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사회운동

대선 방침 없는 민주노총,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은 어디로?

by Domoleft 2025. 6. 1.

[사회] 대선 방침 없는 민주노총,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은 어디로?

지난 5월 20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중집)는 끝내 '제21대 대선에 대한 정치방침 없음'으로 막을 내렸다. '이재명 지지'냐 '독자적 진보정치'냐로 촉발된 논쟁 속,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상실한 양경수 집행부를 활동가이자 민주노조 조합원의 입장에서 비판한다.


2025년 6월 3일 치러지는 제21대 대통령 선거는 여러모로 이례적이다. 먼저, 이번 대선은 내란(쿠데타)을 민중항쟁으로 극복한 결과 치러지는 대선이다. 이는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을 축출하고 치른 13대 대선 이후 38년 만의 일이다. 물론 2017년 19대 대선 역시 민중항쟁의 결과물로 볼 수 있겠으나, 이는 '내란'과는 거리가 멀었다. 윤석열 정권의 내란음모로 촉발된 민중항쟁의 결과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직접적인 '내란 축출 선거'라고 할 수 있겠다. 민주화 이후 두 번째의 현직 대통령 파면으로 열리는 선거라는 점 역시 특기할 만하다. 박근혜, 윤석열 두 대통령은 모두 '전사회적 저항-국회의 탄핵소추-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안 인용'이라는 '헌정 질서 내 절차'를 통해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났다. 이는 우리 사회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성숙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고작 8년 만의 대통령 탄핵은 기존 헌정질서가 가지는 모순을 방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2016-2017년 광장과 2024-2025년 광장의 모습도 굉장히 다르다. 8년 전 응원봉과 무지개가 광장의 '주류'에게 일종의 '가능성' 혹은 '신기한 것' 정도로 취급되었다면, 이번의 응원봉과 무지개는 그 자체가 광장의 주요 상징이 되었다. 이는 그 자체로 역사적 진보이면서, 동시에 기존 흐름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를 불편해하는 기성 사회운동에 그들이 과연 스스로 '진보'를 자임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한편 항상 한국 사회 민중운동의 중추로 꼽혀 왔고 이번 광장에서도 명백히 주요한 역할을 차지했던 노동계, 그리고 민주노조운동에 있어서도 이번 대선은 유별나다. 이번 대선은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창립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노총 차원의 대선 방침이 없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집회에서 나부끼는 민주노총 깃발. 출처: 노동과세계


사라진 민주노총의 대선 방침

지난 5월 20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이하 중집)는 토의와 격론을 거듭한 끝에 '제21대 대선에 대한 민주노총 정치방침을 정하지 않는다'는 김 빠진 결론으로 막을 내렸다. 창립 이래 그동안의 민주노총 대선 방침은 항상 노동자 후보, 진보정당 후보에 대한 지지였다. 2012년 이전까지 민주노총은 국민승리21,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에 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고수했고, 진보정당의 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배타적 지지가 불가능해진 2012년 이후로도 매 선거마다 노동자 후보나 진보정당 후보를 지지하는 방침만은 명확히 해 왔다. 대표적으로 지난 선거에서 민주노총의 공식 지지 후보는 정의당 심상정, 노동당 이백윤, 진보당 김재연 후보(이상 기호 순)의 세 명이었다. 그러나 광장 투쟁으로 열어낸 2025년 21대 대선, 정작 민주노총 지지 후보는 없다.

 

'대선 무방침'이라는 초유의 결론은 양경수 현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집행부가 진보정당 후보만이 아닌 '진보정당과 연대연합을 실현한 후보'를 지지 대상에 포함시키자는 주장을 한 것으로부터 촉발되었다. 진보당과 친밀한 NL계열 의견그룹 '민주노동자전국회의(이하 전국회의)'가 주도하는 현 집행부는 작년 제22대 총선 당시에도 진보당이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하자 스스로 세운 방침을 뒤엎은 바 있다. '민주노총은 친자본 보수양당 지지를 위한 조직적 결정은 물론이고 전·현직 간부의 지위를 이용하여 친자본 보수양당을 지지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각주:1] 2023년 9월, 양경수 집행부가 제77차 임시대대를 통해 스스로 통과시킨 민주노총의 총선 방침이다. 그러나 '친자본 보수양당'의 위성정당에 참여한 진보당에 대한 지지 철회는 적지 않은 조합원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2020년 총선 당시 민주노총이 민주당 위성정당 참여를 결정했던 녹색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던 것과는 더욱 대조적이다.

좌측부터: 2024년 제80차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 당시 진보당 지지 철회 피켓팅을 진행 중인 조합원들 / 대의원들의 집행부에 대한 항의성 퇴장으로 유회되는 당시 대의원대회

 

분명한 원칙의 파괴 속에도 정파적 이해관계로 인해 형해화되어 온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진보당 김재연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단일화를 선언하며 완전한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재명 후보와 정책간담회를 갖고 비록 무산되었으나 정책협약을 추진하기도 했던 양경수 집행부는 '내란청산이라는 특수한 정세'임을 강조하며 진보당 후보와의 '연대연합을 실현'한 이재명 역시 민주노총 공식 지지후보에 포함시키자 주장했다. 이는 중집 일각의 격렬한 반발로 무산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명백한 진보정당 후보로서 기존 방침에 따르면 당연히 민주노총 지지후보여야만 할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 지지 안건 역시 집행부 및 특정 의견그룹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결국 현재와 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중집의 결정 과정과 그 이후, 많은 현장 활동가들과 산별노조 간부들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진보정당 지지라는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이 무너진 것에 분노를 표하고 있다. 박옥주 민주노총 충북본부장은 중집 토론 과정에서 "내란세력 청산을 가장 원하는 사람들이 민주노총이고 소수자, 약자들이다. 토론에서 김문수에게 사퇴하라고 한 사람이 권영국이다. 권영국 후보가 지지를 받으면 내란세력 청산된다. 내란세력 청산을 하자고 이재명에게 몰아주는 게, 노골적으로 친자본 우경화하는데, 어떻게 민주노총에서 이런 얘길 하는지 정말 납득할 수가 없다."며 울분을 토한 것으로 알려졌다.[각주:2] 중집 결정사항이 알려진 이후 민주노총 및 각급 산별단위 상근활동가 349명은 지도부를 규탄하고 권영국 후보 지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각주:3]

좌측부터: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웃으며 악수하는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 민주노총 전국 상근활동가 349명의 권영국 후보 지지 촉구 성명서

 

특히 유일한 진보정당 후보인 권영국 후보 지지를 전면화하고 있는 주요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들과 비교하면 민주노총 집행부의 '대선 무방침'은 더욱 충격적이다. 중집 전날이었던 5월 19일, 엄길용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장창열 금속노조 위원장 등 중집위원 16명은 성명을 발표해 "유일한 진보 대통령 후보 권영국을 지지한다"는 방침을 명확히 했다.[각주:4] 성명에는 공공운수노조·금속노조·대학노조·민주여성노조·보건의료노조·화섬식품노조 등 6개 산별노조 위원장들과 중앙임원, 지역본부장들이 동참했다. 민주노총 내 의견그룹 '노동자가 여는 평등의길(이하 평등의길)'은 "민주노총을 부끄럽게 하지 마라"는 성명으로 양경수 집행부를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다.[각주:5]

 

한편 기존의 독자적 노동자 정치세력화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보를 보이는 양경수 집행부의 전략은 민주노총 집행부 내에서도 내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3년 치러진 제11기 민주노총 임원선거에서 당선된 고미경 사무총장은 김재연 후보가 이재명 후보와의 단일화를 선언한 5월 9일 사무총장직 사임 의사를 밝힌 바 있다.[각주:6] 양경수 후보조로 당선된 고미경 전 사무총장은 양경수 위원장과 동일한 정파인 전국회의 소속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집행부 내부에서의 반발은 김재연-이재명 단일화 당시 광주·전남 및 진보당 농민당 측 인사들이 격렬하게 반발한 것과 유사한 맥락으로 추측할 수 있다. 진보당 지도부와 전국회의 집행부의 과도한 '민주대연합' 경도에 대한 반발이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좌측부터: '노동자가 여는 평등의길'의 성명 <민주노총을 부끄럽게 하지 마라> / 김재연 후보의 단일화와 사퇴에 반발하여 대표단 사퇴를 촉구하는 진보당 농민당원들의 성명.

 


내셔널 센터 민주노총, 날개에 끌려다니는 몸통

잘 알려진 대로 민주노총의 정식 명칭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다. 이름 그대로 전국의 민주적인 노동조합들의 최고 되는 모임인 만큼,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중앙조직(내셔널 센터, national center)인 민주노총은 해야 할 일이 많다. 내셔널 센터 민주노총은 한국 사회 노동운동 및 노동조합운동의 방향성을 설계하고, 사회 전 부문에 파급을 끼치는 정책 결정 과정에 개입하며, 직종과 산업을 넘나드는 노동 내부 이해관계와 총노동-총자본(혹은 국가와 시민사회 등) 간의 갈등을 조율해야 한다. 더 나아가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국제적 노동전선의 형성에도 기여해야 함은 물론이다.

 

노동운동의 대표 조직인 민주노총은 그러나 노동 바깥에서도 큰 역할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는 쪼그라든 한국 사회운동의 현실에서 오는 불가피한 측면이다. 대다수 시민사회와 풀뿌리 민중운동이 거대 양당에 포섭당한 현실 속에서, 일정한 대중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그나마 독자적으로 대중을 대표하고 이를 운동적으로 견인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실상 유일한 세력이 민주노총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민주노총은 노동운동의 내셔널 센터임은 물론이고, 한국 사회운동의 중추로서도 일정한 역할을 해야만 한다.

 

내셔널 센터 민주노총은 창립 당시부터 양쪽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양날개론'이라고 하는데, 한쪽은 '산업별 노동조합(산별노조)', 다른 한쪽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진보정당)'이다. 이 두 전술은 전략의 차원에서 유기적으로 조응하며 전자는 경제투쟁을, 후자는 정치투쟁을 담당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민주노총이 민주화 이후 첫 진보정당인 국민승리21-민주노동당의 건설에 깊이 관여하고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했던 이유이다. 당연하게도 날개는 몸통이 더 잘 활동하게 하려 존재한다. 몸통이 날개에 끌려간다면 그건 큰 문제이다. 하지만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날개는 줄곧 '몸통'인 민주노총을 곤경에 몰아넣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대회. 출처: 오마이뉴스

 

1997년 대선의 국민승리21을 계승하여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이 조직적으로 건설하고 조직적으로 지지했던 정당이었다. 흔히 '배타적 지지'라고 표현하는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지지 방침은, '노동자 대중(민주노총)이 만든 대중적 진보정당 민주노동당만이 우리 노동자 대중의 정당이다'라는 문장으로 간략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초창기 민주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날개(민주노동당)는 눈부셨다. 대선에서 100만 표에 가까운 지지를 얻고, 총선에서는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과 지역·부문을 넘나들며 사회 진보의 거대한 흐름을 견인했다.

 

너무 빠른 성공이 문제였을까. 민주노동당은 극심한 내홍 끝에 분열한다. 민주노동당 분당의 원인을 두고 여러 말이 있겠지만, 당 상층부에서 벌어진 당권파-비당권파, 혹은 자주파-평등파 사이의 정파 갈등을 빼놓긴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민주노동'당'의 갈등은 이 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한 노동 '대중'조직 민주노총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수십 년 노동운동을 해온 어떤 인사는 사석에서 이를 두고 "대중은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당만 앞서서 쪼개졌다"고 표현한 바 있다.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다시 통합된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각계에서 분출했다. 그 결과 2011년 통합진보당이 탄생한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역시 당권을 획득, 사수하려는 정파적 이해관계 속 부정경선, 위장전입 등의 문제가 불거져 분열한다. 특히 이는 2012년 총선 과정에서 폭발한다. '미워도 다시 한 번' 통합진보당을 지지했던 노동 대중은 다시 깊은 상처를 받고, 통합진보당은 이후 몰락의 길을 걷는다. 이후 부정경선 사태를 처리하고자 열렸던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는 당권파의 폭력으로 마비된다. 그들을 지지했던 대중을 배신하는 폭력의 회오리 뒤 불렸던 <민중의 노래>에서 '민중'은 과연 누구를 가리켰을까.


민주노총, 독자적 진보정당 지지를 당당히 선언하라

역사적으로 진보정치세력, 진보정당은 '민주대연합론'과 '진보정당을 통한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두 가지 논리 사이에서 진동해왔다. 특히 전자는 민족해방(NL) 계열의 전통적인 논리였다. '민족민주세력이 단결하여 외세와 독재에 맞서는 전선을 펼쳐야 한다'는 이 논리는 매 선거마다 민주당계 정당을 향한 '비판적 지지'(특히 13-15대 대선에서 민중후보 백기완이 아닌 김대중에 대한 지지) 및 선거연대(특히 19대 총선 민주당-통합진보당 선거연대)로 표출되곤 했는데, 최근 윤석열 정부를 거치고 독자적 진보정당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급기야 이것이 2024년 총선 진보당의 비례위성정당 참여와 2025년 김재연의 이재명 지지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좌측부터: 1987년 대선에 출마한 백기완 후보의 선거 포스터 / 2025년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대한민국 원탁회의'에서 손을 맞잡은 이재명과 김재연.

 

민주대연합론의 논리는 항상 '나중에'이다. 당장 내란세력에 맞서, 반민족세력에 맞서, 수구세력에, 적폐세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우선 민주당과 연합하자. '압도적 승리'로 내란·반민족·수구·적폐세력을 '청산'한 뒤에 유력 진보정치세력으로 성장하여 노동자, 농민, 빈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 들의 권리를 실현하자. 2025년 우리가 확인한 그 결과는 '이재명식 나중에'이다. 십수 년간 이야기해 온 차별금지법도, 비동의강간죄도, 증세와 복지도 결국 무한한 '나중'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

 

한국 사회를 우경화시키고 끊임없이 노동자·민중을 탄압해 온 극우 세력을 정치적으로 청산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둔다고 이들이 정말 청산되었는가? '압도적 승리'를 통해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윤석열 정부의 탄생에 기여한 것은 이들이 말하는 '내란청산', '적폐청산'의 진정성조차 의심스럽게 한다. 그래도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려고 노력한 정당은 민주당이고, 윤석열의 거부권으로 실패했지 않은가? 그러나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당시 국회에서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했던 때, 노란봉투법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누더기로 만든 정치세력이다. 그런 민주당에 매달려 민중의 삶을 개선할 수는 없다는 사람들이 지금 다시 모인 '독자적 진보정당'으로 힘겹게 대선을 치르고 있다.

 

민주노총이 독자적 진보정당을 지지하는지 혹은 지지하지 않는지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이익단체가 지지 후보를 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곧 노동운동의 내셔널 센터이자 한국 사회운동의 중추가 2025년 우리 사회를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볼 것인지, 아니면 노동 대중이 앞장서 그 이름조차 지워졌던 수많은 소수자와 약자를 정치의 영역에서 호명할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다. 민주당과 유관 세력들이 주장하는 전자는 아주 이해하기 쉽고, 분명한 소구력도 가지는 주장이다. 그러나 전자의 구도 속에 비정규직 노동자들, 소수자와 약자들의 절박한 외침은 다시 한 번 지워진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정책협약식에서 손을 맞잡은 양경수 위원장과 권영국 후보. 출처: 매일노동뉴스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정치방침을 결정한다고 하여 120만 모든 조합원이 권영국에게 투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물론 민주노조운동의 후퇴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직이 가지는 상징성에 비추어 본다면, 민주노총 정치방침의 역할은 결국 향후 한국 사회 전체를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에 대한 민중운동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단순히 노동자만의 일이 아니라 한국 사회 모든 소수자들의 정치세력화이며, 약자들의 정치세력화이기도 한 이유다. 그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단순히 보수양당 중 '상대적으로 왼쪽에 있는' 당을 지지함으로써 이뤄낼 수 있는 것이었다면 지난 30년 간 진보정당운동에 수많은 사람들이 피, 땀, 눈물을 투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민주노총은 정치세력화라는 날개에 끌려다니며 큰 상처를 입어 왔다. 노동 대중, 민중을 등한시하고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대중정당을 휘둘러 왔던 세력이 바로 그 상처의 가해자이다. 민주노총 집행부의 무책임함에도 불구하고, 산별노조와 노동계 의견그룹들의 독자적 진보정당과 권영국 후보 지지는 그동안 날개에 끌려다녔던 몸통을 구출하겠다는 선언이다.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 당장, 노동자·민중과 한국 사회에서 억압받는 모든 존재의 편에 민주노총이 당당히 서겠다는 약속이다. 진정 민주노총이 "정치의 선봉에서 민중의 등불이 되어" 나서겠다면, 민주노총이 택해야만 하는 유일한 선택지는 '독자적 진보정당 지지 정치방침'일 것이다.


김경일

서울 동대문구 주민이자 민주노조 조합원. 책임지는 정치와 운동을 바란다.


각주

  1. 민주노총, [보도자료] 민주노총 제77차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정치방침과 총선방침 수립 https://nodong.org/statement/7837042 [본문으로]
  2. 권수정 민주노총 부위원장 페이스북 게시글 https://www.facebook.com/share/p/19Bg4YDJsv/ [본문으로]
  3. 매일노동뉴스, 민주노총 활동가 349명 "집행부, 권영국 지지하라"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138 [본문으로]
  4. 매일노동뉴스, 민주노총 중집위원 16명 "권영국 지지"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017 [본문으로]
  5. 평등의길, 민주노총을 부끄럽게 하지 마라 - 권영국 후보 지지를 당장 결정하여야 한다 https://www.facebook.com/share/p/1GVhC8ZUdJ/ [본문으로]
  6. 연합뉴스, 양대노총 대선 지지 놓고 몸살…중앙·지역 다르고 간부 사임도 https://www.yna.co.kr/view/AKR20250514111600530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