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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 일반

더위는 차별적이지만 인권에는 예외가 없다 - 교정시설 에어컨 설치 논쟁에 대한 단상

by Domoleft 2025. 8. 1.

<도모 2025년 8월호 여름 특집>

[사회] 더위는 차별적이지만 인권에는 예외가 없다 - 교정시설 에어컨 설치 논쟁에 대한 단상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서울구치소 수감 이후, 독방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알려지자 지지자들이 인권위에 진정하며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국민에게 총을 겨눈 자는 에어컨을 쐬어서는 안 되는 걸까?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교정시설 에어컨 설치 논쟁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고 신영복 성공회대 명예교수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에 사는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 1985년 8월 28일 대전에서

 

-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윤석열 지지자들이 사회로 끌어올린 교정시설의 여름

글 첫머리의 인용구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40년 전의 글이지만, 여름 징역의 어려움은 신영복 선생의 수감 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유를 박탈당한 교정시설에서의 삶은 범죄의 경중을 막론하고 괴로울 수밖에 없지만 그 중에서도 폭염 속의 단체생활은 오죽하겠는가. 언제나 괴로웠던 여름 징역이 최근 이슈가 된 이유는 정말 뜬금없게도 윤석열 구속의 여파였다. 윤석열이 구속된 서울구치소 독방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알려지자, 윤석열의 지지자들이 이 무더운 여름에 에어컨도 없는 구치소에 윤석열을 가둔 것은 인권침해라며 서울구치소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민원 폭탄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각주:1]

윤석열 전 대통령이 수감된 경기도 의왕시의 서울구치소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지지자들. 출처: 뉴스1

 

윤석열과 윤석열의 지지자들이 과연 작년까지만 해도 교정시설 내 에어컨 설치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쓴웃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교정시설에는 윤석열처럼 특혜를 받고 독방에 수용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라 혼거실에 과밀수용되어 있는 사람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이 무더위에 인간 생명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공간 중 하나가 바로 교정시설이라는 점이다. 교정시설 수감의 핵심은 신체적 자유의 박탈이다. 자택의 에어컨이 고장나거나 없다면 여름을 버티기 위해 옷을 벗고 지낸다거나 에어컨이 있는 공공장소를 찾아가는 등의 시도라도 해 볼 수 있겠지만, 그런 자유가 교정시설에는 없다. 교정시설의 더위가 바깥 사회보다 훨씬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개념적으로도 이럴진대, 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은 바로 과밀수용의 문제이다. 한국 교정시설의 수용 정원은 5만 명 정도이지만, 교정시설은 상시적 정원초과 상태에 있다. 조금 초과한 것도 아니고 2025년 현재의 수용률은 124.5%에 달한다.[각주:2] 4명이 있으면 가득 차는 방에 5명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평균 수치로 지역에 따라 150%를 넘나드는 곳이 있고, 일부 소년원의 수용률은 250%라는 말도 안 되는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는 최근 가속되는 엄벌주의 기조 속에서 더욱 악화되고 있다. 집행유예, 벌금형이 나오면 '봐 줬다'는 인식이 퍼지며 징역형, 그것도 최대한 장기 징역형이 선고되지 않으면 법원이 사회적 뭇매를 맞게 되자 법정형량 및 선고형량은 지속적인 상승 추세에 있다.

2002년부터 2025년까지 연도별 교정시설의 수용 인원 및 수용률 현황. 출처: 머니투데이

 

일각에서는 과밀수용 문제를 시설 확충으로 개선하자고 하지만, 현재의 수용률을 시설 확충만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교정시설을 십수 개는 더 지어야 한다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교정시설의 확충이나 시설개선이 제대로 되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손꼽히는 기피시설인 교정시설을 확충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1973년 지어진 부산구치소는 전국의 구치소 중 가장 오래되었다. 좁고 낙후되어 일하기도 지내기도 열악한 곳인데다 수용률은 150%를 찍고 있다. 같은 부산의 부산교도소 역시 1977년 지어졌고 수용률은 127%다. 너무 오래된 두 시설을 통합이전한다는 계획이 존재하지만, 20년이 넘게 공사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교정시설 수용자들이 과밀수용으로 인해 최소한의 인당 공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을 해친다며 위헌 판결을 받은 지로부터 벌써 9년이 지났다. 인간 존엄의 침해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국가배상청구는 줄지어 이어지고 있으며, 국정감사 때마다 교정시설의 과밀수용 문제가 수면 위에 오르지만 문제는 계속 악화될 뿐이다. 2018년 국정감사에서 당시 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은 바닥에 신문지를 펼치고 눕는 '신문지 퍼포먼스'를 보여준 바 있다. 흔히 바닥에 누워 있는 당시의 이미지로만 기억되곤 하지만, 기억을 되돌려 본다면 해당 퍼포먼스의 본래 의미는 교도소 및 구치소의 과밀수용 문제가 너무 심해 수용자 1인당 공간이 신문지 몇 장을 펼친 1제곱미터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로부터도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2018년 국정감사에서 국회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누운 노회찬 전 의원. 출처: 오마이뉴스


교정시설, 어째서 개선되어야 하는가

비좁은 공간에 사람이 모여 있으면 더위에 취약해지는 것은 상식이고, 이동의 자유가 없는 상태라면 더더욱 그렇다. 적절한 정원을 초과하는 열악한 상황은 온열질환 대처를 더욱 곤란하게 만든다. 한국은 실질적으로 사형이 폐지된 나라이지만 교도소에서는 온열질환으로 매년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다. 역대급 무더위를 겪었던 2018년 한 해에만 교정시설에서는 무려 48명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 현재의 교정시설들이 너무 노후화되어 에어컨을 설치하려고 해도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단지 에어컨 설치 여부만을 넘어 전반적인 시설의 문제와 과밀수용 문제, 적절한 폭염 대책에 대한 논의가 시급할 따름이다.

 

그러나 교정시설 개선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2018년 법무부가 교정시설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예산을 편성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교정시설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말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갔고, 해당 국민청원에는 3만 5천 명이 넘는 연서가 이어진 적이 있었다.[각주:3] 청원의 내용은 굳이 다시 찾아보지 않아도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에어컨이 없거나 있어도 틀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많은데 범죄자에게 에어컨 바람을 쐬게 하는 것은 예산낭비이며 국민 세금의 낭비라는, 고통 속에 반성해야 하는 범죄자의 환경을 어째서 개선해 주느냐는 이 논리에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쉽게 동조를 표하고 있다.

2018년 8월 교도소 에어컨 설치를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그러나 징역의 본질은 자유를 제한하는 자유형이지 신체적 고통을 가해 복수를 하는 고문형이 아니다.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심각하고 중대한 형벌이기에, 자유형에서 자유를 제한하는 것 외에 다른 고통을 가하는 것에는 법적·인권적 정당성이 없다. UN의 <피구금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 제3조는 "개인을 외부세상으로부터 차단하는 모든 구금행위는 그들의 자유를 박탈함으로써 자아결정권을 빼앗는 행위로 고통을 수반한다. 따라서 교정제도는 정당하게 수반되거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 수용자의 고통을 가중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굳이 국제법까지 가지 않더라도, 한국의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6조 제2항은 "교정시설의 (중략...) 거실은 수용자가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적정한 수준의 공간과 채광ㆍ통풍ㆍ난방을 위한 시설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 일각은 보편적 인권의 후퇴를 불러오기 쉬운 국민정서에 대해 설득하여 바꿔내려는 노력은 없을망정 오히려 부채질하고 있다. 윤석열이 서울구치소에서 에어컨 없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렇게 널리 알려진 데에는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모 인터넷 방송에 출연하여 이 사실을 언급하며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 에어컨을 잘 쐬시고 좀 힘들어 보시라"는 투로 이야기한 것[각주:4]과, 뒤이어 정청래 등 여러 민주당 정치인들이 비슷한 논조의 글을 남긴 것이 컸다. 중책을 맡고 있는 정치인들의 이런 가벼운 언어는 '징역살이는 단순히 자유를 박탈하는 것 외에도 추가적인 여러 고통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상을 심어 주고, 그런 국민적 인식을 확대시킨다.

출처: KNN

 

교정시설을 좀 더 인간적인 환경으로 만들어야 하는 좀 더 냉정한 이유들도 있다. 무기징역이나 사형수가 아닌 이상, 교정시설 수용자들의 절대다수는 결국 다시 사회로 나온다. 그렇기에 교정시설의 핵심 기능은 사회로의 재통합을 준비하는 기능이어야 한다. 현대 사회의 범죄자 수용시설이 '절멸수용소'나 '영구격리시설'이 아니라 '교정시설'인 이유다. 그러나 바로 자신의 옆 사람을 증오하게 만드는 환경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은 수용자들에게 사회로의 재통합에 있어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노동권의 측면에서도 교정시설의 개선은 반드시 고려되어야만 한다. 앞서 언급한 2018년 '에어컨 설치 반대' 국민청원이 성사되자, 법무부의 답변은 의료동 등의 복도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고 이는 '교정공무원의 업무환경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답변이었다.[각주:5] 물론 수용자가 아닌 공무원만 에어컨 바람을 쐴 권리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불합리한 차별이지만, 이 말대로 교정시설에는 비단 수용자뿐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다. 에어컨 설치와 같은 교정시설의 개선은 그들의 노동권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인권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그러나 사실 이와 같은 논리적인 반박은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 교정시설에 대한 개선을 가로막는 진짜 이유는 논리의 문제 이전에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거주하는 시설을 열악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높일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바로 우리 중 누군가를 배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고, 그 배제된 자를 소리 높여 비난함으로서 손쉽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욕망이다. 엄벌주의의 문제는 여기로 귀결된다. 이미 죄를 지었다고 규정된 자들이기에 손쉽게 나와 다른 존재로 규정할 수 있고, 그들의 일은 온전히 남의 일로 그들의 인권이 좀 박탈되더라도 나에게는 별 영향이 없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니 합법적으로 원한과 미움을 발산하면서도 왠지 정당한 일을 한 것 같은 만족감이 느껴지는 것은 덤이다.

 

그러나 어떤 흉악한 범죄자라 할지라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누군가를 인권의 예외로 만드는 순간 그 예외는 계속 넓어지기만 할 뿐이다. '범죄를 저질렀으니 더위에 신음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냐'는 논리의 다음에는 '돈이 없으니 더위에 신음하는 건 어쩔 수 없지 않느냐'가 오고, 그 다음에는 '스스로 선택했으니 무더위에도 위험하게 일하는 건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논리가 찾아온다. 이 모든 논리들은 연결되어 있고, 하나가 무너진 이상 그 다음이 무너질 위험은 반드시 상존한다. 앞서의 국민청원에서 청원자는 '교정시설에 에어컨을 설치할 바에야 그 돈으로 쪽방촌에 에어컨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7년이 흘렀다. 교정시설의 에어컨 설치는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과연 쪽방촌의 온열질환 대처는 이루어지고 있는가?

출처: KBS

 

'인권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라는 격언은 아무리 '반사회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교정시설에서조차도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무더위 속에서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하고, 그 예외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를 공고히 해 나가는 것이다. 쿠팡 캠프와 건설현장에서부터, 쪽방촌과 교정시설에 이르기까지.

 

 

※ <도모>는 혹서기를 맞아 2025년 8월호를 '여름 특집호'로 하여 특집기사들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김현근 (목성돼지)

전환 회원, 도모 편집위원.
어쩌면? 전 청소년활동가이고, 섹슈얼리티에 대한 급진적 정치를 고민하는 말 많은 성소수자입니다.
사회주의를 목적하고, 귀여움을 희망함.


각주

  1. 한겨레, “윤석열 독방에 에어컨 놔달라”…지지자들, 구치소에 전화·팩스 폭주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207641.html [본문으로]
  2. 머니투데이, [단독]"좁은 감방에 고통" 교도소 미어터진다…수용자들, 국가에 소송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5073010274623800 [본문으로]
  3. 세계일보, "이건 진짜 아니에요"…'교도소 에어컨 설치반대' 국민청원 https://www.segye.com/newsView/20180817004875 [본문으로]
  4. “얼마나 더운데…尹도 당해봐야” 서울구치소 경험담 푼 박지원 https://www.munhwa.com/article/11517776 [본문으로]
  5. 중앙일보, “교도소에 에어컨이 웬 말이냐” 논란에 법무부 입장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907968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