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사회 일반

그늘 없는 나라에서 일하는 그림자들 - 폭염 속 연이은 이주노동자의 죽음에 부쳐

by Domoleft 2025. 8. 1.

<도모 2025년 8월호 여름 특집>

[사회] 그늘 없는 나라에서 일하는 그림자들 - 폭염 속 연이은 이주노동자의 죽음에 부쳐

작열하는 7월의 더위 속, 지난 3주 간 3명의 이주노동자가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 불평등한 더위는 '위험의 이주화'와 결합하여 이주노동자들을 죽음의 굴레로 몰아넣고 있다. 존재조차 가려지는 이주노동자의 삶을 바꾸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박동찬 소장의 글을 게재한다.


2025년 7월 9일, 구미 건설현장 이주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대책촉구 기자회견. 출처: 뉴시스

 

"광염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공장에서 튀는 불꽃과 바깥에서 내리쬐는 햇볕은 노동자에게 무자비하다. 지난 3주 동안 3명의 이주노동자가 온열질환으로 숨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알려진 것이 3명이다.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 규모나 사망률은 고사하고, 한국 정부는 그들의 사인(死因)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7월 8일, 경북 구미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 첫 출근을 나갔던 베트남 국적의 일용직 노동자가 작업 도중 쓰러졌다.[각주:1] 발견 당시 그의 체온은 정상치를 훨씬 웃도는 40.2도였다. 폭염 대책으로 한국인은 오후 1시까지 단축근무가 이루어졌지만, 이주노동자는 4시까지 정상 근무를 하였다고 한다. 며칠 전, 7월 23일에는 경기도 김포의 한 제조업 공장에서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가 돌연사하였다.[각주:2] 부검을 하지 않아 사인의 짐작이 조심스럽지만, 어쨌거나 냉방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작업장에서 전날도 늦게까지 잔업을 하였다고 동료들은 증언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에는 경북 포항의 한 야산에서 제초 작업을 하던 네팔 국적 일용직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각주:3]

 

사건의 경위를 막 찾아보고, 키보드를 내리치는 순간, 그들이 생전 일했을 사업장들이 눈앞에 그려진다. 40도에 웃도는 체감 기온, 뙤약볕에 가만히 몇 분 서 있는 것조차 너무 고통스러운 요즘이다. 쓰러진 그들은 거기에 더해 묵중한 건축자재와 제초기, 또 고열을 내뿜는 기계와 씨름하였으리라. 에어컨을 가동한 채 작업실에 앉아 이주인권을 생각한답시고, 이주민의 목소리를 대변한답시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스스로가 가증스럽게 느껴진다. 우리는 얼마나 그들의 노동과 삶에 가 닿아 있을까.


통계 너머 구조가 말해 주는 것

이주노동자는 산업재해에 취약하다. 그 명제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시간차를 두고 통계 두 개를 살펴보자. 2021년 정의당 강은미 전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누적 중대재해 건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월∼2021년 6월 중대재해 사망자 1천113명 중 이주노동자는 135명으로 12.1%를 차지했다. 또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이 제출받은 내·외국인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유족급여 승인 기준으로 사망한 근로자 399명 가운데 외국인 근로자는 47명으로 전체 산재 사망자 중 11.8%를 차지하였다.[각주:4] 10% 언저리, 언뜻 보았을 때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망률은 그다지 심각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이주노동자가 한국의 전체 취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고려되지 않은 통계다. 보통 통계에서는 이주노동자의 비중을 3~4%로 본다. 즉 이주노동자의 수는 3%밖에 안 되는데, 산재 사망률은 무려 12%라는 사실이다. 한국인에 비해 산재 사망률이 3배 이상 높은 셈이다.

2020~2024년 간 내·외국인 산업재해 사고사망자 현황. 출처: 뉴스핌

 

반이 틀렸다는 것은 또 무슨 얘기일까. 짐작하다시피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망률이 높은 것은 불충분한 안전교육, 기업의 안전관리 태만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일차적인 원인은 이들이 중대재해 발생률이 높은 산업 직종에서 일하고 있고, 노동환경이 그만큼 열악한 데 있다. 그렇다면 이런 환경에 이주노동자 대신 한국인이 투입됐다면 산재 사망률이 현저히 낮아질까? 산재가 발생하려는 상황에서 한국인은 이주노동자보다 더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 답은 부정적이다. 위험의 외주화를 넘은 '위험의 이주화'는 산업재해의 부담까지도 고스란히 이주노동자에게 전가하였다. 이주노동자 문제에 주목하는 만큼이나 한국 노동환경의 구조적 문제도 간과하여서는 안 된다.

 

일선에서 오랫동안 이주노동자를 조력한 활동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산재 발생의 숨은 장본인으로 고용허가제를 지적한다. 고용허가제는 인력난에 시달리는 한국 기업이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가 허가하는 제도이다. 고용허가제는 기존 시행되던 산업연수생제도가 '현대판 노예제'라는 비판에 직면하자 일종의 대체제로서 2004년 도입되었는데 현재 17개국과 협약을 맺은 채 수명을 부지하고 있다. 해당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다는 데 있다. 법에 의한 이직 가능 횟수가 3회 정도 주어지긴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사장(고용주)의 동의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사장에게 위임하는 이상한 제도는, 이주노동자를 자연스레 고용주에게 종속된 존재로 전락시킨다. 장시간 노동, 열악한 숙소, 인권 침해 등 문제가 있어도 감내할 수밖에 없다.

고용허가제 폐지를 요구하는 이주노동자. 출처: 뉴시스

 

물론 예외적인 몇 가지 경우에서는 사장의 동의 없이도 이직이 가능하다. 임금 체불, 직장 내 괴롭힘, (성)폭행 등 귀책 사유가 명백히 사장에게 있을 때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주노동자에게는 하늘의 별 따기다. 사업장에서 받은 부당한 대우를 스스로 입증하고, 또 뒤따르는 행정 절차를 스스로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피해가 발생하고 나서야 이직을 허용하는 제도 자체가 너무 황당하지 아니한가. 피해의 징조가 보일 때 피할 수 있어야 하는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사고의 사전 예방이 아니라 철저히 사후 수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피해가 발생하기까지 방임한다는 건 국가 역시 가해의 공모자임을 입증하는 꼴이다.


그들에게는 언어가 필요하다

2024624, 화성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를 기억한다. 사고 발생 후 현장에서 희생자 23명 중 17명에 달하는 중국계 이주노동자 유가족의 통역을 조력했던 경험은 여러 지점에서 복기할 의미가 있다. 유가족은 산업재해가 무엇인지, 연대하는 노동조합(민주노총)은 무얼 하는 곳인지 궁금해했고, 중대재해처벌법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노동자로서의 자기 인식과 그에 따른 권리의 언어를 습득할 기회가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다. 이주노동자가 현장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어가 '빨리빨리'였다는 자조 섞인 고백이 있듯이, 이들은 쉬지 않고 작동하는 기계처럼 자본의 다그침을 당해 왔다. 아리셀 참사가 발생한 데도 무리하게 납기 일정을 맞추려는 회사의 지시가 한 몫 하였고, 폭염경보가 연신 울리는 가운데에도 작업을 중단하지 않은 것은 결국 자본과 이윤의 논리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공단을 비롯하여 많은 기관이 산업재해 예방, 안전교육 책자를 배포한다. 이주노동자의 언어 접근성을 고려하여 다국어로 번역하기까지 한다. 노력은 가상하고, 분명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내용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안내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일독할 여유를 가진 이주노동자는 과연 몇 명이 될까. 그리고 설사 읽었다 할 찌라도 책자의 안내대로 행위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는 또 몇 명이 될까. 이를테면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에 명시된 '작업중지권'은 그들에게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이주노동자 스스로가 작업중지권을 발동하여 생명을 지켰다는 뉴스를 보았으면 좋겠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현장. 출처: 이주민과함께 somi.or.kr


이주노동자의 침묵을 조직하자

노동자들이 언어를 가지는 지름길은 어쩌면 의외로 간단하다. 노동자의 단결을 꾀하는 노동조합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상당히 낮다. 지난한 투쟁 끝에 지난 2015년 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의 합법화를 이루었지만, 가입자는 여전히 천 명을 밑돈다. 열심히 조직하고 활동하는 데 반해 구조적인 제약이 너무 크다. 앞서 언급한 고용허가제가 허들이 되기도 하고, 의사소통 등 아주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간혹 이주노동자와의 연대 내지는 조직화를 도모하는 현장에서 당사자들이 참여 의지가 없으니 힘들다는 원망을 접하기도 한다. 당사자의 확고한 의지가 운동의 향방에 결정적인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을 의지 유무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경계해 마땅하다. 탄핵 광장에서 자유발언으로 화제가 되었던 '솜편지'의 발언문 중 일부를 인용한다. "대국민 집회가 한 달이 넘어가는 가운데, 집회에 나오고 싶고 후원을 하고 싶지만, 물리적으로 내일 밥 먹을 돈이 없고, 오늘 노동을 하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나의 동지들의 가난이 있습니다. …(중략) 내심 진짜로 중대하게 생각하는 가치보다 자신의 삶을 우선하고 있음에 모멸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거리로 나오고 싶은 내 동지들이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역시 '솜편지'가 언급한 동지의 상에 꼭 들어맞는다. 한국으로 오기 위하여 몇 달 치 임금에 해당하는 돈을 브로커에게 저당잡히다 보니, 초과근무를 당연히 수행하여야 본국 가족에게 송금할 돈까지 어찌어찌 마련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노동조합을 비롯한 이주노동자의 사회 참여는 너무 요원한 일일 수도 있다. 그들이 자신의 권리 구제에 관심 없다고 판단하는 건 구조를 은폐하는 폭력이다. 아리셀 유가족과 같이 여전히 노동조합의 존재와 역할을 모르는 이주노동자들이 허다하다. 이주노동자에게 노조의 문턱이 낮추어져 내·외국인 노동자가 일상적으로 마주칠 때, 비로소 만국 노동자의 단결은 실천된다.

2015년 이주노조 합법화 승소 판결 기자회견. 출처: 노동과세계


요행이 정책이 될 수는 없다

전라남도 나주의 벽돌 공장에서 지게차에 묶여 있는 이주노동자. 출처: 광주전남이주노동자네트워크

 

최근 전라남도 나주의 한 벽돌 공장에서 발생한 이주노동자 인권 침해 사건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주노동자를 지게차에 묶어 위협하며 조롱한 사건이다. 솔직히 이 사건에 대해, 이주인권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새삼스럽다"는 의견이 많다. 유사한 일들은 비일비재하고, 충격도 일상이 되었다. 해당 이주노동자가 새로운 '인권 친화적' 사업장으로 이동하게 됐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이 사람에게만 주어진 '요행'이었다고 한다면 너무 무례한 짓일까. 비슷한 피해를 입었지만,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언급되고 도지사와 면담할 수 있는 자격은 과연 몇 명한테 주어질까. '요행'이 주어지지 않는 수천 명의 이주노동자가 새 사업장을 구하지 못해 강제 출국당하고, 소위 '불법'으로 전락하고, 심지어는 자살을 선택한다.

 

어쩌다 한번 찾아올까 말까 하는 요행을 기대하기에는 이주노동자가 처한 현실이 급박하다. 한 사람, 한 사람 피해 사례를 개별적으로 구제하기에는 그 규모가 말도 안 되게 크다. 생산인구 감소와 내국인의 3D(Difficult, Dirty, Dangerous)업종 기피 때문에 만들어진 단기순환 노동정책, 그리고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의 방편으로 내놓은 인구정책이 이민정책의 전부가 되어서는 희망이 없다. 이제는 제도를 바꿀 시간이다. 오랫동안 부재한, 그래서 이주노동자의 존재마저 그림자로 만들어버린 한국의 '이주정책'을 새롭게 설계할 때다.


박동찬

한국살이 10년 이주인권 연구활동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는 한편,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를 통하여 이주민·디아스포라와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평등과 환대의 가치를 전파하고 있다.

제5회 '이주노동자희망상'을 수상하였다.


각주

  1. 한겨레, 첫 출근날…폭염에 ‘체온 40도’ 앉아서 숨진 23살 야외노동자 https://www.hani.co.kr/arti/area/yeongnam/1206820.html [본문으로]
  2. SBS 뉴스, 야근 뒤 사망한 미얀마 노동자…사인 미상인데 부검 없이 종결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8194387 [본문으로]
  3. 서울경제, “사망 당시 체온 39도”…네팔 노동자, 폭염 작업 중 사망 https://www.sedaily.com/NewsView/2GVIXMK21D [본문으로]
  4. 뉴스핌, 5년간 외국인근로자 산재사고 사망자 413명…'위험의 외주화' 더 심해졌다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41114001179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