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도모] 어린이의 열차, 연대의 열차: 영화 <칠드런스 트레인> 리뷰
남부 이탈리아의 빈곤층 아이들을 태운 공산당의 '행복 열차'가, 극우 정권의 도래를 맞이한 지금의 이탈리아와 세계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장석준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이 보내 온 넷플릭스 영화 <칠드런스 트레인>의 리뷰를 게재한다.
* 본 기사에는 영화 <칠드런스 트레인>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년 12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이탈리아 영화 <칠드런스 트레인(Il treno dei bambini)>은 지난 세기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수작이다. 2019년에 베스트셀러가 된 비올라 아르도네(Viola Ardone)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고, 감독은 크리스티나 코멘치니(Christina Comencini)다. 원작자와 감독 모두 여성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시다. 전쟁의 포화가 휩쓸고 간 이 도시에서 홀어머니 안토니에타와 함께 하루하루를 간신히 살아가던 소년 아메리고가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가난한 소년이 예술가로 성공하기 위해 정든 가족과 고향을 떠난다는 기본 구조만 보면, <시네마 천국>과 비슷하기도 하고 <빌리 엘리어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데 이 영화에서는, '어린이들의 열차'라는 제목의 이유가 된 특이한 역사적 사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폴리에서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채 거리에서 소일하던 아메리고는 비슷한 처지인 다른 친구들과 함께 '행복 열차(Treni della felicità)'라 이름 붙은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 북부의 낯선 땅 모데나로 향한다. 그리고 이곳 위탁 가정에서 또 다른 '엄마'를 만나고,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꿈을 품게 된다. 한 소년의 삶에 이토록 커다란 변화를 낳은 이 '행복 열차'는 놀랍게도 국가 혹은 정부가 아니라, 지금은 사라진 한 정당이 기획하고 추진한 프로그램이었다. 바로 이탈리아 공산당(PCI)이다.
이탈리아의 고질병, 남부와 북부의 심각한 격차
'행복 열차'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탈리아 자본주의의 고질적 모순인 남부-북부의 심각한 격차다. 오랫동안 여러 도시국가와 자그마한 왕국, 외세 점령지로 나뉘어 있던 이탈리아 반도는 19세기 중반에 드디어 정치적으로 통일됐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현실은 통일되지 못했다. 수도 로마를 경계로 북쪽은 이웃나라 프랑스, 독일과 비슷하게 산업 자본주의가 급속히 발전했지만, 남쪽에서는 중세와 마찬가지로 농민인 대다수 인구가 대농장주에 예속된 채 좀처럼 빈곤과 저발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위 사진에서 보여지듯 현재도 이탈리아의 남북 간 경제력 격차 및 이에 따른 차별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잔존해 있다.)
이런 현실은 19세기 말부터 이른바 '남부 문제'라는 이름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실은 '남부 문제'라는 말 자체가 진실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 마치 모든 게 다 남부인들과 남부 사회가 태생적으로 가진 병폐와 한계 탓인 것 같은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통일 이후 이탈리아 사회를 주도한 북부 자본가계급과 자유주의자들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북부의 찬란한 발전을 쫓아오지 못하고 그래서 이탈리아의 미래에 짐만 되는 남부라는 식이었다. 심지어는 북부 사회 안에서 자본가계급에 맞서던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자들조차 비슷하게 생각했다. 포 강 유역의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이나 토리노, 밀라노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을 조직해 강력한 노동계급 생활세계를 구축해가던 북부 노동자들은 남부 빈농들의 비참한 삶을 머나먼 다른 세상 일처럼 여겼다.
역사학자 가에타노 살베미니(Gaetano Salvemini) 같은 '남부주의자'들이 이런 현실에 처음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살베미니 등은 남부의 저발전이 오히려 북부의 성장에 발판이 되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부를 북이탈리아산 공산품의 시장으로 묶어두고 값싼 노동력 공급지로 활용함으로써 북부 자본주의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남부주의자들은 진정으로 이탈리아 사회 변혁을 바라는 세력이라면 남부의 후진성을 비난할 게 아니라 북부 자본가계급과 남부 대지주 사이의 이러한 동맹 관계를 공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들은 북부 노동자들이 남부와는 천양지차인 소득 수준과 소비 생활에 안주하지 말고 남부 빈농과 연대해 자본가-대지주의 지배 블록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부주의의 이러한 문제의식을 마르크스주의에 접목한 이들이 바로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팔미로 톨리아티(Palmiro Togliatti) 같은 남부 태생의 젊은 사회주의자들로 이뤄진 <오르디네 누오보(L’Ordine Nuovo)> 그룹이었다. 이들은 1921년에 사회당에서 분리해 새로 출범한 공산당에 합류했고, 이후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에 맞서며 공산당의 집행부를 맡게 된다. 한편 남부주의의 시각을 발전시킨 또 다른 집단이 있었다. 그람시가 반파시즘 투쟁의 첫 번째 동맹 상대로 여겼던 피에로 고베티(Piero Gobetti), 카를로 로셀리(Carlo Rosselli) 등의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그룹이었다. 이들은 1929년 망명지 파리에서 ‘정의와 자유’라는 조직을 결성했고, 이 조직은 반파시즘 무장항쟁에서 공산당과 쌍벽을 이룬 세력인 행동당(PdA)으로 발전하게 된다.
공산당, 행동당(전후 다수가 사회당에 합류)의 이런 활동 덕분에 1945년 해방 이후 남부-북부 격차 해소는 이탈리아 제1공화국의 최대 숙제로 떠올랐다. 냉전 시기 내내 사회당, 공산당은 권력에서 배제되고 기독교민주당이 장기 집권했지만, 기독교민주당 역시 나름대로 남부 발전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폴 긴스버그(Paul Ginsborg)의 <이탈리아 현대사: 반파시즘 저항운동에서 이탈리아공산당의 몰락까지>(안준범 옮김, 후마니타스, 2018)에 잘 정리된 것처럼, 농지 개혁이나 남부 개발 사업에 대한 대규모 재정 지원 같은 여러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몇 세기 동안 쌓이고 쌓인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는 없었다. 새 나라에서도 남부 여러 지방은 여전히 극빈 상태에서 신음했다. 더군다나 <칠드런스 트레인>의 무대인 나폴리는 1943년에 연합군 상륙작전의 주된 공략지점이 되는 바람에 큰 피해를 입었다. 오래 묵은 가난에다 전쟁의 참화까지 겹친 이 폐허 속에서, 영화 속 안토니에타와 아메리고 모자 같은 이들은 힘겹게 삶을 꾸려가야 했다.
이탈리아 여성연합이 추진한 '행복 열차'
무엇보다 겨울을 보낼 일이 걱정이었다. 많은 어린이들이 추위와 질병에 노출됐다. 한데 1947년 겨울은 이야기가 좀 달랐다. '행복 열차'가 무려 1만 2천 명에 이르는 나폴리 시의 어린이들을 북부로 실어 날랐다. 북반구에서 겨울을 피하려고 더 북쪽으로 간다는 것은 상식 밖이지만, 북부 여러 지방은 나폴리 인근만큼 전쟁 피해가 크지 않았던 데다 워낙에 생활 형편이 더 나았다. 날씨는 나폴리보다 더 춥겠지만, 오히려 더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사업을 기획, 추진한 것은 공산당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공산당이 주도하는 여성 대중조직 '이탈리아 여성연합(UDI)'이 '행복 열차'를 발의하고 성사시켰다. 다른 나라 공산당에도 이와 유사한 여성 대중조직이 있었지만, 이탈리아 여성연합은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사례였다. 기독교민주당이 늘 높은 여성 지지율을 자랑하도록 뒷받침해 주는 가톨릭 교구 조직에 맞서려면 공산당 또한 여성들의 일상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대중조직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여성연합은 바로 이런 역할을 활발히 수행했으며, 이를 통해 전후 이탈리아 사회에 페미니즘 사상과 문화를 확산시켰다.
<칠드런스 트레인>은 이런 여성연합의 활약상을 생생히 전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공산당 안에서 순조롭게만 전개되지 않았다는 사실 역시 가감 없이 그린다. 공산당 또한 여전히 남성 중심 문화에 기울어 있었고, 그래서 여성 당원들의 문제제기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거나 여성연합의 자율성을 순순히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연합은 그리 쉽게 굴복하거나 타협하지는 않았다. 영화 속 아메리고가 모데나에서 만난 '엄마' 데르나처럼 반파시즘 저항운동으로 단련된 수많은 기층 여성 운동가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또한 나이 먹은 고참 남성 당원들도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테레사 노체(Teresa Noce, 1900~1980) 같은 막강한 여성 리더가 있었기 때문이다.
1900년 토리노의 노동계급 가정에서 태어난 노체는 10대 시절부터 노동운동과 사회당 활동에 뛰어들었고, <오르디네 누오보> 필진에 합류했다. 신생 공산당으로 당적을 옮긴 뒤에는 파시스트 정권에 맞서 지하활동을 펼쳤고, 이때 또 다른 당 활동가 루이지 롱고(Luigi Longo, 1960년대 톨리아티 사후에 공산당 서기장이 된다)와 결혼했다. 프랑스로 망명하고 나서는 무솔리니 정권에게 그람시의 석방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고, 그러다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된 뒤에 결국 체포돼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다행히 살아서 수용소를 나와 고국에 돌아온 다음, 노체가 시작한 새로운 과업은 바로 여성연합 건설이었다. 제헌의회에서 공산당 의원단이 당 방침에 따라 바티칸의 권한을 무솔리니 정권 시절 그대로 인정하는 안건에 '찬성' 표결을 할 때도 홀로 '반대'를 들 정도로 꿋꿋했던 노체는 이런 정신으로 여성연합을 흔들림 없이 이끌었다.
'행복 열차'를 처음 제안한 사람도 노체였다. 처음에 노체는 밀라노 빈민가 어린이들을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의 당원, 노동조합원 가정들에 보내 겨울을 나게 하자고 제안했다. 밀라노는 독일군과 연합군, 파르티잔 사이에 마지막까지 전투가 벌어진 곳이라(무솔리니가 마침내 파르티잔에게 체포된 곳도 밀라노다) 북부 도시 중에서 비교적 피해가 컸다. 그래서 1945년 12월 노체의 제안과 여성연합의 결의에 따라 1800명의 어린이들이 '행복 열차'를 타고 에밀리아로마냐 곳곳으로 향했다.
이 사업이 성공을 거두자 공산당과 여성연합은 행복 열차 프로그램을 남부 이탈리아에서 보다 큰 규모로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나폴리를 비롯한 남부 곳곳의 사정이 그만큼 절박하기도 했거니와 이참에 남부 민중과 북부 민중의 연대를 실제 행동으로 구현해보려 했던 것이다. 그 결과 1947년부 <칠드런스 트레인>의 주인공 아메리고 같은 나폴리 어린이들이 행복 열차를 통해 모데나 같은 에밀리아로마냐 도시들에 도착했고, 1952년까지 무려 7만 명이나 되는 남부 곳곳의 어린이들이 행복 열차의 승객이 됐다. 아이들을 위탁하게 된 에밀리아로마냐의 당원 및 조합원 가정들은 대체로 부유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성심성의껏 보살폈다.
왜 지금 '연대의 열차'를 다시 불러내는가
‘행복 열차’ 프로그램의 경험은 기차에 탔던 어린이들이든 이들을 맞이한 가족이든 모든 참가자에게 따뜻하고 뜻깊은 기억으로 남았다. 모데나의 위탁 가정을 새 가족으로 삼아 그곳에 남은 아메리고와 달리 대다수 어린이는 남부 가족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이들은 돌아간 뒤에도 북부의 제2의 가족과 계속 편지를 교환했고 인연을 이어갔다. 그 중에는 가슴 뭉클한 사연도 많았다. 데르나가 반파시즘 무장항쟁 중에 연인을 잃었듯이 파시스트와 독일군에게 아들을 잃은 여성 당원이 새롭게 사랑을 쏟을 자녀를 만나기도 했고, 기독교민주당 정부에게 빈곤 구제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투옥된 노동조합원의 자녀가 낯선 동지들의 가정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기도 했다. 공산당이 새로운 이탈리아 공화국의 가치로 역설하던 '연대'가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실체로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행복 열차'는 프로그램의 수혜를 받았던 일부 노년층의 추억 속에 잠들어 있었을 뿐, 이탈리아 현지에서조차 한동안 제대로 기억되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들어 아르도네의 소설이 크게 성공하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어 영화까지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이 지점에서 이런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왜 하필 지금 '행복 열차'의 기억이 이렇게 절박하게 환기되는가?"
지난 2022년, 극우 정당 이탈리아의 형제들(FdI)의 대표 조르자 멜로니(Giorgia Meloni)는 총선 압승을 통해 이탈리아 총리직에 올랐다. 멜로니 내각에 함께 입각한 동맹(Lega) 역시 부유한 이탈리아 북부를 기반으로 하는 극우 정당이다. 극우 세력이 이탈리아의 집권당이 된 것은 1922년 무솔리니가 총리직에 오르며 이탈리아 파시즘의 시대가 시작된 이래 딱 10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동성애자와 악수를 하느니 토사물에 키스를 하겠다" 공공연히 밝히고, "이슬람 광신도와 테러리스트를 폭행하고 살해하는 시민에게 훈장을 수여해야 한다" 주장하며, 빈곤 수당인 '시민소득'을 축소하고 노동유연화를 일삼는 1 멜로니 정권 아래 이주민과 성소수자, 빈곤층과 노동자들은 다시금 시민 이하의 존재로 격하되고 있다. 2
멜로니 정권은 지난 2024년 부유한 북부에 더 많은 재정적 권한을 부여하는 지방자치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탈리아 공산당과 여성연합의 활동가들이 '행복 열차'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모든 것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정권이 한 세기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3
70여 년의 세월을 뚫고 '행복 열차'가 2025년 지금 다시 소환되는 본질적 이유는 아마도, 무솔리니 정권 이후 한 세기만에 다시 극우 정권 아래 놓인 이탈리아 사회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무언가가 그 기억 속에 꿈틀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결국 '연대'의 생생한 실현이다. 지금 지구 반대편의 우리에게도 간절히 요구되는 그 ‘연대’ 말이다.
장석준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현재는 출판&연구공동체 산현재 기획위원이다.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 칼럼을 연재 중이며, 한겨레에도 '그대로 진보정치'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는 <세계 진보정당운동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각주
- 이탈리아 첫 여성 총리, 멜로니가 연 극우의 시대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1145970.html [본문으로]
- '유럽의 병자' 이탈리아, 노동개혁에 시동걸었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05026058i [본문으로]
- 게으른 그들에 왜 우리돈을…伊의회 지방자치확대 법안 통과 https://www.yna.co.kr/view/AKR2024062015940010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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