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모 2025년 8월호 여름 특집>
[사회] 폭염 속 사회초년생의 쿠팡 체험기
역대급 폭염 속, 비정규직 노동자 위주로 돌아가는 물류센터에서는 끊임없는 산재가 발생한다. '당일배송'으로 압도적인 '택배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쿠팡 물류센터의 실상은 어떠한가? 혹서기 쿠팡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온 대학생 박겸도의 생생한 쿠팡 체험기를 게재한다.
어릴 때 엠빅뉴스 같은 방송사들의 유튜브 채널에서 기자가 쿠팡 물류 작업을 체험하는 영상을 보면서 쿠팡은 나에게 굉장히 '이상한 곳'으로, 쿠팡 일은 소위 '힘든 일'이라고 인식되었다. 가끔 뉴스를 보면 '쿠팡에서 누가 죽었다' 같은 소식이 들려오곤 했다. 쿠팡의 노동권 문제를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쯤부터였다. 진보정당의 당원이 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후 노동 의제가 주된 관심사가 되기도 했고, 권영국 정의당 대표가 활동해 온 쿠팡 노동권, 쿠팡 블랙리스트 사건 등을 접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나의 인식은 피상적이었고 쿠팡에서 어떤 사고가 있었으며 누가 죽었다 등등의 뉴스를 보며 항상 안타까워하는 정도였다. 물론 '당일배송'의 유혹으로 가끔은 소비자로서 쿠팡을 사용하기도 했다.
장마가 끝나고 다시 폭염이 시작된 7월 어느 날, 길고 긴 방학을 하릴없이 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웠기에 쿠팡 하루 알바를 신청했다. 방학을 맞이한 주변 친구들 중 몇몇이 쿠팡 알바를 하고 있기도 했고, 뭐라도 일을 좀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주변의 권유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말로만 들었던 쿠팡이 도대체 실제로는 어느 정도일지 직접 겪어 보고 싶기도 했다. 물론 주변의 만류는 존재했다. 일전 쿠팡에 다녀온 한 친구는 "죽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쿠팡을 다녀온 또 다른 친구는 '쿠팡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으로 다른 알바를 구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단 하루만 참고 일하면 약 10만원 정도를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단기 알바를 신청했다.
일을 해 보기 전까지는 몰랐지만, 쿠팡 알바 근무지는 크게 '쿠팡풀필먼트서비스'에서 운영하는 '센터'와 '쿠팡로지스틱스'에서 운영하는 '캠프'로 나뉜다. 전자는 물류센터에서 물류의 입고, 출고, 대분류를 담당하며, 후자는 물류 서브허브, 캠프에서 물류의 중분류, 소분류, 배송업무를 담당한다. 일반적으로 쿠팡로지스틱스 캠프의 노동강도가 더욱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데, 내가 신청한 알바는 쿠팡로지스틱스 알바였고 배정된 근무지는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쿠팡 일산 5캠프였다. 근무 시간은 오전 1시 30분부터 9시까지였다. 근무 안내 문자가 '박검도'라는 틀린 이름으로 온 것은 조금 어이없었는데, 나중에야 알았지만 근무자에 대한 이 정도의 무관심은 그저 웃고 넘길 수준이었다.
자정쯤 셔틀을 타고 쿠팡 일산 5캠프에 도착했다.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것은 쿠팡 측에서 틀어 놓은 안전수칙 영상과 안전화를 신으라는 문구였다. 안전화를 신기 위해 여러 신발장을 뒤져보았지만 나에게 맞는 사이즈는 없었고(애초에 신발 자체가 얼마 없어 대부분이 그냥 신발을 신고 근무했다.), 현장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은 쉬는 시간에 올라와서 찾아 줄 테니 일단 아무 신발이나 신으라고 했다. 형식적으로나마 틀어 놓았던 안전수칙 영상에서의 안전수칙 내용은 시작부터 지켜지지 않았다. 현장에 투입되기 전 혈압 측정이 필수라던 안내 카카오톡의 내용과는 달리 현장에서 혈압 측정은 이뤄지지 않았고, 간단한 본인 확인만 한 뒤 바로 현장에 투입되었다. 현장에는 젊은 남성보다도 중장년층 남성, 여성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장갑을 챙기고 포도당 알약 두 개를 먹고 나서 현장에 투입되었다. 내가 맡은 일은 소분 작업. 처음 해보는 일이었기 때문에 감독관이 있는 컨베이어에 투입되었다. 관리자들은 우리를 ~~님 이라는 식으로 불렀다(아마 이름이거나 사원님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공장 소음 때문에 전혀 들리지 않고, 그냥 손짓을 통해 날 부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밖에 없었다). 공장은 형식적인 분업이 이루어져 있었다. 한 컨베이어에 약 2명에서 많으면 4명 정도가 투입되었고, 대부분은 2명 정도로 이루어졌다. 번호마다 물건을 소분하며 돌아가는 컨베이어에서 물건을 하나라도 놓치면 관리자들의 "야 이게 왜 여기 와 있어" 같은 말이 곧바로 들려 왔다.
혹서기인 지금, 운 좋게 선풍기 앞에서 작업을 하던 나에게 처음 작업은 그나마 할 만했다. 그러나 물류가 폭발적으로 들어오기 시작면서 나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이 여기저기로 끌려다니기 시작했다. 터져나오는 물류를 감당하지 못해 한 곳으로 사람을 집중 배치하면 다른 곳의 물류가 터져나가는 등의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 와중에 선풍기는 각 컨베이어마다 두 개씩 존재했고, 그것이 더위를 식혀 줄 그나마의 유일한 수단이였다. 한 대는 커다란 업소용 선풍기였는데 사실상 뜨거운 바람을 전달해 주는 역할밖에 하지 못했고 나머지 하나는 천장에 달려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모든 곳의 물류가 터져 나가고 있었다. 사람은 턱없이 적었고 물류는 끝없이 들어왔다. 물론 많은 물건들도 그 사이에 낑겨 멀쩡하지 못했다.
쉬는 시간, 에어컨이 있는 휴게실로 이동했다. 쉬는 시간에 내려와서 사이즈에 맞는 안전화를 주겠다던 감독관은 보이지도 않았고 사람들은 그제서야 볼일을 조금씩 처리하기 시작했다. 정규직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당이 많은 음료들은 빠르게 품절되었고, 그냥 앉아서 휴식할 수 있다는 것과 에어컨 덕분에 시원하다는 것이 그나마의 위안거리였다. 다시 작업에 투입되기 전, 함께 간 친구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했다. 다시 포도당 알약을 먹고 작업에 들어갔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투입된 첫 일은 앞선 소분에 사용된 수레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어느덧 해가 뜨기 시작해 점점 기온이 높아졌고, 수레를 정리하는 구간에는 선풍기마저 없어 매우 더웠다. 땀이 넘쳐 속옷까지 젖었다. 수레 정리가 완료된 후에는 잠시 숨 돌릴 시간조차 없이 소분 작업에 다시 투입됐다. 물류가 넘쳐 캔 음료들이 떨어져 터지면서 바닥이 미끄러워졌다. 물론 매뉴얼에는 바닥이 젖는다면 바로 관리자들에게 말하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았고, 같은 컨베이어에서 소분하는 분과 나는 몇 차례 미끄러졌다. 컨베이어 위를 지나다니면 안 된다는 매뉴얼 역시 물류가 넘치면서 컨베이어 위에 올라가 물류를 빼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바닥의 액체 때문에 미끄러워진 신발(안전화가 아니다)을 신은 사람들이 컨베이어 위를 넘어다니다가 넘어질 뻔한 적도 있다. 컨베이어에 손을 대면 안 된다고 하지만, 짐을 잡으려면 컨베이어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어느 시점부터는 컨베이어 뒷부분이 완전히 막히면서 컨베이어의 뒷부분에서 물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선풍기라도 있던 컨베이어의 중간부분과 달리 아무것도 없던 컨베이어의 뒷부분은 찜통과 다를 바 없었고,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왜 쿠팡에서 심장마비 사고가 그렇게 많이 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머리가 멈춰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짐만 옮겼다. 나르던 물건 중에는 음료, 쌀, 심지어 돌도 있었다. 두 명이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물류였고, 결국 물류 사이에 낑겨서 일을 할 정도로 물류들이 넘쳐났다. 정규직으로 보이는 분들이 투입되고 나서도 물류는 끊임없이 나왔다. 여러 상자들이 구겨지고 터지면서 바닥은 난장판이 되었고 결국 한 번은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했다. "일이 빨리 끝나면 40분 일찍 퇴근시켜준다"던 말이 이만큼 어이없게 느껴질 줄은 알지 못했다.
마지막 작업은 소분된 수레를 끌고 각 번호에 맞게 보내는 일이었다. 수레를 끌고 다닐 때에는 이미 다들 말할 기운조차 없이 힘든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진이 빠진 몇몇 사람들은 힘없이 수레를 끌다 서로 부딪히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오전 8시가 넘어갔고, 해가 어느덧 중천에 떴지만 여전히 일은 끝나지 않았다. 올 때까지 상상조차 못했던 '도망갈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실제로 지정된 시간이 끝나지 않았지만 도망치듯 현장을 떠나는 단기알바 노동자들이 종종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심장이 너무 아팠다.
거의 퇴근하기 직전이 되어서야 사람들과 몇 마디의 이야기를 나눴다. 많이 힘드냐는 인사가 대부분이었고 어쩌다 여기 왔냐는 말도 있었다. 다른 쪽에서 일하던 친구(분명 함께 소분 작업으로 신청했는데 소분이 아닌 작업에까지 여기저기로 끌려다녔다)는 그나마 에어컨이 있다고 했다. "에어컨이 있었어?" "아마 조그만 동그라미가 에어컨이라던데" "진짜?" "근데 아래 있어도 안 시원하고 답답해" 이런 대화를 나눴다. 이 친구는 상하차 작업에 투입되었다. 칼로 비닐을 뜯고 일일이 상품들을 나르는 것에 더해 분류 작업도 하는 등 고된 일들을 겪다가 반쯤 초췌해져 돌아왔다. 후일담이지만 이 친구는 이후 쿠팡 고양 3센터(운영주체가 다른 쿠팡풀필먼트 소속이다)에서도 근무하고 돌아왔다. 그는 쉬는 시간이 1시간 10분으로 조금 더 길다는 것과 천장의 선풍기가 5캠프보다 많다는 것만으로도 그나마 좀 낫다고 했다.
쿠팡을 가 보기 전의 나에게는 쿠팡에 대해 '노동이 힘들지만 돈은 많이 준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나와 친구가 했던 일들은 일급 93,166원(시간당 약 11,645원)에 비해서 충격적으로 고된 일이었다. 노동강도에 비해 쉬는 시간은 턱없이 적었고, 또 한 가지 확실히 느낀 것은 현장이 너무 열악하다는 점이었다. 특히 혹서기의 살인적 더위에도 에어컨 바람은 쉬는 시간에만 잠시 맞을 수 있었으며 선풍기는 전혀 의미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 야근의 피곤함이 더해져 캠프의 모든 사람들이 예민해져 있었다. 이 점은 관리자나 정규직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작업 중 잠시 삐끗하기만 해도 금세 고성이 오갔고, 피로함에 말을 잃어버린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기저기에서 한숨 소리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잠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들은 말 중 가장 인상깊었던 말은 "퇴직 후 먹고살기 위해서 들어왔다"는 답이었다. 이렇게까지 많은 물류가 오고 가며, 상상 이상으로 많은 돈을 버는 기업이 어째서 쉬는 시간도 주지 않고 에어컨 달 돈을 그렇게까지 아끼려 할까. 분명히 지금 이 시간에도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음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존재함에도 왜 여전히 사람이 죽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이 사업장은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을까. 그것은 '퇴직 후 먹고살기 위한' 사람들, 쿠팡이 아닌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사람들, 하루하루의 일당이 너무도 절실한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쿠팡은 이들의 생계를 목에 쥐고 협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도 블랙리스트를 통해 내부의 열악한 실태를 숨기기에 급급하고 있는 소위 '택배업계 1위' 쿠팡, 반나절 동안 마주친 그 민낯은 내가 상상했던 그 이상으로 충격적이었다.
쿠팡을 체험하고서는 진보정당 당원, 혹은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느껴졌다. 현장과 멀리 떨어진 말들이 공허하게 느껴졌고, 그렇기에 더더욱 현장이 실제로 어떤 곳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그래서였다. 단 하루의 노동 체험으로 쿠팡의 모든 노동환경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매일매일을 쿠팡에 출근하거나, 물류 일을 지속적으로 해 오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러나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쿠팡 체험은 흔히 말하는 '인간이 기계부품으로 굴려진다'는 말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몸으로 와닿게 한 첫 번째 경험이었다.
8월이 다가온다. 기후위기가 불러온 역대급 폭염에 허덕일 때마다, 아마 당분간 나는 쿠팡과 쿠팡에서 지금도 일하고 있을 노동자들을 떠올릴 것 같다. 내가 당원으로 있는 정의당을 포함하여 고양·파주 지역의 진보 3당(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은 쿠팡 고양센터의 에어컨 설치, 휴대폰 사용, 공정 변경 이동거부권 등과 관련하여 지난 6월부터 공공운수노조와의 협업으로 피켓팅 및 연대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지면을 빌어 많은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리고자 한다. 더 이상 이런 곳에서 일하는, 이런 곳에서 죽어나가는 사람은 결코 없어야만 한다는 것이 반나절 간의 쿠팡 체험이 나에게 남긴 교훈이었다.
※ <도모>는 혹서기를 맞아 2025년 8월호를 '여름 특집호'로 하여 특집기사들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박겸도
전환 회원.
사학을 전공하며 평범한 사람의 힘으로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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