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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진보정치

왜 권영국인가? - ④ 노동당 성소수자 활동가가 권영국을 지지하는 이유

by Domoleft 2025. 5. 31.

[정치] 왜 권영국인가? - ④ 노동당 성소수자 활동가가 권영국을 지지하는 이유

<도모>는 제21대 대선 선거운동 기간 동안 연속기고 <왜 권영국인가?>를 연재합니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왜 권영국을, 진보정치를 지지하는지 각자의 언어로 풀어낸 글들을 모아 보고자 합니다. 세 번째 글로 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사무국장이자 권영국 선본에 공동성소수자선대위원장으로 함께하고 있는 진보정당 성소수자 활동가 사루 님의 이야기를 게재합니다. (편집부)


우리는 암흑 속으로 돌진한다

"제 한 몸 살리겠다고 불량배의 사타구니 밑을 기는 것은 일시의 모면책일 뿐이다. 잔도를 불사르고 파촉에 깃드는 것만이 장래의 출사를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다. 독립적 정치세력임을 흔들림 없이 천명하고, 작은 영지나마 소중히 가꾸어 나가는 것이 현단계 진보정당운동의 과제다."[각주:1]

 

스무 살 새내기 때 시작한 진보정당 당원 생활이 어느덧 햇수로 7년째다. 선관위도 존재를 모르는 당원 수 삼백 명짜리 작은 당에 입당해, 노동당 충남도당 사무처장을 거쳐 지금은 노동당 선전홍보국장이 되어 1년째 일하고 있다.

 

21대 국회 후반기 들어 심각해진 정의당의 위기. 정의당 당원들은, 그리고 진보정당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뭇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진보정치의 위기를 이야기했다. 정의당의 당 내 격랑은 지속적으로 당 외부로 표출되다 결국 양지를 찾아 진보정치를 포기한 이들에 의해 당이 사분오열되는 결말을 맞았고, 남은 이들을 추스러 치른 22대 총선에서 정의당은 결국 원외정당이 되었다.

22대 총선 출구조사 결과를 침통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녹색정의당 당직자들.

 

맞다. 정의당도 진보정치도 위기다. 그러나 살면서 한 번도 정의당 당적도 '우리 당 국회의원'도 가져본 적 없는 내 기억 속 진보정치는 언제나 위기였다. 돌아보면 7년 간의 진보정당 생활은 패배와 실패의 연속이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시작한 활동인데, 점점 나빠지는 세상 속에서 노동조합도 사회운동도 심지어는 당 자체도 침체의 수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사실 패배와 실패라는 말도 사치일지 모른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정의당 왼쪽의 제 진보정당들은 시민들에게 진지한 선택지로조차 고려되지 못했다. 본투표 직전 녹색정의당의 읍소를 기억한다. "진보정당 20년의 역사 이대로 끝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진보정당이 사라지면 이제 약자와 소수자의 정치는 누가 합니까?" 나는 실존의 위기에 처했음에도 진보정치와 스스로를 동치할 수 있는 정의당의 처지가 부러웠다. 정의당 당원들이 진보정치의 패배와 실패에 가슴앓이할 때, 나는 패배할 자격도 실패할 도전조차도 없는 나머지 진보정치의 처지가 서글퍼 펑펑 울었다. 정의당도, 노동당도, 그리고 나 자신도 암흑 속으로 돌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충남 프라이드, 중년 남성 노동자와 청년 성소수자

그렇다면 나는 왜 진보정당 활동을 계속 하는 걸까. 충남도당 사무처장을 하던 시절, 지역의 가장 큰 현안은 충남도민·학생인권조례의 존폐였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걸고 윤석열이 당선됐고, 대선 직후 열린 지방선거에서는 당시 여당이던 국민의힘이 압승했다. 지역의 풀뿌리 극우세력들은 '동성애', '학생 임신', '이슬람'을 이야기하며 지역 정계에 인권조례 폐지를 압박했고, 국민의힘 시도의원들은 이를 '공정', '종교의 자유', '교권' 등 '세련된' 정치의 언어로 번역하여 지역의 공론장에 퍼다 날랐다. 대선 전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를 외치며 서울과 충남에서 단식농성을 하던 활동가들의 목소리는 잊혀졌고, 윤석열식 혐오정치가 용산뿐 아니라 지방 방방곡곡을 장악했다.

 

도민과 학생인권의 위기상황에서 나는 진보정치의 필요성과 역할을 보았다. 노동당 충남도당은 인권조례 폐지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청소년과 성소수자 당원들이, 더 나아가 성소수자 청소년 시민 당사자들이 인권조례 폐지 과정에서 받을 상처와 폐지 이후의 후과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다시 도의회를 잡으면 인권조례를 다시 만들 것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에 맞서, "지금 차별받는 주체들을 모아내지 않으면 그렇게 다시 생긴 조례도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고 함께 반박했다.

충남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피켓팅을 진행 중인 노동당 충남도당 당원들.

 

노동당은 - 특히 공단을 끼고 있는 충남의 경우에는 더더욱 - 중년 남성 노동자들의 당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사실 그것이 크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 중년 남성'인 현장 동지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원색적 혐오가 담긴 현수막을 보고 같이 분노했고, 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한다는 피켓을 기꺼이 들었으며, 인권조례 폐지를 주민발의한 목사들과 공개토론을 하자는 기획을 같이 고민했다. 현장의 동지들은 반차별 투쟁의 '외부 연대자'가 아닌 또 하나의 주체였다.


배제된 이들의 정당이라는 가능성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대체로 이성 배우자가 있는 – 그리고 본인의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대해 살면서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을 - 충남의 중년 남성 노동자들이 성소수자가 받는 차별이 어떤 형태일지 머리로는 알아도 실제로 느낄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차별받고 혐오당하는 사람만큼이나, 차별과 혐오의 형태 또한 다양하니까. 서로 연결되지 않는 한, 서로 다른 차별의 경험들은 그저 개개인의 산발적인 경험으로만 남게 된다.

충남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을 주민발의한 충남기독교총연합회에 공개토론을 제안하는 기자회견 중인 글쓴이.

 

진보정치는 그런 다양한 차별의 경험과 주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노동자로,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의 설움과 성소수자가 겪는 혐오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차별과 학생·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억압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정치적 노선을 통해 보여주고, '차별과 배제'라는 공통분모로 다양한 주체들을 모아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실천을 만들어나간다.

 

기득권 정치가 유불리에 따라 주체들의 목소리를 취사선택하는 '단절의 정치'를 할 때, 진보정치는 서로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묶어내는 '연결의 정치'를 한다. 진보정당뿐 아니라 그 어떤 정당이든 노동자를 위한 정치, 여성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한다. 진보정당은 이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미 노동자,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학생과 청소년들이 모여 꾸린 정당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한' 정당이 아닌, 우리의, '배제된 이들의 정당'이라는 정체성이 진보정당이 가진 가장 큰 가능성이다.


돌의 물리학과 인간 유물론의 차이

그리고 '배제된 이들의 정당'이라는 가능성은 기득권 정치세력에 휘둘리지 않는 독자성이 담보될 때에만 그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사실 당론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정당은 많다. 이른바 '독자적 진보정치' 블록의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뿐 아니라 많은 자칭 '진보정당'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한다. 그러한 당들을 구성하고 있는 당원들 중에도 성소수자들이 많다. 그들도 말하자면 '배제된 자들의 정당'이다.

 

그러나, 그런 정당들이 민주당과 함께 총선과 대선을 치르며 선거 공조 조건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공약을 걸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바 없다. 설령 그런 약속을 하며 선거를 치렀더라도 상호 간 역관계의 무게중심이 민주당 쪽으로 크게 치우쳐 있는 상황에서 그런 식의 견인은 현실에서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스스로와 함께하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들을 야합의 대가로 팔아넘기며 하는 변명일 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는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얼마 전 민주노총이 민주당과 정책협약을 준비하며, 사회대개혁 과제 중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를 뺐다고 한다. 정책협약 체결은 무산되긴 했으나, '보수정당 지지 금지' 정치방침의 우회로로 추진된 이 정책협약은 기득권 정치세력과의 야합이 '차별의 당사자'들로 하여금 '또 다른 차별의 당사자'들을 어떻게 지우고 팔아넘기게 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하나의 사건이었다.

 

진보신당의 정책위의장이었던 故 이재영 동지는 "그 사람의 이념과 정책과 문화와 소신과 언행이, 처한 곳의 향취에 젖는다"고 말하며, "바위는 세월에 의해 풍화되지만, 사람은 경계에 의해 풍화"되고 이것이 "돌의 물리학과 인간 유물론 사이의 차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회적 소수자가 모인 정치조직조차, 기득권 세력으로부터의 독립 없이는 사회적 소수자의 자기해방이라는 당연한 과제조차 타협의 대상이 되고 만다. 모성(母星) 없는 혜성은 암흑의 우주를 떠돌지언정 자신의 궤적을 그리지만, 중력장에 포섭된 운석은 결국 모성과 부딪혀 산산조각이 난다.


내 친구들은 모두 가난합니다

사실 위의 거창한 이야기들은 전부 사족이다. 내가 권영국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리고 독자적 진보정치를 천명한 진보정당에서 활동을 이어나가는 이유는 절박하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서, 내 성소수자 지인들은 대체로 가난하다. 트랜스젠더인 지인들은 수술비를 벌어야 해서 더더욱 가난하다.

 

성소수자 활동가들 중 변호사나 연구자, 전문직이 많은 이유는 그것 아니면 벌어먹고 살 것이 없어서다. 다들 이를 악물고 전문직에 진입하려 노력하고, 그것에 실패한, 아니면 그럴 여력이 되지 않는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쿠팡으로, 콜센터로, 아니면 성노동으로 밀려난다. 그래서 "차별금지법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라는 말은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힌다. 전체 트랜스젠더의 15%만이 정규직인 나라에서 어떻게 차별금지법이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닐 수 있는가.

무지개 깃발이 걸려 있는 공공운수노조 쿠팡지회의 집회 무대.

 

사귄 지 세 달 만에 동거하고, 1년 만에 결혼하는 게 레즈비언식 연애라는 농담이 있다. 농담은 농담일 뿐이라지만, 나이가 서른에 가까워지니 또래 친구들도 점점 안정 추구형 인간으로 변모한다. 한 사람에게 정착하고, 애인과 동거하고, 같이 생활을 꾸려나간다. 법적으로 혼인신고 수리도 불가능하지만 꿋꿋하게 혼인신고서를 제출해서 반려당하고, 결혼식을 여는 지인들도 있다. 법이 허락하든 그렇지 않든, 지금도 많은 동성 커플, 동성 부부들이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다. 이들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이, 동성결혼을 법제화하는 것이 민생 과제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나중에' 하겠다는데, 그 '나중'까지 내가 멀쩡히 살아 있을 수 있을까. 비정규 불안정노동자들의 산재 사망 뉴스를, 성소수자들의 자살 소식을, 남겨진 파트너가 배우자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풍문을 접할 때마다 걷잡을 수 없는 절망감에 휩싸인다.


조개를 주워 해일을 막자

성소수자들을 절망으로 몰아넣는 대선, 오직 권영국 후보만이 희망을 이야기한다. 민생을 이야기할 때 성소수자 시민들의 삶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며, 토론과 인터뷰에 여러 사회적 약자들을 상징하는 배지를 차고 등장한다. 진보정당의 대통령 후보 권영국이 없었다면, "아무개 후보님 동성애 찬성합니까 반대합니까" 수준의 저열한 이야기를 빼면 보이지 않았을 성소수자들이 권영국을 통해 대선 동안 이름을 되찾았다. 권영국이 없었다면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을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라는 20년 묵은 변명에 대해서도, 권영국은 "그런 식이면 영원히 못하겠다"라며 일갈했다.

 

권영국의 당선을 위해 성소수자선대위원장으로 뛰고 있지만, 세상 일이 다 그렇듯 권영국이 대통령에 당선될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건, 지금 대선 후보들 중 성소수자 시민들의 절박한 지지를 배신하지 않을 유일한 후보는 독자적 진보정당의 권영국 후보뿐이라는 사실이다. 노동당원인 나는, 그래서 당적도 다른 권영국 후보를 지지한다.

무지개 깃발을 들고 있는 권영국 후보. 권영국 후보는 성소수자 자긍심의 날 전날인 5월 16일 무지개행동과의 정책협약식을 진행, 무지개행동의 성소수자 정책과제를 전면 수용했다.

 

오늘 권영국에게 보내는 한 표가, 정치가 말하는 민생에서 내가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만든다. 권영국에게 투표하는 것은, 권영국이 대선 동안, 대선 이전의 광장에서, 아니 권영국의 삶 전체를 거쳐 그가 만나왔던 성소수자, 여성, 노동자, 철거민, 사회적 참사의 유가족들, 우리 사회의 차별받는 모든 사람들 – 너와 나에게 투표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권영국이 받은 득표만큼, 이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 끈질기게 싸워나갈 토대인 독자적 진보정당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 테다.

 

해일이 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는 조소에 굴하지 말자. 지금 조개를 주워 방파제를 쌓아야 해일을 막을 수 있다고 당당하게 응수하자. 성소수자로서, 정당 활동가로서, 내 삶과 몸으로 기호 5번 권영국을 지지한다.


사루

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사무국장, 권영국 선거대책본부 공동성소수자선대위원장.


우리를 지키는 진보대통령, 권영국을 후원해 주세요!

갈아엎자! 불평등 세상, 권영국의 손을 잡아주세요

권영국 후보 후원계좌: 국민 231401-04-366303 대통령후보자권영국후원회

※ 후원금 영수증 신청 안내

- QR코드 또는 https://linktr.ee/250603kyg 링크에 접속해서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후원은 개인 명의로만 가능합니다(개인 당 최대 1천만원)

- 현행 정당법 상 외국인, 교사, 공무원 등 정당의 당원이 될 수 없는 분들은 후원하실 수 없습니다.


각주

  1. <노회찬과 주대환을 떠나보내며>, 이재영, 레디앙, 2012.3.7. https://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3952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