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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운동

집단학살자들에게 마이크를 주지 마라 - CIPA 2025 학회의 이스라엘 테크니온 주최 워크숍 진행을 규탄하며

by Domoleft 2025. 8. 25.

[사회] 집단학살자들에게 마이크를 주지 마라 - CIPA 2025 학회의 이스라엘 테크니온 주최 워크숍 진행을 규탄하며

'문화유산을 보존하겠다'는 학술 무대에, 전쟁을 가능하게 만드는 연구기관이 초대됐다. CIPA 2025의 테크니온 워크숍은 '보존'의 언어로 파괴를 세탁하는 일이다. 질문은 간단하다. 이런 초청이 정당한가?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연구자이자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회원 이수민의 글을 게재한다.


'문화유산 보존'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전쟁범죄 연루 기관 세탁을 거부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강제점령을 넘어 가자지구에서 극악무도한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것은 이미 그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는 명백한 진실이다. 지금으로부터 1년도 더 전인 2024년 6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지난 2023년 10월 시작된 하마스와의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plausible)고 밝힌 바 있다.[각주:1] 전쟁을 명목으로 벌어지는 집단학살의 와중에도 이스라엘 학자들은 국제 교류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와 국제 사진측량 및 원격탐사 학회(ISPRS)가 후원하는 국제 학회인 CIPA는 매년 동명의 정기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올해 CIPA 2025는 국립중앙박물관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주관으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게 되었다. 학회는 문화유산의 보존과 과학기술을 이용한 연구, 새로운 컨텐츠로의 재창조를 다룬다.

CIPA 2025 Seoul 타이틀 이미지. 출처: CIPA 2025

 

수십년 간 성공적으로 이어져 온 이 학회에 국내 팔레스타인 연대자들이 문제제기를 하게 된 이유는, 바로 학회의 위성 워크숍으로 이스라엘 테크니온 대학이 주최하는 'Cultural insites' 워크숍이 열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테크니온 - 이스라엘 과학기술원(Technion - Israel Institute of Technology, Technion IIT)는 악명 높은 집단학살의 공범 기관이다. 이들은 과학기술 연구의 미명 아래 무기 개발과 군 인재 양성에 주력해 왔다. 테크니온 대학은 로봇 공학 및 AI 기반 지도 제작, 자율 시스템 등의 연구를 기반으로 이스라엘군(IDF)의 군사 작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음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홍보하고 있다.[각주:2]

 

또한 테크니온 대학의 졸업자들 다수는 이스라엘 방산업체의 주요 인력으로 채용되며, 테크니온 대학의 영향력은 라파엘과 이스라엘 항공우주 산업이라는 두 악명 높은 방산업체의 설립 주축이 된 바 있다. 이런 관계로 테크니온 대학은 이스라엘의 점령을 중단시키기 위한 국제적 압박운동인 BDS(Boycott, Divestment, Sanction: 보이콧, 투자철회 및 제재) 운동의 주요 목표가 되고 있다. 이는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어 스페인 대학총장회의 소속 76개 대학이 이스라엘 대학들과의 연구협력 중단을 선언했으며, 벨기에 대학 총장 협의회 소속 10개 대학은 공동성명을 통해 이스라엘과의 과학 협력 중단을 요구했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은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및 텔아비브대학교 학생 교환 프로그램을 잠정 중단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각주:3]

벨기에 브뤼셀 자유대학의 건물에 걸린 팔레스타인 국기와 연대 현수막

 

이러한 기조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비단 유럽 대학들만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최대 후원자인 미국의 MIT대학도 이스라엘의 방산업체 엘빗 시스템즈과 이미 관계를 끊은 바 있다.[각주:4] 그러나 이렇게 확산되고 있는 국제 학계의 집단학살 규탄 정서와는 전혀 달리, 올해 CIPA를 주최하는 한국 기관들은 그 자체로 집단학살의 주범이나 다름없는 테크니온 대학을 워크숍의 주최자로 불러온 것이다.


역사 말살 책동과 문화유산 파괴를 일삼는 이스라엘

한편 문제는 단순히 방위산업에만 있지 않다. CIPA 학회의 주요 주제가 되는 고고학과 문화재 보존 분야에서는 이스라엘의 파괴로 인한 폐해가 더욱 부각된다. ICOMOS 팔레스타인 지부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있는 350개 이상의 고고학 유적지 중 3분의 2 이상을 폭격하고 파괴했다. 집단학살 이전부터 이스라엘 당국은 고고학 발굴을 불법 정착촌 확장의 명목으로 이용했으며, 현재도 유네스코에 잠정적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내 유적지 세바스티아를 이스라엘 자연공원청의 감독 하에 이스라엘 관광지로 개발할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각주:5]

 

올 초, 불법 정착촌 건설 정책에 관여하는 이스라엘 기관들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점령 팔레스타인 고고학 유적지에 관한 학회를 후원했다. 해당 서안지구 유적지 학회에는 테크니온 대학의 교직원이 참석하여 발표를 진행했는데, 바로 이번 CIPA 2025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는 문제의 학과인 Faculty of Architecture and Town Planning(건축 및 도시계획학부) 소속이다. 특히 이 테크니온 교직원이 발표한 내용은 더 문제적인데, 베들레헴 인근 불법 유대인 정착촌에 둘러싸인 헤롯 왕의 궁전(헤로디움)의 발굴을 다루고 있다.[각주:6] 헤로디움의 유물들은 이미 서안지구 강제점령이 시작된 1967년 이후부터 이스라엘에 의해 약탈당하고 있는 상태이다. 지금 이스라엘이 벌이고 있는 일은 단지 문화유산의 약탈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민족의 문화적 존재를 말살하려는 고도의 책동이다. 이는 식민지 조선에서 일어났던 민족 말살 정책과도 비슷하지만 그보다 더 잔인하고 치밀하다.

사진 위: 서안지구 헤로디움과 그 주변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들 / 사진 아래: 헤로디움 발굴에 대해 발표하는 테크니온 교직원


한국 기관 및 학계, '학문의 자유'를 명목으로 한 집단학살 은폐를 멈춰라

BDS 운동의 학술 보이콧 부문 운동은 그 시작부터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고 '정치를 과학의 영역에 끌어들이'며, 이스라엘 학계의 고립을 초래하여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전방위적 비난을 받아 왔다. 그러나 '학문의 자유'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생명과 기본권을 침해하는 체제에 학술활동이 가담하는 것을 결코 정당화하지 못한다. 또한 학술활동과 정치가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 특히 과학기술과 정치가 분리되어 있다는 주장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과학기술이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은 핵무기의 개발을 비롯한 수많은 사례들이 이미 증명하고 있다. 한편 '국제 학술 커뮤니티와의 활발한 연결이 이스라엘 학자들을 전향적으로 만들 것'이라는 주장은 집단학살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무의미하다. 학술적 국제교류는 중요하지만, 그 기반은 집단학살과 점령에 대한 책임 인정과 가담에 대한 중단이라는 최소한의 전제 하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테크니온 대학은 집단학살의 핵심 공범일 뿐 아니라, 교직원이 직접 팔레스타인 유적지의 약탈을 모의하는 학회에 참석하는 문화 말살 책동의 주범이기도 하다. CIPA 2025의 주관 기관인 KAIST, 국립중앙박물관, 그리고 후원 기관인 ICOMOS 한국 지부 등은 국제 학술교류의 장을 제공하는 기관으로서 집단학살과 문화유산 약탈에 가담하는 기관과의 유착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해당 기관들은 학자로서의 양심과 국제법의 기준에 부합하는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한국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가들은 CIPA 2025의 주관기관과 후원기관, 조직위원회에 '원조하지 않고 가담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테크니온에 대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멈추고, 장소 대관을 거부하며 해당 워크숍을 취소하라는 단순하고도 당연한 요구이다.

2025년 4월 21일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진행 중인 한국-이스라엘 과학기술교류 동결 촉구 기자회견. 출처: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촬영: 스튜디오알)

 

지난 4월 21일 한국 과학기술인 121명과 대학원생노조, 민교협, 교수노조를 포함한 6개 학계 단체는 한국 대학과 기업, 정부가 이스라엘과의 협력을 동결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각주:7] 8월 18일에는 대전 시민사회단체들이 카이스트 앞에서 CIPA 2025에서 테크니온 대학 워크숍을 배제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한국 시민사회의 요구는 명확하다. 수많은 한국 정부 기관과 기업들이 이스라엘의 집단학살과 점령정책에 직접적으로 공모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학살자 이미지 세탁을 돕고 있다. 학살과 문화 말살의 조력자로 역사에 남지 않기 위해서 한국은 더 늦기 전에 책임 있는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본 기고문의 초고를 작성하고 난 후, 기어이 CIPA 2025 학회는 해당 워크숍을 진행했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은 이를 규탄하기 위해 학회 현장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8월 24일 오전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다. 기자회견에서는 전 팔레스타인 박물관장이자 베들레헴 대학 교수인 팔레스타인 고고학자 마흐무드 하와리 교수의 규탄 성명이 대독되었고, 공공운수노조 대학원생노조지부 카이스트분회 준비모임 소속 김태형 대학원생, 그리고 팔레스타인을 위한 학생 공동행동 활동가가 규탄 발언을 했다. 마흐무드 하와리 교수는 발언에서 이번 초청이 " '문화학살' 및 '학술학살', 즉 교육기관과 대학, 고고학 유적지와 유물, 문화유산의 기억을 의도적이고 체계적으로 표적화하고 파괴하는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기관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밝혔으며, 대학원생노조의 발언자는 "학살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대학과 학술 교류를 이어간다면 우리도 결국 폭력 정당화에 힘을 보태게 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은 소위 '국립중앙박물관 오픈런'을 위해 모인 수많은 관람객들 앞에서 이루어졌다. CIPA 2025 조직위원회의 인원들은 기자회견에 대해 격렬한 항의를 보였으며, 학회 참가자가 기자화견 참가자에게 자초지종을 묻는 일도 벌어졌다. 기자회견은 워크숍 행사장 입구 앞에서 대형 팔레스타인 국기를 펼쳐보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8월 24일 국립중앙박물관 앞에서 진행된 CIPA 2025 규탄 기자회견. 출처: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촬영: 스튜디오알)


이수민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 회원, 대학원생이다.


각주

  1. ICJ, South Africa v. Israel (Order of 26 January 2024) https://en.wikisource.org/wiki/South_Africa_v._Israel_(Order_of_26_January_2024) [본문으로]
  2. 테크니온 대학, The "Nagel Committee Report": Evolving Israel’s Defence Strategy https://ats.org/our-impact/the-nagel-committee-report/ [본문으로]
  3. Korea-EU research Centre, EU-이스라엘 과학 협력 재검토 압력 증대(5.15) https://k-erc.eu/2025/05/europe-trends/26429/ [본문으로]
  4. Business & Human Rights Research Center, USA: After six month campaign, MIT cuts ties with Israeli weapons manufacturer Elbit Systems https://www.business-humanrights.org/en/latest-news/usa-after-six-month-campaign-mit-cuts-ties-with-israeli-weapons-manufacturer-elbit-systems/ [본문으로]
  5. ICOMOS Palestine, Heritage Alert: The Archaeological Site of Sebastia (29 December 2024) https://palestine.icomos.org/reports/heritage-alert-the-archaeological-site-of-sebastia/ [본문으로]
  6. Archaeology and site conservation of judea and samaria, 2025 [본문으로]
  7. 오마이뉴스, "과학기술이 가자 집단학살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2117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