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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 일반

축복이 선언: 한국의 양육자여, 단결하라!

by Domoleft 2025. 8. 27.

[사회] 축복이 선언: 한국의 양육자여, 단결하라!

출생률 저하는 항상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만, 정작 양육자들의 부담을 경감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노력은 여전히 수준 미달이다. 정말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사회는 어떤 사회여야 하는가? 얼마 전 '축복이'를 얻고 아빠가 된 저자가 배우자 P와 함께한 '임출육(임신, 출산, 육아)' 경험을 통해 작성한 '축복이 선언'을 게재한다.


축복이의 기습

하나의 징조가 방 안을 돌아다니고 있다. 아기의 징조가. 나와 P가 징조를 지켜내기 위해 신성 동맹을 맺었다.[각주:1] 당황스럽지 않았냐고? 뱃속의 존재를 눈치챈 P와 나 모두 그랬다. 선명하게 두 줄이 그어진 임신테스트기 앞에 우리는 얼어붙었다. 불안한 징조는 실체가 되어 우리에게 선뜻 다가왔다. 긴 침묵 끝에 내가 말을 던졌다. "두 줄이면 쌍둥이 아냐? 경험치 2배 이벤트지? 하하하..." 애써 농담을 던졌지만 P는 울기 시작했다. ‘멘붕’에만 빠져 있을 순 없었다. 서로의 가족에게 알려야 했다.

 

조금이나마 마음을 추스른 뒤, P가 내게 물었다. "우리 아기 태명, 뭐로 하지?" 분명 축복처럼 찾아온 아이인데, 갑작스런 등장에 당황해 제대로 못 챙겨준 것 같아 아기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축복이로 지었다. 나와 P, 그리고 축복이가 함께 후루룩 준비한 우리의 신혼생활. 다른 건 다 완벽했는데, 딱 하나 오점이 있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알리는 일정이 극우 세력의 시위와 겹쳤고, 극우 세력이 식당 앞을 막아서서 경찰과 대치하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가정사도 극우에게 방해받는 좌파 남성의 인생이라니. 여하튼 무대의 조명은 P와 축복이에게 옮겨져야 했다. 내가 준비할 것은 축복이의 아버지가 되는 것, 그리고 P가 자신으로서 삶을 지킬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나는 얼마 전 4주간의 배우자 출산휴가를 끝냈다. 이 글에선 짧은 나의 '임출육(임신, 출산, 육아)' 경험을 토대로 하여 대한민국의 저출생 문제를 논한다. 아기를 (더) 원해도, 정상가정을 꾸리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대한민국 사회의 구조를 풀어내고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회사에서 핫스타가 되는 방법, 임신

대한민국의 직장에선 임신 소식을 알리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일들이 있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은 예삿일이다. 심지어는 임신 사실을 승진 제외의 핑계로 삼거나, 당사자를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배제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법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지만 '커리어'의 세계에서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실인가 보다. 특히 사내 정치가 치열한 곳일수록 임신은 좋은 공격 소재가 된다. 어차피 임신하면 그만둘 거라며, 임신한 사람한테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있겠냐며 동료들을 선동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임신 계획을 미리 보고하라거나, 임신 중에는 핵심 업무에서 배제한다는 암묵적 규칙이 있는 회사도 있다. 이런 직업적 환경에서 임신은 그저 기쁜 일만으로 남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지면에서 모든 걸 말할 순 없지만, P 역시 그런 일을 겪었다.

 

이런 '임출육'에 대한 차별에서는 한국 사회 속 다른 구조적 차별의 양상이 압축되어 드러난다. 여성에게 돌봄 노동의 의무를 오롯이 지우면서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업무 공백은 모두 여성의 책임이 된다. 여성은 '어차피 곧 떠날 사람'으로 취급받는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승진, 복지 등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육아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정신적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나약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정신 질환에 대한 혐오와 닮아 있다. 이처럼 '임출육'을 이유로 겪는 차별은 우리 사회의 모든 차별과 맞닿아 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은 우리 사회가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희생해 온 결과다.

'임신으로 업무 불가'를 해고 사유로 명기한 해고통지서를 보낸 회사의 사례. 출처: KBS

 

'임출육'을 차별하는 사람들 모두가 악의로 똘똘 뭉쳐 있지는 않을 것이다. 동료들도 임신과 출산이 차별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더 나아가 직장 동료가 아닌 지인이 임신 소식을 알려온다면 대부분이 축하를 건넬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동료의 이탈로 인해 발생한 업무의 공백을 내가 떠안진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결국 '임출육'이 존중받을 수 있는 직장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에서 해결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선 근본적으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함으로써 '임출육'을 비롯한 개인의 선택과 특성이 구조적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직장 환경을 고려한 실질적인 조치들도 필요하다. 노동시간 축소는 돌봄과 일을 양립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임출육'으로 인한 업무의 공백이 동료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더 나아가 최근 시도되고 있는 '육아휴직 응원수당'과 같이 직장 동료를 대상으로 하는 실질적인 지원책도 시행되어야 한다. 이는 업무를 분담하는 직장인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때, 직장 동료가 응원수당을 받는 제도다.[각주:2] 누군가는 이 제도를 두고 '퍼주기식 포퓰리즘'이라며 비판한다. 하지만 동료의 이탈이 나의 업무 부담으로 다가오기 쉬운 현실적인 직장 환경 속에서, 이런 제도 없이는 '임출육'을 환대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없다. 육아휴직 응원수당은 단순히 돈을 뿌리는 행위가 아니라 동료의 출산을 공동의 이익으로 만드는 냉정한 투자다. 육아휴직을 기꺼이 감수하는 문화를 만들고, 저출생으로 무너져 가는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육아휴직 응원수단을 지급하는 일본 기업과 광주광역시의 육아휴직 업무대행자 수당지원사업. 출처: 서울복지교육센터 / 광주광역시


외국엔 조리원이 없는 게 아니라, 나라가 있다

그렇게 축복이가 태어나는 날이 다가왔다. P는 장모님께 "혹시 내가 잘못되면 남편이 너무 일찍 재혼하지 않나 지켜보라"라고 했다더라. 농담이리라 믿고 있지만, 그 흔한 맹장수술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P는 출산의 과정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행히도 축복이는 무사히 태어났다. P는 제왕절개 수술 부위가 아물지 않은 탓에, 배에 조금만 힘을 줘도 아프다고 했다. 난 온 힘을 다해 P를 웃겨 주었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개그 코드가 맞아 나와 결혼한 너의 운명이다. 예정대로, 하지만 내 생각보단 너무 빠르게, 산부인과에서 퇴원하고 산후조리원에 가는 차에 올랐다.

 

나는 조리원에 가고 나서야 조리원의 존재 이유를 알았다. 신생아는 태어나자마자 24시간 돌봄이 필요하다. 수유, 기저귀 갈기, 재우기까지 모든 게 몇 시간 간격으로 반복된다.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바로 대응해야 한다. 삼칠일, 백일까지 아기를 키우는 게 전근대사회에서는 얼마나 큰일이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산모는 출산에 모든 체력과 근력을 소진한다. 예전보다 출산 연령이 높아 회복 속도도 느리다. 출산 후 통증과 호르몬 변화로 정신도 불안정하다. 남편이 옆에 있어도 신생아 돌봄 경험이 전무한 경우가 많고, 회사 때문에 하루 대부분 집을 비우니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거기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의 조부모는 신생아의 돌봄을 부탁하는 것이 당연하던 때의 조부모보다 대체로 더욱 연령대가 높다. 육아 경험도 베이비붐 세대의 조부모들보다는 적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들로 조부모에게 마냥 의존하기는 어렵다. 세대 차이와 생활 습관 차이도 있어, 조부모의 도움을 받더라도 범위가 제한된다. 이런 상황에서 산후조리원은 단순히 선택이 아니다.[각주:3]

산후조리원. 출처: 서울시 '내 손안에 서울' (뉴스1)

 

'한국은 산후조리원이 있어서 애 키우기 편하다'는 말은, 소위 '남초 커뮤니티'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야깃거리이다. 이 말은 출산을 경험하면 절대 입 밖으로 나올 수 없다. 말마따나 산후조리원과 같이 신생아 돌봄을 보조하는 사설 의료기관은 우리나라에서 유독 발달한 문화다. 하지만 소위 '선진국'에 산후조리원이 없는 이유는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은 신생아의 돌봄을 국가에서 지원하기에 산후조리원과 같은 사적 계약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예컨대 네덜란드에는 'Kraamzorg'라는 제도가 있어, 출산 직후 간호사가 1주일 이상 가정을 방문해 신생아 돌봄과 산모 회복을 지원한다. 스웨덴·노르웨이 같은 북유럽은 출산 직후 의료진의 가정방문이 기본이고, 아기 아버지까지 포함해 장기간의 육아휴직을 보장한다. 말 그대로 국가가 새 생명을 같이 책임지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부부의 얇은 지갑에 조리원을 던져 주고는 '이것마저 없으면 어쩔 뻔했냐'며 생색낸다. 한국의 산후조리원은 국가가 마땅히 해결해야 할 일을 시장에 떠넘긴 '돌봄 민영화'의 현장이라 봐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이미 요양시설의 99%는 민간 시설이고 어린이집의 80%가 사립이다. 한국에서 돌봄은 단 한 번도 국가의 책임이었던 적이 없다.[각주:4] [각주:5] 산모와 아기에 대한 돌봄마저 산후조리원의 형태로 개인이 짊어지는 것은, 한국에서 유독 가혹한 처사는 아니다. 이런 참담한 사실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괴로운 일이다. 국가는 시민의 건강과 복지를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시장의 논리로 '외주화'했다. 이렇게 국가가 마땅히 해결해야 할 문제를 개인과 시장에 떠넘겨 놓고서 이제 와서 저출생 위기를 걱정하는 것은 모순이다.


육아는 '유료 호흡'

축복이가 태어난 뒤 피부에 가장 와닿는 변화는 지갑 사정이다. 나는 벼르고 있던 <디아블로 4> 확장팩 구매를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P는 여전히 백화점에서 눈이 뚫어져라 옷을 쳐다보지만 이내 포기한다. 분유 한 통에 몇만 원이고, 하루에 쓰는 기저귀가 몇 개인지 생각하면 사고 싶은 것을 살 여유는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없다. 노동력도 부족하다. 친정이나 시댁이 멀면 육아를 도와줄 사람을 찾기도 어렵다. 파트타임 육아도우미도 월 수백만 원이 기본이라 평범한 가정에선 꿈도 꾸지 못한다. 어린이집 부족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 이건 모두가 아는 이야기다. 이런 돈과 노동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것도 맞다. 배우자 출산휴가도 2025년부터 평일 20일로 늘어나 나 또한 조금이나마 더 육아의 과정을 같이할 수 있었다.

얼마 전 발표된 <디아블로 4: 증오의 그릇>. 한국의 양육자들에게 개인의 삶에 들일 여유란 없다. 출처: 배틀넷

 

그러나 진짜 문제는, 휴직 기간의 임금이 기존 임금의 60-80% 정도이고 그 급여의 상한액이 택도 없이 낮다는 것이다.[각주:6] 이런 상황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돈은 돈대로 노동력은 노동력대로 소비된다. 소비 성향에는 '톱니 효과'가 있어서 소득이 줄어든다고 해도 그보다 덜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 습관을 못 버려서 실직/퇴직으로 인해 소득이 감소해도 칼같이 소비를 줄이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쉽다. 그런데 육아에는 큰 돈이 드는데, 육아휴직을 하면 소득이 줄어든다. 그것도 최소 20~40%씩이나. 이런 상황에서 '능력이 안 되면 아이 낳지 마라'고 말한다면 그 '능력'을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누가 아이를 가지나, 지금처럼 안 낳고 말지.

 

2025년 대선을 바라보며, 후보들이 내놓은 저출생 대응 공약이 앞서 말한 돈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너무 나이브했음을 일깨워 준 것은 김문수 후보였다. 그는 대선 직전 안양에서 진행된 유세에서 자신의 공약을 설명하다 "원래 한 번에 1억을 주려고 했는데, 그걸 주식에 다 넣을 것 같아서 걱정된다"는 망언을 한 바 있다.[각주:7] 비록 3차 토론에서 이준석의 충격적 혐오발언에 묻혔으나 김문수의 발언 역시 그에 못지않은 망언이다. 저출생을 걱정한답시고 고작 이 정도의 인식을 당당히 늘어놓는 사람이 전직 여당 대선후보다. 그런데 육아하는 사람들이 정치권의 저출생 대책 노력에 대해 어떻게 높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제21대 대선 유세 중 출산지원금과 주식을 언급하는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출처: 한겨레(채널A 유튜브 캡쳐)

 

대한민국은 저부담 저복지를 넘어서, 저부담 '초'저복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복지는 적선이 아니다. 그러나 정치인과 행정가들이 복지를 다루는 태도는 시혜적이다. 복지 수급자들이 받는 기초생활수급비는 최저생계비를 겨우 웃도는 수준에 머물러 자활의 의지를 꺾고 빈곤을 고착시킨다. 장애인이나 노인을 위한 복지 급여도 마찬가지다. '돌봐 줄게, 하지만 죽지 않을 만큼만'이라는 인식이 깃들어 있다. 최소한의 생존만을 허락하는 복지 시스템은 결국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각주:8] 시혜적 복지 시스템 앞에서 육아는 무력하게 무너진다. 겉으로만 사회적 안전망인 척하는 복지 시스템은 출생과 양육을 사치재로 만들었다.


아기를 위한 나라는 없다

P와 축복이는 주말에 외출하지 않으면 버티질 못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온 가족이 밖에 나와 축복이에게 '맘마'를 주고 있다. 울지 마라 축복아... 그러나 애써 P와 축복이를 데리고 나가려고 해도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마치 한국의 모든 행정가와 건축가가 담합하여 축복이와 엄마, 아빠는 집에 가만히 있으라고 협박하듯이.

 

모든 양육자가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이동의 문제다. 기저귀, 유아차, 젖병, 이유식, 여벌 옷가지 등등, 아이와 함께 나가려면 짐이 산더미다. 지하철이나 버스로는 한계가 있다. 유아차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사람이 많을 때는 유아차를 접어야 하는데, 아이를 안고 짐까지 들고 유아차를 접는 것? 해 볼 테면 해 봐라.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거나 다쳤을 때 택시를 잡기도 쉽지 않다. 카시트 없는 택시에 어쩔 수 없이 태운다 해도, 조그만 아이를 꼭 껴안고 차 사고가 나지 않길 바라며 가야 한다. 그 불안함과 죄책감 때문에 결국 차가 없는 신생아와 양육자는 스스로 집에 갇히길 택한다. 아이와 함께 마트에 가는 것도, 병원에 가는 것도, 놀이터에 가는 것도 모든 게 힘들다.

 

차가 없는 부모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더 고립된다. 그나마 대책이라고 제시되는 임산부 교통비는 70만원을 지원해 주고, 아이가 태어난 후엔 서울시에서 카시트가 구비된 택시 이용권을 연 10만원어치 지원해 준다. 급한 일이 생겨 택시 몇 번 타면 끝이다. 자차를 소유할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는 이런 교통비 지원을 통한 이동권 보장이 절실한데, 한국은 아직 너무 인색하다. 나가는 과정도 힘들지만 갈 곳도 마땅찮다. 아기와 함께 나들이를 가려면 선택지가 극도로 제한적이다. 주말에 갈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아울렛이나 백화점뿐이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런 장소가 그나마 유아차 이동이 자유롭고 수유실·기저귀 교환대가 제대로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일반 상가나 음식점은 대체로 계단만 있어 유아차를 동반한 이동이 불가능하고, 있다 해도 너무 가파르거나 좁다.

서울시 임산부 교통비 지원사업 / 아이 1명당 10만원의 택시 이용권 지급. 출처: 서울시 '내 손안의 서울' / 베이비뉴스

 

혹시나 아기가 갑자기 배가 고파서 울거나 똥이라도 누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아득하다. 즉시 대응해야 함에도 공원이나 일반 카페, 식당에는 이런 '비상사태'에 대응할 만한 위생적인 공간이 없다. 화장실 구석에 기저귀 교환대가 있다 해도 더럽고 좁아서 쓰기 어렵다. 수유할 때는 더 심각하다. 모유수유를 하려면 깨끗한 공간이 필요한데, 그런 곳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결국 아기 엄마들은 비싼 백화점·아울렛 수유실을 찾아 헤매게 된다. 놀이공원이나 테마파크도 마찬가지다. 아기 동반 시설이 제대로 안 되어 있으면 아무리 재미있는 곳이라도 갈 수 없다. 그래서 아기가 있는 가정은 자연스럽게 이동 패턴이 바뀐다.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갈 수 있는 곳만 가게 된다. 자유로운 외출이 사치가 되는 순간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지하철을 타며 외친 배리어프리는 육아를 위해서도 너무 절실하다. 그럼에도 한국의 행정가와 건축가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아스팔트와 직각으로 온 나라를 설계한다. 차도와 계단만 가득한 도시는 유모차를 미는 부모뿐만 아니라 휠체어를 탄 장애인, 지팡이를 짚은 노인에게도 똑같이 험난하다. 대한민국의 도시는 오로지 자차를 가진 사람과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위해 설계되었다. 양육자, 장애인, 그리고 노인은 도시의 설계도에서 이미 배제된 사람들이다. 아기와 양육자의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은 곧 우리 사회의 모든 약자에게 설 자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 키즈 존'은 어쩌면 사소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라 전체가 거대한 '노 키즈 존'인데.

서울 한 카페의 '노 키즈 존'. 출처: 서울신문


양육자와 아이를 위한 세상, 모두를 위한 세상이다

육아를 하며 가장 많이 봤던 영상은 오은영의 <금쪽같은 내 새끼>였다. 유튜브 댓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체벌의 필요성을 운운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앞다투어 답답한 아이와 양육자를 욕한다. 그러나 영상만을 자세히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대부분 아이에게는 잘못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문제다. 축복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도 숱한 진짜 '금쪽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남의 임신을 사내 정치를 위해 입에 올리는 직장인, 조리원이 호캉스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 누리꾼, 육아 예산 늘리기 싫다는 정치인, 애는 놔둬도 그냥 잘 큰다는 사람, '조이고 댄스'에 환호하는 중장년과 같이. 분개하며 글을 썼더니 알아들었는지 옆에 있던 축복이가 똥을 눠서 유모차에 샜다. 잠시 치우고 오겠다...

 

알바 뮈르달(Alva Myrdal)은 스웨덴의 외교관이자 사회정책가, 그리고 평화운동가다. 그는 1930년대 저출생 위기 속에서 여성의 사회 참여와 복지 확충을 결합한 독창적인 인구정책을 제안하여 스웨덴 가족·출산 정책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꾼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1934년 출간한 <인구 문제의 위기>에서 뮈르달은 스웨덴이 직면한 출생율 하락을 단순한 인구 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사회구조의 위기로 보았다. 그녀는 일부 계층의 다자녀 출산이 아니라 모든 가정이 평균 세 자녀를 낳을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국가가 보육과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의료·급식·주거 지원을 확대하며, 부모 모두가 노동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뮈르달이 우려한 '일부 계층의 다자녀화'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진행 중이다. 물론 과거의 통념과 반대로 최근의 신생아는 고소득층 중심으로만 태어나고 있다.[각주:9]

 

또한 1941년 쓴 <국가와 가족>에서 뮈르달은 이러한 주장을 민주주의 사회의 전면적 개혁 과제로 확장했다. 인구정책은 보조금이나 출산 장려 캠페인에 그쳐선 안 되며, 사회 제도 전반에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가부장적 가족 구조를 넘어 남녀 모두가 경제활동과 돌봄을 나누는 문화를 국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에게 인구정책은 곧 사회정책이었고, 사회정책은 국민 모두의 생활 방식을 바꾸는 장기 전략이었다. 이러한 비전은 곧 복지국가 스웨덴의 상징인 '민중의 집'으로 구현됐다. 뮈르달이 제안한 무상보육, 출산·육아 휴가, 주거 지원, 아동수당, 결혼 대출, 해고 금지 등은 모두 여성의 권리 보장과 출생률 회복을 동시에 노린 제도다. 그는 출산을 개인의 부담이 아닌 사회의 공동 책임으로 전환했고, 이를 통해 스웨덴은 저출생 위기를 기회로 바꿔 복지국가로 도약할 수 있었다.

알바 뮈르달(1902~1986)과 그의 저서 <국가와 가족>

 

알바 뮈르달의 모델은 지금도 성평등과 출생률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사회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알바 뮈르달은 이런 업적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함께 활동한 그의 배우자 군나르 뮈르달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각주:10] 우리가 알바 뮈르달의 가르침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명확하다. 한국의 경제와 사회구조의 전면적 변화에 소홀했던 결과가 저출생이라는 것이다. 즉 이 사회모든 약자의 외침을 무시한 결과가 양육자와 아이가 살기 힘든 대한민국이라는 뜻이다. 우리 사회는 이동권을 보장해 달라는 장애인운동의 외침을 무시해 왔다. 결국 차가 없고 아울렛이 없으면 양육자와 아기의 이동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우리 사회는 보육과 교육을 사설 어린이집과 사교육 시장으로 외주화했고, 임산부의 건강마저도 산후조리원으로 민영화되었다. 우리 사회는 사회안전망 구축에 무관심했고, 결국 사회안전망이 없어 아이 키울 돈을 벌기도 힘든 나라가 되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4주간의 배우자 출산휴가를 막 마친 참이고, 축복이의 친할머니가 휴가를 쓰고 상경해 지금 함께 유아차를 닦고 있다. 이렇게 아직 '임출육'을 겪는 내가 내린 결론, 즉 '축복이 선언'의 내용은 간명하다. 저출생 문제는 단순히 돈이나 애국심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약자와 소수자를 마주하는 태도의 문제다. 양육자가 겪는 고통은 곧 장애인이, 빈곤층이, 여성과 소수자가 겪는 고통의 거울이자 축소판이다.

 

모든 약자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금지함으로써, 양육자도 차별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약자에 대한 돌봄을 국가가 전담함으로써, 신생아의 돌봄도 국가가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약자의 복지 급여를 현실화함으로써, 양육자도 돈 걱정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함으로써, 양육자와 아기의 이동권도 보장받도록 해야 한다. 저출생 문제를 오롯이 '저출생 문제'만으로 다뤄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사회가 소멸하지 않기 위해서는 소수자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야 한다.

 

알바 뮈르달이 저출생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 80년도 더 전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요원한 일이다. 우리 사회에도, 저출생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모든 차별을 없앨 '혁명'이 필요하다. 고로 이 글은 혁명을 위한 '축복이 선언'이다. 기성 정치권이 축복이의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 양육자가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체력뿐이요(이건 나도 어쩔 수 없다) 얻을 것은 온 세상이다. 한국의 양육자여, 단결하라!


최이환

30대 남성이자 축복이의 아빠. 얼마 전 축복이를 만나고 육아 전쟁의 최전선에 뛰어들었다.

개인의 삶을 뒤흔든 '임출육' 경험을 통해 이 사회가 약자들을 어떻게 외면하고 있는지 목격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 모두의 투쟁이 필요하단 사실을 '축복이 선언'을 통해 외치려 한다.

 

* 저자 소개 이미지는 저자의 의향으로 챗GPT를 활용하여 본래 사진을 재구성해 만들어진 이미지입니다.


각주

  1. 카를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 서문 인용 [본문으로]
  2. “육아휴직 쓴다고 미안해 말라”…동료에 수당 주는 日기업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4906 [본문으로]
  3. 개드립넷, 산후조리원 가는게 나은 이유 https://www.dogdrip.net/dogdrip/649108397?%3Bpage=1&category=35957111&page=1   [본문으로]
  4. 한겨레, 요양시설 이미 99% 민간인데…윤 “돌봄 준시장화” 지시 https://www.hani.co.kr/arti/society/rights/1075208.html [본문으로]
  5. 지표누리, 어린이집 시설수 및 아동수 현황 https://www.index.go.kr/unity/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583 [본문으로]
  6. 오마이뉴스, ‘육아휴직급여 250만 원’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96563 [본문으로]
  7. 한겨레, 김문수 “출산지원 ‘1억’ 주려 했는데…엄마가 주식넣어 다 들어먹으면” https://www.hani.co.kr/arti/politics/election/1200320.html   [본문으로]
  8. 오마이뉴스, 한국 OECD 경제 순위 10위, 사회복지 지출은 최하위... 해법은?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17916 [본문으로]
  9. 신생아 절반은 고소득층서 출생, 아이 키우는 데 얼마 들길래… https://m.health.chosun.com/svc/news_view.html?contid=2024022202442 [본문으로]
  10. 잊혀진 여성들, 스웨덴을 성평등 국가로 만든 이 사람, 노벨 평화상도 받았다고? https://maily.so/almostfamous/posts/72nzn1g4rp5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