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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쿠팡 공영화, 이제는 상상해야 할 때

by Domoleft 2025. 12. 29.

[경제] 쿠팡 공영화, 이제는 상상해야 할 때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한국이 들끓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럴 바에 쿠팡을 국유화해 버려라'라는 조소까지 나올 지경이다. 그러나 지금 쿠팡이 집약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한국 유통·물류산업과 노동의 문제는 공공성이라는 틀 바깥에서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쿠팡 공영화'라는 상상력이 지금 왜 우리에게 진지하게 필요한지, 함께 살펴본다.


공영화라는 고육지책, 그러나 더 이상 비현실적이지 않은

서울 송파구의 쿠팡 본사. 출처: 뉴스1

 

요즘 쿠팡이 여기저기서 난리다. 쿠팡이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애국시민'으로서 이해하기 힘들다. 무료 배송으로 잘 쓰고 있는 소비자에게 강제로 멤버십 요금을 50퍼센트 넘게 인상하도록 하기라도 했나?[각주:1] 검색 알고리즘을 조작해 자신들의 PB 상품만 상단에 노출했다고 과징금 1,600억 원을 부과받기라도 했나? [각주:2] 쿠팡의 가혹한 노동 환경에 항의하는 배송 기사나 직원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재취업을 막기라도 했나? [각주:3] 입점업체들에게 다른 플랫폼보다 싼 가격을 강요하는 최저가 보장제 갑질을 하다가 들키기라도 했나? [각주:4] 국가적 물류 대란 속에서 노동자들의 과로사를 방치하기라도 했나?

 

그도 아니라면, 영업이익이 조 단위인데 정작 물류 현장의 안전 인프라 개선엔 소홀해서 화재 참사를 내길 했나? [각주:5] 보안사고가 터져 수백만 명의 고객 개인정보가 유출됐는데 단순 오류라고 치부하길 했나? 온갖 핑계를 대며 국회에 나서지 않을 특권을 요구하길 했나? 심지어는 일본에서도 노동문제를 일으켜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는 사실을 드러내기라도 했나? [각주:6] 정산원칙을 어기고 입점업체에 고금리 대부업을 하기라도 했나? 조중동과 한경오가 단결할 정도로 국민을 무시하기라도 했나? 쿠팡이 왜 욕을 먹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농담은 여기까지 하자. 놀랍게도, 그리고 안타깝게도, 앞서 말한 이 모든 것이 사실이다. 아직 농담의 영역이겠지만 이제는 쿠팡의 국유화 혹은 사회화가 시급하다는 말까지도 종종 나올 지경이다. 그러나 당장 앞 문단의 수많은 사례들에서 보다시피 쿠팡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는 이제 시장기구의 힘으로 도무지 손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즉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쿠팡의 공영화를 논하지 않고서는 한국의 유통과 물류라는 거대한 사회간접자본을 정상화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3할을 차지하는 쿠팡이 대기업·대자본의 독과점으로 대표되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 초과착취를 정당화하는 플랫폼 노동 문제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 준다는 점은, 일견 급진적으로 혹은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보여지는 '공영화'라는 구호가 과연 그렇게까지 급진적인 것일지 우리에게 역으로 되묻고 있다.[각주:7]

좌측부터: 김범석 쿠팡 대표이사 / 김범석 대표의 국회 청문회 불출석 사유서


쿠팡 공영화, 왜? 그리고 어떻게?

오늘날 한국 물류·유통업계에서 보여지고 있는 쿠팡의 지배력은 혁신을 통해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거대 자본을 투하해 경쟁자를 고사시키는 약탈적 가격 설정의 산물이다. 당연하겠지만 쿠팡이 시장 진입 초기 단계에서 천문학적인 적자를 감수하며 시장가격보다 낮은 요금과 고비용 서비스를 유지한 것은 소비자의 후생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경쟁 주체들을 시장에서 축출하고 대체불가능한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꼭 쿠팡의 전략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티몬, 위메프 등 과거의 주요 경쟁자들이 사라지고 독과점 기업으로서의 시장 장악이 완료되자, 쿠팡은 기다렸다는 듯 멤버십 요금을 일방적으로 인상하고 입점업체에 대한 수수료 압박을 강화하며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쿠팡의 전략과 독과점 이후의 약탈적 행위는 물류와 유통이 결합된 '로켓배송망'이라는 인프라를 사실상의 필수재로 만들었다. 이제 소상공인들은 쿠팡의 물류망을 통하지 않고서는 시장에 진입조차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독점화된 플랫폼은 더 이상 혁신의 주체가 아니라 혁신의 통로를 가로막고 '통행세'를 징수하는 거대 권력이 되었다. 따라서 이들이 약탈적 과정을 통해 쌓아 올린 독점적 구조를 분할하고 공영화하는 것은 물류를 사적 이윤 추구의 도구에서 국민 경제의 기초를 지탱하는 '필수 기반시설'로 전환하기 위한 결단이다. 이제 물류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모든 경제 주체에게 평등하게 제공되어야 할 보편적 서비스가 되어야 한다.

쿠팡의 '로켓배송'

 

일부 친기업 인사들은 쿠팡을 공영화할 경우 알리익스프레스(알리)나 테무 같은 중국 거대 자본이 그 자리를 잠식하여 경제주권을 빼앗길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근래 대두되는 '혐중' 정서에 영합하여 문제의 본질을 오도하는 쿠팡의 공포 마케팅에 불과하다. 오히려 현재 쿠팡이 국내 시장에서 자행하고 있는 약탈적 가격 설정과 무차별적인 자본 투입을 통한 소상공인 고사 전략은 알리와 테무의 시장 교란 행위와 판박이다. 국적만 다를 뿐, 자본의 힘으로 시장의 공정성을 파괴하고 물류망을 사유화하여 통행세를 징수하는 행태는 쿠팡 역시 외산 플랫폼과 다를 바 없다. 심지어 알리와 테무는 아직 실현에 옮기지 않았지만 쿠팡은 이를 실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의 물류망을 공공의 영역으로 귀속시키는 공영화 조치는 중국 자본에 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적을 불문한 거대 플랫폼 자본의 횡포로부터 경제의 생태계를 지켜내고 국민의 품으로 경제주권을 회수하는 가장 강력한 방어책이 될 것이다. 즉 쿠팡 공영화 조치는 단순히 자본의 국적을 묻는 차원을 넘어, 인프라의 주인이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분할 공영화, 인프라의 공공성을 위한 전제

독과점 기업으로서 쿠팡은 어느새 '플랫폼 공룡'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쿠팡의 거대한 몸집과 미국 상장 사실이 그 자체로 공영화의 성역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장 먼저 공영화에 앞서 플랫폼 운영과 물류 인프라, 그리고 직매입 판매 부문을 각각 독립된 법인으로 완전히 분산하는 구조적 분할을 단행해야 한다. 현재 쿠팡은 플랫폼이라는 심판이 물류와 판매라는 선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며 시장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이러한 수직적 계열화는 혁신을 가로막고 입점업체의 수익을 잠식하는 근원이므로, 쿠팡풀필먼트서비스와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등 주요 물류 자회사를 계열에서 완전히 분리하여 특정 플랫폼이 자사 상품이나 물류만을 우대하지 못하도록 구조적 벽을 세워야 한다.

 

수직적 분할은 쿠팡의 인프라가 공공성을 갖추기 위한 전제다(수평적 분할 역시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으나, 여기서는 인프라 공유에 최적화된 수직적 분할을 중심으로 논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운영사인 프라포트의 사례에 주목해볼 수 있다. 프라포트의 탄생 배경에는 국가의 핵심 기간시설인 공항이 특정 기업의 사익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독일 연방정부의 의지와, 독점에 따른 서비스 질 저하를 경계한 시민사회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다. 특히 국영 항공사였던 루프트한자가 공항 인프라까지 독점하며 타사의 진입을 막는 '활주로 갑질'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인프라 관리 전문 기업인 프라포트를 별도로 설립해 수직적 분리를 단행한 것이다(다만 쿠팡처럼 기존에 하나였던 법인을 분리한 것은 아니라는 차이는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의 운영주체 프라포트 AG. 출처: 프라포트 AG

 

프라포트-루프트한자의 사례가 쿠팡 사태에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쿠팡을 항공사에 비유한다면, 로켓배송망이라는 활주로를 본인이 소유하고 자사 상품만 우선적으로 띄우며 소상공인들의 이착륙을 가로막고 있는 문제적 구조를 우선 타파해야 한다. 독일 시민사회가 인프라의 중립성을 요구하며 프라포트의 공적 지배구조를 지지했듯, 쿠팡 역시 물류 부문을 본체로부터 분리하여 모든 판매자에게 차별 없는 인프라 접근권을 보장하는 상하분리형 디지털 공항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수직적 분할을 통해 쿠팡의 부문들이 나뉘었다면, 분리된 인프라 중 물류 등 일부 부문은 강력한 공영화의 길을 걸어야 한다. 플랫폼 운영이나 판매 서비스는 민간 영역으로 남긴다 하더라도, 전 국토를 연결하는 물류 거점과 배송망은 국민 경제와 직결된 사회간접자본이기 때문이다. 프라포트가 프랑크푸르트 시정부와 헤센주 등 공공주체의 지분이 다수를 차지하는 공공 운영 체제를 유지하며 공항의 공익성을 지키듯, 대한민국 유통의 혈맥인 로켓배송망 역시 특정 사기업의 전유물이 아닌 공공 인프라로서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

 

직접적인 공영화 수단으로는 반복되는 비위 행위에 대한 징벌적 주식 과징금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쿠팡과 같은 플랫폼 기업이 알고리즘 조작이나 노동권 침해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때마다 물류 부문의 지분을 국가가 몰수하거나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경영권을 점진적으로 환수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확보된 물류망은 한국물류공사(가칭)와 같은 공적 운영 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러한 공영화 과정은 물류 인프라를 특정 자본의 이윤 추구 수단에서 사회적 공동 자산으로 재정의하는 과정이며, 경제 주권을 플랫폼으로부터 회수하여 국민에게 돌려주는 결단이다.

 

분할이 '방식'이라면, 공영화는 '목표'다. 공영화의 방식에 있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할 수도 있지만, 공공성에 기반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한국 물류업계를 정상화할 방식을 찾아나가는 것이 지금은 반드시 필요하다. 혁신이 아닌 자본력으로 유통시장을 왜곡하는 기업에 단호한 철퇴를 내리는 방법은 공공성의 확대뿐이다.

쿠팡의 물류인프라. 출처: 매일경제 / 뉴스웨이


공영화, 끝이 아니다

공영화가 정말 이루어진다고 해도 이는 새로운 시작이다. 종국적으로 지향해야 할 지점은 유통 산업의 데이터 주권과 물류인프라의 공공성이다. 쿠팡에서 분리된 물류 부문은 프라포트가 설립된 이후에도 핵심 교통인프라를 공유하며 전체적인 서비스의 효율성을 유지했던 것처럼 운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을 제정하여 지배적 사업자의 갑질을 사전에 차단하는 법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효율성은 특정 기업의 폐쇄적인 독점이 아니라 표준화된 인프라를 사회 전체가 투명하게 공유하는 모델로 실현되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한 배송 데이터가 특정 기업에 악용되지 않도록 데이터 독점 방지 원칙을 확고히 세워야 한다.

 

이와 동시에, 유사한 기업해체 사례인 일본 국철의 분할 민영화가 노동권을 파괴하는 도구가 되었던 역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80~90년대 당시 일본 국철의 분할은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고 노동권을 후퇴시키는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쿠팡 분할과 공영화(이하 '쿠팡 개혁')은 반대로 사적 독점이 파괴한 노동권을 공적 영역에서 복구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쿠팡 개혁은 플랫폼 독점 아래 신음하던 배달 및 물류 노동자들의 권리를 복원하고 안전한 일터를 보장하는 사회적 가치 실현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공공부문이 기업을 개혁하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노동자들의 주권을 되찾고 데이터의 민주적 개방을 통해 중소상공인들에게 공정한 운동장을 돌려주는 것이 공영화 이후의 핵심 과제다.

일본 도로치바노동조합의 국철 민영화 반대 투쟁. 출처: 도로치바노동조합 www.doro-chiba.org

 

쿠팡 개혁은 단순히 쿠팡이라는 회사에 내리는 철퇴만이 아니라 한국 유통·물류업계 전반의 개혁이다. 소상공인에게는 공정한 기회를, 소비자에게는 지속가능한 편리함을, 노동자에게는 노동권을 보장하는 민주적 유통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특정 플랫폼에 종속되어 착취당하는 구조를 타파하고 공공 물류망과 투명하게 개방된 데이터 생태계 위에서 수많은 경제 주체들이 각자의 창의성을 발휘하며 공생하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물류망과 데이터를 사적 독점물에서 사회적 공동 자산으로 전환하고, 그 결실을 국민 모두가 나누는 것, 그것이 지금 상상해야 하는 쿠팡 개혁 이후의 미래다. 유통 주권을 플랫폼으로부터 회수하여 국민의 품으로 돌려줄 때 비로소 우리 경제의 모세혈관은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거대 양당이 모두 앞장서 '검은 머리 외국인' 김범석과 쿠팡에 대한 도덕주의적 비난을 가하지만 정작 한국 물류업계의 근본적 문제해결에 대해서는 눈치를 보며 소극적인 지금, 진보정치는 물류공공성의 확대를 더욱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한다. 쿠팡의 수직적 분할과 인프라 공영화는 그렇기에 비단 급진적이거나 비현실적이기만 한 주장이 아니다. 노동자에게는 노동권을, 소상공인에게는 기회를, 소비자에게는 지속가능한 편리함을 보장하자. 유통 주권이 국민의 품으로 돌아올 때 비로소 대한민국 경제는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쿠팡 개혁 이후의 대한민국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김봉독

공인회계사, 세무사. 현재 모 회계법인의 세무팀에서 일하고 있다.

<도모>에 어려운 경제 이슈를 풀어쓰는 글을 기고한다. 조세정의와 진보적 경제정책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세무사지만 여전히 세법은 어렵다.


각주

  1. 한겨레, 쿠팡 월회비, 8월7일부터 기존 회원도 7890원으로 오른다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148146.html [본문으로]
  2. 조선일보, [단독] ‘알고리즘 조작 의혹’ 쿠팡, 최종 과징금은 1600억원대로 가닥…200억원 늘어나 https://www.chosun.com/economy/economy_general/2024/08/05/WYGB4II3JBHFNHHROF42VZU6NY/ [본문으로]
  3. 한겨레, 쿠팡 1만6450명 ‘취업 블랙리스트’ 의혹…사유1·2에 개인정보까지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1128310.html [본문으로]
  4. MBC 뉴스, 쿠팡, 납품업체 갑질로 ‘최저가 보장’…대기업도 당했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21/nwdesk/article/6294736_34936.html [본문으로]
  5. 경향신문, 줄잇는 ‘#쿠팡_탈퇴’…물류센터 화재에 노동문제까지 비난여론 확산 https://www.khan.co.kr/article/202106191807001#ENT [본문으로]
  6. 데이터뉴스, “미국기업 쿠팡, 한국처럼 일본서도 ‘임금 미지급·대량해고’ 물의” https://m.datanews.co.kr/m/m_article.html?no=140700  [본문으로]
  7. 본 글에서 언급하는 '도덕적 해이'는 경제학적 의미가 아닌 일상적 의미이다. 또한 국가만이 해당 기업을 몰수하는 '국영화'가 아닌, 공공부문 전체가 해당 기업을 통제할 수 있는 ‘공영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담론 형성의 장을 만들고자 함을 밝힌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