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모 2025년 8월호 여름 특집>
[사회] '불평등이 재난이다' - 덮쳐오는 기후재난, 가난한 자들에게 더 가혹하다
어김없이 찾아온 한여름의 폭염과 폭우, 그 와중에도 기후재난은 가난한 자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민간에 책임을 전가하는 위선이 아닌 공공성의 증진을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오는 8월 6일 열릴 기후재난 피해자 추모문화제를 앞두고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 중인 이경희 활동가의 글을 게재한다.
몇 년 전의 한여름, 에어컨이 없는 굴삭기 차고지 한 켠의 컨테이너에서 밤을 보낸 적이 있다. 온도가 내려가야 선풍기도 시원한 바람을 불어 줄 텐데, 실외보다 더운 실내에서 돌아가는 선풍기는 더위를 이기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올해 7월, 서울의 열대야일은 1달 31일 기준 22일로 늘면서 1908년 이래 117년 만에 7월 열대야일 최다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한 달 중 70%가 열대야였던 것이다. 이 달 서울 밤더위는 '20세기 최악의 더위'가 나타난 1994년의 7월이나 '21세기 최악의 더위'를 겪은 2018년의 7월보다 더 심했다. 1
에어컨이 없었을 시절 열대야를 견디기 위해 주민들이 집 앞에 돗자리를 펴고 가족끼리 누워 잠을 청하는 사진은 따뜻하고 낭만적이었던 과거 정도로 소비된다. 사람들로 하여금 경험했든 경험하지 않았든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도 그런 장면이 나온다. 밤새 켜져 있는 서울의 불빛들과 고층빌딩, 빠른 지하철. 국제적 자본의 흐름 속에 도시의 외형은 점점 화려해진다. 그런데 이윤을 위해 폭주하는 도시 속 화려함의 이면에는 여전히 야외에서 더위를 견뎌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본에 의해 밀려나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에너지 바우처를 반납합니다"
2023년 2월 7일, 전국 최대 쪽방촌인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은 에너지 바우처를 반납했다. 냉·난방비를 1인 세대 기준 295,200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에너지 바우처는 당장의 궁여지책으로는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기후재난의 최전선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은 이것이 그저 미봉책임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에너지 바우처를 반납했던 기자회견은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조속한 추진을 요구하는 자리였다. 2021년, 국토교통부는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 일명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을 발표하였다. 한 평 남짓의 방과 여러 명이 공유하는 주방, 작은 화장실. 여름에는 바깥이 더 시원할 정도로 덥고, 겨울에는 계단에 고드름이 어는 곳이 바로 쪽방촌이다. 그곳에 '선(先)이주 선(善)순환' 방식으로 공공임대주택을 짓는다는 것이 사업의 요지였다. 친구를 초대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나만의 화장실이 있는 '집다운 집'에, 심지어 살던 동네에서 이웃들과 살아갈 수 있게 한다는 계획에 주민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집주인의 반대를 핑계로 사업은 차일피일 미뤄지며 첫 단계인 지구지정조차 되지 않았다. 4년여의 기다림의 시간 동안 100여 명의 주민들은 이미 목숨을 잃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은 에너지 바우처를 반납하며 외쳤다. "난방비 말고, 내놔라 공공임대!"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공공임대주택을 기약없이 기다리는 동안, 궁여지책인 에너지 바우처마저 지원액이 대폭 삭감되었다. 2025년 예산안 기준, 바우처 예산은 전년도 대비 27% 감액된 것이다. 2
한편으로는 제도 접근성이 낮고 사각지대가 넓은 문제도 있다. 에너지 바우처는 기초생활수급자 중에서도 노인, 영유아, 장애인 등의 특성 중 하나를 충족해야만 대상이 된다. 수급 신청을 할 때도 이에 대한 별도 안내를 해 주지 않는다. 기초생활수급자 중 51.4%는 에너지바우처 대상조차 되지 않았으며 대상에 속하지만 신청을 하지 않아 혜택을 받지 못한 가구는 2022년 14만 9천 가구(12.7%)였다. 기후재난에 안전한 '집다운 집'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에너지 바우처를 삭감하고 사각지대를 늘리는 것은 '기후불평등'을 외면하는 정책의 퇴행이다. 폭염과 한파가 아니고서도, 구조적인 불평등 속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일상이 재난이 가깝다. 쉽게 아프고 이미 아프기에 동네에 구급차가 오는 일은 흔하다. 불평등은 기후재난일 뿐 아니라 이미 재난이다.
불평등이 재난이다
폭염뿐 아니다. 폭우 또한 매년 반복되는 기후재난으로서 삶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2022년 8월 8일 서울 관악구 반지하 주택에 살던 발달 장애가 있는 일가족 3명이 반지하에 갇혀 숨졌다. 벌써 3년이 지나 3주기를 맞는다. 반지하 참사 이후 ‘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라고 호기롭게 선언한 서울시의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반지하 가구 규모는 전국 약 36만 가구이며 서울시만 해도 약 23만 가구에 달한다.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침수가 우려된다고 판단한 가구는 2만 8천 가구이다. 3
SH공사에 따르면 서울시 반지하주택 매입 실적은 2023년 계획했던 1,050호에 비해 200호에 그쳤으며, 2024년에는 704호를 매입하기로 계획했지만 실제 매입한 것은 405호뿐이었다. 실적이 계획을 따라가지 못하자 2025년에는 계획부터를 398호로 줄였다. 서울시 주거취약계층 주거상향지원사업의 반지하 가구 공공임대 이주 실적 또한 2023년에는 2,239가구, 2024년에는 2,978가구뿐이다. 합쳐도 전체 반지하 가구 수는 턱도 없고, 침수 우려 가구 수에조차 미치지 못한다.
서울시는 심지어 건물주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며 침수 위험 주택에 물막이판도 제대로 설치하지 못했다. 건물주들이 침수 주택으로 보이면 집값이 하락할까 봐 세입자의 목숨을, 생명을 포기한 것이다. 단지 기후위기뿐 아니라 불평등한 이 사회가 재난의 순서를 정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의 위선적인 '약자와의 동행'
서울시는 지난 5월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기후재난 약자를 보호한다며 무더위 쉼터와 안전숙소, 밤 더위 대피소 등을 여름철 종합대책으로 발표했다. 기후위기 시대의 효과적인 대책을 내놓은 것처럼 선전하지만, 실상은 오세훈 서울시의 '약자와의 동행'이 지금껏 보여 온 위선처럼 이도 역시 시혜적이고 기만적인 선전에 불과했다.
무더위 쉼터의 위치 정보는 '서울안전누리'에만 제한적으로 공개되어 있어 정보 접근성이 낮다. 더욱이 서울시가 운영하는 무더위 쉼터의 총 수는 작년에 비해 약 1,000곳이나 줄어든 3,008개소에 머물렀다.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또 다른 대책인 '안전숙소'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제도는 민간숙박시설을 일시적으로 개방해 제공하는 방식인데, 이용 실적이 2년 동안 0건인 자치구도 있을 만큼 활용도가 낮다. 숙소의 위치나 이용 절차조차 인터넷에서 찾기 어려워 직접 구청이나 동 주민센터를 방문해 문의해야 한다.
또한 서울시가 편의점, 은행, 통신사 대리점 등과 손잡고 운영 중인 '기후동행쉼터'는 더위를 피하러 들렀다가도 눈치가 보여 오래 머무르기 어렵고 실제로 은행에 들어가면 경비원이 방문 목적을 묻는 일이 흔하다. "단순히 쉬러 왔다"는 말을 꺼내기 어려운 환경인 셈이다. 특히 거리 홈리스의 경우, 공공역사에서조차 쫓겨나는 경우가 많은데 민간 상업공간에 들어가 더위를 피하라는 발상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2개월 전 서울역 광장이 금연 구역으로 지정된 후 퇴거 위협은 더 잦아졌다. 한 거리 홈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햇빛을 피해 도망다니는 하루하루다. 원래 쉴 수 있는 통로가 있었는데 금연 단속 인원이 늘어나 머무르기 더 어려워졌다. 그나마 바람이 부는 곳이었는데." 결국 서울시의 '기후동행 쉼터'는 공공의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는 구조에 지나지 않는다.
공공성이란 이윤보다 삶의 지속을 우선하는 사회의 선택이다
공공이 책임을 민간에 전가하지 않는 것에서 더 나아가 공공의 책임 그 자체는 무엇인가. 당장의 손익 계산으로는 손해처럼 보일지라도, 장기적으로는 모두의 삶을 지키는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공공성이다. 지난 2023년 기후정의행진 참가선포 기자회견에서 한 홈리스 당사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적 약자들의 몰빵 희생은 국가의 무책임과 무능 그리고 존재 의미를 부정하게 만듭니다."
공공이 역할을 하지 않아 생존을 위한 필수 지출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를 때, 빈곤은 모두의 문제가 된다. 48개국 120여 개 노동조합이 참여하고 있는 에너지민주주의노조네트워크(TUED)는 기후재난 시대 에너지 민주주의를 위한 전략으로 '저항, 탈환, 재구성'을 이야기한다. 이는 주거불평등이 재난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지금 기후정의와 공공성을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기후위기에 안전한 집을 요구하는 것은 기후정의와 맞닿아 있다. 집이 투기를 위한 이윤 추구의 수단이 되어 버린 지금, 우리는 사는(buy) 것이 아닌 사는(live) 곳으로서의 집을 요구하며 저항해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의 확대로 민영화되고 시장화된 집을 우리 것으로 탈환해야 한다. 집과 부가 가난을 착취하며 몸집을 불리는 이 구조를 재구성하고, 주거권과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하게 살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
집과 땅에 공공성을 부여하자
폭염과 폭우가 재난으로 우리 삶을 옥죄어 올 때, 가난한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 몸이 아픈 사람, 일을 쉴 수 없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쓰러진다. 정부에서 내놓는 각종 기후위기 대응 정책들이 현실에서 실질적인 보호망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가장 중요한 구조적 해법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자본주의 수탈에 맞서는 기후정의행진에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인 가난한 사람들은 매해 '기후정의 주거권 행진단'을 꾸려 참가한다. 집으로 어떻게 돈을 더 벌 수 있을지, 각자도생의 내 집 갖기 경쟁보다는 가난해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집을 요구하자고 함께 외치며 저항하기 위해서이다.
그간의 주거 정책은 소유를 중심으로 한 토건 개발 중심으로, 꼭 필요한 사람에게 주택을 분배하는 것조차 실패했다. 주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더는 임시방편이 아닌 근본적인 변화, 공공임대주택이 필요하다. 특히나 도심 생활권 안에 존재하는 기존 주택을 매입함으로써 공공임대주택을 확보하는 전략은 '주택이 필요한 곳에 주택을 공급하기', '기후에 이로운 방향으로 주택을 공급하기' 등의 차원에서 더 크고, 분명하게 요구돼야 한다. 주거권 요구는 그 자체로 기후정의에 대한 요구다. 우리는 투기 사회를 뒤집고 집과 땅에 공공성을 부여해야만 한다. 그것이 기후정의이며, 기후정의에서 주거권을 함께 이야기해야만 하는 이유다. 우리에게는 탈환과 재구성의 방법이 모두 마련되어 있다.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모아 저항하며 그 길을 만들어가면 된다.
오는 8월 6일 오후 7시, 홍대입구역 7번 출구에서는 반지하 폭우참사 3주기 기후재난 피해자 추모문화제 '불평등이 재난이다'가 열린다. 추모의 마음을 나누며 기후정의와 주거권을 요구할 것이다. 매년 찾아오는 기후정의행진에도 주거권행진단을 꾸려 참가할 것이다. 기후정의와 주거권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할 수 있다. 매년 여름 폭염은 강도를 더해 가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협해오지만, 우리는 늘 그랬듯 힘을 합쳐 저항해 나가자.
※ <도모>는 혹서기를 맞아 2025년 8월호를 '여름 특집호'로 하여 특집기사들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이경희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각주
- 한겨레, 117년 만에 최다…서울 7월 열대야 22일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210874.html [본문으로]
- 산경e뉴스, 기후위기 '혹한' 예상되는데 내년 에너지복지예산 27% 감액...취약층 겨울나기 대책마련 시급 https://www.ske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39100 [본문으로]
- 중앙일보, ‘반지하 참사 없도록’…서울시, 침수우려 반지하 집중관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171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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