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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씨네도모

위기에 빠진 공동체, 어떻게 구할 것인가? 영화 <콘클라베> 정치적으로 읽기

by Domoleft 2025. 5. 15.

[씨네도모] 위기에 빠진 공동체, 어떻게 구할 것인가? 영화 <콘클라베> 정치적으로 읽기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및 현실에서의 콘클라베와 맞물려 재조명받으며 역주행 중인 영화 <콘클라베>. 가톨릭 교회와 전 세계가 마주한 미증유의 위기 속에서, <콘클라베>는 우리 시대의 정치에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 본 기사에는 영화 <콘클라베>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콘클라베' : 명사 1. 가톨릭 교황을 뽑는 전 세계 추기경들의 모임. 교황이 사망하거나 물러나면 16~19일 사이에 교황청의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새 교황을 선출한다. -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

 

<콘클라베>는 2024년 전 세계 영화 팬들로부터 가장 크게 주목받은 작품 중 하나였다. 로버트 해리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피터 스트로언 각본, 그리고 <쉰들러 리스트>, <해리 포터> 시리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레이프 파인즈가 주연 겸 총괄제작을 맡은 '드림팀'의 결합으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개봉 이후에는 예술영화로서는 드물게 글로벌 흥행 1억 달러를 돌파하는 건 물론[각주:1], 오스카 각색상을 포함해 30여 개의 상을 휩쓸고 다수 매체의 2024년 베스트 영화 중 하나로 선정되는 등 대중과 평단 모두로부터 고른 지지를 얻었다. 여기에 4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망하고 실제로 콘클라베가 열리게 되자 SNS를 중심으로 영화가 다시 화제가 되었으며, 국내에서도 상영종료 수순에 오르던 영화가 '역주행'하며 3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각주:2] 많은 관심을 불러모았다.

 

콘클라베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적 행사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는 종교영화라기보다는 차라리 정치 스릴러에 가까운 구성을 보여준다. 베르거 감독 본인부터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영화를 만들 때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과 같은 1970년대 할리우드 정치 스릴러 영화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을 정도다.[각주:3] 하긴 14억 명이 넘는 신도들을 관장하는, 현존하는 그 어떤 정부보다 오래된 기관의 수장을 뽑는 선거가 '정치적'이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 영화'로서 <콘클라베>는 어떤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현재 우리 시대의 정치에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Sede vacante'에서 'Habemus Papam'까지

영화는 선대 교황의 사망과 함께 시작된다. 영국 출신 토마스 로렌스(레이프 파인즈 분) 추기경단 단장, 미국 출신 알도 벨리니(스탠리 투치 분) 바티칸 국무원장, 나이지리아 출신 조슈아 아데예미(루시언 음사마티 분) 바티칸 내사원장, 캐나다 출신 조지프 트랑블레(존 리스고 분) 바티칸 사도궁무처장 등 바티칸에서 고위직을 맡고 있는 네 명의 추기경이 모여 교황의 사망을 확인하고 'Sede vacante(교황직의 공석)'를 선언한다. 바티칸은 로렌스 추기경의 지도 하에 콘클라베 준비에 들어간다.

영화 <콘클라베> 중

 

3주 간의 준비 기간이 어느새 끝나고, 추기경들이 하나하나 바티칸에 도착하기 시작한다. 로렌스는 선임 교황의 진보적인 노선을 계승하는 벨리니를 차기 교황으로 지지하지만, 일반 대중 사이에서의 인기와는 별개로 추기경단 내 여론은 시큰둥하다. 그들을 위시한 바티칸 진보파는 선임 교황의 유산을 넘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반백년 가까이 이어져 온 가톨릭의 현대화 자체를 문제 삼으며 이를 되돌리려는 강경보수파 테데스코 추기경이 교황이 될 것을 우려한다. 여기에 테데스코보다 더 반동적인 종교관을 자랑하지만 아프라카 추기경단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아데예미와 정치적 권모술수에 응한 트랑블레까지 가세하며, 차기 교황 선출을 놓고 벌어지는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콘클라베가 진행되며, 후보군이 조금씩 좁혀지기 시작한다. 초반 네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으며 최초의 흑인 교황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아데예미는 과거 미성년자와의 성추문이 드러나 몰락한다. 이후 다섯 번째 투표부터 강력한 후보로 등장한 테데스코 역시 성직매매 등 과거 부정부패는 물론 콘클라베에서까지 추기경들을 매수하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신임을 잃는다. 이제 콘클라베는 테데스코, 그리고 어느새 벨리니 대신 진보파의 대표주자가 된 로렌스 간 양자대결로 좁혀진다. 그렇게 여섯 번째 투표가 진행되던 도중,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로 인해 콘클라베가 잠시 중단된다.

 

테러로 인해 소집된 긴급회의에서 교회 내 보수파와 진보파 간 갈등은 극에 달한다. 테데스코는 지난 세월 교회 내 '상대주의' 행보가 누적된 결과가 이것이라며 "얼마나 더 저자세로 나아가야 하느냐, 저들이 우리 코앞까지 왔다" "우리에게는 진정한 종교 전쟁에 처했음을 이해하는 지도자, 저 짐승들과 맞서 싸울 지도자가 필요하다"며 이슬람혐오 정서에 기반한 극우적 발언을 퍼붓고, 벨리니 등 진보파는 "부끄러운 줄 알라" "이런 자가 교회를 이끌기를 바라시느냐"며 맞선다.

 

고성이 오가던 와중 한 추기경이 불현듯 목소리를 낸다. 콘클라베에 가장 마지막으로 도착했던, 아프가니스탄 카불 대주교이자 교황에 의해 비밀리에 임명된 '의중 결정(in pectore) 추기경'인 베니테스 추기경이다. 카불 이전에 이라크나 콩고민주공화국 등 전란에 휩싸인 나라에서 선교활동과 의료봉사를 진행한 바 있는 그는 테데스코에게 “전쟁에 대해 뭘 아느냐”고 반문하며, 자신은 근무지에서 기독교인과 무슬림 가리지 않고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수도 없이 봐 왔다고 말한다. 이후 그는 진정한 적은 우리 안의 증오와 불관용이라고 말하며, 정말로 중요하는 것은 특정 편에 서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대변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라며 역설한다. "지난 며칠간 본 것은 권력과 선거에만 몰두하는 소인배가 된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의 연설에 감명받은 듯, 재개된 여섯 번째 투표에서 베니테스는 압도적인 표차로 교황에 당선되고 '새 교황이 선출되었음(habemus papam)'이 확정된다. 그가 교황명으로 고른 것은 인노첸시오 13세. 영어 Innocent와 같은 어원의, '순결하다'라는 뜻의 라틴어다.

영화 <콘클라베> 중


'뜻밖의 교황' 프란치스코: 환경과 소수자에게는 자비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는 분노를

<콘클라베>는 사망한 선대 교황이 누구인지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비(非) 이탈리아 출신 교황이었다는 점, 전통적인 교황의 관저인 사도 궁전이 아니라 일반 사제들의 기숙사인 성 마르타의 집을 거처로 삼았다는 점, 진보적인 성향으로 교회 내에서 많은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불러왔다는 점 등 영화 속 여러 묘사들을 고려해 보았을 때 해당 인물은 현실 속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응되는 인물임이 거의 확실시된다.

 

실제로 생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 교회의 흐름에 비교해 보아도 대단히 개방적이고 개혁적인 면모를 보이며 가톨릭교도를 넘어 세계인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는 취임 첫해인 2013년, 중도좌파 성향의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의 전 편집장인 무신론자 에우제니오 스칼파리가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칼럼에 대해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으며,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면 양심에 따르면 된다고 답장을 보내 큰 화제를 불러왔다.[각주:4] 동성결혼과 성전환, 낙태에 반대하는 가톨릭의 보수적인 젠더관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성소수자들에 대해 포용적인 메시지를 공식 발언을 통해 여러 번 내고[각주:5] 낙태 여성에 대한 사제들의 특별사면권을 무기한 연장하는 등[각주:6] 비교적 관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외에도 바티칸 공직 곳곳에 여성을 임명하고[각주:7] 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된 바티칸 은행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각주:8] 메시지뿐만 아니라 교회 운영에 있어서도 여러 개혁을 시도했다.

 

무엇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본주의 불평등과 환경 파괴, 제국주의와 같은 우리 시대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그 어느 좌파 정치인이나 지식인보다도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 왔다. 취임 첫해에 나온 권고문 <복음의 기쁨>에서 그는 "고대의 금송아지에 대한 숭배가 돈에 대한 물신주의라는, 그리고 참다운 인간적 목적이 없는 비인간적인 경제 독재라는 새롭고도 무자비한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각주:9]라고 말하며,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억압과 착취, 불평등을 가져왔다고 비판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출처: 경향신문

 

환경 문제에 관한 관심 역시 남달랐는데, 특히 단순 자연 친화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인류문명 전반의 사회 정의의 문제와 연관 지어 생각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정의의 문제를 환경에 관한 논의와 결부시켜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 모두에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합니다"[각주:10]라는 그의 말은 여느 생태사회주의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쟁과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역시 돋보인다. 그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대한 서방 선진국들의 신식민지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멈추지 않았으며,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등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 왔다. 특히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는 죽기 한 달 전에도 가자지구의 성가족성당에 매일 안부 전화를 했을 정도로 각별히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전해진다.[각주:11]

 

물론 어디까지나 가톨릭 교회라는 2000년 가까이 되는 보수적인 종교 기관의 수장이라는 위치에서 이루어진 언행인 만큼, 그의 이러한 행보가 모든 이들의 눈에 충분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태생적인 보수성의 장벽을 뚫고 표현된 것인 만큼 그의 이러한 메시지가 통상적인 진보·좌파의 그것과는 또 다른 무게감을 지니고 다가오는 것 역시 사실이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지식인 미카엘 뢰비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가톨릭교회의 보수적 유산 속에서 남미 특유의 민중신학을 바탕으로 동시대의 진보적 요구들을 끌어안고자 했던 '어쩌다 교황(the unexpected pope)'으로 평가했던 이유일 것이다.[각주:12]

 

매우 거칠게 요약하자면, <콘클라베>는 이러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진보적 유산이 교외 내외의 여러 고난을 거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영화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영화 내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가톨릭 교회는 여러 위기상황에 놓여 있다. 잊을 만하면 가톨릭 사제와 주교들의 성폭력이 뉴스에 보도되며, 교회 내 부정부패 역시 만연하다. 이슬람 테러리즘이나 극우 포퓰리즘과 같은 정치적 극단주의는 교회가 기반하고 있는 민주적 사회질서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아데예미와 트랑블레, 테데스코는 위와 같은 개별 위기상황을 특정 개인의 모습으로 은유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단순 가톨릭 교회만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 것은, 실제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놓여 있는 복합위기 역시 이와 그다지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의심이라는 믿음, 다양성이라는 통합

미국의 작가이자 평론가 남왈리 세르필은 <콘클라베>의 핵심이 "섬세하고 부분적인 드러냄"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장엄하고 묵직한 가톨릭 의례와 미학에 대한 선명한 묘사와는 별개로, 주제와 형식 모두에서 다소 모호하고 암시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식으로 영화의 품격을 한 단계 높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는 나레이션이나 플래시백과 같이 인물들의 생각이나 입장을 관객들에게 인위적으로 주입하는 영화적 장치들을 일절 배제한 체, 배우들의 침묵과 시선, 공간의 구성과 명암을 정교하게 담아내는 연출을 통해 관객들이 이를 스스로 유추해 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배우들 역시 감정을 일방적으로 쏟아내기보다는 (세르필의 표현대로) "아이러니의 경계"[각주:13]에 서 있는 연기를 통해 인물의 복잡하고도 다층적인 내면을 온전히 담아내는 데에 집중한다. 이는 신성과 권력이, 구원과 욕망이, 궁극적으로는 종교와 정치가 서로 붙어 있다는 영화의 핵심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위와 같은 <콘클라베>의 특징은 영화의 정치적 주제의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영화는 앞서 말했듯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대표되는 가톨릭 교회 내 진보주의 노선에 공감하면서도, 해당 입장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며 띄워주는 프로파간다와는 거리를 둔다. 오히려 영화는 이러한 진보주의적 신념이 때로는 얼마나 위태로운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 이를 고수하고자 하는 이들 역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해야 하는지에 집중한다. 로렌스와 벨리니로 대표되는, 해당 노선을 지지하는 영화 속 인물들 역시 이야기 내내 오해와 오류를 거듭하며 실패를 반복하고 자신들의 입지를 스스로 뒤흔든다. 영화는 앞만 보고 나아가기보다는 반복해 헤매는 이들, 목청껏 소리높이는 이들 대신 조심스레 자문하는 이들의 편에 선다.

 

콘클라베 첫째 날 로렌스의 강론 장면은 이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는 "함께 일하고, 함께 성장하기 위해 우리는 관용이 필요합니다. 어떤 개인이나 세력도 다른 이를 지배하려 해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하며, "제가 그 어떤 것보다 두려워하게 된 죄는 확신"이라고 역설한다. 확신은 화합과 관용을 가로막는 공동체의 가장 치명적인 적이고, "우리의 믿음은 의심과 함께 손을 잡고 걷기 때문에 살아 숨쉬는 존재"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의심하는 교황", "죄를 범하고 용서를 구하는 교황, 그리고 다시 나아가는 교황'을 선출할 것을 동료 추기경들에게 요청하는 것으로 그의 강론은 끝을 맺는다. 의심을 믿음의 아버지로 이해하는 로렌스의 강론은, 종교(와 정치)의 핵심을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에 두는 영화의 주제의식의 화신과도 같다. 구원(과 해방)은 저 멀리 주어져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고 부딪혀 가며 만들어내는 것이다.

영화 <콘클라베> 중

 

로렌스의 이러한 섬세한 접근은 영화의 '최종 보스' 격인 테데스코의 세계관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콘클라베 전날 추기경단이 함께하는 첫 저녁식사에서, 테데스코는 로렌스에게 추기경들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각자 사용하는 언어를 중심으로 나눠 앉아있음을 지적하며, 과거 라틴어로 미사를 진행하던 시절에는 이와 같은 분열상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푸념한다. 물론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의 변화를 못마땅해하는 그의 전통주의적 사상이 반영된 평가이지만, 동시에 그가 이해하는 '통합'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에게 통합은 내부의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에게 '다양성' 이란 '분열'과 동의어이다. '보편교회'로서 가톨릭은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며 하나의 목소리를 유지해야지만 존속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테러 이후 추기경단 회의에서 그가 보여준 극우적 언사 역시, 단순 개인적 편견의 발현을 넘어 이와 같은 그의 사고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교회 내부의 '통합'을 교회 외부의 적에 대한 '압도적 승리'와 동의어로 이해한다.

 

이를 콘클라베의 최종적인 승자가 된 베니테스의 사상과 비교해 보자. 물론 베니테스도 통합을 말한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통합과 다양성은 반의어가 아니라 동의어이다. 통합은 특정 세력의 편에 서는 게 아니라 모든 이들을 고루 대변할 때 가능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추기경이 되기 이전 증오와 반목에 의해 전시상황에 놓여 고통받은 국가들에서 활동했기에, 진정한 구원은 외부의 적에 대한 증오가 아닌 내적 모순을 다스리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추기경단이 대내외적 위기상황에 놓인 가톨릭 교회의 수장으로서 베니테스를 선택했다는 것은, 이렇게 일상에서 자신이 믿는 통합의 가치를 실천해 온 그의 행보를 인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목청이 아니라 걸음의 손을 들어 줬다.

영화 <콘클라베> 중

 

영화 종반부 그에 대한 반전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나가 신임 교황 자격으로 전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 베니테스는 로렌스에게 자신이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인터섹스(Intersex)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이를 깨달은 이후 여성 성기 제거 시술을 받는 것을 고려했지만, "주님의 작품에 손을 대는 게 오히려 더 큰 죄를 짓는 것 같았다"며 이를 포기했다는 사실 역시 덧붙인다. 자신은 신이 만든 그대로이고 결국 자신이 얼마나 유용한 사람이 될지는 자신의 손에 달렸다는 말과 함께, 앞서 확신의 죄악에 대해 로렌스가 했던 강론을 인용하며 "자신은 확신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게 어떤 기분인지 잘 안다"고 이야기한다. 로렌스의 '의심으로서의 믿음'과 베니테스의 '통합으로서의 다양성'이 만나는 순간이다. 이런 그의 교황명이 '인노첸시오'인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통합과 다양성을 하나로 본 그에게, 성소수자인 자신을 '순결하다'고 칭하는 것은 전혀 모순이 아니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 속 여성들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남성 중심적인 것으로 유명한 바티칸에서 펼쳐지는 영화치고는 이례적으로, <콘클라베>는 수녀들의 존재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영화는 음식을 만들고, 숙소를 청소하고, 문서를 정리하며 콘클라베가 진행되는 데 필요한 크고 작은 노동을 수행하는 수녀들의 모습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이들 중 일부는 아데예미와 테데스코의 후보탈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역시 콘클라베가 끝나고 격리가 해제된 후 문을 열고 수녀들이 웃으며 지나가는 장면이다. 첫 저녁 식사 전 기도에서 "우리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식사를 도와줄 수녀들을 잊지 않도록 도우소서"라 말하며 이들을 영화 내에서 직접적으로 호명한 유일한 사람이 다름 아닌 베니테스라는 사실은, 영화가 이들과 이들의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좋은 실마리가 되어 준다.

영화 <콘클라베> 중


위기의 세계, 의심과 다양성에 기반한 정치는 가능할 것인가

<콘클라베>가 이토록 많은 이들의 주목과 사랑을 받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많은 이들이 공동체의 운명을 두고 암중모색과 동상이몽을 이어나가는 추기경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낀 것 역시 한 몫 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난 몇 달간 역사에 기록될 수준의 정치적 혼란과 불확실성을 경험했던 한국인들에게는 더욱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공동체가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모두들 '통합'과 '승리'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로렌스와 베니테스의 말처럼, 정말로 중요한 것은 어떤 통합이고 어떤 승리인지 의심하며 모두 함께 힘을 합쳐 위기 너머 세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일일 것이다. 요란한 목청이 아니라 성실한 발걸음의 힘을 믿는, 의심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며 모든 이들을 대변하려는 정치를 기다린다.

 

2025년 5월 8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으로 열린 '진짜' 콘클라베에서 미국 추기경 로버트 프랜시스 프리보스트(Robert Francis Prevost)가 새 교황 레오 14세로 선출되었다. 미국인이지만 사제생활의 대부분을 페루 등 남미에서 보낸 그는 여성과 성소수자 등 젠더 이슈에 있어서는 보수적이지만 난민과 이주노동자, 기후 문제에 있어서는 진보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등 큰 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노선을 계승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추기경 시절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그가 내린 비판적인 평가들은 최근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가 과연 '의심의 가치를 아는 교황'이 될지, 단지 가톨릭 신도들만을 넘어 우리 모두가 지켜볼 일이다.

새로운 교황 레오 14세. 출처: 연합뉴스


 

콘클라베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

레이프 파인즈, 스탠리 투치, 존 리스고 / 120분 / 2024

 

 

'씨네도모'는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 등의 다양한 영상매체를 진보·좌파적 시각에서 비평하고 문화적 상상력을 함께 나누는 웹진 <도모>의 영화 리뷰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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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

동국대학교 맑스철학연구회 전 회장, 전환 국제연대팀장.

동국대학교와 고양시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넓고 멀리 보는 이론과 구체적인 공간에서의 실천을 겸비한 운동을 지향한다.


각주

  1. Boxoffice Mojo, <Conclave> https://www.boxofficemojo.com/title/tt20215234/?ref_=bo_se_r_1 [본문으로]
  2. MBC, [문화연예 플러스] 교황 선종 이후 역주행‥'콘클라베' 관객 30만 돌파 https://imnews.imbc.com/replay/2025/nwtoday/article/6711955_36807.html [본문으로]
  3. Variety, Ralph Fiennes on Cardinal Lawrence’s ‘Crisis of Faith’ in ‘Conclave’: ‘We Mustn’t Underestimate the Importance of Doubt’ https://variety.com/2025/film/news/conclave-ralph-fiennes-cardinal-lawrence-1236295909/ [본문으로]
  4. 경향신문,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살면 된다" https://www.khan.co.kr/article/201309121113001 [본문으로]
  5. 연합뉴스, [교황 선종] 성소수자 포용한 교황, 가톨릭 개혁에도 족적 남겨 https://www.yna.co.kr/view/AKR20250421137600109 [본문으로]
  6. 경향신문, 프란치스코 교황 "사제들의 낙태 여성 특별사면권 영구 연장" https://www.khan.co.kr/article/201611212304005 [본문으로]
  7. 한겨레, 바티칸 행정 수장에 최초로 여성…교황, 페트리니 수녀 임명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182712.html [본문으로]
  8. 코리아데일리, 바티칸 적자 재정에 기적 같은 개혁 다져 https://www.koreadaily.com/article/20250505180723119 [본문으로]
  9.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복음의 기쁨-현대세계의 복음선포에 관한 교황 권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3, p 55 [본문으로]
  10.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찬미받으소서-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5, p 42 [본문으로]
  11. 경향신문, 교황, 마지막까지 가자 평화 메시지…팔 ‘진정한 친구’ 잃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4222137005 [본문으로]
  12. Jacobin, The Unexpected Pope https://jacobin.com/2025/04/pope-francis-catholicism-climate-refugees [본문으로]
  13. The New Yorker, The New Literalism Plaguing Today’s Biggest Movies https://www.newyorker.com/culture/critics-notebook/the-new-literalism-plaguing-todays-biggest-movies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