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태일재단의 노조 탄압', 전태일의 정신은 어디로?
2025년 9월 1일, 전태일재단 노동조합 전태일유니온은 재단 측의 노조 탄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지며 노원노동복지센터의 재수탁을 촉구했다.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전태일재단에서 벌어진 노조 탄압이라는 초유의 사태, 도대체 어떤 상황인가? 전태일재단의 노원노동복지센터 재수탁 포기는 왜 노조 탄압인가?

지난 9월 1일 오전 11시, 한 노동조합이 전태일 열사의 동상이 자리잡고 있는 청계천 6가 전태일다리(버들다리)에서 사측의 노조 탄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평소였다면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인 전태일 열사의 동상 앞에서 자본의 착취에 맞서는 민주노조가 기자회견을 여는 것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 기자회견이 주목받은 이유는 따로 있다. 사측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주최한 노동조합이 바로 전태일재단과 그 위수탁기관의 노동자들이 직접 만든 노동조합 '전태일유니온'이었기 때문이다.
전태일유니온 조합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전태일재단의 위수탁기관인 노원노동복지센터의 재수탁을 요구하며 수탁 포기는 곧 노조 탄압이고 전태일 정신에 대한 모욕임을 주장했다. 기자회견에는 전태일유니온 조합원들과 연대하고 있는 각 노동·사회운동단위들, 그리고 진보정당들이 함께했다.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전태일재단'?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어머니의 정신을 계승하며 항상 우리 사회 노동자들의 편에서 활동하는 전태일재단이 '노조 탄압'이라니, 전태일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조합원 스무 명 남짓의 작은 노조 전태일유니온의 조합원들이 평소대로라면 근무 시간이었을 평일 오전 전태일다리에 모인 이유는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
이번 기자회견을 주최한 전태일유니온은 전태일재단과 그 위수탁기관(전태일기념관, 중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 노원노동복지센터) 3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올 3월 창립총회를 갖고 발족한 신생 노동조합이다. 전태일유니온의 발족에는 재단의 비민주적 의사결정에 대한 재단 노동자들의 문제의식이 큰 동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태훈 전태일유니온 위원장은 창립총회를 준비하며 "(노조 설립이)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임에도 자칫 (보수언론 등의) 악선동거리가 되지 않을지 망설였지만, 민주적이고 투명한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전태일과 이소선 정신의 계승과 확산이 가능하다" 밝혔다. 당시 노조 창립총회에는 박승흡 전태일재단 이사장이 축사를 보내 출범을 응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단의 공식 입장 및 이사장의 말과는 달리 전태일유니온의 운영은 시작부터 갖은 난관에 부딪혔다. 재단의 대표적 위수탁기관인 전태일기념관에서 기관장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하여 노조 차원에서 면담을 요구했으나, 재단 측은 응하지 않고 가해자의 '피해자 고소' 대응에도 침묵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노동조합의 기본적 권리인 단체협약을 체결하고자 할 때에도 재단 측은 역시 무응답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심지어 노조가 요구한 해당 단협안에는 임금인상 요구가 없고, 재단 이사회 17명 중 1명을 노조 추천 이사로 세우는 것이 주요 요구안이다. 전태일유니온 측이 3차례(5월 20일, 6월 11일, 7월 31일)나 공문을 발송하고 부당노동행위로 경고까지 보내고 나서야 재단은 교섭요청에 응답하여 겨우 2차례의 교섭이 성사될 수 있었다.

이렇게 힘겹게 교섭이 진행되던 와중, 전태일재단 측이 주요 위수탁기관 중 하나인 노원노동복지센터의 재수탁 포기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 조합원들이 가장 크게 반발하는 것은 이것이 노동조합의 합법적 활동을 봉쇄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번 재수탁 포기가 명백한 노조탄압에 해당하는 이유는 현재 전태일유니온 노조위원장인 권태훈 위원장의 소속 기관이 노원노동복지센터인 것에서 드러난다. 노조위원장에게 조합원으로의 자격을 상실케 함으로써 노조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우기 힘든 것이다. 특히 노원노동복지센터가 기관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어 왔으며 매년 연인원 9,000명 내외의 전태일·이소선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하는 등 재단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해 봤을 때 의심은 더욱 커진다.
재단 측은 재수탁 포기 문제에 대해 아직 공식적으로 결정된 바 없으며 9월 4일 이사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라 밝히고 있고, 더불어 '노원 지역 단체 중 수탁을 받게 해 달라는 단체가 존재하여 재논의가 필요하다' 등의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위탁기관의 재수탁은 본래 이사회 의결사항이 아니었으며, 특히 노원노동복지센터에서 일하는 4명의 노동자들과 상의조차 없이 결정한다는 것은 전태일재단이 비판해 오던 자본의 직장폐쇄와 과연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재단 측은 '지역에서 타 단체의 재수탁 요구'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정작 해당 단체가 어떤 단체인지, 어떤 명분과 절차로 수탁을 요구했는지 등의 절차적 투명성은 전무한 상황이다. 전태일재단의 주장과는 반대로 노원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진보정당들의 연대체인 노원공동행동에서는 노원노동복지센터의 재수탁을 명확하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의당을 포함한 각 진보정당들 역시 전태일유니온과의 연대에 동참하여 재단의 전횡을 규탄하고 있다. 9월 3일 현재 청계천변의 전태일기념관 앞에는 정의당, 진보당, 국민주권당의 전태일유니온 지지 현수막이 걸린 상태다. 9월 1일 기자회견에는 김용연 진보당 서울시당위원장, 배서영 국민주권당 조직위원장, 김윤기 전환 공동대표 등의 연대발언이 이어졌다. 정의당 부대표를 지냈던 김윤기 공동대표는 연대발언을 통해 '전태일의 정신을 계승하는 전태일재단에서 노조탄압이 벌어지는 것'에 참담함을 금치 못하고 있음을 밝혔다.
"오늘 기자회견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 주말 내내 전태일, 전태일재단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전태일 평전은 청년이 되는 우리 시민들이 꼭 읽어야 할 책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오래 전이지만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만들어졌고,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태일이〉가 만들어져서 전태일 열사는 우리 시민들의 가슴속에 노동자의 상징으로 아로새겨졌습니다. 전태일은 모든 노동자의 이름이고, 모든 노동조합의 정신이며, 민주주의를 향해 투쟁하는 우리 시민들에게는 연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중략)
 
이런 전태일의 정신을 계승하는 조직이 전태일재단입니다. 이런 전태일재단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것은 전태일재단이 펼치는 운동의 실현이라고 생각하고 축복했어야 마땅합니다. 노동조합이 생겨 더 노동자들이 존중받고, 전태일재단 운영의 주체로서 존중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청년들에게 노동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지역의 노동자들에게 노동감수성을 높이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지원해 온 전태일재단이 벌여 왔던 사회적 실천과 부합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맞닥뜨린 이 사태는 얼마나 참담한 것입니까? 전형적인 노동조합 탄압이자 파괴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전태일·이소선 정신 계승, 노조 할 권리 보장에서부터
본 기사가 지면에 송고되는 9월 3일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자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인 이소선 어머니의 14주기 기일이다. 전태일유니온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장두영 사무국장은 연대발언에서 "곧 이소선 어머니의 기일인데 전태일재단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안타깝고 속상"하다며, "전태일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단체에서 이런 일이 있는 것 자체를 믿기 어렵다" 이야기했다. 그 말처럼, 모든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해 장렬히 스러진 전태일의 정신과 그 뜻을 이어받아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가 되고자 했던 이소선 정신의 계승은 당연하게도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 할 권리의 보장'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진보를 말하는 세력 스스로가 노동자의 권리를 탄압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과연 누가 이들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지점이다.
전태일유니온은 기사 송고 시점으로 내일(9월 4일) 개최될 전태일재단 이사회를 앞두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태일재단 노조활동 보장 노원노동복지센터 재수탁 촉구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노조 측은 전태일·이소선 정신을 계승하는 전태일재단이 노조탄압을 자행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리며, 노원노동복지센터 재수탁 포기가 왜 노조 탄압에 해당하는지 설명함과 동시에 노원노동복지센터에서 일하는 재단 소속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박탈당할 위기임을 절박하게 호소하고 있다. 노조 측은 9월 4일 있을 이사회에 서명을 전달하며 이사회 현장에서 전태일재단의 노조 탄압에 항의하는 피켓팅을 진행할 예정이다.

▶️ 전태일재단 노조활동 보장 노원노동복지센터 재수탁 촉구 서명 동참하기
전태일재단은 노동조합 활동 보장하고
노원노동복지센터 재수탁에 즉각 나서기 바랍니다
전태일재단의 노원노동복지센터 재수탁 포기는 전태일재단과 수탁기관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전태일유니온의 노동조합 활동에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노원노동복지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4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등 심각한 노동자 생존권 박탈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에 전태일재단이 전태일 이소선 정신으로 돌아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를 바라며, 전태일재단을 아끼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촉구합니다.
하나, 전태일재단은 전태일 이소선 정신으로 돌아가 노원노동복지센터 재수탁 포기 시도를 즉각 철회해 주시기 바랍니다.
둘, 전태일재단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노원노동복지센터 재수탁 의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셋. 전태일재단은 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에 성실하게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 서명은 2025년 9월 4일(목)까지 진행되며, 9월 4일 있을 전태일재단 이사회에 제출될 예정입니다.

이도영
전환 기관지 편집위원장이자 <도모> 편집장.
아마추어 디자이너 일도 가끔 한다.
여전히 사회운동과 진보정치가 만들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믿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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