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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진보정치

지금 진보는 '사회'가 무엇인지 답해야 한다

by Domoleft 2025. 7. 1.

[정치] 지금 진보는 '사회'가 무엇인지 답해야 한다

조기대선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대선은 한국 사회에 무엇을 남겼으며,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주류 정치세력들의 시장주의 경쟁 속에 진보가 다시 '사회'가 무엇이냐는 근본적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주장하는 전환 집행위원장 정재환의 글을 게재한다.


6월 4일 취임선서를 하는 이재명 대통령. 출처: 대한민국 정부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이재명 대통령의 선출로 마무리된 지 어언 한 달이 가까이 지나가는 중이다. 새로운 '민주 정부'는 아직까지는 순항 중인 것으로 보인다. 연일 발표되는 장관 인선 및 대통령실 인선은 적잖은 논란과 이어지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를 한참 웃도는 세간의 기대감을 받고 있다. 인선 자체의 호불호에 앞서, 윤석열 정부가 무너뜨린 제도정치의 근간과 질서의 복원이 새 정부를 통해 이루어지길 바라는 기대감은 언론에서도 여론에서도 확연해 보인다. 이재명과 민주당 정부의 정국 주도권이 당분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보이는 이유다.

 

반면 이번 대선에서 진보정치는 0.98%라는 다소 뒷맛이 쓴 성적표를 받아안았다. 당초의 기대감이 매우 낮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0.98%의 득표가 진보정당 후보를 통틀어 역대 최저의 성적표라는 점을 외면할 수는 없다. 특히 전체 지역에서 득표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데, 이 중 전통적인 계급투표 지역으로서 진보정당의 지지기반이 되어 온 창원, 울산 등 경남 공단 밀집지역에서의 득표 또한 평균 득표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은 그리 긍정적인 신호로 보이지 않는다.

 

정치운동은 매번 선거를 통해 대중들의 평가를 받는다. 선거는 정당의 공직자를 배출하는 관문이자 정당이 지닌 강령과 정책으로 국가를 운영할 자격을 평가받는 일종의 결산이다. 득표라는 수치화된 평가와 이를 통해 얻은 첨단의 감각으로 다음 이정표를 설계하는 일은 정당운동의 특징이자 특권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 민주당의 연합전선에 합류하지 않은 독자적 진보정치 세력, 혁신 사회운동세력이 합동으로 치룬 대선의 0.98%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고 엄격하면서도 좌표를 놓치지 않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극우 정치와 이준석

6월 3일 개혁신당 개표상황실에서 낙선인사 기자회견을 진행 중인 이준석 후보. 출처: 한겨레

 

진보정치 세력이 받은 성적표와 가장 상징적으로 대조되는 후보는 단언컨대 이준석 후보다. '제3지대' 후보를 자칭하며 보수 세력의 새로운 혁신 아이콘으로 등장한 이준석 후보는 8.34%를 득표하며 향후 보수 세력 재편에 있어서의 발언권을 확보했다. 특히 이번 대선을 통해 2030세대의 지지를 확인한 이준석 후보는 향후 제도정치의 '세대교체 기수'라는 평가도 함께 얻었다. 개혁신당은 탄핵에 찬성하며 국민의힘과 거리를 두고, 더욱 과감한 시장주의 정책과 능력주의 담론을 기반 삼아 민주당을 공격하면서 거대 양당과의 분별정립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이준석 후보와 개혁신당이 명실상부한 제3의 정치세력의 자리를 얻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곤혹스럽다.

 

그러나 전망은 더욱 곤혹스럽다. 이준석과 개혁신당은 이재명과 민주당에 대해 철저히 시장주의적 비판으로 일관해 왔다. 이준석은 후보 시절 이재명 대통령의 'K-엔비디아 구상'에 대해 '공산주의'라 비판했고, 이른바 '호텔 경제학'에 대해서는 일종의 '사이비 경제학'이라 칭하며 반시장주의자로 규정하길 서슴치 않았다. 또한 비판은 아주 예리하고 정밀하게 이루어졌다. 이준석은 민주당이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은 상속세와 금투세 입장에 대해서는 전혀 쟁점화하지 않았다. 반면 국회에서 양당의 합의로 통과된 연금 개혁안에 대해서는 날선 비판과 함께 국가연금의 제도의 근본적인 정당성을 해체하는 수준의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니 이재명과 민주당의 정책을 혹세무민하는 '사기'로 규정하고 그들을 '사기꾼'으로 선언하는 이준석의 레토릭은 단순한 반정립이 아니다. 보수세력의 새로운 사회 기획, 즉 신자유주의적 사회 기획의 정수가 담긴 비판이다. 21대 대선에서 떠오른 제3지대 정치세력과 그 정치지도자가 강성 신자유주의자라는 사실은 8.34%의 득표에 대해 단순한 박탈감 이상의 경각심을 불러온다.

TV토론회에서 설전을 벌이는 이재명과 이준석. 출처: 연합뉴스

 

경제에 대한 국가의 행위 전반을 부정하는 레토릭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치인의 기술이다. 신자유주의 정치 레토릭은 국가의 산업 육성을 말하지만 동시에 국가의 역할을 규제 해제에 국한하고 기업과 민간의 자율성을 극한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동시에 국가력을 통해 강제하고 있는 재분배, 사회 정책은 민간의 효율적 혁신, 능력주의를 왜곡한다는 혐의를 제기한다.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해법을 산출하고 작동시키는 정치를 멈추고 해체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정치가 기획하는 국가다. 그러니 신자유주의 정치는 늘 '사회'에 대한 신뢰를 적대한다. 대표적인 강성 신자유주의자 정치인인 마거릿 대처 총리의 "더 이상 사회는 없다"는 정직한 선언처럼, 신자유주의자에게 사회란 허구에 불과하고 '불공정한 담합'의 또 다른 언어일 뿐이다.

 

대처에게 "사회란 없다"가 있다면, 이준석에게는 약자 혐오가 있다. 이준석의 전장연 시위 비판,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정책 비판, 여성 정책 비판, 노동조합 적대는 모두 "그들이 정말 약자인가"를 묻는 것으로 출발해 그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를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복지제도를 상호성이 강조된 '사회연대'가 아닌 '사회적 배려'로 협소히 규정할 때 복지는 시혜적인 '적선'의 다른 말이 되며 보편적 이익의 증진과 대립되는, 특정한 계층에 제공하는 특혜의 일종으로 전락한다. '분배할 것조차 부족한 저성장 시대에 약자를 향한 적선은 불필요하고 불공정하다'는 감각을 불러오는 갈등 기획을 통해 매우 교묘히 사회연대를 공격하는 것이 이준석식 혐오 정치의 골간이자, 이준석식 갈라치기의 문제점이다.

 

이렇게 완성된 '약자 특혜'의 서사가 박탈감으로, 약자 혐오로, 그리고 이를 지탱하는 기성정치에 대한 환멸로 연결되는 동안 사회는 서서히 해체되고 있다. 특히 이준석은 계급과 세대, 성별을 종횡무진하며 균열을 기획하는 것에 매우 능한 정치인이고, 신자유주의적 기획을 뒷받침할 유권자 집단을 매우 성공적으로 재정렬·재조직화하고 있다. 8.34%로 일정하게 대중적 승인까지 얻은 이준석과 개혁신당이 향후의 정치 국면에서 신자유주의적 주장을 한층 강화할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좌측부터: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공격하는 이준석 / 노인 대중교통 무임승차 폐지를 주장하는 이준석. 출처: 이준석 페이스북 / MBC 뉴스


평등과 사회연대는 철 지난 진보의 아집인가?

그러나 사회적 해법, 특히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해법은 정말로 그 한계를 맞이한 것일까? 개혁신당의 선전을, 양당 체제에 신물이 난 일각의 대중들이 그 해법으로서 사회연대의 종언을 지지하는 것으로 곧장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이 물음은 쉽게 답할 수 없다. 대선에 대한 평가보다도 훨씬 많은 해석과 추론을 필요로 하는 일이며 현재로서는 다분히 주관적 평가의 영역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달리 해석할 여지는 존재한다. 2023년 노회찬재단에서 발간한 『불평등사회 국민인식조사』는 여론조사 분석을 통해 한국 사회의 소득불평등·기회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은 꾸준히 증대되어 왔고 다수의 사람들이 빈부격차의 축소, 사회복지가 발달한 국가를 여전히 선호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각주:1] 반면 특이하게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역할에 대해서는 다소 모순된 응답 경향이 함께 확인되었다. 평등주의적 경향을 가진 응답자들이 앞선 응답과 달리 작은 정부의 역할과 격차가 심화된 국가 모델을 선호한 것이다. 이는 비평등주의적 경향을 가진 응답자들은 정부의 역할과 국가 모델에 있어서도 일관된 응답을 한 것과는 대조되는 결과다. 평등 선호층 사이에 선호와 해법이 일치하지 않는 경향이 존재하며 과거 응답과 비교했을 때 최근에 더욱 두드러지는 경향이다.

'한국의 소득 차이는 너무 크다'는 질문에 대한 노회찬재단의 조사 결과. 출처: 노회찬재단 『불평등사회 국민인식조사』

 

결국 한국 정치의 우경화가 유권자층의 우경화에 기인했다는 해석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위 보고서의 결론은 오히려 역전된 인과관계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평등주의적 인식의 약화가 사회연대에 대한 공격과 강성 신자유주의 정치인의 등장을 불러온 것이 아니라, 사회 격차를 완화할 해법으로 사회연대를 제시하는 정치세력이 부재한 사이 강성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정치적 해법을 간명하게 제시하고 정치적 효능감을 제공하면서 부상했다는 것이다.

 

추론 속에서도 명백하게 확인되는 것은 한국 사회 대다수가 여전히 불평등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개인을 넘어선 해법이 필요하다고 여긴다는 사실이다. 그 해법이 무엇인지가 여전히 쟁점이라면 사회적 해법, 즉 사회연대에 기반을 둔 평등주의적 국가 기획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는 오히려 강성 우파가 성장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민주주의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에게까지 민주주의를 확대하여 사회연대에 대한 신뢰를 복원하고 사회가 경제적 격차를 과감히 조정하는 해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동시에 이는 자연스럽게 이재명 정부·민주당과 진보정당을 분별정립하는 전략이 되기도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밝힌 차별금지법에 대한 유보적 태도와 최근 김민석 총리 지명 과정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발언으로 논란이 된 일명 '인류 지속불가론'[각주:2]은 현 정부와 민주당의 시민권·민주주의 확장이 어디에서 멈추는지 명확히 보여 준다. 민주당과 독자적 진보정당의 경쟁은 그 한계점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등 형식적·실질적 시민권으로부터 배제된 이들을 호명하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그로부터 출발하여 시장을 통제하고 비시장적 해법을 통해 평등을 구현할 사회연대의 복원으로 연결되는 진보정당만의 국가 기획을 다시금 명료하게 대중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2023년 사학법인미션네트워크 컨퍼런스에 참여하여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하고 있는 김민석 총리 후보자. 출처: 크리스천투데이 유튜브


'시장 vs 더 시장'의 경쟁 속에서 '사회연대'를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한국 정치에서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의 우위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선언한 것처럼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중도보수 정권'으로 자신의 성격을 명료히 규정하고 있다. 최근 보여주고 있는 이재명식 실용주의, '먹사니즘'은 견고한 지지를 등에 업고 경기 불황과 시장주의적 해법을 손쉽게 연결시키고 있다. 특히 최근 정부는 추경을 통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예산을 편성했으며 금융당국 역시 지속적으로 추가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데[각주:3], 이는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공급 대책을 비롯한 대부분의 경기 부양 정책이 개발 사업에 방점을 둘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견제해야 할 국회는 이보다도 훨씬 보수화되어 있다. 22대 국회에는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을 중심으로 하여 이재명 정부를 보다 오른쪽에서 신자유주의적 기획으로 비판하려는 야당만이 남았다. 민주당의 위성정당 기획에 참여했던 야당들은 여전히 견제보다 협력, 협조를 통한 존재론적 유지에 주안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나날이 심화되는 자산 불평등과 저성장·경기침체의 압박 속에 실패하고 있는 시장 분배를 문제삼는 정치는 국회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재명 정부의 시장주의적 부양과 시혜적 분배, 이를 위한 국가의 규제완화 및 공적 자금 투여를 비판할 진보적 목소리는 - 적어도 제도정치의 영역에서는 -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중도보수 정부, 그리고 대선을 경유하며 훨씬 보수화된 야당들 속에서 제도정치는 이미 누가 더 반평등주의-시장·기업 중심 경제정책에 유능한지를 다투는 경쟁으로 수렴될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 사회가 무엇인지, 사회연대에 근거한 복지국가가 어떻게 모두를 이롭게 하는지, 자본에 의해 기획되는 경제가 아니라 사회에 의해 기획되는 경제가 왜 필요하며 이를 위해 왜 민주주의가 확장되어야 하는지 말하는 정치세력의 등장은 당분간 요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요구가 아직 존재한다면, 그 공간이 영원히 빈 공간으로 남지도 않을 것이다.

 

그 공간이 더욱 협소해지기 전에 독자적 진보정치 세력이 그 역할을 자임하자. 평등한 사회를 위한 국가 기획이 여전히 가능하며, 시장적 대안만을 강조하는 세력과 단호히 싸우자고 선언하자. 양당에 실망하는 이들에게 다시 한 번 평등과 사회연대를 포기하지 말자고 설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21대 대선의 끝을 새로운 진보정치의 시작으로 남길 수 있을 것이다.

6월 2일 보신각에서 열린 권영국 후보의 피날레 유세에 모인 지지자와 당원들. 출처: 오마이뉴스


정재환

전환 집행위원장.

세상 모든 일에 넓고 얕은 관심을 가지며 살고 있다.


각주

  1. 매일노동뉴스, 국민 10명 중 9명 “사회 소득 격차 너무 심각”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4225  [본문으로]
  2. 도모, '나중에'와 '다 했죠?'가 낳은 인류 지속가능론: 김민석 총리 후보자의 차별금지법 망언에 부쳐 http://www.domoleft.net/entry/김민석-총리-후보자의-차별금지법-망언에-부쳐 [본문으로]
  3. 뉴데일리, 부동산 PF 연체율 4.5% 육박 … 금융당국, 5.4조원 추가 투입 https://biz.newdaily.co.kr/site/data/html/2025/07/01/2025070100090.html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