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파 정당'으로 과녁을 정조준하자
이재명 정부의 출범으로부터 100일이 지났다. 연일 상한가인 코스피 지수를 언급하며 '진짜 시장주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려는 정부와, 그들이 '충분히 시장주의적이지 않다'고 비판하는 강성 신자유주의 보수의 세상에 균열을 낼 '사회파 정당'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운 진보정당, '사회파 정당'을 만들어냄으로써 우리의 과녁을 다시 정조준하자 외치는 정재환 전환 집행위원장의 글을 게재한다.
'이제부터, 진짜 시장주의 대한민국'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코스피 지수는 단연 화제였다. 대통령이 직접 '계엄 이후 사상 최고의 코스피 지수'를 언급하고 '(지금은) 쉬고 있는 큰 손 개미'라 스스로를 소개하는 장면은 그날 기자회견의 하이라이트였다. 출범 100일째를 맞이한 정부는 금융시장 정책에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의회 내 수구보수 세력의 지리멸렬을 놓치지 않고 상법 개정안, 노동 관련 법안을 쾌도난마식으로 밀어붙였음에도 지지율과 경제지표가 썩 나쁘지 않았던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재명 대통령은 꽤 나쁘지 않은 시장주의 대통령이 될 것 같다. 자본의 흐름에 친밀히, 그리고 교묘히 반응하는 수완가적 면모는 금투세와 양도세 요건 강화에 대한 비판을 의식하여 속도를 조절하려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그렇다고 현 정부를 이전 다른 정부들과 도매금으로 묶는 것은 정확한 시선이 아니다. 재벌 중심의 자본주의에서 탈피하여 제도로서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수구 정부들이 해 온 자유방임식 시장정책들 보단 정부 개입을 훨씬 더 많이 활용하려는 것도, 그것이 금융시장의 수익률과 연결이 되고 있다는 점도 현 정부가 진단하고 있는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와 새로운 기획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러니 이재명 정부의 시장주의 노선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민주화'와 궤를 같이하면서도 다르다. 이재명은 '민주화'의 파트너를 금융시장 행위자들로 삼으며 '금융소득'을 새 시대의 엔진으로 선언하고 있다. 이제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는 1400만 개미투자자들과 시장 민주화를 이루려 한다. 이재명의 금융시장 부양정책은 재태크 수단으로 부동산을 더 선호하는 한국적 경향과도 무관치 않다. 민주당 정권이 어김없이 마주했던, 그리고 결국 정권의 무덤이 되었던 부동산 문제는 이재명 정부에게도 여전히 예견된 과제다. 부동산 시장에 고여 있는 투자자본을 주식시장으로 흐르게 할 수 있다면 또 어떨지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계엄 이후 등장한 제도정치 주류가 새로운 시장사회의 꿈을 꾸고 있다는 점이다.
지리멸렬한 보수, 새로운 강성 보수
반면 민주당에 빼앗긴 정부를 수복했던 보수 세력은 계엄령이란 시대착오 속에 침식되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의 '독재'와 동의어였던 그들은 의외로 87년 이후에도 유권자들의 선택지로 안착했다. 그들조차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주조해 낸 민주주의의 틀을 쉽게 벗어나진 못할 것이라는 신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12월 3일 이전까지의 역사지만.
이제 국민의힘은 자당의 대통령이 벌인 내·외환의 후과를 오롯이 소화해야 한다. 쉽지는 않겠다. 계엄을 어떻게 규정할지란 고상한 지식인들의 담론 토론이 아니라 누군가가 책임을 지고 사라져야 할 권력 구도의 변화니까 말이다. 지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보여진 강경파들의 실력 행사는 이런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의 룰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당의 지도부들에게, 강경파는 이 당의 고삐를 누가 쥐고 있는지 정확히 드러냈다. 계엄의 기획자들과 함께하며 민주주의를 수용하지 않는 강경파들이 존재감을 유지하는 한, 민주국가의 기초철학 A-Z조차도 국민의힘에게는 내홍을 불러오는 논쟁의 빌미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면 보수는 궤멸할까? 국민의힘이 '계엄의 강'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 사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또 다른 세력은 개혁신당, 더 정확히는 이준석이다. 이준석은 지난 대선을 통해 새로운 보수 혁신의 표지로서 입지를 굳혔다. 대선 기간 동안 이준석은 보수의 담론이 모두 붕괴한 빈틈을 더 선명한 강성 신자유주의 레토릭으로 메꾸며 10%에 가까운 호응을 확인했다. 공공성을 '비효율'로, 사회정책을 '담합'으로 규정하는 강성 신자유주의의 담론은 이준석을 그릇 삼아 한국 사회 신세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고 있다.
전광훈, 전한길로 표상되며 계엄까지 옹호하는 한국적 극우에, 민주주의 틀 안에서 시장 자유주의를 극한으로 밀고 나갈 이준석을 위시한 강성 신자유주의자까지. 보수는 궤멸할까? 흡사 춘추전국시대에 가까워진 보수파 내부는 이론이든, 행동력이든 더욱 강성화된 보수 분파들의 각축전이 될지언정 망하진 않을 것 같다. 계엄과 내란이 끝나고 민주정은 복원되고 있다. 복원된 민주정의 중심축은 연성 시장주의자와 강성 시장주의자의 경쟁으로 옮겨 가고 있다. 주식시장을 부양하려 안간힘을 쓰는 정권과, 그런 정권을 향해 암호화폐는 왜 규제하냐고 따져 묻는 신흥 보수세력의 질문을 그저 듣고 있어야 하는 사회로 우리는 열심히 나아가고 있다.
사라지는 '어떤 질문'들
지난 24년 여름, 간병살인 청년 '강도영'(가명)이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아버지를 살해한 죄, 존속살해죄로 4년형을 선고받은 그가 만기를 9개월 남겨둔 시점이었다. 2021년 5월 구속되었으니 만 3년을 꼬박 채우고 더 지난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아버지와 단 둘이 생활하던 그는 아버지가 쓰러지며 갑작스레 간병의 온전한 책임을 맡았고 온 힘을 다해 버텼지만 결국 아버지는 죽었고 아들은 죄인이 됐다. 사랑하는 이의 짐이 된 아버지가 식음을 전폐하고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둔 일은 결국 강도영을 가두는 일이 됐다.
조기대선이 한창이던 지난 5월, 한 60대 여성이 전북의 아파트 단지 내에서 투신했다. 주머니에는 이런 쪽지가 있었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딸이 집에 있어요." 그녀의 집에는 이미 숨을 끊은 지 오래 된 딸의 사체와 함께 자신을 간병하느라 고생하는 어머니에게 미안함을 담은 유서가 남겨져 있었다. 경찰은 그녀가 죽은 시점을 3월로 추정했다. 3월과 5월, 딸의 죽음을 목격한 어머니는 두 달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수급 자격의 일방적인 중단, 지병에 더해진 사고로 쌓여간 딸의 병원비 영수증으로 짐작만 해 볼 뿐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삶을 끊어내는 일들에는 늘 복지와 돌봄, 그 책임을 오롯이 개인에게 전가하는 사회 질서가 맴돌고 있다. 2
시장을 숭배하는 이들의 경쟁은 이들의 삶을 낫게 해줄 수 있을까? 그 답을 추측하려면 이런 질문들을 고민해 봐야 할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코스피 3천은 무엇을 의미할까? 공정이란 무슨 의미일까? 더 많은 시장이 이들을 지켜 줄 수 있을까? 더 많은 경쟁이 이들의 삶을 다시 도전할 수 있게 할까? 약자를 지키는 제도와 정책들이 불공정한 담합이라면, 이들은 단죄받아야 할 죄인인가? 무엇보다 이들의 비극을 보는 비슷한 세대들에게 이 일들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요즘의 세태라면 아마 이런 질문들을 자아내기에 충분할 것 같다. 노후를 준비하지 않으면 저렇게 되는 걸까? 삶이 실패하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걸까? 실패한 이들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건가? 낙오되면 다시 설 수 없는 걸까?
계엄이 끝나고 민주정이 복원되고 있다. 하지만 복원되는 민주정에 이런 질문들은 보이지 않는다. 광장의 혁명으로 다시금 세운 민주정은 여전히 '사회'적 해법을 요하는 숱한 과제들을 마주하고 있지만, 사회와 공공성 기획을 진지하게 논하는 정치세력은 사라졌다. 시장의 언어가 많아지고 시장적 사고가 정책을 강하게 지배하는 경향은 제도정치의 세력구도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 최근 한 주간지에 균질한 복지를 위해 기본주식을 청소년과 군인들에게 주어 기본배당을 해주는 상상은 어떻냐는 칼럼이 등장했다. 사회정책의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주장이 진보랍시고 버젓이 등장하는 것이 과연 아무 맥락 없는 해프닝일까? 3
과녁을 빗나간 질문만 던지는 것, 진보라 할 수 있는가
세계사적으로도, 그리고 또한 한국에서도 한 사회의 문제에 대해 '사회적 해법과 기획'을 고민하는 세력은 늘 진보정치세력의 역할이었다. 이들은 일종의 '사회파'를 형성하며 사회적 격차를 줄이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정부와 사회질서에 심는 효과적인 기획을 고민하고 제안해 왔다. 그 과정에서 민주정의 대중들을 설득했고, 신임을 받았으며 때론 질책과 좌절 또한 경험했다. 그럼에도 가장 유력한 제3세력의 자리는 언제나 진보정당에게 돌아왔다. 늘 사회의 역할을 묻는 진보정치가, 사회파가 국가공동체에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자리가 이젠 닫히고 있다. 무너진 진보정치의 폐허에 남은 독자적 진보정치는 갈래로 찢어진 쪽배를 간신히 붙잡고 있고, 생존을 찾아 떠난 진보정치 일각은 나룻배를 타고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제 발로 합류했다. 똑바로 직시하자. 진보정치는 소멸하고 있다. 형태는 유지하지만 정신이 잡아먹히든, 정신은 유지하지만 형태는 소멸하든 - 결과적으로는 진보정치라는 한 테제가 소멸하는 시절 위에 우리는 서 있다. 진보정치만 소멸하면 차라리 다행이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이 사회파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 시대가 찾아오고 있는 것, 그게 우리가 마주한 시절의 본질이다. 양당에 지쳐 버린 사람들, 양당이 자신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이들이 이준석과 같은 강성 신자유주의를 소위 '힙'하게 받아들이고, 희망을 걸고 있다.
독자적 진보정당들, 민주당의 하위파트너가 된 운동을 거부하고 혁신을 외치는 노동·사회운동단체들이 함께 모여 사회대전환 연대회의를 통해 대선을 치뤘다. 결과적으로 받아든 성적표는 미미했지만, 결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존재감과 주목을 확인했다. 사실 오래된 한국 진보정당의 역사만큼이나 겹겹이 층을 쌓았던 갈등과 분화는 좀처럼 좁혀지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기 위해, 망가진 민주정을 다시 복원하는 과정에서 사회파의 질문을 던지겠다는 그 일념을 위해 과정을 딛고 하나로 모였다. 그 사실이 누구에게 희망이었을지는 그 시기에 과분하게 얻었던 관심과 지지, 그로 말미암은 우리의 존재감이 이미 드러내 주고 있다. 오랜만에 진보정치가 제대로 과녁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하는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사회파'의 질문이 제도정치 속에서 정당히 인정받기를 염원하는 이들이었다.
한편 냉정한 한계도 확인했다. 분화된 진보정당의 각개약진으로는, 이제 진보정당의 지지층에게조차 관성이 되어 버린 '다른 세상'에 대한 냉소와 회의를 넘어설 수 없다. 한때 새로운 사회를 꿈꾸던 모든 이들이 그저 '합리적 시장주의자'가 '막무가내 시장주의자'만이라도 제압해 주길 바라는 미래를 원한다면,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 점점 더 쪼그라들고 있는 진보정당의 영역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괜찮다. "새로운 사회로 나가자"는 외침이 더는 설 자리가 없어도 괜찮다면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 똑같아도 된다. 그러나 이윤 중심의 사회에 내던질 '짱돌'이 필요한 이들에게 우리가 그 단단한 짱돌이 되고 싶다면, 이제는 분화되어 온 진보정당의 역사와도 선을 그을 수 있는 새로운 진보정당이 필요하다.
다시 한번 그 기대를 온전히 받아안자. 이번에는 분화와 갈등으로 너덜거리는 진보정치를 기워붙이는 것 대신 '사회파'를 담당할 새 정당으로 말이다. 민주노동당, 혹은 국민승리21 혹은 그보다 더 이전에 뿌리를 둔 진보정당이 없어지는 게 무슨 대수일까. 그 누구도 사회적 해법을 가진 정치세력에게 기대를 걸지 않는다면 말이다. '사회파'가 없어지는, 그 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한국 사회를 그대로 방치해 두어선 안 된다. 쪽배를 타며 "그래도 우린 지조를 지켰다"는 정신승리로 자연사하고 있는 진보정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강도영에게, 전북의 모녀에게 닿지도 않는 정치를 진보라 할 수는 없다. 과녁 앞에 서지도 못한 질문들로 스스로를 위안삼지 말고, 시장적 해법만을 두고 경쟁하는 그들만의 리그에 우리의 질문을 정확히 꽂을 사회파 정당을 만들자.
※ 정의당 권영국 대표는 지난 8월 28일 노회찬재단 주최로 열린 '노회찬비전포럼'에서 "평등·생태·분배의 가치를 대변할 '새로운 진보정당'의 창당에 나설 것임을 천명하며, 그 전략으로 양당 정치의 한계를 넘어선 '사회파' 정치세력의 조직화를 제시한 바 있다. (편집부) 4
정재환
전환 집행위원장, 정의당 청년위원장.
세상 모든 일에 넓고 얕은 관심을 가지며 살고 있다.
각주
- 경향신문, 22세 청년의 ‘간병살인’ 비극…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https://www.khan.co.kr/article/202111091758001 [본문으로]
- 동아일보, “지난달 떠난 딸이 집에…” 투신한 모친의 마지막 쪽지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50519/131634395/2 [본문으로]
- 경향신문, 주가 부양과 정책의 난제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8252137015 [본문으로]
- 정의당, “평등·생태·분배 가치 대변할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창당 나설 것” https://www.justice21.org/landing/president2022/board_view.php?num=165606&page=1&c1=%EB%B3%B4%EB%8F%84%EC%9E%90%EB%A3%8C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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