을 먼저 보는 대신 사교육 산업의 이해관계와 성적 중심의 경쟁 구조를 유지하는 데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선택권'이라는 말장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학생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하루 대부분을 책상 앞에서 보낸다. 과로와 수면부족은 이미 일상이 되었고, 주말마저 온전히 쉬지 못하는 친구들이 수두룩하다. 밤 늦게까지 학원에 앉아 숙제를 하다 새벽을 넘기는 것은 더 이상 일부 학생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거의 모든 학생이 겪는 공통적인 피로의 풍경이 되어 버렸다.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새벽배송 문제에 대해서도 국제노동기구(ILO)가 야간노동을 2A급 발암물질로 분류했듯이, 잠을 덜 자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화는 이제 우리 사회 전반에서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위기의 단계에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여전히 성장 단계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수면부족은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학교의 아침은 이미 '졸음으로 시작하는 학교'라는 씁쓸한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종이 울림과 동시에 교실은 잠에서 덜 깬 얼굴들, 고개를 떨군 채 버티는 뒷모습들로 가득하다. 첫 교시가 시작되기도 전에 책상 위에 엎드린 친구들이 여럿 있고, 선생님 역시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 어느새 모든 학생들이 아침에 조는 것은 너무도 보편적인 현실이 됐다. 이미 이렇게 피로한 청소년들에게 "공부를 더 하라"며 시간을 늘리겠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이미 시대착오적이다. 아무도 건강하지 않고,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데, 우리는 왜 더 긴 시간을 견뎌야 하는가?

한국 교육의 현실을 말할 때에는 흔히 '사당오락(四當五落)'이라는 말이 따라붙곤 한다. '4시간 자면서 공부하면 대학에 붙고, 5시간 이상 자면 떨어진다'는 뜻이다. 오래된 문구이지만, 여전히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이 말은 일종의 경고처럼 회자된다. 이 말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청소년에게 요구되는 학습량과 경쟁의 압박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보여 준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청소년의 수면 부족을 우려해야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그것을 입시의 미덕처럼 소비해 왔다. 더 적게 자고 더 오래 공부하는 것이 능력처럼 여겨지는 문화 속에서 청소년의 건강·감정·삶은 계속해서 후순위로 밀려나 왔다.
조례안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학생들은 스터디카페 등에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는 아주 중요한 질문이 빠져 있다. 청소년은 왜 그렇게까지 늦은 시간에도 공부하게 되는가? 그것이 정말 자발적인 선택인가? 왜 우리는 '사당오락'의 시대를 살게 되었는가? 한국의 고등학교 성적은 상대평가제도다. 친구가 높은 점수를 받으면 나의 등급은 내려간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피로 속에 서로를 경쟁자로 삼으며 끝없는 레이스를 이어간다. 그러니 학생들은 밤 12시 이후까지도 학원 숙제에 치여 살아가게 된다. 문제는 학습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과열된 입시경쟁과 학벌주의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교육이다.

나는 학생으로서 이 구조를 매일 온 몸으로 겪는다. 자정이 넘어서까지 졸음을 버티며 학원 숙제를 붙잡는 친구들이 있고, 스트레스성 두통과 만성 피로로 병원을 오가는 일은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잠을 쫓기 위해 고카페인 음료를 달고 사는 친구들, 졸지 않으려고 피부를 꼬집거나 뺨을 때려가며 버티는 친구들도 많다. 어떤 날은 졸음을 참으려 손목을 세게 때리다가 멍이 든 친구를 보기도 했다. 자신을 때려가며 하루를 견디는 이런 풍경은 이미 '일상'의 이름으로 굳어지고 있다. 게다가 경쟁이 당연해진 현실은 이미 우리 내부의 관계마저 파괴하고 있다. 고등학생 선배 한 명은 내게 "내 친구가 시험을 망치길 바란 적도 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자신의 등급이 올라가려면 누군가의 점수가 떨어져야 하는 구조 속에서, 선배는 스스로 그 말을 한 뒤에도 죄책감에 휩싸였다고 했다.
지금의 교육 환경은 학생들에게 서로를 응원할 여유조차 빼앗으며, 타인의 실패가 곧 나의 생존이 되는 왜곡된 경쟁을 일상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 '선택권'은 없다. 남들이 한다면 나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밀려나고 낙오될 것이라는 불안감만 있을 뿐이다. 심야교습시간을 더 늘리겠다는 결정은 '성실한 학생을 배려한다'는 포장이 붙어 있을 뿐, 이미 한계에 가까운 경쟁 압박을 한층 더 심화시키며 학생들에게 더 오래 버티라고 강요할 것이다. 이 조례안이 시행된다면 유해한 입시 경쟁 문화는 제도적으로 악화될 것이고, 과도한 입시경쟁을 제한하여 학생의 휴식과 건강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심야 학원교습제한은 오히려 학생의 학업 부담을 가중시키는 도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힘들어도 아무도 멈출 수 없고, 뒤처진다는 공포가 만연한 분위기 속에서, 심야교습 연장 조례안은 정치가 학생에게 요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지점으로 보인다. 그것이 가져올 고통은 결코 '선택권'이라는 말장난으로 희석될 수 없다.
우리는 이 조례에 명백히 반대한다

학생들에게 "더 공부하라"고 외치는 이 조례안 앞에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십 대 시기와 청소년기의 본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청소년기는 성적만을 위한 시기가 아니다. 십 대는 또래와 어울리며 관계를 배우고, 실수와 실패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법을 익히며,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해 천천히 답을 찾아나가는 시간이다. 청소년을 성장하게 하는 것의 핵심은 문제집의 페이지 수가 아니다. 친구와 나눈 작은 대화, 갈등을 해결하며 배우는 감정,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경험들이다.
지금의 과도한 사교육은 이 경험과 십 대라는 시간을 앗아간다. 청소년이 하루를 마무리하고 몸을 쉬게 해야 할 시간, 마음을 회복해야 할 시간, 친구들과 뛰어놀아야 할 시간을 공부라는 명목으로 빼앗아간다. 심야교습 연장 조례안이 통과된다면 집에 돌아와 가족과 밥 한 끼를 함께할 여유는 사라지고, 친구와의 관계는 피로에 눌려 흐릿해지고, 자신을 돌아볼 틈조차 없어지는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공부와 성적이라는 압박뿐이다. 그 압박 아래에서 자라는 청소년은 더 깊이 배울 수 없고, 더 건강하게 성장할 수도 없다. 심야까지 이어지는 학습은 집중력도, 창의성도, 자기 탐색도 빼앗는다. 미래를 위한 공부 시간이 미래를 잃어가는 시간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우려는 단지 일부 학생들만의 것이 아니다. 청소년 언론사 토끼풀이 지난 11월 11일부터 13일까지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학원 심야교습시간 연장 조례안 관련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2,655명 중 2,513명(약 95%)이 조례안에 반대한다고 답했다.2 또한 필자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11월 4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한 영상은 릴스 영상으로 편집되어 온라인에 공유되었고, 조회수 330만 회(2025년 11월 28일 기준)를 기록했다. 많은 시민이 해당 영상을 보며 분노와 공감을 표현했다.

이 수치들은 서울시의회가 그 어떤 교육 현실도 파악하지 못하고 정책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마치 청소년 일각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척하는 '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도 있으니 학원도 열어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청소년의 실제 목소리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이미 한계 상황에 있고, 더 늦게까지 교육 공간에 묶여 있는 것을 원치 않으며, 오히려 휴식과 수면, 건강을 우선적으로 보장받으며 십 대라는 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례안은 명백하게 청소년이 아닌 사교육 산업의 이해관계를 중심에 두고 설계되어 있다. 청소년을 위해야 할 교육정책이 정작 어른들의 이해관계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 이미 과열된 경쟁의 시계를 학원 자본의 이해를 위해 한층 더 뒤로 밀어붙이려 한다. 나는 청소년의 잠과 인권이 어른들의 이해관계에 팔려나간 순간과 그에 동조한 서울시의회 시의원들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이 조례에 대한 학생 당사자들의 의견은 명확하다. 서울시의회는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갈 오늘과 내일을 지키기 위해, 이 조례안은 폐기되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새벽까지 학원에 전전긍긍하며 살고 싶지 않다. 청소년의 잠과 인권을 보장하라.

장효주
정의당 청소년위원회.
불평등과 차별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태도로 변화를 견인하려 한다.
각주
- 오마이뉴스, [단독] '자정까지 학원 교습 조례' 발의 시의원, '학원연합회' 발제행사 주최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78928 [본문으로]
- 토끼풀, "이러다 우리나라 학생 다 죽어요" https://www.tokipul.net/ireoda-urinara-hagsaeng-da-jugeoyo/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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