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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운동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성공회대학교 퀴어문화축제와 '회대으당'

by Domoleft 2025. 8. 31.

[사회]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성공회대학교 퀴어문화축제와 '회대으당'

오는 9월 2일부터 3일까지, 성공회대학교에서는 세 번째 성공회대 퀴어문화축제(회대퀴퍼)가 열린다. 학생사회에서 자체적으로 열리는 흔치 않은 퀴어문화축제에 진보정치는 무엇을 함께하며 어떻게 연대하고 있을까? 성공회대의 정의당원들과 함께 퀴퍼 준비에 여념이 없는 박재형 정의당 성공회대 학생위원장의 글을 게재한다.


2025 제3회 성공회대 퀴어문화축제 포스터

 

지난 8월 내내, 성공회대학교의 학생 활동가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무슨 일이 있길래 9월 개강 첫 주부터 이렇게까지 현수막을 걸고 포스터를 붙이는 것일까? 활동가들이 사부작거린 포스터를 자세히 살펴보자. 포스터 중앙에는 '흠집들의 집에서 얽히고 엉퀴어!'란 문구가 적혀있다. 글자를 이루는 자음과 모음은 모양, 색, 굴곡 모두 불규칙하고 알록달록하다. 글자의 파편들은 마치 얽히고 엉킨 조각보 또는 누더기처럼 보인다. 우측 상단에 까맣고 또렷한 글씨가 포스터의 정체를 알려 준다. 제3회 성공회대학교 퀴어문화축제(이하 회대퀴퍼)의 개최를 알리는 포스터라는 점을 말이다.

 

회대퀴퍼는 지난 2023년 오세훈 서울시장의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 불허에 대한 저항을 계기로 탄생했다. 혐오표현을 동반한 반발과 예산 문제라는 우여곡절을 딛고, 회대퀴퍼는 3년째 이어지며 이미 명실상부한 성공회대학교의 주요 축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회대퀴퍼는 9월 3일 성공회대학교 교정에서 열리며 전날에는 '퀴어필름나잇'이라는 퀴어영화제도 열릴 예정이다. 7개의 공연행진팀과 10개의 부스가 축제를 준비 중이고 필자가 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의당 성공회대학교 학생위원회(별칭 '회대으당')도 부스를 열 예정이다.

 

오늘 이 글에서는 회대으당이 회대퀴퍼에 어떻게 함께하고 연대했는지를 하나씩 소개할 것이다. 단순한 참여단위 중 하나로 보일지라도, 그 뒤에는 수많은 기획과 실무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유의미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앞의 논의를 토대로 진보정당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조금이나마 제시해 보고자 한다. 진보정당 전반의 방향은 다루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대학 안의 풀뿌리 조직으로서 학생위원회나 당원·지지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퀴어문화축제와 정의당 성공회대학교 학생위원회(회대으당)

2025 제3회 성공회대 퀴어문화축제의 정의당 성공회대 학생위원회 부스 안내 카드뉴스

 

이번 회대퀴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회대으당이 주요하게 한 일들은 1) 권영국 대표 발언자로 섭외하기 2) 부스 운영 3) 연대 현수막 게첩 4) 릴스, 카드뉴스를 통한 대외홍보 5) 단체 후원의 총 5가지다. 이렇게 보면 크게 별 것을 하지 않은 듯 보인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이다. 사업들의 요소 각각은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별 것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을 실제 행동에 옮김으로써, 각 요소들은 '별 것'으로 거듭난다.

 

회대퀴퍼 개막식에는 정의당 권영국 대표의 연대발언이 예정되어 있다. 회대퀴퍼 조직위에서 먼저 회대으당에 연대발언을 요청한 것이 아니었다. 정반대로 회대으당이 조직위에 "권영국 대표를 부를 수 있는데, 어떨까요"하고 먼저 제안했다. 만약 거절당하더라도 불러서 부스를 함께 운영하는 방안을 고민하기도 했다. 다행히 조직위에서는 섭외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고, 회대으당은 당대표를 학교 축제에서 발언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로는 중앙당과 퀴퍼 조직위 간 연락을 중개하고 안내사항을 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부스 운영은 가장 많은 공이 들어간 요소다. 치열한 논의 끝에 '정의행정복지센터'라는 동사무소 컨셉의 부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주민등록초본, 주민등록증처럼 생긴 퀴어/앨라이 등록서(이하 등록서), 퀴어/앨라이 등록증(이하 등록증)을 발부할 예정이다. 등록서에는 차별금지법, 생활동반자법 등 정의당의 주요 정책이 소개되어 있다. 발부를 위해 신청자는 부스에서 두 장의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한 장은 평범한 신청서고, 한 장은 회대으당에 관한 설문조사로 성공회대 학생이 진보정당 조직을 어떻게 알았고, 무엇을 바라는지 등을 알기 위한 항목으로 짜여 있다. 신청서를 모두 작성하면 책갈피, 등록서, 등록증을 받을 수 있다. 책갈피에는 '당신 곁에 보다 가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고, 세련되고 '퀴어하게' 리디자인된 정의당 로고가 새겨져 있다.

 

등록서, 등록증, 신청서의 디자인은 모두 각각 다른 사람들이 도맡았다. 업무의 과중을 유도하지 않기 위함이다. 책갈피는 여러 번의 피드백과 수정을 거쳐 완성됐다. 실물 제작은 책갈피의 경우 업체에 맡기고 나머지는 당원 중 한 명의 집에서 프린트했다. 마지막으로 실무는 집행부 뿐만 아니라 13명의 당원, 지지자 학생들이 돌아가며 운영하기로 했다. 집행부 인원만으로 운영하기 어렵기 때문도 있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제3회 성공회대 퀴어문화축제의 회대으당 현수막

 

현수막 디자인 역시 책갈피를 디자인한 당원이 함께 담당했다. 이번 퀴퍼의 '얽히고 엉퀴다'는 컨셉에 맞게, 조각보를 얼기설기 엮은 것처럼 글자를 꾸몄다. 글을 쓰는 8월 28일을 기준으로 퀴퍼에 관한 현수막을 게첩한 단위는 회대퀴퍼 조직위를 제외하고 회대으당이 유일하다. 회대으당은 평상시에도 특정 사안, 당원 모집, 선거운동, 새내기 환영 등 여러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을 게첩해왔다. 우리에게 현수막 게첩은 가장 적은 자원과 역량으로도 우리의 존재와 정치적 입장을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다.

 

이 모든 것들은 카드뉴스와 릴스로 만들어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SNS를 비롯해 각종 단체 카톡방, 단체 텔레그램방에 꾸준히 게시되고 있다. 당원들의 회대퀴퍼 참여 유도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학교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함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회대으당은 단체 명의로 회대퀴퍼에 후원금을 전달했고, 이에 단체 후원 리스트에 '성공회대 정의당'이라고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이 또한 구글폼 작성과 입금이라는 간단한 행동만 거치면 된다. 후원금을 포함해 이번 회대퀴퍼 부스 운영, 현수막 제작 과정에서 소요된 예산은 모두 집행부원 각출과 선배 당원들의 후원을 통해 마련됐다. 다른 지역, 부문위원회와 마찬가지로 학생단위에도 할당된 예산이 없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의 이야기를 만들자

지금까지 회대으당이 퀴퍼 준비 과정에서 함께한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빽빽하게 요소 각각을 살펴본 이유는 이것들이 막상 나열하고 보면 별 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퀴퍼라는 상황이 특수할 뿐이지, 개별 사업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완벽하고 이상적인 조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불완전하고 지금의 상황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최선이다.

 

한편 지난 대선을 계기로 회대으당은 적지 않은 성공회대 학생들에게서 눈에 보이는 지지를 얻고 있다. 정의당의 정책도, 권영국 대표의 토론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결정적이지는 않다. 이들이 정의당을 지지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당과 엮인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차별금지법', '권영국', 혹은 '장혜영'이라는 상징은 그 자체로 힘이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성공회대의 지지자들은 "같은 수업 듣는 OO님이 선거운동 열심히 하시던데. 그러고 보니 토론회 때 그 발언은 문제적이었어", "퀴어운동 하는 내 친구 OO이가 저기 활동 열심히 하네? 저 당은 퀴어프렌들리하구나", "학교 앞에 달린 AA당 현수막이 마음에 안 들었는데 정의당 친구들이 반박 현수막을 달았었지" 같이, 단순히 상징만이 아니라 그와 엮인 이야기로 정의당을 기억하고 지지한다.

 

언젠가부터 진보정당에는 이야기, 내러티브가 희미해지고 상징만 남은 것 같다. '기업이 잘 살아야 나라가 잘 산다', '조국 사면이 검찰개혁이다'는 각각 빨간당과 파란당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단순히 제시한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란 불평등하게 배분된 자원과 권력에 의해 움직인다. 경제학자 대런 아세모글루는 <권력과 진보>에서 그 사회의 테크놀로지와 비전의 방향을 결정하는 설득권력의 메커니즘을 설명한 바가 있다. 설득권력은 아이디어와 의제설정이라는 두 요소로 구성된다. 여기서 의제설정 능력은 아이디어를 결정하며 사회적 권력에 큰 영향을 받는다. 아무리 천재적인 아이디어라도 의제설정 능력이 부족하면 각광받지 못한다. 이 설득권력 개념을 통해 아세모글루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우리가 하나의 아이디어나 협소한 비전에 고착되어 있다면, 많은 경우에 이것은 선택지가 부족해서는 아니다. 그보다 이것은 의제 설정력과 사회적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아이디어와 비전을 우리에게 부과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고치려면 내러티브를 바꾸어야 한다."

 

거대 양당은 언론, 예산, 인력 등 동원 가능한 자원과 권력이 많다. 그러나 진보정당에는 자원도 권력도 없다. 단순히 말만 한다고 해서 이야기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거대양당에 대항할 유일한 방법은 아래에서부터 이야기를 쌓아가는 것뿐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결국 풀뿌리 조직을 통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보고 그들과 진보정당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 방식이 '옳은 방법'이라서가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기 때문'이다.


회대퀴퍼로 만드는 이야기들,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를 기대하며

회대으당 당원들

 

바깥에서 보면 알기 힘들지만 안에서 볼 때 회대으당의 회대퀴퍼 연대는 유별나다. 과거에 비해 학내 단위, 특히 학생회의 연대 수위가 낮아진 상황에서 퀴퍼에 이 정도로 열심히 임하는 단위는 사실상 회대으당뿐이다. 곧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앞서 줄줄이 나열한 연대의 요소를 떠올려 보자. 각기 다른 사업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은, 이 모든 것이 사람과의 마주침을 통해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란 점이다.

 

당원과 지지자들이 회대으당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공유할 때, 친구가 부스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현수막을 걸던 중 조직위 사람들과 마주쳤을 때, 이 모든 순간에는 작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작은 이야기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지난 광장에서 우리는 작은 이야기들이 연단에 올라 아이디어가 되고 비전이 되는 과정을 보았다. 이야기는 꼭 사회적으로 결정적인 순간뿐만 아니라 일상의 활동에서, 그리고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선거에서도 유의미한 순간을 만든다.

 

흔히 인간이 이성의 동물이라지만 인간은 그만큼 감정적이기도 하다. 숫자와 통계로 이뤄진 수치, 논리적인 논평보다 얼굴을 아는 사람의 진심 어린 한 마디, 행동 하나가 마음을 움직일 때가 더 많다. 사회연구자 리베카 헌틀리는 앞선 경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따라서 기후변화에 대한 사회의 갈등과 불화를 어느정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다양한 신념 체계와 이를 형성하는 정서적 반응, 사회적 영향력을 이해해야 한다. 기후변화를 이야기하고 대책을 논의할 때도 그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모든 사안에 있어서 주관적 감정은 객관적 사실만큼이나 중요하다. 어쩌면 주관적 감정은 그 삶을 살아가는 이에게 이미 사실이고, 누군가에게는 객관적 사실이 사회가 정한 감정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기사나 뉴스를 통해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느낄 수도 있고 당사자로서 필요성을 체감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소수자인 내 친구가 차별금지법에 대해 필요하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거나, 차별금지법 선전 현수막을 아는 사람이 만들고 달았다는 사실도 그 누군가의 삶에는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이성적인 것만큼이나 감정적으로 삶을 살아간다. 곧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제1회 성공회대 퀴어문화축제 중

 

이야기라는 것은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다. 오히려 이야기 없는 정치가 허무맹랑한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제도와 정책을 말한다 해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이야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인 것처럼 말이다. 이번 회대퀴퍼의 슬로건이 '흠집들의 집에서 얽히고 엉퀴어!'인 것이나, 필자의 성공회대 학생위원장 출마 당시 슬로건이 '얼기설기 회대으당'이었던 건 단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제 자리에서 묵묵히 풀뿌리 조직을 일구는 이들 간에는 공통된 감각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각보를 만들듯, 덩굴이 서로 얽히듯 이야기를 만들어나가자. 어떤 것이라도 주어진 상황 속에서 실행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게 우리 앞에 놓인 유의미한 길이 아닐까?


 

제3회 성공회대학교 퀴어문화축제 - 흠집들의 집에서, 얽히고 엉퀴어!

 

※ 일시: 2025.09.02(화)~09.03(수)

※ 장소: 성공회대학교(서울시 구로구 연동로 320)

※ 문의: skhu.qf@gmail.com


박재형

정의당 성공회대학교 학생위원회(회대으당) 위원장.

취미로 텃밭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